기후위기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개개인이 일상의 불편과 변화를 감수해야만 달성 가능하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일상 속에서 어떤 실천을 하거나 하지 못하는지, 어떨 때 죄책감이나 희망을 갖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과학자들의 경고만큼이나 중요하다. ‘모든 기후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반복적인 경고 속에서 사람들이 고민과 경험을 나누는 것은 그 자체로 ‘포기하지 않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다양한 분야에서 기후위기에 대해 고민하고, 무엇이라도 해보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을 만났다. 어떤 직장인은 바다를 찾을 때마다 쌓여있는 쓰레기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바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본인이 일주일간 쓴 플라스틱 갯수를 세어본 뒤 충격을 받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쓰이는 플라스틱에 대한 조사를 한 10대 청소년도 있다. 어떤 잡지사 에디터들은 기후위기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독자에게 쉽게 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었다. 때론 흔들리고 좌절하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인터뷰를 연재한다.
쓰레기를 버리는 날마다 쓰레기 앞에서 고민에 빠지는 대학생 최지승씨. 쓰레기에 대한 그의 마음은 거주하는 공간에 따라 조금씩 변해 왔다. 권도현 기자
(2) 쓰레기를 버리는 날마다 쓰레기에 대해 고민하는 대학생 최지승씨
대학생 최지승씨는 매주 두 번, 쓰레기 버리는 날이면 고민에 빠진다. 덜 채워진 쓰레기 봉지를 이대로 버려도 될까, 다 채워서 버려야 할까. 좁은 자취 집에 벌레라도 생길까, 덜 채워진 봉지라도 얼른 버리고 싶은 마음과 ‘이것도 비닐인데’ 고민하는 마음이 충돌한다. 결국 ‘언젠가 버리게 될 것들’을 찾아 온 집안을 뒤진다. 박스 포장돼 있던 물건들은 분리해 정리하고, 쓰레기 봉지에 넣는다.
쓰레기에 대한 생각은 그가 거주하는 공간에 따라 변했다. 가족들과 함께 경북의 농촌에 살 때는 배출 자체가 적었다. 분리수거장이 있는 시내의 아파트에 살 땐 언제든 쓰레기를 버릴 수 있어서 편했다. 서울의 1인 가구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는 ‘비닐로 낱개 포장된 사과 한 알’ 같은 예상치 못한 쓰레기와 마주했다. “도시에 살수록 1인 가구로 생활할 확률이 높잖아요.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쓰레기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내가 무엇을 소비하든, 쓰레기가 달려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후 환경은 악화되고, 변화는 더디다. 이런 상황은 나아질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고 있다고 했다. 생수 페트병을 줄이기 위해 간이 정수기를 쓰기 시작했다. 배달 음식은 거의 시켜먹지 않는다. 옷은 빈티지 매장에서 산다. 이상기후로 유럽 곳곳에 산불이 났던 2021년에는 자원봉사 활동을 간 그리스에서 집과 농장이 모두 불에 타버린 지인의 이야기를 편지로 써 사람들에게 띄웠다.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야 변화도 생긴다고 믿는다’는 최씨를 지난달 한 카페에서 인터뷰했다. 다음은 최씨와의 일문일답.
-1인 가구 생활은 언제부터 한 건가요.
“2020년 9월부터 혼자 살았어요.”
-1인 가구로 살면 자기가 배출하는 쓰레기가 얼마만큼인지 알게 되는 것 같아요.
“5인 가족이 살 때는 제가 얼마나 쓰는지 가늠을 못했거든요. 혼자 사니 그날 그날 얼마나 썼는지도 보이고, 주말과 평일에 따라 다른 것도 보여요. 친구를 집에 초대한 날은 쓰레기가 훨씬 많아지고요. 요즘엔 요리도 잘 안하고 밖에서 사먹다 보니 쓰레기가 덜 나오고 있는데, 내가 안 써서 없다기 보다는, 밖에서 버려서 그런 것 같아요.”
-식음료를 살 때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요.
“사과를 낱개 포장한 걸 사면서 그렇게 느꼈어요.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에서 과일을 먹으면 박스 채로 사잖아요. 혼자 살 때는 그걸 다 못 먹으니 편의점에서 하나씩 포장된 걸 사요. 재활용 안되는 비닐 포장재가 쓰레기로 나오죠. 원래 쓰레기 중에는 생수 페트병 비율이 가장 높았는데, 간이 정수기 산 뒤로 줄었어요. 다만 탄산수는 거의 페트병에 들어있어서 일주일에 3~5병 정도 나와요. 그 외에는 라면 봉지 같은 재활용 안되는 비닐 쓰레기가 가장 많이 나오죠.”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어떤 고민을 하나요.
“쓰레기 봉지를 오래 갖고 있고싶지 않아서 최대한 빨리 버리고 싶은 마음과, 다 채워서 버려야 하지 않나하는 마음이요. 자취하는 집이 7평 정도인데 바퀴벌레 걱정도 되고, 그런 해충이 나온 뒤부터는 쓰레기를 최대한 빨리 버리려 하거든요. 재활용 쓰레기 담는 큰 봉지를 사서 쓰는데, 정말 노력해서 플라스틱을 안 쓰려고 하면 1~2개 찰 것 같아요. 그런데 그만큼만 채워졌을 때 그 큰 봉지를 버리기는 아까운 거예요. 요거트 통 하나만 넣어 버릴 순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내일이 쓰레기 버리는 날인데 너무 많이 비어 있다 싶으면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쓰레기 한 번 버릴 때마다 온 집안에서 버려야 될 쓰레기를 물색해요.”
-1인 가구가 되기 전에도 쓰레기에 대한 고민을 했나요.
“고향은 산 밑의 시골이에요. 어릴 때는 종량제 봉투가 없었어요. 모아서 그냥 태웠거든요. 음식물 쓰레기는 땅에 뒀다가 거름으로 쓰곤 했어요. 그래서 쓰레기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없었어요. 그러다 시내에 있는 아파트에서 지낼 때는 밑에 분리수거장이 있으니까, 언제든지 나가서 버리면 됐어요. 그런데 이렇게 자취를 하니까 오히려 쓰레기를 더 많이 배출하는 것 같아요.”
-공간이 바뀌면서, 쓰레기에 대한 생각도 달라진 거네요.
“고향에 있으면 플라스틱을 쓸 일이 적거든요. 제가 편의점에서 많이 사 먹는게 (페트병에 든) 보리차, 옥수수염차예요. 그런 것도 집에서는 주전자에 끓여 컵에다 먹죠. 플라스틱 나올 일이 없었어요. 배달 음식도 배달이 안되니까 안 먹고, 생수도 안 사먹고… 이렇게만 살면 쓰레기, 플라스틱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도시에 살수록 1인 가구로 생활할 확률이 높잖아요.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쓰레기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도시생활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여지가 없으니까. 내가 무엇을 소비하든, 쓰레기가 달려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페트병에 든 생수 사다 먹는 대신 간이 정수기 쓰기, 배달 음식은 시켜먹지 않기, 옷은 빈티지 중고의류를 사기…최씨는 “가장 소비를 많이 하는 분야에서는 이렇게 하려고 한다”고 했다. 권도현 기자
-환경과 관련해 실천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옷을 좋아해요. 예전에는 저도 학생이니까 SPA 브랜드에서 많이 샀어요. 그런데 몇년 지나면 금방 쓰레기가 되는거예요. 학교에서 무슨 발표를 준비하다가 의류 산업의 환경오염에 대해 알게 됐어요. 의류 염색을 하는 과정에서 물이 오염되고, SPA 브랜드들의 노동자 인권 문제도 있다고요. 그 뒤로 옷 비중의 90%가 빈티지예요. 처음에는 환경보다는 빈티지 가게에서 보물을 찾는다는 마음으로 가기도 했어요. 그러다보니 소비 방식이 바뀌어버린 것 같아요. 환경오염이 심한 산업에서 나오는 것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에도 만족감을 느끼고요. 지금 입고 있는 치마도 엄마가 남는 천으로 만들어주신 거예요. 책도 거의 중고로 사는 편이에요. 배달음식은 먹고 싶어도 고민하다 안 시키는 편이 많아요.”
-살면서 ‘이게 기후변화인가’ 라고 느낀 적도 있나요.
“꽤 자주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 뉴스에서 ‘2020년이면 양서류가 거의 없어진다’는 기사를 봤어요. 초등학생 때였는데 너무 충격적이어서 기억이 나요. 그때는 저희 마을에 개구리가 정말 많았거든요. 요즘엔 여름에 집에 가도 개구리 소리도 잘 안들리고, 개체 수도 많이 줄었다고 느껴요. 작년에 두 달간 그리스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어요. 그리스에 산불도 많이 났잖아요. 지인도 돼지 농장을 하는데 돼지가 다 탄 거예요. 기후변화가 먼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그는 그리스에서 받은 종이 영수증을 재활용해 편지를 쓰는 작은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2021년은 이상기후로 유럽 곳곳에 큰 불이 잦았다. 그가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빠나요띠스와 그의 가족은 펠로폰네소스에서 100년 넘게 돼지 농장을 운영해 왔다. 농장에는 돼지 3000마리가 있었다. 그런데 작년 8월 큰 불이 났다. 불길이 처음 치솟고 3일이 지나서야 농장에 돌아올 수 있었던 빠나요띠스는 절반이 탄 집과 절반 녹은 농장, 절반 죽은 돼지가 불 속에 갇힌 광경을 봤다. 그는 지금 새 집을 짓고 있다. 올 여름에도 불이 나버리면 빠나요띠스와 돼지들은 어떡하지.’
최지승씨가 그리스에 자원활동을 갔을 때 영수증을 재활용한 편지지에 썼던 편지. 갑자기 난 산불로 살던 집과 농장을 잃게 된 지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2021년에는 그리스를 비롯한 남부유럽 곳곳에는 이상기후로 인한 큰 산불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최지승씨 제공
-요즘 기후나 환경문제와 관련해 어떤 고민이 있나요.
“뉴스를 보다 보면 뭐가 맞는 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요. 재생에너지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농지에 들어서는 것도 그렇고요. 플라스틱 바다에 버려지는 것, 누군가는 일상에서 버리는 플라스틱보다 산업에서 버려지는 것들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해요. 그런 얘기를 자꾸 들으면 ‘내가 빨대 하나 안 버린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고민하는 가장 큰 원인은 ‘잘 몰라서’ 인 것 같거든요. 참고할 만한 정보를 쉽게 찾지 못하기도 하고요. 제일 중요한 건 공부를 하는 것 같아요. 다만 모두가 다 환경운동가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매일 찾아보는건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미디어 종류도 많고, 같은 문제에서도 완전히 다른 결론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요. 객관적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기후위기, 환경문제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잖아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나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야 변화가 생길 것 같아요. 방울토마토가 보통 플라스틱 박스에 들어있잖아요. 그런데 얼마 전에 본 방울토마토는 종이 박스에 들어있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선택해서 샀어요. 그런데 선택을 할 때, ‘내가 여기서 뭘 선택하든 전혀 나아지는 게 없다’고 생각을 해버리면, 선택의 동기가 없어져버려요. 저는 그런 선택의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서라도,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믿지 않으면, 아예 시작도 못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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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솔 기자 hansol@khan.kr
매일 ‘환멸’과 ‘괜찮아’ 사이를 추처럼 왔다갔다 해요. 거기서 ‘세상은 안 변해’ 하고 돌아설 것이냐, 그래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살 것이냐 중에 선택하는 거잖아요.
— 플랫 (@flatflat38) April 25, 2022
저는 죽기 전에 ‘문제가 있는데 없는 것처럼 살진 않았어’라는 생각이 들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어요.https://t.co/GxzOdsP7X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