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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보통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다뤄진다. 이들의 말은 대체로 비슷하다. ‘이대로라면 산업화 이전 시기 대비 지구평균기온은 1.5도 이상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기후위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대응책도 이미 나와 있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짜야 한다.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를 타야 한다. 생활 전반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위기를 증명하는 과학적 근거는 차고 넘치며, 대응책 역시 있다. 그런데, 이것으로 충분할까.


기후위기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개개인이 일상의 불편과 변화를 감수해야만 달성 가능하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일상 속에서 어떤 실천을 하거나 하지 못하는지, 어떨 때 죄책감이나 희망을 갖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과학자들의 경고만큼이나 중요하다. ‘모든 기후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반복적인 경고 속에서 사람들이 고민과 경험을 나누는 것은 그 자체로 ‘포기하지 않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다양한 분야에서 기후위기에 대해 고민하고, 무엇이라도 해보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을 만났다. 어떤 직장인은 바다를 찾을 때마다 쌓여있는 쓰레기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바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본인이 일주일간 쓴 플라스틱 갯수를 세어본 뒤 충격을 받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쓰이는 플라스틱에 대한 조사를 한 10대 청소년도 있다. 어떤 잡지사 에디터들은 기후위기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독자에게 쉽게 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었다. 때론 흔들리고 좌절하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인터뷰를 연재한다.



(3)‘기후위기 대응’을 트렌디하게 말하는 <1.5℃> 에디터들



유다미씨와 조서형씨는 5년차 잡지 에디터다. 유씨는 디자인 전문지에서, 조씨는 그래픽 디자인과 아웃도어 전문지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라이프 스타일 콘텐츠를 다루는데 익숙했던 두 사람은 지금은 ‘기후위기 대응 매거진’인 <1.5℃>를 제작하고 있다. <1.5℃>는 독자들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계간지다. 크리에이티브 임팩트 기업인 볼드피리어드와 신재생에너지 기업인 소울에너지가 함께 만든다.

기후위기는 잡지 소재로는 낯설다. ‘전기차’를 주제로 한 최근호는 ‘전기차만 타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내연기관차 시대의 종말, 전기차를 타는 평범한 시민들의 고민, 전기차에 쓰인 폐배터리 처리 문제와 배터리 원료 채굴 과정에서의 오염 문제까지 짚었다. 어려운 주제를 다루지만,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학술지와도 거리가 멀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나오는 화려한 그래픽과 사진, 일러스트가 눈에 띈다.

기후위기 대응 매거진 <1.5℃>를 제작하는 조서형 에디터, 유다미 에디터. 우철훈 기자

기후위기 대응 매거진 <1.5℃>를 제작하는 조서형 에디터, 유다미 에디터. 우철훈 기자

기존과 전혀 다른 분야의 콘텐츠를 다루면서 기후위기를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조금씩 바뀌었다. 유씨는 “이전에는 비관적이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비관은 덜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오히려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는게 좋은 방향으로 일을 이끄는 것이 아닐까”라고 했다. 조씨는 “예전에는 ‘지구는 이렇게 크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내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라고 생각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만나다보니, 이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들려줄 수 있다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구나 싶다.”고 했다. 두 에디터를 지난달 서울 용산구의 볼드피리어드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5℃>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조=“그래픽 디자인 매거진에서 일을 시작했고, 아웃도어 전문지에서도 일을 했어요. 짧은 영상 콘텐츠를 주로 만들었어요.”

유=“미디어 아트, 예술,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쓰다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 일을 했어요. 국내 디자인 산업과 소비 문화, 라이프 스타일을 주로 다뤘어요.”

-<1.5℃> 에는 어떻게 합류했나요.

조=“두 가지 중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하나는 <1.5℃>였고, 하나는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한 일이었어요. 전 기후위기가 크게 체감은 안 됐거든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기후 이야기를 많이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문제를 더 들여다 보고 싶어서 1.5도씨 합류를 결정했어요.”

유=“이전 회사에서 ‘바람과 물’(생태전환 매거진) 소개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기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느끼는 계기가 됐어요. 그동안 썼던 것과는 또 다른 의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합류하게 됐어요.”

-잡지에서도 ‘기후위기’가 다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잡지는 시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기후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최전선에 있는 상황에서 잡지는 그 심각성을 패셔너블한 방식으로 알릴 수 있는 매체죠. 한편으로는 기후도 하나의 트랜드가 됐다는 반증인 것 같아요. 과거 1인 가구가 화두였을 때 혼자 사는 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다루는 잡지가 나왔던 것처럼요.”

-어렵거나 신경쓰이는 점은 없나요.

조=“사람들이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생활과 밀접한 이야기를 해야 독자들에게 와닿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호에서는 전기차를 타는 것이 부자들만 가능하거나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초소형 전기차를 타는 분을 인터뷰하면서 얼마에 샀고, 운영비가 얼마나 드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았어요. 크고 중요한 문제를 놔두고 작은 이야기만 하는건 아닌가 고민되기도 해요. 예전에는 기후환경 문제에 대해서 ‘고기 덜 먹고, 자동차 덜 타면 되지’ 정도로 쉽게 생각했어요. 잡지를 만들면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얽혀있고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돼 조심스러워졌어요.”

유=“기업들의 그린워싱을 경계하게 돼요. 지속가능한 삶을 실천하는 분들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할 때도 너무 ‘멋져보이는 것’만 조명하는게 아닌가 돌아보기도 하고요. 저희는 기후위기의 솔루션을 제시할 순 없지만,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를 말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조서형 에디터, 유다미 에디터가 만든 <1.5도씨> 우철훈 기자

조서형 에디터, 유다미 에디터가 만든 <1.5도씨> 우철훈 기자

-디자인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고 들었어요.

조=“타깃으로 잡은 독자층이 환경전문가나 환경운동가가 아니었어요. 저같은 일반 사람들이었죠. 멋있게 만들어서 일반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게 중요했어요. 첫 회의 때 ‘환경 이야기를 하려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어떤 방식으로 말을 할 때 귀를 기울이고 싶은가’에 대해 논의했어요. 안 그래도 어려운 주제를 난해하게 말하거나 ‘네 탓’이라고 공격적으로 말하는 사람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잖아요.”

-일을 하며 기후문제에 대한 생각이 바뀐 점도 있나요.

유=“이전에는 비관적이었어요. 일상에서 최대한 실천을 하려 하지만, 결국에는 기업들이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하고, 한국에서 아무리 쓰레기 분리수거 해도, 미국에서 그냥 버리는 것을 보면 맥이 빠지잖아요.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는 그런 비관을 덜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오히려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을 해 나가는게 좋은 방향으로 일을 이끄는 것이 아닐까.”

조=“예전에는 ‘지구는 이렇게 크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내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했거든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만나다보니, ‘나는 저 멋있는 사람과 같은 팀이구나. 우리는 팀으로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구나’ 생각해요. 지금은 내가 잡지를 만들어서 이런 분들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구나 싶어요.”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도 있나요.

유=“페스코식(달걀·어류를 함께 먹는 채식)을 하고 있어요. 잡지의 주제와 제 생활을 연결시킬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전기차 편을 만들면서 전기차 주식을 사봤어요. 친환경, 재생에너지 기업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보게 됐어요.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도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등을 중시하는 지속가능경영) 기업에만 투자한다는 친구들이 꽤 있는 거예요. 당장의 수익보다는 모두에게 좋은 투자를 하는 것도 실천 아닐까요.”

조=“친환경으로 포장된 제품을 사는 것 보다는 소비를 줄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1년 동안 옷 안사기’ 프로젝트를 했어요. 운동복이 필요해져서 6개월로 그치긴 했지만, 옷을 안 사면서 굉장한 해방감을 느꼈어요. 물티슈는 예전부터 안 쓰고 있어요.”

기후위기 대응 매거진 <1.5℃>를 제작하는 조서형 에디터, 유다미 에디터. 우철훈 기자

기후위기 대응 매거진 <1.5℃>를 제작하는 조서형 에디터, 유다미 에디터. 우철훈 기자

-사람들은 왜 기후위기에 대해 말하기 어려워 할까요.

유=“모르는게 많아서가 아닐까요. 저희도 만들면서 ‘이 문제와 관련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지?’에서 많이 막히거든요.”

조=“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인터뷰를 요청하면 ‘전기차를 타긴 하는데 친환경적인 사람은 아니에요’라는 이야기를 들어요. 스스로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말 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괜히 말했다가 공격받기 쉬운 주제이기도 해요. 누군가는 제가 물티슈 안 쓰는 것을 두고 ‘네가 넷플릭스 보는게 더 환경 파괴야’ 라고 말해요. 데이터센터를 가동하는데 드는 에너지를 화석연료로 만들고 있지 않느냐는거죠.”

-<1.5℃>를 본 이들이 어떤 것을 얻길 바라나요.

유=“저희 잡지가 ‘네가 넷플릭스 보는게 더 안 좋아’ 라고 말 하는 이들에 맞서서 몇 마디라도 쉽지만 정확하게 반박할 수 있는 무기가 되면 좋겠어요.”

조=“커다란 깨달음이나 변화보다는 주변에 있는 문제에 대해 ‘이게 맞나?’ 의심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스스로 찾아보고 알아봐서 더 깊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래요.”


김한솔 기자 hansol@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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