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기후위기(9)

“심장이 철렁하는 기후위기”를 기록하는 ‘기후위기 아카이브’ 운영자 서지연씨

강한들 기자
트위터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을 운영 중인 서지연씨(가명)가 지난 1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트위터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을 운영 중인 서지연씨(가명)가 지난 1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트위터 스크롤을 내린다. ‘너도 멸종되지 않게 조심해’라고 경고하는 공룡 캐릭터가 보인다. 계정을 클릭하면 배경 사진으로 줄무늬가 알록달록 나온다. 왼쪽에는 푸른색 줄무늬가 많다가, 점차 푸른 빛이 연해지더니 오른쪽으로 갈수록 붉은빛 줄무늬가 두드러진다. 영국 레딩대학교의 기후과학자인 에드 호킨스 교수가 개발한 ‘온난화 줄무늬’다. 이 줄무늬들은 각각이 한 해의 평균 온도를 나타낸다. 1901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의 연평균 기온을 1971년에서 2000년까지의 평년값과 비교해 높을수록 붉은색, 낮을수록 푸른색을 띈다.

약 1만5000 팔로워를 가진 트위터 계정 ‘기후위기 아카이브’(@envsha)의 모습이다. 에드 호킨스 교수는 지난해 9월 레딩대학교의 유튜브에서 “기후변화라는 심각한 메시지를 보여줄 수 있는 단순하고, 화려한, 즉각적인 효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며 “당신 지역의 줄무늬를 보여주고, 사람들과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라”고 말한다. ‘기후위기 아카이브’는 국내외 기후위기와 관련한 재난, 행동, 연구 결과, 기사 등을 기록한다. 기록은 트윗을 타고 사람들에게 퍼진다. 업로드 기준은 “심장이 철렁하는” 소식이다. 팔로워의 연령대를 묻는 단순한 설문에서도 ‘1980년대-340ppm’ ‘1990년대-360ppm’ 등으로 당시 온실가스 농도를 함께 전달한다. 심각한 기후위기 상황을 전하면서도 “무기력해지지 말고 계속 떠들자”는 ‘기후위기 아카이브’ 운영자 서지연씨(가명·30)를 지난달 16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에드 호킨스 레딩대학교 기후과학과 교수가 운영하는 ‘쇼 유어 스트라이프(#ShowYourStripes)’ 홈페이지에서 1901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의 연 평균 기온을 1971년부터 2000년까지의 평년 값과 비교해 나타낸 줄무늬. 푸른색일수록 연 평균 기온이 낮았던 해, 붉은색일수록 연평균 기온이 높았던 해로, 좌에서 우로 갈수록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이 돋보인다. ‘쇼 유어 스트라이프(#ShowYourStripes)’ 홈페이지 갈무리

에드 호킨스 레딩대학교 기후과학과 교수가 운영하는 ‘쇼 유어 스트라이프(#ShowYourStripes)’ 홈페이지에서 1901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의 연 평균 기온을 1971년부터 2000년까지의 평년 값과 비교해 나타낸 줄무늬. 푸른색일수록 연 평균 기온이 낮았던 해, 붉은색일수록 연평균 기온이 높았던 해로, 좌에서 우로 갈수록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이 돋보인다. ‘쇼 유어 스트라이프(#ShowYourStripes)’ 홈페이지 갈무리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IT 업계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2020년부터 기후위기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어요. 친 언니를 빼고는 제가 이 계정을 운영하는 건 아무도 모르지만요.”

-‘초등학교 때 환경스페셜을 챙겨봤다’는 트윗이 있던데.

“동물을 좋아해서 환경 다큐멘터리를 즐겨봤어요. 막연하게 기후위기가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아요. 대학생 때 미국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갔어요. 그런데 2017년쯤부터 매년 불이 심하게 났어요. 학생들 중에서도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취미로는 새를 관찰하는 탐조를 하고 있어요. 해외에서 새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을 트위터에서 팔로우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기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구요.”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시작은 호주 산불이었어요. 호주 산불로만 코알라의 3분의 1이 죽고, 척추동물 30억 마리가 죽었다는 기사가 있었어요. 인도양 극점 현상 때문에 호주가 건조해지고 아프리카는 너무 습해져서 메뚜기떼가 나왔다는 기사도 있었어요. 이런 기후위기 뉴스를 모두가 봤으면 좋겠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당연히 알아야 할 걸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시물을 올리는 기준이 있나요.

“딱 봤을 때 심장이 철렁하는 뉴스, 진짜 심각한 건데 그에 비해 주목을 못 받는 것을 올려요. 트위터에 올라오는 게시물, 뉴스레터로 보는 것 등 소재는 다양해요. 뉴욕타임스, 카본 브리프, 인디펜던트 등 외신에 ‘이렇게는 생각을 못 해봤다’하는 내용이 많아요. 국내 동향으로는 청소년기후행동의 ‘청기행 레터’를 보고 있어요. 지난해부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6차 보고서가 나왔는데, 뒤로 갈수록 주목을 못 받았던 거 같아 착잡했어요. 심각성만 보면 언론에 헤드라인이 ‘꽝꽝’ 박혀야 할 것 같은 내용이 많은데 아쉬워요.”

-더디게 변하는 기후위기 상황에 지칠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1~2주에 하나씩은 게시물을 올려야지’ 마음을 먹곤 하는데, 리트윗(다른 사람의 게시물 공유)만 할 때가 있어요. 이럴 때는 너무 바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예요. 최근에는 ‘대혼란의 시대’라는 책을 읽고 착잡해졌었어요. 사용하는 화석 연료, 온실가스 배출량과 소득 수준이 거의 정비례한다고 하더라고요. ‘이걸 끊을 수가 있나’ 이런 느낌이 들었죠. 근본적으로는 욕심의 문젠데, 사회적인 수준에서 욕심을 멈추는 게 가능할지가 우려스러웠어요. 잊고 지내다가 이번에 인도에서 있었던 폭염 같은 큰 뉴스가 있으면 ‘이건 올려야겠다’ 하는 거죠.”

서지연씨(가명)가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에 트윗을 올리기 위해 내용을 정리하는 모습. 서지연씨 제공

서지연씨(가명)가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에 트윗을 올리기 위해 내용을 정리하는 모습. 서지연씨 제공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오역을 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까봐 걱정이 들 때가 있어요. 기후 재난이 나타났을 때 그게 기후변화 때문이었다고 결론을 지으려면 연구가 필요하고, 재난과는 시차가 있을 때도 있잖아요. 이럴 땐 고민이 돼요. 그러다가도 제가 계정을 운영하는 것을 모르는 친구가 제 계정에서 언급했던 이야기를 알고 있을 땐 뿌듯해요. 최근에는 친구가 통가 화산 때문에 기온이 낮아질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어요. 제가 시발점이 됐다고 확신을 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도 일상에서 이야기 할 수 있게 됐다는 것, 기후위기가 평소 사람들이 하는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거니까, 더 나아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트윗이 있나요.

“나사 기후과학자인 피터 칼머스가 울면서, ‘이대로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거짓말도 과장도 아니다’라고 말하다 체포됐다는 트윗을 공유한 게 기억에 남아요. 지난해 말에 피터 칼머스가 영화 <돈 룩 업>을 보고 자기는 ‘매일이 <돈 룩 업>이다’라고 했는데, 울면서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그 트윗이 생각났어요. 사람들이 ‘저게 누구야’ 하며 넘길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트윗을 썼는데, 제가 알기론 1만 리트윗이 넘어간 게 처음이었어요.”

트위터 ‘기후위기 아카이브’ 갈무리

트위터 ‘기후위기 아카이브’ 갈무리

-선거에서 기후위기가 실종됐다는 이야기도 많았어요.

“대선 정국에서는 밀고 싶은 정책이 없고 모두 미흡했어요. 기후 대선이 돼야 하는데, 전혀 이슈가 아니었고, 그래서 답답했던 것 같아요. 기후 의제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텐데, 그렇게 여기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서요.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기업과 조율해야 한다’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염려가 됐어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트럼프가 굉장히 많은 환경 규제를 후퇴시켰고, 이런 방향이 우려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트위터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을 운영 중인 서지연씨(가명)가 지난 1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계정의 프로필 사진에는 공룡 캐릭터가 ‘너도 멸종되지 않게 조심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트위터 기후위기 아카이브 계정을 운영 중인 서지연씨(가명)가 지난 1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계정의 프로필 사진에는 공룡 캐릭터가 ‘너도 멸종되지 않게 조심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주로 재앙적인 현실을 다루는 트윗이 많은데, 사람들이 낙담할까 두렵진 않나요.

“제 3세계에서 일어난 기후 재난은 관심을 잘 못받아서 공유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공유를 하긴 하는데, 제 트윗을 인용하면서 ‘다 끝났다’고 쓰는 분들도 있어요. ‘그건 아닌데, 끝났다고 해도 포기하면 안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포기하지 말자’는 글을 붙이거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트윗을 더 많이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큰 일 났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관심을 갖고, 지금의 방향은 틀렸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계정을 운영하고 있어요. 아무 것도 모르고 갑자기 기후 재난을 맞닥뜨리는 것보다는, 알고 뭐라도 해보는 게 낫잖아요. ‘안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보다는 조금이라도 주변에 많이 알리고, 0.1t의 온실가스라도 줄이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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