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탄 시대는 다가오는데···아직 관련 법도 마련 못한 한국

강한들 기자
한국서부발전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전경. 공공운수노조 발전 비정규직 전체대표자회의 제공

한국서부발전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전경. 공공운수노조 발전 비정규직 전체대표자회의 제공

국무조정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문제로 ‘탈석탄’ 정책 추진을 위한 근거법과 거버넌스가 없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는 석탄화력발전 부문의 정의로운 전환 과정에서 생길 영향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보상하는 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봤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이런 내용을 담은 ‘주요국의 정책 비교를 통한 국내 석탄화력발전 부문 공정 전환 추진 방향 연구’ 보고서를 지난달 26일 국가정책연구포털에 공개했다.

2050년까지 세계에서 70% 줄어들 석탄…국내 ‘탈석탄’ 걸림돌은

보고서는 국제 에너지 기구(IEA)의 연구를 인용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석탄 수요가 단기적으로 늘어났지만, 2050년까지 70%가 감소할 것으로 봤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석탄화력발전소 평균 가동연수가 14년으로 아직 ‘젊어’ 손해가 커질 수 있다. 한국은 현재 강원 삼척, 강릉에 석탄발전소를 건설하고 있기도 하다. 보고서는 “세계 석탄화력발전 설비용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 국가는 평균 가동 연수가 짧아서 경제적 수명 이전에 강력한 탈석탄을 추진하며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독일, 영국, 미국, 캐나다의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분석했다. 네 나라 모두 ‘정의로운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전용 기금을 마련했다. 독일, 캐나다에서는 ‘정의로운 전환 위원회’를 구성해 이해관계자와 공동으로 지역사회를 조사했다. 영국, 캐나다에서는 탄소에 가격을 매겨 탄소 배출이 많은 석탄발전소의 경제성을 악화시키기도 했다.

보고서는 독일의 사례에 주목했다. 독일은 2018년 ‘성장·구조 변화·고용위원회(탈석탄위원회)’를 설립해, 연방의회, 정부, 탄광 지역 대표, 산업계, 과학계, 에너지 산업계, 환경단체, 노동조합 등 다양한 주체를 논의에 참여시켰다. 탈석탄위원회의 논의를 바탕으로 2038년까지 전기를 만들 때 더 이상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지 않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탈석탄법’, 2038년까지 탄광 지역에 최대 400억유로(약 54조1648억원)를 지원하는 게 골자인 ‘석탄지역 구조강화법’ 등 법제화도 이어졌다. 보고서는 “독일은 주요 항목에 대한 예산 편성이 법적으로 의무화돼 탈석탄 과정에서 외부 영향을 덜 받으며 일관된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해외 주요국과 국내의 석탄화력발전 부문 ‘정의로운 전환’을 비교한 이후 한국에는 탈석탄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근거법’과 ‘거버넌스(민관협력)’가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짚었다. 보고서는 “현재까지 석탄발전 폐지를 권고, 강제하거나 이로 인한 피해를 보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중앙정부, 노동자, 지역시민단체까지 모든 이해관계자를 아우를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지난달 31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비정규노동자 고용안정방안 연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지난달 31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비정규노동자 고용안정방안 연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정의로운 전환 총괄 ‘컨트롤타워’ 필요”

연구진이 일반 시민 2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내용을 보면 응답자의 39.6%가 정의로운 전환 정책 추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정확한 피해 규모를 산출하고, 정부 계획을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고 답했다.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를 참여하게 하고,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28.5%로 뒤를 이었다. 피해자를 보상-지원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은 13.9%였다.

보고서는 정부가 언제까지, 어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될지 명시한 로드맵을 만들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제10차 전력기본수급계획에 따라 2036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28기를 폐기한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그 이후의 계획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석탄화력발전 부문의 정의로운 전환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도 제안했다. 보고서는 “컨트롤타워는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이행기구인 동시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더 나아가 석탄화력발전 부문의 정의로운 전환 과정에서 지역경제 영향, 일자리 영향, 사업자가 투자하고도 발전소를 닫게 되면서 회수하지 못한 비용 등 이해관계자별 영향 정도와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보상 범위, 규모, 책임 등을 법제화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23일 서울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삼척 석탄발전 최초 점화 중단과 탈석탄법 제정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성동훈 기자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23일 서울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삼척 석탄발전 최초 점화 중단과 탈석탄법 제정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성동훈 기자

탈석탄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연대가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탄소중립위원회에 시민들이 직접 만든 ‘건설 중인 석탄발전 사업의 철회 및 신규 허가 금지를 위한 법(신규석탄발전중단법)’을 제안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탈석탄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연대가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탄소중립위원회에 시민들이 직접 만든 ‘건설 중인 석탄발전 사업의 철회 및 신규 허가 금지를 위한 법(신규석탄발전중단법)’을 제안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탈석탄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연대를 비롯한 시민들은 ‘탈석탄’을 앞당길 법률과 ‘정의로운 전환’을 지원할 수 있는 법률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는 2020년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에너지전환지원법’이 계류돼 있다. 이 법안에는 발전사업자가 정부와 발전사업을 철회하는 협약을 체결할 수 있고, 그 경우 정부가 그 사업을 위해 지출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정의로운 전환’ 관련 법 3개가 계류 중이다.

이태성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노조 전체대표자회의 간사는 9일 “당장 2025년부터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될 텐데 노동자를 어떻게 재교육, 재배치할 것인지 구체적인 논의조차 없다”며 “노동자를 포함한 여러 당사자를 논의에 참여시킬 수 있는 사회적 논의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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