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기 고양시, 서울 서북부, 인천 일부 지역에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가 1년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지난해보다 넓은 서울 전역에 나타났습니다.
서울시는 23일 은평구, 마포구, 서대문구를 중심으로 서울 중심부까지도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가 확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지난 20일까지 접수된 민원만 은평구 500여건, 마포구 40여건 등입니다. 서대문구, 동대문구, 성동구 등에도 민원이 있었고, 관악구, 영등포구 등에서 러브버그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경기 고양, 서울 서북부 등에서 ‘대발생’했던 러브버그…내년에도?
지난해에는 7월쯤 러브버그가 경기 고양시, 서울 서북부, 인천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대발생’했습니다. 올해는 다른 지역에도 나타나는데 경기 고양시 등 기존에 살던 지역에서 발생해 날아간 걸까요? 아니면 지난해 슬그머니 퍼졌던 개체들이 알을 낳고, 그 지역에서 부화한 걸까요?
올해부터 러브버그의 생태를 연구하고 있는 신승관 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러브버그는 1~2년 전부터 북한산을 중심으로 서식해오다가 지난해 대발생했습니다. 통상 암컷 한 마리가 알 300~500개를 낳는다고 합니다. 애벌레는 낙엽이 썩어 만들어지는 ‘부엽토’에 살며 1.5㎝ 정도로 자랍니다. 겨울이 추운 한국에서는 애벌레로 6개월 정도 살다가 7~9일에 걸쳐 번데기가 되고 기온이 24도 정도로 올라가면 성충이 됩니다.
전문가들은 러브버그가 지난해 확산했던 지역에 알을 낳았고 이들이 다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신 교수는 “지난해 대발생 이후에 지하철, 차량 등에 붙어서 멀리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도 “대발생 이후 짝짓기, 산란 경쟁에서 밀려난 개체들이 주변 지역으로 확산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다만 서울 곳곳에서 민원이 늘어난 것은 지난해 러브버그가 널리 알려지면서 과거에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시민들이 민원을 적극적으로 제기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발생한 곳이 어디고, 어떻게 확산하고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유전자 분석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시민들은 매년 러브버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러브버그 유충이 도심에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있었는데 추가 연구를 해보니 꼭 깊은 산이 아니라도, 낙엽이 있는 작은 공원 등에서는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신 교수가 연구한 러브버그의 서식지 리스트에는 인천 남동구의 한 공원도 들어가 있습니다.
점점 확산해, 전국까지 퍼질까?
러브버그가 수도권을 벗어나 전국으로 퍼져나갈 가능성도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박 연구관은 “지난해 문제가 됐던 지역에서 올해도 밀도가 높은 상태인 것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이런 현상이 지속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관건은 ‘기온’입니다. 신 교수는 러브버그가 대발생해 확산하는 지역을 주목합니다. ‘깊은 산’보다는 서울 은평구 ‘봉산’처럼 도심 속 산이 많다는 겁니다. 신 교수는 “고립된 산이 아닌 도심에 있는 산에서 발생하는 것은 도심 열섬 현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라고 말했다.
겨울 기온도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곤충은 겨울에 견딜 수 있는 온도가 정해져 있습니다. 어떤 곤충은 겨울이 매우 추우면 다음 해 여름에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들기도 합니다. 다만, 러브버그의 유충이 최저 몇 도까지 생존할 수 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불쾌감’ 주는 러브버그, 약재 방역이 능사일까
시민들은 러브버그를 보고 불편을 호소합니다. 트위터에는 “러브버그, 왜 작년에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냐” “러브버그 시즌2가 시작됐다” “그들이 왔다. 외출 시 흰옷을 자제하자. -러브버그의 친구 은평구 주민 올림-” 등 반응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청이 약재를 열심히 뿌려 방역을 해야 할까요. 전문가들은 방역은 ‘조심스럽게’해야 한다고 봅니다. 신 교수는 은평구 등에서 한 ‘대벌레 방역’이 러브버그 대발생의 이유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신 교수는 “대벌레 방역으로 러브버그를 잡아 먹는 천적이 없어졌고 지난해 은평구에서 대발생했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박 연구관도 “토양에 사는 거미, 딱정벌레, 지네 등 토양성 절지동물도 러브버그 유충을 먹이로 할 수 있다”며 “화학적 방제를 하면 천적들도 같이 없어질 수 있어 오히려 다른 종이 대발생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