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교체 자가 수리 워크숍 가보니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에코페미니즘 공유공간 ‘플랫폼 달’에 모인 사람들은 아이폰을 ‘굽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참가비 4만원을 내고 모인 시민 10명은 70도로 가열된 철판 위에 아이폰을 올려놓고 작은 장비를 동원해 ‘금단의 문’을 여는 데 성공했다.
제로웨이스트숍 알맹상점 친구 모임 ‘알짜’가 꾸린 ‘수리수리 다수리(이후 다수리)’ 팀은 이날 ‘아이폰 배터리 교체 자가 수리 워크숍’을 열었다. 휴대전화 수리점 서강잡스의 김학민 대표가 강사로 나섰다. 김 대표는 “전문가도 고장 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이상한 격려’로 강의를 시작했다.
아이폰 ‘70도’에 구운 뒤에는, ‘90도’ 넘지 않게
배터리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휴대전화를 ‘굽고’ 본체와 연결된 접착제를 녹여 액정부터 들어내야 한다. 접착제가 충분히 녹으면 ‘헤라’라는 공구로 베젤과 액정 사이를 찌르고, 비틀어 공간을 만든다. 액정 양옆을 떼어내고, 책처럼 액정을 펼치자 ‘찌직’하는 소리가 났다. 검은 접착제는 거미줄처럼 늘어났다.
이제는 ‘90도’를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액정과 본체의 각도가 직각을 넘어가면, 연결된 케이블이 끊어질 수 있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가져온 텀블러로 액정을 받쳐두고 작업을 이어갔다.
참가자들은 액정을 분리하면서 기판을 연결한 나사도 한 땀 한 땀 풀었다. 좁쌀보다도 작은 나사라 아이폰 수리 전용 공구가 필요하다. 참가자들은 “너무 작아서 드라이버가 잘 안 돈다” “손 떨려”라면서도 곧잘 해냈다. 분리한 나사는 내부에 있는 자석에 붙여뒀다. 나사를 빼면 액정과 본체가 완전히 분리된다. 한 참가자가 “가장 어려운 단계는 끝났냐”고 묻자 김 대표는 “이제 가장 어려운 단계가 시작된다”고 답했다.
‘가장 어려운 단계’는 배터리 분리다. 배터리는 끈끈한 테이프로 강력히 고정돼 있다. 휴대전화는 더 뜨거워진 ‘불판’ 위로 올라간다. 참가자들은 손을 떨며 배터리를 헤라로 살짝 들어 공간을 만들었다. 틈새로 얇은 주삿바늘을 끼워 알코올을 넣으면, 뜨거운 공간 사이로 공간이 생긴다. 배터리를 들어 올린 참가자들이 한마음으로 손뼉을 쳤다. 작업 시작 40분 만에 마침내 배터리가 분리됐다. “이게 될까 걱정했는데, 되긴 되네요” 김 대표가 한시름을 놨다는 듯이 말했다..
조립은 해체의 역순, 스스로 뚝딱뚝딱
이날 배터리 교체 작업은 상대적으로 최신인 아이폰11에서 시작해 오래된 제품 순으로 진행됐다. 아이폰 12 모델을 가진 사람은 이날 워크숍 신청을 받지 않았다. 최신 휴대전화기일 수록 수리 난도가 급격하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구식인’ 아이폰 6S를 가진 참가자들은 가열할 필요 없이 ‘상대적’으로 간편하게 액정을 열 수 있었다.
배터리 분리에 성공한 참가자들은 서로 도와가며 손쉽게 조립에 성공했다. 배터리 뒤편에 있는 붉은 테이프를 제거하고, 2㎜ 공간을 두고 붙인 뒤에는 나사를 조여나갔다. ‘딸깍.’ 마지막 과정인 배터리 커넥터까지 연결하고 나서 전원을 켜자, 사과 로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1시간 10분 만에 첫 수리 완료자가 나왔다.
이날 워크숍에 참여한 임정서씨(32)는 “아이폰뿐 아니라 맥북도 사용하면서 계속 생산 시스템을 따라가면서 지내오다 보니 돈도 너무 많이 썼고,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냐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앞으로는 배터리를 교체해서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이폰의 제조사인 애플은 공식 창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혹은 사설 수리 업체가 수리한 흔적이 있으면 보증 기간에도 무상으로 수리를 해주지 않는다. 아이폰 XS 이후 기종은 사설 업체에서 배터리를 교체하면 ‘정품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띄우고, 배터리 성능을 점검하는 기능도 막힌다. 김 대표는 “수리업체 자체가 좋지 못하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선 ‘수리 점수’도 공개하는데…한국은 어디까지 왔나
해외에서는 ‘수리할 권리’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는 2020년 ‘지속 가능 제품정책’이 시행되며 제품 생산 단계에서부터 수리 가능성, 내구성, 재활용성을 고려해 설계하도록 하는 ‘에코디자인 규정’을 두고 있다. 제품 수리·재사용을 늘리기 위해 수리 관련 라벨링 제도 신설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2022년 1월부터 판매되는 가전제품에 ‘수리 가능성’ 등급을 부착하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된다. 수리 점수는 수리 매뉴얼 제공, 분해 용이성, 부품 공급 원활성, 부품 가격 등을 기준으로 매긴다.
한국은 지난해 연말 ‘자원순환기본법’을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으로 전부 개정해 오는 2025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골자는 생산 단계에서부터 순환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고, 재활용 원료 사용도 촉진하는 것이다. 사용 단계에서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제품을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자가 예비 부품을 확보해 제품이 조기 단종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박정음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장은 “시행령이 얼마나 구체화될지 지켜봐야한다”라며 “재활용에 대한 정보 제공이 영업 비밀, 지적재산권 침해로 규정돼 제한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고, 시민들이 제품 구매 단계에서도 수리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