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삼척블루파워 앞에서 “화석연료의 종말”을 외치다

주영재 기자

전국에서 달려온 어린이·청소년 등 장대비 속 ‘기후파업’

해안침식에 경제성 낮지만 내년 완공…“탈석탄법 제정을”

[주간경향] 지난 9월 15일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을 내려다보는 한재공원인증센터. BTS가 앨범 <버터>의 표지 사진을 촬영한 맹방해수욕장이 멀리 보인다. 그러나 지척에서 시선을 붙잡는 건 공사 중인 작은 항만과 방파제다. 완공되면 한국의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가 될 삼척화력발전소(삼척블루파워)에 유연탄을 공급하는 시설이다. 해변에 방파제 구조물이 8층 높이의 거대한 뼈대를 드러낸 채 서 있다. 해상으로 도착한 유연탄을 산 너머 발전소로 운반할 컨베이어 벨트와 지하터널 공사도 한창이다. 방파제에 쏟아부을 토사를 가득 실은 배도, 거대한 크레인을 단 바지선도 보인다.

궂은 날씨였다. 오후 들어 그치리라 기대했지만,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약 150명이 우산을 들고, 우의를 입은 채 이곳에 모였다. ‘화석연료 시대에 종말을’이라는 주제로 열린 ‘기후파업’ 참가자들이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세대가 모였지만 어린이, 청소년이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학업과 일을 파하고 온 이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한 건 화석연료 퇴출과 그 시작이 될 삼척석탄발전소 건설 중단이다. 하남에서 온 고등학생 박채윤은 화력발전소가 기후위기의 주된 원인임에도 이를 허용하고 추진하는 정부와 기업을 비판했다.

“9월 14일, 어제 세계기상기구는 2023 기후과학 합동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앞으로 5년 안에 역사상 가장 더운 한 해가 있을 가능성이 98%에 이르고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 수준이 지금 이대로라면 이번 세기 안에 지구온도를 산업화 이전보다 2.8℃나 상승시킬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화석연료 사용을 감축해야 할 위기 상황임에도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3% 높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여느 때보다 줄여야 할 상황이지만 2022년 석탄발전으로 인한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주요 20개국(G20) 중 2위인 한국은 화력발전소 건설 등 거꾸로 가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경기 광명 볍씨학교 학생들이 9월 15일 강원도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현장 인근 공원에서 진행된 ‘기후파업’ 시위에서 ‘하나뿐인 지구’ 노래를 부르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경기 광명 볍씨학교 학생들이 9월 15일 강원도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현장 인근 공원에서 진행된 ‘기후파업’ 시위에서 ‘하나뿐인 지구’ 노래를 부르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화력발전 투자,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맹방해변은 부드러운 모래밭이 풍성히 펼쳐진 ‘명사십리’로 유명하다.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밭, 소나무숲이 어울린 풍경은 삼척화력발전소 건설공사가 시작된 지난 2년 사이 완전히 변했다. 해변은 발전소 부대시설인 해상터미널과 석탄 이송 터널 공사 과정에서 해안침식을 겪으며 황폐해졌다. 공원 난간에 걸린 사진이 이를 증언했다. 1차 행사를 마친 이들은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삼척화력발전소 건설 현장까지 행진했다. “화석연료 퇴출하자, 공공중심 전환하자”,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와 같은 구호가 이어졌다.

삼척화력발전소 부지는 동양시멘트가 운영하던 석회석 광산이었다. 석회석을 채굴하면서 움푹 들어간 땅에 발전소가 들어섰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산업끼리 바통을 터치하는 셈이다. 내년 완공을 앞둔 삼척블루파워는 2.1GW로, 단일 호기 기준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가동될 경우 연간 약 130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2%, 정부가 농·축·수산 부문에서 12년간 줄이겠다는 온실가스양의 두 배에 달하는 양이다. 12년간의 감축 노력이 단지 일 년 동안 삼척화력발전소를 돌리면 다 헛수고가 되는 셈이다. 온실가스에 더해 연간 570t의 초미세먼지도 나온다.

6년째 공사 중인 삼척화력발전소는 해안침식 문제가 불거지면서 환경부 요청에 따라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공사비는 2013년 처음 계획 당시 3조3000억원에서 4조8790억원으로 늘었다. 공사비가 투자 제안 당시보다 크게 불어난 건 최근 수년 사이 민간기업이 준공한 화력발전소에서 반복된 일이다. 일례로 고성그린파워는 1040㎽급 발전소 2기 건설비로 3조384억원을 제안했지만, 2021년 5월 준공 당시 제출한 최종 비용은 5조1960억원이었다. 건설비 증가분은 민간석탄발전소의 건설비 적정성을 심사하는 전력거래소(한전 자회사)의 ‘표준투자비’ 규정에 따라 ‘합리적 소명’이 가능한 경우 한전이 보전해줄 수 있다.

하지만 적자가 누적된 한전의 부담이 커지면 이는 전기요금에 반영돼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 이날 현장에서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사무국장이 “기업이 석탄발전소를 짓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경제성이 있든 없든 무조건 정부가 세금으로 메꿔주기 때문입니다”라며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필요 없는 전기를 구매하느라 적자가 나고, 그래서 전기료를 올리고 기후위기는 악화되는 ‘환장의 콤보’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배경이다.

좌초자산 우려에 회사채 미매각이 이어져

완공 후에도 투자비 회수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는 발전소 운영기간 동안 85% 이용률을 유지할 때 수익이 난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강원도를 비롯한 동해안 일대의 송전선 용량이 설비용량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인근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률은 40%대에 머물고 있다. 내년 신한울 2기가 가동되면 석탄화력발전의 가동률은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척화력을 비롯해 동해안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업이 중단되지 않는 건 국내에서 화력발전은 수익이 보장된다는 믿음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민간 석탄발전소에 대해 전력거래소가 인정하는 투자비에 적정수익을 회수할 수 있는 ‘총괄원가보상제도’(전력거래소 규정)를 적용 중이다. 사업주도 투자자도 송전제약 등으로 이용률이 하락해도 전력판매가격을 조절해 적정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에 이용률 등락이 사업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본다. 고동현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장은 “공사가 지연돼 비용이 더 발생하거나 송전제약으로 전기 생산이 안 되더라도 이를 보상해주는 관행은 사업자의 도덕적 해이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지혜 플랜 1.5 변호사는 총괄원가보상제도가 법적 근거가 약하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하지 않고, 향후 분쟁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석탄화력발전은 건설 과정에서 비용이 계속 늘어나 굉장히 비싼 발전소가 됐다. 거기에 송전제약의 문제가 겹쳐 있다. 아직 가동 1년도 되지 않은 강릉안인화력발전소의 적자가 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전력을 팔아야 하는데, 송전제약 탓에 발전하지 못하고 대기만 하면서 용량보상금만 받고 있다. 총괄원가보상이 법적으로 보장된 게 아닌데도 한전(전력거래소)에 보상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결국 분쟁이 늘고, 사회적 비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초 가동하는 삼척화력발전소도 제대로 운영될지 의문스럽다.”

석탄발전소가 좌초자산이 될 수 있다는 우려 탓에 회사채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삼척블루파워는 2018년 전체 사업비 중 약 1조원이 조달되지 않은 상태로 본 공사에 착수한 후 건설자금 조달을 위해 2019년부터 9차례에 걸쳐 1조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기후대응 기조가 강해지고 화석연료 투자의 매력이 떨어지면서 삼척블루파워의 회사채도 외면받게 됐다. 2021년부터 5회에 걸친 9500억원의 채권 발행은 370억원을 제외하고 모두 미매각됐다. 지난 9월 7일 새로 발행한 205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도 매수주문이 240억원에 그쳤다. 다만 최종 발행에선 개인투자자에게 판매할 용도로 기관투자자가 매입하면서 대부분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파업 시위가 열린 강원도 삼척 한재공원인증센터에서 삼척석탄발전소의 부대시설인 석탄이송터널 공사 현장이 내려다보인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기후파업 시위가 열린 강원도 삼척 한재공원인증센터에서 삼척석탄발전소의 부대시설인 석탄이송터널 공사 현장이 내려다보인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기후파업’ 참가자들이 9월 15일 강원도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현장 인근에서 행진하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기후파업’ 참가자들이 9월 15일 강원도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현장 인근에서 행진하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탈석탄범 제정해 퇴출과 전환 지원해야

삼척블루파워의 회사채 매각을 주관하는 6개 증권사(NH투자·미래에셋·신한투자·KB·키움·한국투자)는 삼척블루파워와 5년간 1조원 규모의 총액인수확약을 맺은 상태다. 회사채가 매각되지 않을 경우 이들 증권사가 인수하게 된다. 이들은 시중의 다른 채권보다 2~3% 높은 금리(약 7.3%)에 매월 이자를 주는 상품이라는 점을 들어 개인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전국탈석탄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는 지난 9월 14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이들 증권사가 삼척블루파워의 회사채 인수와 판매를 지속하는 한 탈석탄 선언은 그린워싱에 불과하다고 압박했다.

사업주와 투자자, 정부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민간사업에 개입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댄다. 사업주는 정부 전력수급 정책을 따라 시작했다고 말한다. 좌초자산이 되더라도 정부가 수익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왜곡된 기대도 갖고 있다. 투자자는 대출약정서에 따라 중도에 대출금을 회수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든다. 탈석탄을 선언한 금융기관은 신규 사업에만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누구도 중단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 지난 8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탈석탄법은 ‘석탄발전사업의 철회 및 신규 허가 금지를 위한 특별조치법안’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석탄발전사업의 철회와 신규 허가 중단의 근거를 마련하고 사업자, 노동자 등에 대한 보상과 지원을 규정했다. 박지혜 변호사는 “적법하게 인가받아 운영되고 있더라도 탄소중립이나 2030 국가감축목표 등 새로운 정책 목표를 반영해 특정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합의에 이른다면 이를 가능하게 하는 법적 근거를 만든 법”이라면서 “산업부 장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석탄발전사업의 철회 및 지원에 관한 위원회에서 철회대상 사업을 정하고, 사업주와 노동자, 지역주민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퇴출 계획을 마련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늦으면 늦을수록 비용이 커진다는 점에서 빨리 통과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발 앞서 이미 탈석탄법을 도입한 나라들이 있다. 독일은 2020년 8월부터 ‘석탄발전종료법’을 시행 중이다. 초기에는 발전사의 자발적 감축을 유도하고, 2027년 이후 감축을 의무화했다. 2038년 완전 중단을 목표로 한다. 58세 이상의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가 발전소 폐지로 실직할 경우, 연금을 수령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 5년간 금전적 보상도 한다. 네덜란드는 2019년 12월부터 시행한 ‘석탄전력생산금지법’에서 2025년 이후 발전 효율이 44% 이하인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2030년 1월 1일 전까지 모든 석탄화력발전소 폐지를 규정했다.

박수홍 녹색연합 활동가는 탈석탄법이 화력발전소 퇴출을 위한 가장 현실적 방안이라고 본다. “정의당에서 공식 발의했지만 시작 자체는 5만명이 넘는 시민이 청원을 넣고, 뜻있는 시민단체들이 이해관계자를 찾아가 하나하나 의견을 모아 만든 법이다. 법이 실제 시행돼 화력발전소를 끈다면 시민의 힘으로 화력발전소를 끈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 다만 특별법이고 신규 발전소에 한해 퇴출할 수 있는 법안이라 향후 전체 탈석탄 로드맵이 담긴 기본법으로 계승해야 한다.” 고동현 팀장은 “금융기관도 어느 정도 책임 의식을 느끼고 있고, 사업주도 사업의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탈석탄법에 기반해 사업을 중단하고, 보상한다면 사업주나 금융기관도 수용할 의사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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