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사체로 발견된 천연기념물 217호 산양의 수가 537마리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국내 산양의 4분의 1이 넘는 수가 죽어간 사실이 확인되면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울타리를 방치한 환경부로 인한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일 경향신문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입수한 ‘천연기념물 산양 멸실 신고 목록’을 보면 지난 11월부터 지난달 23일까지 폐사한 산양의 수는 537마리로 집계됐다. 문화재청이 지난 2월말을 기준으로 집계했던 277마리에서 260마리가 더 희생된 것이다. 537마리는 국내 전체에 서식하는 산양 약 2000마리의 4분의 1이 넘는 숫자다.
연도별 산양 폐사 통계를 보면 2019년에는 6마리의 폐사가 확인됐던 것이 2020년에는 97마리로 폭증했다. 이후 2021년 46마리, 2022년 50마리, 2023년 85마리 등의 폐사가 확인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울타리가 강원도 등에 집중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2019년 이후 폐사한 개체 수는 805마리에 달한다. 산양 전체 개체 수의 40%에 달하는 숫자다.
지역별로는 주로 민통선 부근 강원 산간지역과 설악산국립공원 일원에서 많은 폐사체가 발견됐다. 가장 많은 폐사체가 확인된 곳은 225마리가 발견된 강원 양구였고, 화천이 211마리, 고성이 57마리로 뒤를 이었다. 설악산국립공원 일대에서는 62마리가 죽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지역은 올겨울 폭설이 내린 데다 이번 산양 대량 폐사의 주 원인으로 지목되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울타리가 매우 촘촘하게 설치된 곳이다. 환경부와 지자체가 세운 2중의 울타리로 인해 많은 야생동물이 좁은 구역 안에 고립된 곳이기도 하다.
환경단체들은 지난겨울 전체 개체 수의 26.9%에 달하는 산양 폐사가 확인된 것에 더해 조사가 어려운 민통선 내 지역과 산불통제기간 중이라 확인이 힘든 설악산국립공원 내에 추가로 죽어간 개체들이 있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모임 등의 모니터링 결과 눈이 녹고, 사람의 접근이 가능한 지역이 늘어나면서 폐사체 수는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특히 산양의 대량 폐사가 확인된 2월 이후에도 환경부가 수수방관한 것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2월말 기준 277마리가 폐사했음이 확인된 뒤에도 아프리카돼지열병 울타리의 선별적 개방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탓에 11~2월 사이 죽은 개체 수와 비슷한 수가 더 죽어갔기 때문이다. 환경부의 방치 속에 민통선 부근과 설악산국립공원 등이 산양의 공동묘지가 돼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울타리가 산양 등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파편화시키고, 동물들을 고립시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는 울타리 설치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지난해 환경부의 용역 연구 보고서와 올해 환경단체의 현지 모니터링에서도 이 같은 현실이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환경부는 최근 들어서야 산하기관에 개방이 필요한 울타리를 조사하도록 지시했을 뿐이다.
정인철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 사무국장은 “국가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보호 중일뿐 아니라 예산을 들여 증식 사업까지 진행 중인 야생동물이 대량 폐사하도록 방치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환경부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태 선진국 같으면 환경부장관이 사퇴해야할 일”이라며 “환경부장관이 직접 사과하고, 더 이상의 희생을 막을 수 있도록 생태적으로 중요한 지점들의 울타리를 즉시 개방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