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준씨, 경향신문 보도 후 폐사 관련 두 차례 정보공개청구
“산양 떼죽음에도 무책임한 환경부에 분노와 안타까움 느껴”
산양 폐사 수 40~50% 아닌 ‘대부분’일 가능성 최초로 제기
“환경부 직무유기 확인되면 고발, 감사 청구 등 조치도 취할 것”
“자주 여행하던 오대산에서 ‘산양 보호’ 팻말로만 접해왔던, 그리고 관찰하기 매우 어려운 동물이라던 산양이 지난겨울 수백마리나 떼죽음을 당한 것에 분노와 허탈함을 느꼈습니다. 정부가 실질적인 보호 조치를 취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했습니다.”
서울 중구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초반 직장인 정형준씨는 지난달 1일과 이달 1일 두 번에 걸쳐 환경부에 국내 산양 실태와 산양 보호 정책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정씨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평범한 회사원인 자신이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까지 하게 된 이유에 대해 “경향신문의 산양 떼죽음 연속 보도를 본 뒤 분노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관련 내용을 문의했지만 납득할 만한 답변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환경논쟁에서는 국민들이 잘 나타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이번 산양 떼죽음 사건에서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명하고도 집요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퇴근 후 시간을 쪼개 차근차근 정보공개청구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지난겨울 강원 화천, 인제, 양양 등 민통선 부근 지역과 설악산 등에서는 지난달 기준 747마리에 달하는 멸종위기 포유류 산양의 폐사가 확인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울타리로 인해 곳곳에 고립된 산양들이 폭설 영향까지 겹치면서 떼죽음한 뒤에야 환경부는 일부 울타리를 개방하기로 했다.
정씨는 환경부 담당자와의 유선통화, 그리고 정보공개청구 과정을 통해 산양 대량 폐사가 “인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환경부는 멸종위기I급 동물인 산양의 서식개체수 및 폐사수를 일절 집계 관리하고 있지 않고, 그러할 법적 의무도 없다는 입장임을 생물다양성과장 결재를 통한 공식 답변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환경부의 입장은 “천연기념물 등재를 사유로 문화재법에 따라 문화재청(국가유산청)이 멸실관리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씨는 관련 법률을 검토하면서 책임을 문화재청에 떠넘긴 환경부 담당과장 답변의 허점을 찾아냈다. 환경부 국립생태원의 국가보호종 지정 현황에 따르면 산양은 천연기념물인 동시에 멸종위기종으로 동시 등록된 ‘중복종’이라는 것이다. 그는 “중복종이기 때문에 산양은 야생생물법에 입각해 환경부가 보전관리 의무를 져야 하는 멸종위기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환경부 담당자들조차 알지 못했던 환경부 관련 자료까지 파헤쳐 지난겨울 떼죽음한 산양의 비율이 전체의 40~50% 수준이 아니라 대부분일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정부는 물론 전문가조차 제시하지 못했던 부분을 평범한 시민이 찾아낸 것이다.
정씨가 찾아낸 환경부 자료는 6년 전인 2018년 10월 발간된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 종합계획(2018~2027)’이다. 해당 자료에는 전국의 산양 개체 수가 700~900마리로 추정돼 있다. 그는 “이 수치를 준용한다면 이번 대량 폐사로 국내 산양은 사실상 멸종에 가깝게 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전국에 2000마리 정도가 서식하리라 추정해온 국내 산양 개체 수는 과거의 추정치일 뿐이기도 하다.
정씨는 또 같은 자료에서 산양에 대해 설명한 내용인 “겨울철 먹이 부족, 폭설에 의한 고립 등에 의한 피해 사례가 빈번,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문구를 들어 산양들의 위기를 환경부가 일찍이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즉 골든타임이 있었음에도 시간을 허비하고 산양 떼죽음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전문가나 시민단체도 하기 힘든 이 같은 과정을 혼자서 해낸 것에 대해 “언론 보도에도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에 실망, 분노해 인생 처음으로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활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산양에 대해 마음이 쓰인 이유에 대해 “강원도를 자주 여행하면서 한국의 자연 환경을 사랑하게 되었고, 특히 산양 서식지인 오대산 일대를 가장 좋아하다 보니 군데군데 보이는 산양 서식지 보호 팻말을 보면서 관심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정씨는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이 나올 때마다 산양이 이슈가 되는 것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해 왔기 때문에 이번 떼죽음에 더 마음이 쓰였다”고 했다.
정씨는 행여 멸종위기 포유류 산양들의 급감이 강원 지역에서 개발의 빌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했다. 그는 “산양의 급감이 혹시라도 개발론의 구실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이번 떼죽음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30일 환경부가 자신이 지난 1일 두번째로 정보공개청구한 내용에 대해 답변을 보내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대답 내용에 따라 그는 환경부를 고발하고, 감사도 청구할 계획이다. 그는 “환경부는 문화재청으로 책임을 떠넘기고,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관리도 하지 않음은 물론 멸종에 근접한 순간에도 아무런 실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환경부의 행정적 과실, 특히 직무유기가 확인된다면 고발 등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공무원들의 과실을 따져 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환경부가 실질적인 멸종위기동물 보호·복원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나를 비롯한 평범한 시민들도 정보공개청구 등 제도를 활용해 정부가 환경정책에 있어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