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몸도 뿔도 거대한 ‘큰뿔사슴’
지금으로부터 258만년 전에서 1만2000년 전까지의 시기를 프라이스토세(pleistocene)라고 한다. ‘가장 갱신된 시기’라는 뜻이다. 한자어로는 홍적세(洪積世)라고 한다. 인류의 발생과 진화, 빙하의 발달, 화산과 지각 변동이 활발했던 시기를 잘 표현한 말이다. 갱신세(更新世)라고도 한다. 변화의 시대는 곧 기회의 시대이자 위기의 시대였다.
홍적세 끝 무렵 멀리 눈 덮인 봉우리를 자랑하는 우뚝 솟은 산들이 보이는 유럽의 얼어붙은 대지 위로 찬 바람이 불어온다. 상쾌한 공기 아래 얼어붙은 대지는 풀과 키 작은 관목에 덮여 있다. 털매머드와 털코뿔소가 들소들과 함께 탁 트인 툰드라를 가로지르며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고 있다. 이 평범한 장면은 거대 사슴이 등장하면서 극적으로 변한다.
메갈로케로스 기간테우스(Megaloceros giganteus). 이름에 ‘크다’라는 말이 두 번이나 들어 있다. 메가와 기간트가 바로 그것. 케로스는 뿔이라는 뜻이다. 트리케라톱스, 프로토케라톱스 같은 공룡이나 흰코뿔소의 속명 케라토테리움, 전설 속의 유니콘 모노케로스에도 나온다. 그러니까 메갈로케로스 기간테우스는 ‘거대한 뿔이 달린 거대한 동물’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크다. 어깨까지의 높이가 2.1m, 체중은 보통 540~600㎏이었으며 큰 놈은 700㎏까지 나갔다. 키와 몸무게 때문에 메갈로케로스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니다. 이름의 기원은 뿔에서 왔다. 뿔 끝에서 끝까지의 거리가 큰 것은 3.65m에 달하기도 했다. 뿔의 무게만 40㎏에 달했다. 메갈로케로스 기간테우스를 우리말로는 간단히 큰뿔사슴이라고 부른다. 얼마나 간단하고 좋은 이름인가!
큰뿔사슴은 추운 환경에 잘 적응했다. 홍적세의 혹독한 겨울을 잘 견딜 수 있는 두꺼운 털과 먼 거리를 이동하기에 적합한 길고 튼튼한 다리가 있었다. 이들은 아일랜드의 온대 숲과 초원부터 시베리아의 추운 대초원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돌아다녔다. 홍적세 유럽과 아시아의 대부분은 넓은 초원, 툰드라,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다.
이 가운데 큰뿔사슴이 선호한 지역은 몸집과 뿔이 방해되지 않는 드넓은 초원이었다. 여기서 그들은 털매머드, 털코뿔소, 들소 같은 빙하기 거대 동물과 공존했다. 큰뿔사슴은 현대의 사슴처럼 강하고 납작한 이빨로 질긴 초목을 씹어먹었다. 이들은 풀을 먹으며 새로운 식물에 기회를 주었고 똥으로 그들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거대 초식 포유류로서 생태계에서 초원 식물의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어깨 높이 2.1m·뿔 길이는 3.65m
현생 인류에 고기·가죽·뼈 제공
경외의 대상으로 동굴 벽화 기록
지구 평균 기온 올라 숲·습지 늘어
서식지 변화에 ‘뿔’도 골칫거리로
인간의 사냥도 멸종 요인 중 하나
초식동물은 많이 먹어야 한다. 그런데 초식동물들은 혼자 살지 않고 모여 살아야 했다. 그래야 빙하기의 늑대, 동굴사자, 검치호랑이 또는 사람 같은 포식자에게서 보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큰뿔사슴은 다른 대형 초식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먹이를 구하기 위해 계절에 따라 거대한 초원을 이동해야 했다. 숲이 우거진 지역은 큰뿔사슴이 선호하지 않았다. 뿔이 골칫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숲을 피할 수는 없었다. 추운 계절에는 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나무껍질과 나뭇가지를 먹으며 식량을 보충해야 했다.
메갈로케로스 기간테우스, 즉 큰뿔사슴의 상징은 당연히 큰 뿔이다. 거대한 손바닥 모양의 뿔이 많은 포식자를 막았다. 하지만 검치호랑이와 늑대 무리를 뿔로만 막을 수는 없었다. 특히 약하고 어린 개체는 취약했다. 다행히 길고 튼튼한 다리 그리고 강인한 체력으로 넓은 공간을 빨리 달릴 수 있었다. 육식동물들의 특징은 쉽게 지친다는 것. 그들은 한 번의 공격에 실패하면 한참 쉬어야 했기에 빨리 달리는 것은 뿔보다도 중요한 요소였다.
뿔은 방어용 도구에 머물지 않았다. 짝을 구하는 수컷이 자신의 크기와 힘을 과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뿔이 클수록 암컷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높았다. 어쩌면 가장 뿔이 큰 수컷이 집단의 암컷을 독점했을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온갖 애정관계는 가능했을 것이다. 일부일처제라고 알려져 있는 새조차도 암컷 한 마리가 낳은 알에는 각기 다른 수컷의 알들이 섞여 있으니 말이다.
큰뿔사슴은 약 40만년 전에 등장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대략 30만년 전에 등장했으니 큰뿔사슴과 현생인류는 함께 살았던 셈이다. 구석기인들에게 큰뿔사슴은 어떤 존재였을까? 이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큰뿔사슴과 맞닥뜨린 호모 사피엔스는 경외감과 동시에 실용성에 대한 기대감이 넘쳤을 것이다. 큰 키와 거대한 뿔은 자연의 웅장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동시에 생존을 야생에 의존해야 했던 초기 수렵채집인들에게 거대한 큰뿔사슴은 엄청난 기회였다.
큰뿔사슴은 수렵채집인들에게 고기, 가죽, 뼈를 제공했다. 큰뿔사슴 사냥은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보상은 상당했다. 사냥에 성공하면 식량뿐만 아니라 옷과 도구의 재료를 얻을 수 있었다. 뿔은 무기, 장신구 또는 의식용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물론 이것은 사냥에 성공한 다음의 일이다.
큰뿔사슴은 존재만으로도 수렵채집인에게 경외감과 영적 유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왜 아니겠는가? 다양한 토착 문화권에서 크고 강력한 동물은 토템 또는 종족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큰뿔사슴의 크기와 힘, 장엄한 모습은 수렵채집인들의 눈에 생존 이상의 무언가를 상징하는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그 증거가 동굴 벽화로 남아 있다.
수렵채집인들은 주변 세계를 놀라울 정도로 생생한 이미지들로 묘사했다. 특히 프랑스 남서부의 유명한 라스코 동굴 벽화는 주목할 만하다. 동물을 정교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한 이 동굴 벽화에는 거대한 사슴의 뿔과 몸통이 놀랍도록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누가 봐도 큰뿔사슴, 즉 메갈로케로스 기간테우스로 보인다.
동굴 벽화에 큰뿔사슴이 등장한다는 것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세계관에 큰뿔사슴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털매머드, 털코뿔소, 들소 등 빙하기의 상징적 동물들 사이에 큰뿔사슴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수렵채집인들에게 이 동물이 생태계의 중요한 부분이자 자연의 힘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는 뜻이다.
동굴 벽화는 종종 사냥한 동물을 기념하는 용도로 그려지기도 했지만, 더 깊은 관계를 반영하기도 한다.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고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시켜주는 동물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기도 한 것이다. 큰뿔사슴이 수렵채집인의 예술 작품에 등장한다는 사실은 먹이로든 상징적인 생물로든 그 환경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큰뿔사슴의 멸종은 여러 가지 실타래로 엮인 사건이다. 아일랜드에서 유럽을 가로질러 시베리아까지 뻗어 있던 일명 매머드 스텝은 큰뿔사슴을 비롯한 거대 초식 포유류에게 이상적인 서식지를 제공했다. 큰뿔사슴은 넓게 펼쳐진 환경에서 번성했다. 하지만 약 1만2000년 전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 지구는 엄청난 기후변화를 겪었다. 약 2만년 전부터 불과 1만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무려 4~5도나 상승했다.
지구가 더워지자 빙하가 후퇴했으며 광활하게 펼쳐졌던 초원이 줄어들었다. 대신 울창한 숲과 습지처럼 초원을 잠식하는 생태계가 확장되었다. 초목의 변화는 먹이의 영양 성분에 영향을 미쳤다. 영양분이 풍부한 풀을 대체한 산림 식물은 큰뿔사슴의 영양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초원의 감소는 먹이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종의 생존에 필수적인 이동 패턴과 번식지에도 변화를 주었다. 생태계가 변하면서 큰뿔사슴이 선호하는 서식지들이 잘게 쪼개졌기 때문이다.
큰뿔사슴의 거대한 뿔은 홍적세의 넓은 초원에서는 짝짓기 경쟁과 무리 서열을 정하는 데 유리한 자산이었다. 3.5m가 넘는 넓은 뿔을 가진 큰뿔사슴은 초원에서는 기동성에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하지만 숲이 확장되고 서식지가 변하면서 웅장한 뿔은 골칫거리가 되었다. 숲속을 헤쳐나가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지만 어려운 일이 되었다. 뿔과 나뭇가지가 얽힐 위험이 커졌고 큰뿔사슴은 포식자에게 더욱 취약해졌다.
큰 뿔을 갖기 위해서는 상당한 에너지와 영양 자원이 필요했다. 매년 뿔이 빠지고 다시 자라게 하기 위해서 수컷은 엄청난 자원을 뿔에 할당해야 했다. 환경이 변하고 먹이가 부족해지자 큰 뿔의 지속 가능성은 점점 떨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큰뿔사슴이 큰 뿔 때문에 멸종한 것은 아니다. 숲이 우거진 환경에서 뿔이 불리하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멸종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큰뿔은 성선택의 산물이며 수십만년 동안 성공적인 형질이었다.
그렇다면 멸종 원인은 인류일까? 인류는 작고, 느리고, 손톱과 이빨도 보잘것없는 생물이지만 금세 최고 포식자의 자리에 오른 놀라운 동물이다. 수렵채집인의 사냥 기술이 발전하면서 큰뿔사슴 같은 대형동물을 사냥하는 능력도 점점 더 상승했다. 창, 창을 던지는 도구인 아틀라틀과 조직적인 사냥법으로 무장한 인간은 큰뿔사슴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사냥으로 큰뿔사슴이 모두 멸종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크고 강력한 동물을 사냥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과 당시 낮은 인구 밀도를 고려할 때 인류의 힘으로는 큰뿔사슴을 멸종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환경 변화가 큰뿔사슴에게 미친 스트레스를 인간이 가중시켰을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뿔사슴의 멸종은 빙하기 말에 일어난 기후와 생태의 극적인 변화가 주된 원인이다. 인간의 영향은 추가적인 압력에 불과했다.
큰뿔사슴의 멸종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기후변화, 서식지 손실, 먹이 경쟁, 사냥 등이 모두 각기 다른 정도의 영향을 미쳤다. 환경이 변화하면서 큰뿔사슴은 이미 멸종위기에 처했고, 사냥의 압력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주된 원인은 아니었다. 큰뿔사슴은 특정 유형의 서식지와 먹이에 의존하는 대형동물이 급격한 환경 변화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큰뿔사슴 멸종의 진정한 원인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멸종과 생존의 더 넓은 역학관계에 대해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종의 운명은 자연과 인간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정되는 경우가 많으며, 아무리 대단한 생물도 생태계 균형의 미묘한 변화로 인해 몰락할 수 있다.
마지막 큰뿔사슴 화석은 기원전 7700년 전의 것이며 가장 큰 화석은 더블린의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현생 사슴 가운데 큰뿔사슴과 생물학적 연관이 있는 것은 없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