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착취 없는 옷 만드는 ‘낫아워스’ 운영하는 박진영·신하나씨
“어떤 제품을 선택하고 소비하느냐는 투표와도 같은 정치적인 행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막 옷 한 벌을 세상에 내놓은 신생 브랜드 ‘낫아워스(Not ours)’의 디자이너 박진영씨(36)와 브랜드 마케터 신하나씨(35)는 말했다.
누가 직원이고 사장이랄 것도 없이 두 명이 운영하는 ‘낫아워스’는 동물 착취 없는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했다. 소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 ‘비건의 완벽한 겨울 아우터, 페이크퍼 하프 코트’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페이크퍼(인조털) 코트는 32만5000원이란 고가에도 불구하고 목표액(1072만5000원)을 초과 달성한 1415만5500원을 펀딩받았다. 코트를 구매한 40여명의 소비자들은 ‘동물에 대한 착취 없이도 퀄리티가 높은 패션 아이템’에 투표한 셈이다.
지난 11일, 찬바람이 살을 파고드는 한파 속에 홍대역 근처 주택가의 한 원룸을 찾았다. 아늑한 방의 훈기가 얼어붙은 몸을 녹였다. ‘낫아워스’의 사무실이자 디자이너 박씨의 집이었다. 박씨가 따뜻한 차와 과자를 내왔다. “모두 비건 제품이에요.” 얼그레이 맛이 나는 카스텔라는 우유와 버터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부드럽고 달콤했다.
박씨와 신씨는 한 패션 업체에서 동료로 만났다. 박씨는 10년째 비건(우유와 달걀까지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을 실천하고 있고, 신씨는 5개월 전부터 채식을 시작해 현재는 우유와 달걀을 제외한 해산물까지는 먹는 페스코다. “입는 것까지 비건을 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모피는 안 입더라도 울코트는 안 입기 어렵잖아요. 의류를 위해 동물을 착취하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느슨해진 부분이 있었죠.” 그런 박씨에게 얼마 전 채식을 시작한 신씨는 ‘옷이 잔인하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줬다. 신씨는 “오리가 산 채로 가슴털이 뜯겨 나가고, 동물이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하는데 굳이 그런 걸 소비하면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 안 입을래’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살 게 없었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낫아워스’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방 한쪽에는 페이크퍼 코트가 두 벌 걸려 있었다. 밀도 높은 부드러운 털이 엉덩이까지 포근하게 감싸는 디자인이었다. 폴리에스터 100%로 만들었다는 털은 밍크털 같이 미세하고 보드라웠다. “인조털도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냐”고 묻자 “인조소재로 얼마든지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지만 시장에서 생산하지 않을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인조털, 인조가죽은 ‘싼 것’으로 인식돼 있기 때문에 대부분 싸고 멋이 없다. “싼 제품이면 비건 제품이겠거니 생각하고 구입해요. 채식주의자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가 비동물성 제품을 내놓지만 너무 비싸죠. 퀄리티가 최저 아니면 최고이고 중간이 없어요.” 박씨는 “패션 업계에서 신소재를 택하는 이유는 저렴하기 때문이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인공 소재는 저렴하다고 생각할 뿐, 좋은 옷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씨는 “아크릴, 폴리에스터도 가공 방법에 따라 퀄리티는 천차만별이고 울이나 가죽보다 비싼 원단도 당연히 있다”며 “비동물성 소재로도 질 좋은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생산공장을 찾아가면 “이렇게 싼 소재로 좋은 옷을 만들려는 사람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최근에는 페이크퍼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 고급 소재의 페이크퍼 코트를 첫 제품으로 선택했다. 별다른 유통망이 없어 소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판매를 시작했다. ‘30만원이 넘는 코트를 팔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대박’이 났다. “좋은 옷에 목마른 비건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해 그냥 후원해주신 분들도 있었어요.”
박씨는 “모피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동물 착취의 잔인함에 대한 정보가 잘 제공되지 않아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밍크나 많은 동물들의 털을 벗기는 과정에서 가죽을 부드럽게 얻기 위해, 많은 면적을 얻기 위해 산 채로 벗기는 경우가 많아요. 에르메스의 대표적 가방 버킨백의 경우도 이름을 딴 가수 제인 버킨이 악어가죽을 채취하는 과정이 너무 잔인하다고 더 이상 자기 이름을 가방에 붙이지 말라고 할 정도였죠.” 양털은 어차피 자라는 것 아닐까. 박씨는 설명했다. “양털을 깎을 때 양들이 다치기도 해요. 엉덩이 부위에 기생충이 알을 낳으면 털의 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산 채로 엉덩이 피부를 벗겨내는 ‘뮬징’을 행하는 곳도 있어요. 송아지 가죽을 얻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가죽을 벗기고, 짧은 털이 박혀 있는 송치를 얻기 위해 태아 상태의 송아지를 배 안에서 꺼내 벗기기도 해요.” 신씨는 “우리는 머리카락만 뜯겨도, 왁싱만 해도 정말 아파한다”며 “내가 좋아하는 패션이지만, 대체 패션이 뭐기에 이렇게 잔인한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낫아워스’는 말 그대로 ‘우리의 것이 아닌 것들’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의 털이 아닌 털, 우리의 가죽이 아닌 가죽’과 같은 뜻도 있지만 ‘우리의 것이 아닌 미래 세대의 자원’과 같은 의미도 담겨 있다. 박씨는 “자원에는 환경과 같은 물적 자원도 있지만, 기술에 해당하는 인적 자원도 있다”며 “동물을 착취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의 옷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에 연결된 모든 것들에 최대한 관심을 가진 패션을 고민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 옷 페이크퍼 코트엔 이런 가치를 담고자 했다. 유행과 나잇대에 상관없이 오래 입을 수 있도록 심플하게 디자인하면서도 옷 자체에 정성을 많이 들였다. 누군가의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책정한다는 게 어렵다는 생각에 당분간은 둘이서만 ‘낫아워스’를 운영키로 했다. 불필요한 재고와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100% 주문 생산 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화제는 ‘패스트 패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패스트 패션은 쓰레기를 너무 많이 양산해내고 저개발국가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옷값을 너무 낮춰놨어요. 옷을 사고 안 입고 버려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두 사람은 다큐멘터리 <트루 코스트>를 추천했다. 2013년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사고로 1000명 이상이 죽은 사고 이후 패스트 패션의 노동착취와 환경파괴에 대해 다룬 다큐다.
11일까지 주문을 받은 페이크퍼 코트는 현재 생산 중이며 28일부터 소비자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포장지까지 환경오염이 덜한 소재를 찾고 있다. 동물에 대한 학대 없는 패션, 노동착취 없는 패션, 환경에 대한 고려를 담은 패션이다. 두 사람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전문 분야에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라며 “패션에 국한되지 않고 비건들의 생활에 다양성을 더할 수 있는 제품들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FUR FREE
“모피, 더 이상 세련되거나 트렌디 하지 않다” 패션업계, 동물 착취 없는 패션 선언 이어져
“모피는 모던하지 않다.”
지난 10월12일, 구찌의 CEO 마르코 비자리가 ‘퍼 프리’(Fur free)를 선언했다. 구찌는 앞으로 모피 제품을 생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모피를 얻으려고 동물들에게 잔혹한 방법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며 모피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패션계에서 모피는 더 이상 세련되거나 트렌디하지 않다. 스텔라 매카트니, 비비안 웨스트우드, 랄프로렌, 타미 힐피거, 캘빈 클라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들이 ‘퍼 프리’를 선언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지 않기로 한 모피는 밍크, 여우, 토끼, 라쿤 등이다.
‘동물 착취 없는 패션’과 함께 ‘지속가능한 패션’은 패션업계의 화두다. 덴마크에서 열리는 코펜하겐 패션 서밋은 패션업계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가장 큰 논의의 장이다. 지난 5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행사에는 H&M, 자라 등 패스트 패션을 비롯해 버버리와 스와로브스키 등의 브랜드가 참여해 재사용 원료를 사용한 패션, 쓰레기를 줄이는 새로운 공법 등을 논의했다.
2013년 방글라데시의 의류공장에서 1000여명의 노동자들이 금이 간 건물이 붕괴하면서 목숨을 잃었다. 의류공장 사장이 저렴한 단가를 맞추기 위해 이들을 대피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패션업계의 제3세계 노동착취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패션업계의 큰손 H&M은 해마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내며 헌옷 수거와 의류 재활용 사업, 현지 생산공장과의 공정한 계약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한국에서 ‘윤리적 패션’에 대한 인식은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 패션업계에서 윤리적 패션의 비중은 1%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옥수수 섬유로 만든 양말을 생산하는 콘삭스 대표이자 한국 윤리적 패션 네트워크의 이태성 대표는 “한국의 소비 패턴은 ‘가성비’”라며 “윤리적 패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없거나 잘 알릴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큰 기업이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한 패션 가치를 내세워야 하는데, 그런 노력들이 굉장히 적다”며 “시중에서 친환경 소재를 찾으려고 해도 구하기가 어렵다. 수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싼 공장을 찾으라’는 그룹 회장의 지시에 ‘윤리적 패션’에 대한 논의가 유야무야된 국내 패스트 패션업체의 사례도 전했다.
그래도 작은 시도들은 있다. 2009년 시작된 윤리적 패션 네트워크에는 콘삭스 외에 모피·가죽 등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는 비건 패션 브랜드 비건타이거, 버려진 가죽이나 원단을 재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리블랭크, 공정무역 업체 그루 등 15개 회원사가 들어와 있다. 지난 11월에는 동대문 두타에 윤리적 패션네트워크를 비롯한 25개 업체가 입점했다.
■ 오리털·거위털
평생 5~15번, 6주 간격 산 채로 털 뽑혀
거위와 오리는 사회성이 강하고 활동적인 동물이다. 하지만 ‘덕다운’을 위해 사육되는 오리들은 일생 5~15번까지 털을 뽑힌다. 뽑힌 털이 다시 자라는 데는 6주 정도 걸리는데, 이들은 6주 간격으로 산 채로 고통스럽게 털을 뽑히는 경우가 많다. 털을 뽑는 과정에서 생살이 떨어져나가고 피부가 찢기기도 한다. 패딩 한 벌을 만드는 데는 보통 15~20마리의 오리털이 필요하다.
■ 라쿤
비좁은 사육장에서 산 채로 가죽 벗겨
인디언어로 ‘냄새를 찾는 손’이라는 뜻의 라쿤은 길고 유연한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먹이를 잡아먹거나 물건을 잡을 때 손을 능숙하게 사용한다. 패딩이나 코트의 장식재로 많이 쓰이는 라쿤털은 대부분 중국의 공장식 사육시설에서 생산된다. 비좁은 사육시설에서 질병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라쿤은 산 채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가죽이 벗겨지는 경우가 많다.
■토끼털
앞다리 뒷다리 묶인 채 기계로 털 깎아
토끼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겁이 많다. 겨울 외투에 많이 쓰이는 토끼털을 얻기 위해 사육하는 앙고라토끼는 앞다리와 뒷다리를 묶인 채로 기계로 털이 깎이거나, 사람 손에 털을 쥐어뜯긴다. 앙고라토끼는 생후 8주가 되면 처음 털을 뽑히며, 털을 뜯기는 과정을 3개월마다 반복적으로 겪다 2~5년이 돼 털의 생산성이 떨어지면 도살된다.
■ 양모(울)
털 깎는 과정서 생식기 부상 많이 당해
양모는 다른 모피에 비해 윤리적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양모 생산이 산업화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공장식 사육시설의 양들은 털을 깎는 과정에서 젖꼭지나 생식기가 잘리는 부상을 입는 등 고통을 겪는다. 메리노 양은 많은 털을 생산하기 위해 품종을 개량해 피부에 주름이 많고, 이 때문에 생식기 주변에 구더기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 농장에서는 양의 꼬리와 생식기 주위의 피부를 마취제 없이 잘라내는 뮬징(mulesing)이 이뤄지기도 한다.
가볍고 포근해 ‘섬유의 보석’이라 불리는 캐시미어는 인도 카슈미르, 티베트 등지 염소의 연한 털로 만들어진다. 염소를 빗질해 빠진 털을 이용하는데, 손발을 묶고 억지로 빗질하는 과정에서 고통이 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