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 선택 아닌 필수

<3>독일 부퍼탈연구소 만프레트 피셰디크 부소장 “독일에 재생에너지 일자리 36만개…원자력·석탄보다 낫다”

부퍼탈(독일) | 구교형 기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계기로 독일인들 생각 바뀌어…재생에너지 전환에 적극 나서기 시작

시민 인식 전환과 정부 정책적 결단 이뤄지자 저항하던 기업도 직접 투자 나서는 등 변화의 바람

만프레트 피셰디크 독일 부퍼탈연구소 부소장이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부퍼탈시에 있는 이 연구소 회의실에서 윤순진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이사장과 대담을 하고 있다.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제공

만프레트 피셰디크 독일 부퍼탈연구소 부소장이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부퍼탈시에 있는 이 연구소 회의실에서 윤순진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이사장과 대담을 하고 있다.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제공

유럽 최고의 에너지·기후변화 전문 싱크탱크인 부퍼탈연구소 만프레트 피셰디크 부소장(54)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독일에는 재생에너지 분야에 36만개의 일자리가 있다. 원자력발전에 주력하던 시기 이 분야에서 생긴 일자리 수는 25만개였다”면서 “재생에너지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원자력이나 석탄보다 낫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부퍼탈시에 있는 이 연구소 회의실에서 윤순진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이사장(51)과 대담하며 이같이 말했다.

독일 정부와 기업, 시민이 삼위일체로 ‘에너지 전환’에 나서게 된 계기로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꼽았다. 피셰디크 부소장은 “일본과 같은 안전 국가에서 사고가 발생하자 독일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봤다”면서 “적극 다른 대안을 찾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정책적 결단을 내려줘야 기업도 따라온다”면서 탈원전·탈석탄을 선언한 한국 정부에 강력한 리더십을 조언했다. 당일 대담은 윤 이사장이 질문하고 피셰디크 부소장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시민들의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 독일은 1980년대부터 에너지 전환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후쿠시마 사고 이전까지 원자력발전 비중이 컸다. 오래전부터 원전 반대 여론이 녹색당과 그린피스 등을 주축으로 있었지만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그러다 탈원전 필요성을 강렬하게 인식하게 된 계기가 후쿠시마 사고다. 일본은 안전을 중시하는 ‘완벽한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데 크게 놀란 것이다. 이제는 국가 정책으로 원전을 완전히 없애겠다고 밝혔다. 원자력이 재생에너지로 대체되는 것을 시민들도 반대하지 않는다. (전력 생산단가가 높아지면서 일시적으로 생기는) 비싼 전기요금을 부담할 각오도 돼 있다.”

- 한국에서는 에너지 전환에 따른 일자리 감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독일은 현재 실업률이 4% 미만이다. 10~20년 전에는 이보다 실업률이 훨씬 높았다. 현재 재생에너지 분야에 36만개의 일자리가 있다. 원자력발전에 주력하던 시기 여기서 생긴 일자리 수는 25만개였다. 가령 풍력발전기를 만들면 여기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이 생기고 고용도 창출되기 마련이다. 국가적으로도 원자력의 경우 기술력이 프랑스에 뒤졌는데, 풍력·태양광 발전에 주력하면서 미래 산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회가 온 것이다.”

-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세운 2020년 목표치를 달성했나.

“2010년대 초반부터 에너지 전환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어떤 부분은 2020년 목표치보다 빨리 달성됐다. 다만 원전을 없애기로 한 뒤 석탄화력발전소가 다시 등장했다. 위험성이 큰 원전보다는 낫다는 이유로 석탄을 다시 태운 것이다. 이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본래 1990년 대비 2020년까지 40% 감축을 목표로 했는데 28% 줄이는 데 그쳤다.”

-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더 확대할 생각인가.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55%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 환경보호법 개정으로 석탄화력발전소에 배출량 감소 압력도 가한다. 대신 기존에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생산돼온 전력을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해야 한다. 이 문제를 재생에너지로 해결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2030년에는 전체 전력의 65%를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야 한다.”

- 에너지 전환 과정에 기업의 저항은 없었나.

“여러 산업 부문에서 저항이 심했다. 일단 원자력발전이나 석탄발전을 영위하던 기업은 수입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정부 정책과 국회 입법, 시민 인식이 바뀌면서 기업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전반적으로 호응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중요한 시점에 정책적 결단을 내려줘야만 기업도 따라오게 돼 있다.”

- 한국 사람들도 후쿠시마 사고를 목격했다. 그런데 독일이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1986년 구소련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만 해도 그런 나라에서는 안전사고가 쉽게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일본처럼 기술이 발달하고 안전 문제에 민감한 국가에서 사고가 벌어지자 독일에서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인식한 것이다.”

- 한국은 원전 산업에 대한 경제적 기대효과가 크다.

“원자력발전은 돈을 벌 수는 있지만 사고 위험이 뒤따른다. 그 위험이 상당히 크다는 게 독일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각인돼 있다. 불편해도 후손을 위해 조금 참자는 생각이 있다. 윤리와 철학의 문제다. 외부에서 사회운동을 통해 생긴 관념이 아니다. 또 태양광발전 기술이 개선돼 점점 효율화되면서 시민 참여도 늘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은 내 집에도 설치할 수 있다. 직접 에너지 생산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

- 한국에선 태양광 발전시설이 자기 집 앞에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이해당사자들과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 제대로 설명해야 차이를 줄일 수 있다.”

- 한국은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수요 관리 측면은 취약하다.

“정부의 정책적 관심과 기업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다. 특히 모빌리티 분야에서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전기버스를 도입하려면 정부가 전기선을 깔고 기업은 차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수송 측면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하다. 바이오연료가 공급되고 있지만 차량 유지에 좋지 않고 비용도 비싸 여기서도 말이 많다. 시민들이 편안하게 탈 수 있는 차를 만들어야 한다. 전기차나 수소차가 보급되면 이런 환경이 바뀔 수 있다.”

- 재생에너지 사업에 기업과 시민은 어떻게 참여하고 있나.

“처음에는 기업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에 반대했다. 그러다가 정부로부터 결정타를 맞고 변화를 시작했다. 시민들은 태양광발전을 통해 생산되는 전력을 판매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물질적 이득이 동참하는 동기가 됐다. 풍력발전 프로젝트에도 시민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참여한다. 돈이 된다는 걸 알고 하는 것이다. 시민 참여를 유인하려면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 독일은 2030년에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65%로 목표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보완할 점은.

“풍력·태양광 발전으로는 전력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기 어렵다. 외부 환경에 따라 끊어질 때도 있다. 에너지 저장 기술 개발이 더 필요하다. 또 독일은 바람이 북쪽 지역에서 많이 불지만 전력 소비량은 남쪽 지역이 더 많다. 전력 손실 없이 이용 가능한 송배전망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 한국의 전력시장은 한국전력 독점이다. 한국에서는 재생에너지로 100% 전력을 쓰는 기업이 나오기 어렵다.

“독일은 전력을 사고파는 시장이 자유화돼 있다. 자유롭게 경쟁하는 부분이 재생에너지 확대에도 도움이 된다. 독일은 첫 투자자가 개인이었다. 시민들이 시작했다. 나중에 정부의 정책 결정이 내려지자 에너지 기업들이 직접 투자에 나섰다.”

- 한국에서는 ‘탈원전’이라는 표현이 재생에너지 반대세력으로부터 공격의 빌미가 되고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시는 지역 주민들이 원전 유입에 저항했다. 실제 원전 없이도 시가 잘 돌아간다. 의사결정은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가는 게 좋다. 다만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부정 이미지보다 긍정 이미지를 갖게 하는 브랜딩 작업도 중요하다.”

[에너지 전환, 선택 아닌 필수]<3>독일 부퍼탈연구소 만프레트 피셰디크 부소장 “독일에 재생에너지 일자리 36만개…원자력·석탄보다 낫다”
■ 독일 부퍼탈연구소는…에너지 전환 선도, 환경정책 싱크탱크

독일 부퍼탈연구소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을 목표로 1991년 설립된 에너지·기후변화 전문 연구기관이다.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전환’에 대한 연구가 드물던 시절 요하네스 라우 전 독일 대통령과 현지 유력인사들이 주축이 돼 만들었다. 유엔과 공동으로 ‘지속 가능한 도시 이동 솔루션’ 등을 연구했고, 중국·일본·인도 등과 손잡고 친환경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연구소 직원은 60명의 박사급 인력을 포함해 총 226명이다. 지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선정한 환경정책 분야 싱크탱크 순위에서 9위를 차지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래 모빌리티와 에너지·기후 정책 등이다. 이 연구소에서 10년간 근무한 샤샤 사마디 박사는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등과 관련한 에너지 시나리오를 연구 중”이라면서 “시나리오별 장단점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부퍼탈연구소와 에너지 정보 공유 및 시민 소통 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를 계기로 내년부터 자료 공유를 통한 콘텐츠 개발과 연 1회 초청 강연 및 공동 세미나를 개최한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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