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플라스틱 반성문’을 써 본 중학생 이은호씨

김한솔 기자
일주일간 자신이 쓴 플라스틱을 조사하는 활동에 참여했다가 학교에 환경 동아리도 만들게 된 이은호씨. 권도현 기자

일주일간 자신이 쓴 플라스틱을 조사하는 활동에 참여했다가 학교에 환경 동아리도 만들게 된 이은호씨. 권도현 기자

구운 쌀칩, 파래 김, 단호박칩, 요구르트, 우유 빨대, 책, 마스크, 샴푸통, 택배 포장….

언뜻 보면 간식 목록 같기도 하고, 마트에서 살 물건 목록 같기도 한 이것은 중학생 이은호씨가 작년 여름에 쓴 ‘플라스틱 반성문’이다. 그는 지난해 여름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플라스틱 집콕 조사’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일주일간 먹고 쓴 것들에 포함된 플라스틱을 모두 적었다. 처음에는 혹시 적을 게 하나도 없을까봐 쓰레기통을 뒤져서 옛날에 버린 플라스틱까지 찾아내 적었지만, 곧 그렇게 하지 않아도 엑셀 파일에 적힌 플라스틱 쓰레기 목록은 금방 길어졌다. 일주일간 사용한 플라스틱은 66개. 비닐, 페트 등 종류도 다양했다.

난생처음 자신이 쓴 플라스틱을 나열해 본 경험은 그의 일상을 천천히 바꾸었다. 이제는 쓰레기를 버릴 때 의식적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버렸네’라는 생각을 한다는 그는 자신의 경험을 확장하고 싶어 학교에서 환경 동아리 ‘어스앤피스’도 만들었다. 그는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한 달간 7개 학급에서 사용되는 플라스틱 조사를 할 예정이다.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 직접 해보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고 말하는 그를 지난 3~4월 인터뷰했다. 다음은 은호씨와의 일문일답.

-그린피스의 ‘집콕 조사 챌린지’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초등학교 2학년 때 레인보우 워리어호(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가 인천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보러갔어요. 캠페이너 분들이 활동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해서 후원하게 됐고, 그 뒤로 e메일로 뉴스레터도 받았어요. 뉴스레터에서 플라스틱 집콕 조사를 보고 신청했죠.”

-조사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처음에는 쓰레기통을 뒤져서 옛날에 버린 플라스틱까지 찾아내 적었어요. 혹시 적을 게 없을까봐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안 해도 적어야 되는 플라스틱이 생각보다 많은 거예요. ‘이것까지 적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많이 나와서, 창피했어요.”

-어떤 플라스틱이 많이 나왔나요.

“택배를 자주 시키는 편이라 포장 플라스틱이 되게 많이 나왔고요. 한 개 제품도 여러 번 포장돼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한 번 배달 음식을 시키면 그릇이 플라스틱이고 뚜껑도 그렇고, 심지어는 그게 포장된 비닐조차도 플라스틱이에요. 무의식적으로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어요. 플라스틱인 줄 몰랐던 것도 있어요. ‘볼펜 심’ 같은 것은 그냥 버렸는데, ‘맞다, 이것도 플라스틱이지’ 했어요. 플라스틱도 LDP(경량 플라스틱),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처럼 많은 종류가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고요.”

학교 환경동아리 ‘어스앤피스’를 만든 이은호씨는 이번달부터 친구들과 함께 7개 학급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조사를 하기로 했다. 권도현 기자

학교 환경동아리 ‘어스앤피스’를 만든 이은호씨는 이번달부터 친구들과 함께 7개 학급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조사를 하기로 했다. 권도현 기자

-그 경험 후에 은호씨의 일상은 조금 바뀌었나요.

“15년 동안 아무 생각없이 쓰레기를 버렸어서 한순간에 다 바뀌진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버릴 때도 의식적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또 만들어버렸네’ 생각하게 돼요. 물건 살 땐 최대한 플라스틱이 없는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요. 어떤 물건을 볼 때도 ‘이 제품은 이런 플라스틱으로 구성돼 있구나’를 살피게 됐어요. 대용량 과자 있잖아요? 그냥 한두 봉지씩 사 먹을 수도 있는데, 이건 겉에 또 다른 봉지로 포장돼 있으니까 하나만 사도 많은 양의 비닐이 나오잖아요. 예전엔 그냥 사먹었는데 ‘이런 것도 환경에 문제가 되겠지’ 생각하게 됐어요. 일회용컵도 자주 사용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되도록이면 다회용컵을 구매해요.”

-학교에 환경 동아리를 만들고, 플라스틱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이런 경험을 하면 자기가 어떻게 플라스틱을 쓰고, 버려왔는지 알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동아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어요. 학교에 환경 관련 동아리는 없거든요. 학교에서 학생들이 직접 만든 동아리도 정규 동아리로 할 수 있다고 해서 신청서를 넣었어요. 제가 한 플라스틱 조사 활동을 다른 친구들도 같이 하는 거고요. 환경 문제가 플라스틱만 있는건 아니니까 잔반 줄여보기 캠페인을 한다든지 하려고 해요.” (은호씨는 인터뷰 이후인 지난달 6일 첫 동아리 모임을 가졌다. 은호씨는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이번 주부터 3학년 7개 학급을 대상으로 한 달간 학급 내에서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가 얼마나 되는지, 이 중 줄일 수 있는 플라스틱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직접 조사하기로 했다.)

-요즘 학교에서 기후변화나 환경 관련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도덕이나 기술가정 시간에 재활용하는 법, 재활용을 해야 하는 이유를 배워요. 그렇게 잠깐 잠깐씩 나오는 것 외에는 집중적으로 다루진 않아요.”

-별도의 과목으로 있으면 어떨 것 같아요.

“과목으로 있으면 관련 내용을 자주 접하고 생각도 해볼 수 있겠죠. 그 과목 시간에 관련 활동을 해볼 수 있는 기회도 생길 수 있고요. 수행평가를 하면서라도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반강제적으로 하게 되는 면도 있겠지만,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죠. 어릴 때 배운 게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하잖아요. 불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미리 배우지 않는다면 정말 불이 났을 때, 위급한 상황일 때 제대로 대처 못 할 수 있잖아요. 불이 났을 땐 ‘불이야!’ 소리 질러야 된다고만 확실히 배워도 도움이 되는데…. 기후변화 문제 심각하다, 플라스틱 사용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배우면 머리 한 구석에 그 생각이 자리잡고 있게 되지 않을까요.”

‘보통의 기후위기’ 6번째 인터뷰이인 중학생 이은호씨.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가계부를 쓰는 것처럼 ‘플라스틱 반성문’ 같은 것을 ‘한 번 직접 해보는’ 것이 작은 변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권도현 기자

‘보통의 기후위기’ 6번째 인터뷰이인 중학생 이은호씨.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가계부를 쓰는 것처럼 ‘플라스틱 반성문’ 같은 것을 ‘한 번 직접 해보는’ 것이 작은 변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권도현 기자

-청소년들이 만든 기후단체들도 있잖아요. 다른 이슈와 다르게 왜 환경 문제는 청소년이 중심이 된 이런 단체들이 생기는 걸까요.

“저희가 기후위기를 직접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까. 저희가 직접 나서야 한다, 이 사태를 되돌려야 한다는 마음 때문인 것 같아요.”

-플라스틱 조사도 하고, 동아리도 만들면서 고민되는 점들도 있을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환경 관련한 포스팅이 많이 올라오고, ‘좋아요’도 많이 받지만, 실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면 고민돼요. 정말 옛날부터 쓰레기 줄여야 한다, 환경문제,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얘기해왔잖아요.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해도 어떤 사람들은 ‘불편한데 굳이…지금도 괜찮지 않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정말 이 문제에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관심갖게 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 가끔 고민해요.”

-은호씨처럼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한 번 직접 해보는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우리가 돈을 아끼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해봐요. 저렴한 거 사야지, 카드 말고 현금만 들고 다녀야지 하면서도 잘 안돼잖아요. 그래서 돈 관리를 위해 가계부를 쓰죠. 써 두면 의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조금 귀찮더라도 가계부를 작성하는 것처럼 자기가 쓴 플라스틱을 정리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이만큼 썼구나 알 수 있게요. 일종의 ‘플라스틱 반성문’이죠. 그런 걸 한 번 써보면 과거에 자기가 쓴 플라스틱이 흐릿하게만 남아있지 않고, 자료로 남아있는 거잖아요. 그런걸 보고 스스로 돌아보고, 이렇게 고쳐야 되겠구나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플라스틱 집콕 조사는 은호씨의 반성문이네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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