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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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1번지’ 설악산도 산불 안전지대 아니다
지난 4일 저녁 무렵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엔 비상이 걸렸다. 이날 오후 7시17분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주유소 맞은편 도로변에서 산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초속 10~20m 강풍을 타고 이틀간 고성과 속초 지역 산림 250㏊를 초토화시킨 이번 산불의 최초 발화점인 원암리는 설악산국립공원 경계구역에서 388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설악산의 명소인 울산바위까지도 2.5㎞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는 이날 산불 진화 차량 3대와 직원 70명을 경계지역에 긴급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불길이 남쪽으로 방향을 틀 경우 순식간에 설악산국립공원이 화마에 휩싸일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때마침 강한 서풍이 불면서 불길이 동쪽으로 향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이를 지켜본 주민들은 “갑자기 풍향만 바뀌어도 지역에서 가장 소중한 관광자원인 설악산이 큰 피해를 입을 뻔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처럼 설악산이 대형 산불의 위험에 처한 ...
201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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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산불 악몽…‘천수답 대응’ 언제까지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강원도 고성·속초, 강릉·동해, 인제군 등 5개 시·군에서 발생한 산불은 여의도 면적의 1.8배에 달하는 산림 530㏊(530만㎡)를 초토화했다. 재산피해만 수천억원대였다. 태풍급 강풍 속에서도 신속한 진화에 나서 피해를 줄였지만,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위력을 실감케 한 화재였다. 4월의 동해안 대형 산불의 ‘악몽’은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고 있다. 1996년 3762㏊를 태운 고성 산불을 비롯해 1998년 강릉 사천(301㏊), 2000년 동해안 4개 시·군(2만3138㏊), 2004년 강릉 옥계(430㏊), 2005년 양양(1141㏊) 등지에서도 대형 산불이 이어졌다. 한동안 잠잠했던 동해안 산불은 2017년 삼척(765㏊)과 강릉(252㏊), 지난해 3월 고성 간성(356㏊)에서도 발생해 막대한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주로 3~4월에 동해안지역에서 발생하는 산불은 ‘양간지풍(襄杆之風)’으로 불리는 초속 10~30m의 국지... -
‘강원 산불’ 특별재난지역 선포
강원 고성·속초, 강릉·동해, 인제군 등지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의 진화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됨에 따라 피해복구와 발화원인 규명, 이재민 지원 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일 고성군·속초시·강릉시·동해시·인제군 등 5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에 따라 복구 소요액에 대한 국비 지원이 늘어나고, 주민 생활안정을 위한 특별교부금이 지원되는 등 각종 혜택이 뒤따르게 된다. 복구 비용 중 지방비 부담액의 50∼80%에 대한 국고 지원이 이뤄진다.또 국세와 지방세를 감면받거나 징수 유예를 받을 수 있다.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보험료도 30∼50%가량 경감된다.사망자·실종자 유족 구호와 부상자 구호, 주거용 건축물의 복구비 지원, 고등학생의 학자금 면제도 이뤄진다. 농·어업, 임업인에 대한 융자, 농·어·임업 자금의 상환 연기와 이자 감면,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에 대한 자금 융자도 지원된다. 하지만 주택이 전파돼 삶의 터전을 잃은 피해주민들은 “현행 규정상 ... -
“밤에 자다 뜨거운 느낌에 깨고…타는 냄새만 맡아도 철렁”
“자려고 누우면 화재로 집을 빠져나올 때가 떠올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겨30년 그린 그림 불타 눈물”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마을회관에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화가 정광섭씨(64)는 참담한 표정으로 현재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원암리는 고성 산불의 최초 발화지점에서 2㎞ 정도 떨어진 마을이다. 산불이 번진 정씨의 집은 형체만 남은 채 전소됐다. 그는 “대피 당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며 “불이 집으로 옮겨붙는 것을 봤지만 화염의 기세가 너무 강해 소화기를 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몸만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술의 힘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지만 술을 마셔도 잠이 잘 안 온다”며 “30년 넘게 그린 그림을 집에 두고 나온 것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불길 속을 뚫고 나온 이재민들은 집을 잃은 충격과 함께 대피 당시 느꼈던 공포감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회관에서 이번 화... -
텅 빈 ‘강원의 눈물’
지난 6일 오후 강원 속초시 조양동 속초해수욕장. 평소 같으면 관광객들로 북적였을 주말이지만, 해변은 썰렁하기만 했다. 드문드문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일부 오갈 뿐이었다. 속초해수욕장은 속초에서도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장소 중 하나다. 주말이면 계절에 상관없이 해변을 산책하거나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고성에서 시작돼 속초를 휘감은 대형 산불이 지나간 직후라 해변에는 인적이 많지 않았다. 해수욕장 바로 앞에서 식당을 하는 장모씨(62)는 “해변에 사람이 늘 북적북적했는데, 오늘처럼 썰렁한 경우는 드물다”며 “식당 손님도 평소의 3분의 1도 안된다”고 했다. 숙박업소들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한 펜션 주인은 “예약 취소 전화에 하루가 다 갔다. 주말이면 빈방이 없었는데 90% 이상 예약이 취소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속초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한 곳인 중앙동 관광수산시장도 비교적 한산했다. 상인들은 “손님이 눈에 ... -
전국서 잇단 ‘온정의 손길’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는 곽은희씨(34)는 지난 6일 강원 고성군으로 달려갔다. 이재민들이 처한 상황을 TV로만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성군 토성면 천진리 천진초등학교 임시대피소를 찾아 이재민들에게 라면과 음료 등을 제공하는 봉사를 했다. 곽씨는 “뉴스를 보고 안타까웠는데 마침 다니던 교회에서 봉사를 가자는 제안이 와서 직접 이재민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강원 산불 이재민을 돕는 손길이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도움이 닿고 있다. 강원대학교병원은 6일부터 27명으로 구성된 의료지원단을 파견했다. 강원대병원은 고성군 산불의 최초 발화지인 토성면 주민들이 대피해 있는 천진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이재민들의 건강을 살피고 있다. 현장에서 직접 이재민의 건강을 챙기고 있는 이승준 강원대병원장(55)은 “큰 재난을 겪은 사람 상당수는 정신적·육체적으로 충격이 크기 때문에 신속한 의료지원이 중요하다”며 “이재민의 건강을 회복... -
소방호스 하나로 50가구 지킨 의인들
“소방차 등 각종 장비와 진화 인력은 가스충전소, 주유소 등 위험시설물에 집중 배치돼 산자락 마을을 지킬 여력이 없었어요. 속초시문화예술회관을 지키던 문화예술단체 회원과 공무원들이 달려오지 않았다면 아마 마을 전체가 불에 탔을 겁니다.” 7일 오전 강원 속초시 번영로 105번길 야산 자락. 마을의 피해상황을 살펴보던 속초시 문화체육과 김재호 체육진흥계장(54)과 김희 체육시설마케팅계장(48)은 다시 한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사흘 전 화마가 휩쓸어 다급했던 상황을 설명했다.능선의 소나무숲과 인접해 있는 주택 3채는 폭격을 맞은 듯 초토화돼 있었다.일부 뼈대만 남은 주택의 잔해 속엔 숯덩이로 변한 기둥과 흉측하게 찌그러진 철제 양동이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반면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 50여채는 그을린 자국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다.화마에서 마을을 구한 것은 소방호스 하나에 의지한 ‘의인’들의 사투였다. 지난 4일... -
담뱃세 증세로 소방예산 1.3조원 증액…“돈이 사람 살린다”
안전에는 돈이 든다. 지난 4일 강원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을 빠르게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4년간 소방·안전 분야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늘려온 결과였다. 담뱃세 인상으로 마련한 소방안전교부세가 종잣돈이 됐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에 소방장비 확충 예산을 대폭 증액할 것으로 보인다.7일 행정안전부와 소방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간 총 1조6049억원의 소방안전교부세가 지방자치단체에 교부됐다. 이 중 소방 분야에 78.2%인 1조2543억원이 쓰였다. 나머지 21.8%는 안전 분야(3506억원)에 쓰였다. 교부세의 증가에 힘입어 소방청(옛 소방방재청)과 지역소방본부 예산 등을 합한 전체 소방예산은 2015년 3조5200억원에서 4조8219억원으로 1조3000억원 가까이 증액됐다.소방안전교부세는 담뱃세에 붙는 세금이다. 2015년 담뱃세를 인상하면서 신설됐다. 도입 당시 세율은 담뱃세의 20%로 20개비 담배 1갑에 118.8원이 부...
201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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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덩이 솔방울’ 300m 날아가 불쏘시개로…천지사방 태웠다
“불씨가 ‘휙’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튀었어요. 불덩이가 된 솔방울들도 강풍을 타고 200~300m가량 날아가 길 건너 야산을 불태웠습니다. 마치 ‘도깨비불’을 보는 것 같아 정말로 무서웠습니다.”강원 고성군 토성면에서 차량을 몰고 길가로 나오다 우연히 전날 밤 마을을 삼킨 불길이 처음 치솟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ㄱ씨(49)는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이같이 표현했다.고성·속초 지역 산불이 처음 발생한 것은 지난 4일 오후 7시17분이었다. 토성면 원암리의 주유소 맞은편 도로변 전신주에서 불꽃이 튀면서 시작된 산불은 야산으로 옮겨붙으면서 초속 10m 안팎의 강풍을 타고 토성면 천진리와 속초시 장사동 등 두 갈래로 나뉘어 급속히 확산됐다.속초시와 고성군, 속초소방서는 신고접수 10여분 만에 물탱크와 소방펌프차 등 진화 장비 27대와 산불진화·소방대원 등 인력 200여명을 긴급 투입했으나 초기 진화에는 실패했다. 짙은 연기를 내뿜으며 초속 10~15m 강풍... -
불 키운 ‘양간지풍’…한때 초속 31m 태풍급 ‘풍무기’로
강원도의 대형 산불은 ‘양간지풍(襄杆之風)’이라 부르는 양양과 간성(고성) 사이에 부는 국지적 강풍이 원인이 됐다.5일 기상청에 따르면 산불이 확산된 지난 4일 오후 영동지방에는 순간최고풍속이 초속 20~30m에 달하는 강풍이 불었다. 화재가 시작된 고성 원암리 인근 미시령 일대에는 이날 새벽 초속 31.2m의 태풍급 강풍이 불기도 했다.양간지풍이란 봄철 영서지방에서 영동지방으로 부는 국지적 바람으로, 고온건조하고 풍속이 빠르다. 태백산맥 동편 강원 양양과 고성(간성) 또는 강릉 쪽으로 불어와 ‘양강지풍’이라 부르기도 한다. 양간지풍은 ‘남고북저’ 기압 배치로 인한 바람의 쏠림 현상에서 비롯된다. 고기압은 시계방향으로 돌기 때문에 남쪽에서 서풍이 불고, 저기압은 반시계방향으로 돌기에 북쪽에서도 서풍이 분다. 이 서풍 기류가 태백산맥을 타고 넘으면서 고온건조해지고 풍속은 더 빨라진다. 2005년 4월4일 천년 고찰을 잿더미로 만들고 수많은 이재민을 남긴 양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