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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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위기, 민주당의 위기
총선에서 집권당이 이처럼 참패한 적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세력을 국민들이 사실상 탄핵한 결과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초유의 위기 상황이다. ‘위기’란 한자말은 ‘위험’과 ‘기회’가 상존함을 의미한다. 국민들이 사실상의 탄핵을 왜 선택했는지를 냉철히 돌아봐야만 위험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 검사 시절에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과 권력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자세는 ‘검사 윤석열’을 ‘대통령 윤석열’로 만든 기초자산이었다. 대통령 선거기간에 드러난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런 국민들의 믿음과 기대로 말미암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2년간 윤 대통령이 국민에게 보여준 것은 ‘자신에게 충성만 하는’ 사람을 등용하고 독선적으로 통치만 하려는 모습이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독선·불통·오기였으며, 이런 대통령과 추종만 하는 참모, 장관, 국민의힘이 경제도 외교도 모두 망가뜨렸다... -
심판의 날, 그 이후
“사과 3박스 사놨어요. 총선 끝나면 가격이 다시 오르지 않겠어요?”최근 만난 지인은 사과를 깎아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 대형할인마트에서 3월 초 사과 10㎏에 9만~10만원 하던 게 4월 초에는 6만~7만원으로 내렸길래 3박스를 ‘득템’했다고 했다. 정부 할인쿠폰은 1인 한 번만 적용된다고 해 가족 명의 전부를 동원했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시민들이 정부 머리 위에 있다고 봐야 한다. 최근 사과 가격 하락이 시장의 결정이 아닌 총선을 앞둔 정부의 한시적인 미봉책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다.4·10 총선이 범야권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번 민심의 선택은 ‘정권심판’이었다. 여론의 중심에 사과와 대파로 표현된 ‘민생’이 있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심판은 내려졌지만, 사실 걱정은 지금부터다. 11일 국가결산 보고를 시작으로 그간 총선을 이유로 여권이 미뤄놓은 혹은 약속한 경제 청구서들이 줄줄이 도래하기 때문이다.당장 관심은 밥상물가다. 지난달 사과와... -
윤 대통령, 사람과 생각 다 바꾸고 협치하라
4·10 총선은 야당의 기록적인 압승으로 끝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161석,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14석으로 총 175석을 석권했다. 여기에 조국혁신당(12석), 진보당(1석), 새로운미래(1석)를 합하면 범진보 진영 의석은 189석에 달한다. 국민의힘 탈당파가 주도하는 개혁신당은 3석을 얻었다. 300석 중 192석을 ‘반윤’ 야당이 쓸어담은 것이다.여당인 국민의힘은 지역구 90석, 비례정당인 국민의미래 18석으로 총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대통령 탄핵 저지선(100석)을 겨우 확보하고, ‘영남당’으로 회귀했다. 32년 만에 최고치인 총선 투표율 67.0%가 보여주듯,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을 찾아 응징투표를 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 2년간 쌓이고 쌓인 유권자들의 절망과 분노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국정을 바로잡기 위해 대통령 탄핵만 빼고 다 할 수 있는 의석을 야당에 쥐여준 게 총선 민심이었다.윤 대통령 집권 후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 -
한동훈의 ‘정치 112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11일 사퇴했다. 지난해 12월21일 그 자리를 지명받고 112일 만이다. “목련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이라 했지만, 현실은 짧은 ‘여의도 정치’의 막내림이다. “총선에 이기든 지든 4월10일 이후 인생이 좀 꼬이지 않겠나”라던 허세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됐다.고군분투부터 독선까지, 그를 보는 당내와 보수의 시선은 착잡하다. 궁금해하는 것은 두 가지, ‘한동훈 정치는 왜 실패했을까’와 ‘정치적 미래는 있을까’이다.당내에선 그의 실패와 정치에 대한 과도한 불신을 연결짓는다. 정치 본령에 해당할 ‘정치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다. 경험은 더 빈곤했다. “여의도 사투리”로 청산 대상을 지목하고 공격하는 데는 능했다. 검찰 출신의 그가 잘하는 일을 다시 했을 뿐이다. 정치 철학과 비전은 보이지 않았고 빈곤함만 노정됐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정치에 문제 있다고 보는데 야당을 향해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고 외쳐본... -
‘국민 승리’라 한 민주당, 견제·수권 능력 보여야
더불어민주당이 4·10 총선에서 175석(비례의석 포함)을 얻어 22대 국회에서도 압도적 과반의 원내 1당이 됐다. 개혁신당을 빼고도 조국혁신당·진보당·새로운미래 등을 합한 범야권은 189석에 이른다. 민주당은 범야권의 구심점으로, 향후 4년간 입법권을 쥐고 정국의 주도권을 갖게 됐다.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1일 선대위 해단식에서 “(총선은)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들의 위대한 승리”라며 “국민의 소중한 뜻을 전력을 다해 받들겠다”고 말했다. 타당한 평가와 자세이다. 유권자들이 야당에 의석을 몰아준 건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실패를 심판하고, 그런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고 바로잡으라고 민주당에 명령한 것임을 새겨야 한다.22대 국회에서 범야권이 쥘 권한은 대단하다. 180석이 넘으면 어떤 법안이든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 등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 하지만 권한 못지않게 책임도 크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도 180석으로 출발한 거... -
편가르기의 심리학
승패가 났다. 환호하며 혹은 탄식하며 개표방송을 시청하셨을 것이다.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느라 하얗게 불태웠을 때와 왠지 비슷한 느낌이 드는가? 정확하다. 과학자들은 당파적 성향이 스포츠 팬덤과 유사함을 밝혀냈다. 남성의 경우, 상대를 때려눕히게 하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월드컵 경기 때뿐만 아니라 선거일 밤에도 자기 편의 승패에 따라 솟구치거나 곤두박질친다.좌우 진영, 종교 분파, 일진 청소년, 직장 내 파벌, 스포츠 열성팬 등등 인간은 패거리를 짓는다. 공동의 목표를 이루고자 팀원끼리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한다. 이처럼 패거리를 잘 지으려면 고도로 복잡한 계산 능력이 필요하다. 놀랍게도, 우리는 이러한 계산을 척척 잘해낸다. 이를테면, 우리는 집단을 마치 하나의 행위자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국민의힘이 읍소에 나섰다”거나 “민주당이 반색했다”고 태연히 말한다. 정당은 사람이 아니라서 읍소도 반색도 할 수 없는데 말이다. 무엇보다도, 집단 내에서 ... -
민심은 윤석열 정권을 무섭게 심판했다
‘정권심판’ 민심은 매서웠다. 10일 열린 22대 총선은 야당의 압승, 여당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방송 3사 출구조사와 11일 0시30분 현재 개표 상황을 종합하면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비례)은 수도권·충청권의 압도적 우세를 통해 170석 넘는 의석이 유력하다. 국민의힘·국민의미래(비례)는 개헌 저지선(101석)을 지킬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2년간 무능·무책임·고집불통 국정을 해온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남은 3년은 달라야 한다는 총선 민심에 담긴 절망과 열망을 정부·여당은 뼛속 깊이 새겨야 한다.총선 민심은 집권 중반에 들어선 윤석열 정부를 ‘불신임’을 넘는 수준으로 무섭게 심판했다. 조국혁신당 등을 포함하면 범야권 의석은 190석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강력 경고했음에도 계속된 오기 국정에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민심이 폭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권 여당으로선 최악의 참패다.대선 후 2년 만에 ...
202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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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오늘도,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다
연말 예비후보자 등록, 지난달 22일 후보 등록 이후 길게는 4개월, 공식 운동 13일의 총선 레이스가 끝났다. 유권자들은 그동안 출퇴근길에서, 시장에서, 공공장소에서 후보와 운동원들의 수많은 인사와 악수, 명함을 받기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 한번만 일할 기회를 달라, 반성하겠다, 회초리를 들어달라, 정권을, 야당을 심판해달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어쩌면 큰절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엎드려 절 받기, 4년 중 반짝 주인 노릇이다. 이제 확성기는 꺼졌다. 거리의 후보들도 이젠 예전의 일상으로, 다시 만나기 힘든 정치인들로 돌아갈 것이다. 제22대 총선 성적표가 발표된 오늘, 4월11일은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자,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가 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공포된 날이다. 105년 전 오늘 공포된 임시헌장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이다. 전제왕권국가에서 민주공화국으로의 획기적인 정부체제...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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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과 예언
지금까지 총선 결과를 예측했던 많은 여론조사와 정치평론가의 논평과 해석의 시간은 끝났고 이의 결과가 드러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긴장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과연 어떤 예측이 적중을 했는지 또는 어떤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는지를 두고 또 한 차례 논평과 논쟁이 오갈 것이다.2010년 독일에서 열렸던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예언 능력을 지녔다는 ‘파울’이라는 문어가 14번의 경기 가운데 12번의 승패를 맞혀 전문적인 축구 해설자들을 무색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정말 신통한 영물이라고 해서 당시 우승국인 스페인의 북서지방에 있는 소도시 오카르발리뇨는 파울에게 명예시민증까지 수여했다. 선거나 스포츠 경기와 증권 시세 등의 변동, 날씨, 지진, 건강상태 등의 변화에 관한 일반적 관심이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일어날 사건에 관해 그 내용과 결과를 미리 알고 싶어 하고 나름대로 예견하고 이에 대처하려고 한다. 이 가운데 자연 ... -
나의 한표가 희망이다
22대 총선 투표가 10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 1만4259개 투표소에서 실시된다.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꼭 투표해 정권 실패를 심판해달라”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무도하고 뻔뻔한 야당을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석을 달라”고 호소했다.유권자의 눈에 비친 이번 총선은 시작부터 끝까지 실망의 연속이었다. 거대 양당은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폐지를 공약하고도 어겼다. 정책과 비전 대결은 실종되고 선심성 공약들이 남발됐다. 여야 대표조차 입에 담기 민망한 험한 말들을 쏟아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토건 개발 약속을 들고 전국을 돌며 24차례의 민생토론회를 열었는데, 이번처럼 대통령이 관권선거 시비 속에 여당 지원을 위해 전면에 나선 총선은 없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도 ‘꽃게철 불법조업 현장 점검’을 앞세워 인천을 찾았다. 이 일이 대통령이 현장 행차해야 할 일인지 물음표가 붙었다. 눈앞의 의석에만 혈안이 된 정치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