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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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식
좋은 소식이 있다. 첫째, 22대 총선이 양당 경쟁에서 벗어나 다당 경쟁으로 치러지고 있다. 제3지대 정당의 폭발 덕이다. 둘째, 선거 정보가 풍부하다. 온·오프라인 미디어는 누가 문제행동을 하고 이상한 말을 했는지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다. 전국·지역 상황, 정당 지도부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 공유된다. 셋째, 대립 구도가 분명하고 단순하다. 다당 경쟁에 정보홍수라고 해도 누구를 선택할지 걱정할 게 없다. 정권심판, 이·조(이재명·조국)심판 가운데 고르면 된다. 그게 싫다면, 양당 동시 심판도 있다. 넷째, 진보정치가 확산됐다. 진보세력이 민주당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하고, 진보를 자처한 조국혁신당이 부상했다. 다당 경쟁, 풍부한 정보, 분명한 대립 구도, 진보 확산은 시민 선택지를 넓혀주면서도 선택을 수월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성숙한 민주주의 증거가 될 수 있다. 나쁜 소식은 한국적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다당 경쟁은 양당질서의 한 현상이다... -
지하로 가는 정치와 슬픔의 공화국
10일 제22대 총선의 결과가 나온다. 선거 이후의 풍경은 어떨까? 사람들이 기대하는 한 편의 복수극이 시작될까? 서로를 심판하겠다던 거대 양당은 어떤 공방을 이어갈까? 관전 지점은 많겠지만 내 관심은 복수와 심판보다 이번 선거에서 그들이 내건 비슷한 공약의 흐름이다. 대표적인 것이 경부선을 비롯한 전국의 철도와 고속(간선)도로를 지하화하겠다는 공약이다.여야가 한통속인 지하화 계획국민의힘은 경부선 철도와 경인전철, 주요 고속(간선)도로를 지하화해서 지상 공간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교통·인프라 격차 해소’의 첫 번째 정책으로 제안했다. 2025년까지 주요 도시의 도심을 지나는 철도와 도로를 지하화하되 지하화 비용을 지상의 개발수익으로 충당하겠다는 구상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철도와 GTX, 도시철도의 도심 구간, 서울의 내부순환로 등을 예외 없이 지하화한다는 공약을 ‘민생을 촘촘히 챙기겠습니다’의 32번째 공약으로 제안했다. 관련 공약의 내용은 국민의힘의 그것과... -
‘숫자 9’ 시비된 MBC 복면가왕 불방 사태, 이런 일 언제까지
MBC 음악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 불방 사태가 총선 이슈로 불거졌다. 여권은 MBC의 의도적 정치행위라고 반발한 반면 야당들은 윤석열 정부 책임을 직격하고 나섰다. 애당초 MBC <뉴스데스크>의 일기예보 그래픽 ‘미세먼지 1’이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의 법정 제재를 받으면서 ‘편향 심의’ ‘언론 검열’ 시비가 커진 후폭풍이라 할 수 있다.MBC는 지난 7일 방영 예정이던 <복면가왕> 9주년 특집 방송을 4·10 총선 뒤인 14일로 미뤘다. 조국혁신당 기호(9번)가 연상돼 오해를 살 수 있다는 내부 의견에 따른 것이다. 방송에선 만화 <은하철도999> 주제곡을 부르는 등 ‘숫자 9’가 톺아진 걸로 전해졌다. 오해의 주체가 ‘미세먼지 1’을 문제 삼은 정부·여당임은 불문가지다.여권 비례위성정당 국민의미래는 8일 논평을 통해 “(MBC는) 지금이라도 ‘야당과 짜고 친다’는 정치권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당장 복면가왕...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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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총선 사전투표율, 국민은 정치 객토를 바란다
지난 5·6일 실시된 4·10 총선 사전투표 투표율이 31.28%로 잠정 집계됐다. 전체 유권자 4428만명 중 1384만9043명이 투표권을 행사했다. 4년 전 21대 총선(26.69%)보다 4.59%포인트 높고, 역대 총선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오는 10일 본투표를 마치면, 21대 총선 투표율(66.2%)을 웃도는 역대급 투표율이 나올지도 주목된다.여야는 높은 사전투표율을 두고 엇갈린 주장을 내놓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가 얼마나 범죄자에 대해 화가 났는지 보여주기 위해 여러분이 사전투표장에 나갔기 때문”이라고, 더불어민주당은 “하루라도 빨리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성난 민심이 확인됐다”고 했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는 10일 투표함이 열리면 알게 될 것이다.여야 말마따나 높은 사전투표율은 심판 여론과 무관치 않다. 야당은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 심판론’을 내걸고, 여당은 ‘이재명·조국 심판론’으로 맞서고 있다. 당장은 윤석열 정부 ...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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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주권자들이 바로잡을 시간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하는 자리인지도 모르는, 대통령 직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란 말은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니다. 곧 취임 2주년을 맞는 윤석열 대통령 이야기다. 탱크를 앞세워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은 군인들도 이렇게 엉망은 아니었다. 민간인 학살 등 국가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었지만, 그래도 국정운영을 잘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은 있었다. 관료와 정치인의 도움을 받으려 했고, 무엇보다 국민에게 지지받고 싶어 했다. 윤 대통령이 역대 최악이 된 것은 그가 대통령이 될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데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배우고 익히려는 태도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만난 숱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그가 남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혼자서만 떠든다는 거다. 최근 의대 정원 문제로 몸살을 앓는 ‘의료개혁’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51분 동안 혼자서 말하는 게 전부였다. 국민을 대신해 궁금한 것을 묻고 싶었던 기자들... -
윤석열 대통령, 4월의 서늘한 공기를 기억하라
다시, 결국 윤석열이다. 일주일도 남지 않은 총선의 중심에 윤석열 대통령이 섰다. 의지대로 섰다기보다, 자의 반 타의 반 불려나왔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선거 국면 초반 거친 이념적 발언을 전보다 삼가는 등 나름의 로키 행보를 했지만, 윤 대통령은 심판 여론을 벗어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논란이 거셀 때 한숨 돌렸을 터지만, 찰나의 순간이었을 뿐이다. 국민의 대표로서 도저히 적절해 보이지 않는 몇몇 민주당 후보들의 자격 논란도 심판 여론을 누르진 못했다. 유권자의 격노한 민심 앞에 격노의 아이콘이 무기력하게 서 있는 모습에서 권력무상을 곱씹게 된다. 정치권 인사들은 채모 상병 사건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과 도피성 출국,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이 심판론에 불을 붙였다고 분석한다. 의료파업 장기화, 대통령이 들었던 대파 한 단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대파 격파쇼를 벌인 여당 후보가 여권 전체를 격파했다는 농담도... -
한 표의 가치,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른다
4·10 총선 사전투표가 5~6일 이틀간 실시된다. 유권자들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신분증 확인만으로 전국 3565개 투표소 어디에서든 투표할 수 있다. 역대 총선 최고치를 기록한 재외선거 투표율(62.8%)이나 사전투표 의향 조사 결과(41.4%)를 보면, 우리 미래와 정치를 바꿀 유권자들의 투표 의지는 어느 때보다 높아 보인다.이번 총선은 초입부터 과열됐다. 해병대 외압 수사 의혹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과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 고물가 속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발언 파동이 정권심판론에 불을 붙였고, 제1야당은 ‘비명횡사’ 공천 후유증을 겪었다. 윤 대통령 민생토론회가 ‘관권선거’ 시비를 키웠고, 여야의 선심성 공약과 막말도 이어졌다. 저출생·청년·성평등·기후위기 등 우리 사회 긴급한 의제와 갈급한 민생 대책들은 퇴행하거나 뒷전으로 밀렸다. 시대정신이 실종된 총선이란 탄식이 과장이 아니다.여야는 이제라도 답이 없는 선거에...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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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치와 녹색정의당
5일 4·10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된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것이 떨어지는 지점에 따라 4년간 한국 사회의 지형도 달라진다. 정권심판론으로 점철된 이번 선거의 절정은 ‘3년은 너무 길다’라는 원색적 구호만으로 일약 제3당이 예상되는 조국혁신당의 선전이다. 불의하고 무능한 정권을 중단시키거나 무력화하는 것도 중요한 정치적 선택이니 이를 섣불리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 제3당 지위에서 밀려난 녹색정의당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녹색정의당은 지난 2월 초 정의당과 녹색당의 선거연합정당으로 만들어졌다.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는 위성정당과 달리 선거연합정당은 각자 당으로 돌아간다. 이념을 공유하는 소수정당이 거대양당 중심의 국회에 진출하기 위한 유럽식 선거전략으로 21대 국회에서 6석으로 제3당인 정의당이 당명을 임시로 바꿔 플랫폼을 제공한다. 두 당이 잠시라도 합치는 데 잡음도 많았다. 정의당은 비례 1번 류호정 의원의 행로가 보여주듯 하염없이 분열하는 상태였고, 창당 10년이 넘게 ... -
총선 앞에 “R&D 아픔 줬다”는 정부, 사과하고 바뀔 것 많다
대통령실이 3일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R&D 예산이 대폭 삭감된 데 대해 “연구자들에게 아픔을 드린 것도 사실”이라고 몸을 낮췄다. 윤석열 정부가 사과하고 바뀔 게 이것뿐이겠는가.정부는 지난해 6월 윤 대통령의 ‘나눠먹기식 R&D 사업 원점 재검토’ 지시 후 33년 만에 처음 R&D 예산을 삭감했다. 곳곳에서 연구 인력 감축과 기존 연구 파행·축소까지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대통령실은 이날 “내년에 대폭 증액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고 했는데, 전 세계 기술 경쟁은 올 들어 갑자기 심화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절체절명의 상황’은 목전에 다가온 4·10 총선에서 여당 패배 위기감을 말하는 건가. 대통령실 관계자가 익명으로 R&D 삭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걸로 끝날 일도 아니다. 윤 대통령이 반성하고 사과하는 게 먼저다.윤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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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국가의 위기와 4월 총선
작년 말과 올해 정부·여당은 다시 감세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상속세 완화, 가업승계 증여세 최저세율 적용구간 확대, 대기업 대상 임시투자세액공제 기간 연장, 자사주 소각과 배당 시 법인세 인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폐지 등 발표가 이어진다. 대부분 부자 감세다. 눈앞의 선거를 의식하면서 준조세 폐지 감면, 가공식품 부가가치세 한시 경감 등 범위도 넓어졌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여당이 무분별한 매표 감세 경쟁을 부추기는 오늘 현실은 참담하다.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에게 근대국가는 자기 목적을 갖지 않으며 단지 공동의 목적만을 지향하는 공적 속성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 덕에 근대국가는 개인의 재산권과 사적 소유를 제한하며 시민에게 납세 의무를 부과하는 ‘조세 국가’가 될 수 있었다. 조세 국가에서는 조세를 통해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광범위하고 지속적이며 제도화된 관계가 맺어진다. 그 과정에서는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