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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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어버린 제주의 ‘푸른 겨울’···“온몸으로 맞서도 이젠 한계”
제주 겨울은 푸르다. 수확이 끝나 황량한 ‘육지’ 논밭과 달리 제주 밭에선 겨우내 채소가 자란다. 월동(越冬), 겨울을 살아 넘긴다는 그 이름처럼 무·당근·양배추 등 월동채소들은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적당한 추위를 견디며 영글어 간다.푸른 밤, 바다, 야자수로 유명한 제주는 국내 겨울철 신선채소의 약 80%를 공급하는 생산 기지다. 다른 지역 농민들이 쉬어가는 11~2월은 제주의 농번기다. 겨울에도 채소를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는 건 제주 농사 덕이다. “겨울엔 우리가 전 국민을 먹여 살리는 거지.” 수확이 한창인 지난해 12월2~6일 경향신문이 만난 제주 농민들은 오랜 자부심을 내비쳤다.근심도 컸다. 지난해에는 제주에 폭염과 가뭄, 긴 가을장마가 찾아왔다. 심지어 11월 말 ‘첫눈 폭설’이 전국 곳곳을 마비시킨 그때 제주엔 내리 비가 내렸다. 내려선 좋을 게 없는, 예상에 없던 비였다. 농민들은 “더 이상 날씨를 예측할 수 없게 됐다”...
202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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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 99%는 65세까지 고용···고용보험이 임금 삭감 보전
한국은 정년 연장의 참고 모델로 일본을 주목한다. 한국보다 17년 일찍 초고령화 시대를 맞은 일본은 65세 고용 의무화를 보편적으로 안착시켰다. 다만 일본 정부가 계약직 재고용을 허용하면서 고령자들의 노동조건이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일본은 2013년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시행했다. 일본의 법정 정년은 60세이지만 노동자가 계속고용을 원하면 기업이 65세까지 의무 고용하도록 했다. 정년 60세를 맞은 노동자는 누구든 원하면 기존에 재직하던 기업에서 65세까지 일할 수 있다. 기업에는 계속고용 대상자 선별권을 주지 않았다. 대신 정년 연장, 정년 폐지, 퇴직 후 계약직 재고용이라는 세 가지 선택지를 줬다.그 결과 일본에서 65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한 기업 비율은 99.9%에 달한다.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약 70%의 일본 기업이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나머지 30%는 정년 연장이나 폐지를 선택했다. 60~64세 취업률은 2012년 57.7%에서 ... -
정년 연장하면 청년 손해?···“노인 부양 부담 완화”
한국은 지난해 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정년 연장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계속고용 관련 사회적 대화의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당장 국민 5명 중 4명은 소득 공백을 알면서도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2차 베이비 부머 세대 954만명이 곧 은퇴 연령에 도달하는 시점이 다가오는 가운데 경제에 미치는 타격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정년 연장 논의가 시급한 이유다.정년 연장이냐, 퇴직 후 재고용이냐일단, 현재 연금 수급 연령과 법정 은퇴 연령은 일치하지 않는다. 기형적인 현 제도를 그냥 둘 수 없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2033년부터 전 국민의 국민연금 수급 연령이 65세가 된다. 지금의 60세 정년 체제로는 퇴직 후 5년간 ‘소득 공백’(소득 크레바스)이 생긴다. 특히 은퇴 시점이 다가오는 이들 가운데 80%는 소득 공백을 예견하고도 노후를 제대로 대... -
‘금값’과 ‘헐값’ 사이···농부는 밭에서 손을 뗀다
김치·된장국·쌈 주재료인 배추는 한국인 밥상에 공기처럼 존재한다. 마늘·양파·무·고추와 함께 정부가 민감 품목으로 지정해 연중 수급을 관리한다. 생산자나 소비자나 적정한 수준에서 값이 유지되길 원한다. 배추값은 종종 널뛰듯 오르내린다. ‘금값’과 ‘헐값’ 사이에서 배추를 키워야 하나, 포기해야 하나 전전긍긍하는 농부들 이야기를 취재했다.푸른 밭, 노란 푯말배추는 연중 나온다. 가을·겨울(월동) 배추는 ‘땅끝’인 전남 해남에서 주로 자란다. 봄이 되면 충남의 비닐하우스와 경남·경북의 비닐 터널에서 출하된다. 여름엔 고도가 높은 강원 고랭지, 가을부터 다시 전남에서 생산한다.전남 해남 학동리 토박이 박성용씨(69)는 원래 마늘 농부였다. 배추로 바꾼 건 30여년 전부터다. 제주에서 자라던 겨울배추 종자가 해남에 들어왔다.상인들이 여 와서 ‘땅이 좋으니까 배추 심어보라’고 하데? 한 농가, 두 농가 심다보니 ‘농사 괜찮네’ 반응 나오면서 다 퍼졌제. 배추 단지가 커지니까...
2025.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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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많이 일하고 가장 가난한 ‘한국 노인’
그 어떤 나라보다 많이 일하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 가난한 노인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나타난 한국 노인들의 현실을 요약하자면 이렇다.한국의 ‘일하는 노인’ 규모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서도 가장 높다. OECD가 2022년을 기준으로 집계한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7.3%로, 2위인 아이슬란드(32.6%)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동시에 한국은 노인 빈곤율도 2020년 기준 40.4%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다. 일하는 노인 대부분이 저임금·불안정 일자리에 종사하는 탓이다.특히 65~74세 전기 고령자 빈곤율(31.4%)보다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 빈곤율(52.0%)이 훨씬 높았다. 75세 노인 2명 중 1명은 평균 소득이 빈곤 기준선인 ‘중위소득 가구 가처분소득의 50% 미만’을 밑돌고 있다는 의미다. 중위소득은 모든 가구를 소득 순서대로 줄세웠을 때 가운데에 위치한 가구의 소득을 말한다.한국 노인들의 높은 경제활동 참가... -
노인 일자리도 ‘오픈런’···짠물 연금이 만든 취업난
“지금 접수하면 4시간은 기다려야 된대.”번호표를 뽑아 든 백발의 남성이 뒤따라 온 친구에게 손을 내저었다. 2025년도 노인 일자리 모집 첫 날인 지난해 12월5일 서울 동대문구 시니어클럽. 신청서 접수 10분 전부터 비좁은 복도가 인파로 가득 찼다. 지난해 관내 한 초등학교에서 교통안전도우미로 일했다가, 올해도 ‘재취업’에 나섰다는 박경자씨(가명·79)도 그 중 한 명이다. “솔직히 생계 때문이 크지. 자식들도 잘 안 풀리는데 용돈 달라고 하기 그렇잖아.” 일주일에 5일, 하루에 1시간을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월 27만9000원(지난해 기준). 생계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식당 일을 오래 하느라 국민연금을 들지 못했던 박씨에겐 기초연금(30만원)과 함께 최소한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중한 소득원이다.문제는 노인들의 취업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하고자 하는 노인은 많은데 노인을 원하는 곳은 적다보니 노인들의 노동 환경...
202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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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까 살아갈까, 두지마을에서의 한 달
전북 순창 두지마을 앞 들녘은 쭉 뻗어 섬진강까지 닿았다. 마을 뒤 야산엔 대나무 숲이 우거졌다. 김녕 김씨들이 모여 사는 동네다. 1970년대만 해도 120여가구가 살았다. 야산에는 대나무가 아니라 집들이 빼곡했다. 마을이 크다 보니 우물이 2개 있는데, 윗 우물 쪽에 살면 ‘웃물 산다’, 아래 우물 쪽에 살면 ‘아랫물 산다’고 했다. 주민들은 마을 앞 들판에서는 벼농사를 짓고, 물 빠짐 좋은 강변에는 ‘무시(무)’를 심었다. 마을 입구에 양곡 창고 딸린 농협연쇄점(하나로마트)이 있을 정도로 크고 부유한 동네였다.2025년 새해 33가구만 남았다. 70~90대 노인이 대부분이다. 주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뭐에 울고 뭐에 웃으며 지낼까. 10년 뒤 마을은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기자가 두지마을에 한 달 살이를 하며 주민 일상을 취재했다.함박눈 내린 날두지마을에서 가장 복작거리는 곳을 꼽으라면, 단...
202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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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협력’ 말한 조선업, 협상 지렛대 삼아야”
“‘트럼프 당선인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뭘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수 있어요. 트럼프 당선인이 직접 협력을 언급한 조선업이 그 중 하나일거에요. 협상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습니다.”‘관세 폭탄’을 예고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국 경제는 폭풍전야의 상황이다. 글로벌 보편관세(10~20%) 정책이 현실화하면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직·간접적 수출 감소액이 연간 최대 448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봤다.미국 경제 전문가인 강구상 KIEP 북미유럽팀장은 지난달 1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규모 감세와 보호무역주의, 미국 전통산업인 제조업과 화석연료 산업의 부흥을 골자로 한 이른바 ‘트럼프 노믹스’에 위기와 기회의 요인이 상존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법인세 인하(21→15%)로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추가 투자 여력이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관세장벽으로 ... -
“60살은 너무 어리죠”···베테랑은 좀 더 일하고 싶다
지난달 3일 경남 창원산업단지 내 화천기계 공장. 컨베이어 벨트가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벨트 옆 선반에는 자동차 실린더를 구성하는 부품이 쌓여 있었다. 귀마개를 낀 이명덕씨(63)가 기계 장비 사이로 바삐 움직였다. 20여개 버튼이 달린 기계판 앞에선 이씨가 몇 차례 손을 움직이자 벨트가 작동을 멈췄다. 이씨가 벨트 위에서 상자 모양의 자동차 실린더를 꺼내 이리저리 돌려본 뒤 다시 벨트 위에 올렸다. 그는 “작업 중에 표본을 검사를 하는 것”이라며 “총 160여개 공정 중 직접 담당하는 건 30여개지만 일이 생기면 전 과정을 살펴봐야 할 때도 있다”고 했다.이씨는 자동차부품 업계에서 36년간 일한 베테랑이다. 1989년 인천 부평의 대우자동차에서 일을 시작했다. 2001년 화천기계에서 경력직을 뽑을 때 경남 창원으로 내려왔다. 처음으로 실린더 공정을 담당하게 됐다. 자동화 라인을 따라가면서 완제품이 되는 과정을 점검하는 것이 이씨 업무다.이씨는 올해로 3년째 ‘촉탁직’ ... -
‘서울 거주·대기업 근무’에게만 더 열린 문
모든 노인이 재고용의 기회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성별·학력 등에 따른 고용 격차는 재고용에서도 이어진다. 저학력·저임금 노동자일수록 은퇴 후 곧바로 구직활동에 나서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실제 재취업 확률은 서울 거주·대기업 종사자일수록 높았다.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은퇴 후 재고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한국노동연구원이 2022년 발표한 ‘중·장년 임금근로자의 퇴직 후 재취업 이행 양상 분석’ 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 정년퇴직자 400명 중 61.5%는 퇴직 후에도 구직활동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퇴직 이후 새 일자리 취업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15.6개월이었다.다만 학력에 따라 구직활동에 나서는 비율에 차이가 있었다. 최종학력이 대졸 이상인 경우는 퇴직 후 25개월이 지난 시점을 기준으로 약 50% 정도만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반면, 중졸 이하의 경우 약 75%가 구직 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