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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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당선자들의 꿈과 다짐···“투박한 진심으로, 포기하지 않고, 오래오래 쓸 것”
한 해의 시작과 함께 문학에도 새롭고 힘찬 물결이 일고 있다. 올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안수현 시인, 남의현 소설가, 송연정 문학평론가가 그 주인공이다. 독자들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은 이들은 각자의 작품으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9일 세 명의 당선자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안수현 시인 “선한 관점과 투박한 진심으로 시와 삶을 지어가겠다”안수현 시인에게 시는 언제나 함께 하는 존재였다. “인지할 수 없는 순간부터 시를 읽었다”라는 그는 “한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동시도 많이 읽었고, 중고등학생 때에도 혼자 쓰기도 하고 동아리에서 함께 쓰면서 여러 방면으로 잘 쓰고 싶어서 노력했다”라고 전했다.그의 시는 심사평에서 “소소한 일상에서 빚어지는 생활의 감각이 돋보인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안 시인은 “어렵고 복잡한 이론서를 읽으며 지식을 단순히 입력할 때보다, 사소하더라도 일상 속에서 직접 관찰하고 경험해볼 때 큰 감...
20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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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내면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독자를 공감으로 이끈 대화술 돋보여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미 전송한 심사평 첫 단락을 고쳐 적는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을 마음 깊이 애도한다. 충격과 분노로 시작해 참담한 슬픔으로 이어진 올해 겨울이 유난히 힘겹다. 계절이 시작되기 전 마감된 30편에 이르는 응모작들, 그들 중 적지 않은 수는 돌봄, 공생, 슬픔, 애도를 말하며 공동체의 가능성을 톺아보고 있었다. 우리에게 닥친 시련의 시간 속에 다시 짚이는 대목이다.아울러 신인들의 글이므로 기본기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범박하게 말해, 비평은 텍스트에 개념, 가치, 공명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비평은 텍스트가 가진 정념을 합리성으로 번역하는 작업이면서, 텍스트가 가진 복합성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고, 텍스트와 독자를 하나의 문제로 묶는 작업이다. 마지막 순간 우리의 테이블에 남은 세 편은 이 각각의 장점들을 특징적으로 갖고 있었다.‘데카르트 좌표계의 시학’은 선명한 개념을 바늘로 삼아, 동시대의 시편들을 모으고, ... -
질리지 않을 사랑을 오래도록 좇으며
사랑에 대해서라면 평생을 말해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아마도 그건 사는 동안 밥 먹듯이 사랑한다고 해도 단 한 술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할 만큼 사랑의 세계는 깊고 또 넓은 덕입니다. 평론 한 편을 써내는 작업은 사랑하는 일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모호하고도 선명한 감각에 골몰하며 수차례 복기하고 수없이 게워낸 끝에 이윽고 그 모든 불가해를 환대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끈질기고도 지극한 마음이 너무나도 기껍습니다.쓰는 일과 사랑하는 일을 병치할 수 있다면, 쓸 수 있는 용기 또한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저를 견뎌온, 심지어 지켜온 이들로부터 제가 빚진 것이겠지요. 그 숱한 사랑을 차마 다 헤아릴 수조차 없겠지만, 그럼에도 늘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감동하고 감사하며 헤프게 표현하겠다는 다짐으로 채권자 명단을 아래에 적어둡니다.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사랑은 분명 아빠 정재영씨와 엄마 송정아씨로 인한 것이었을 테니, 쓰면서 느꼈던 모든 보람... -
디렉터스 코멘터리: ( )로부터-백은선론¹
이제 상영관으로 입장해주시기 바랍니다.언젠가부터 아픔을 이야기하는 일이 너무나 새삼스럽고도 뻔하게 느껴진다.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 무슨 이유로 아픈 건지는 각자의 사정으로 남겨두더라도 모두가 병들어있다는 사실만은 같다. 모두에게나 조금씩 있는 것은 곧 아무에게도 없다는 듯 무마되어버리고야 말기에 개개의 아픔은 충분히 감응되지 못한 채 그곳에 방치된다. 이때 방치되는 것은 또한 스스로의 병든 마음이기도 하다. 도처에 널려있는 아픔, 그 어디쯤 놓인 나 자신의 병증이란 어찌나 작고도 대수롭지 않게만 여겨지는지. 몹시도 오래 아파온 사람은 슬픈 사람이 된다. 그렇게 제때 진단되지 못한 아픔은 이내 슬픔이 된다. 자신이 슬픔인 줄도 모르는 슬픔이 그곳에, 또한 이곳에 있다.“모두가 잊은 장면들로 만들어진”(‘조롱’), 다시 말해 나조차도 잊어버린 장면들로 만들어진 백은선의 시는 그러므로 오롯한 슬픔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해보아도 될까. 그의 시를 내달리... -
‘그만 써야지’하며 쓴 글···힘내어 다시 쓰겠습니다
얼마 없는 목돈을 털어 덜컥 적금을 들어버린 기분입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서 끌어올려 주신 당선작은 제가 ‘시를 그만 써야지’ 생각하고 쓴 글이었습니다.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으면서도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는 제가 싫었습니다. 시의 기초도 모르면서 대단한 것을 써내고 싶은 욕심이 저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끄럽고 화가 났습니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기억해 두고 싶은 순간들, 다양하게 오래 불러보고 싶은 이름들이 있어서 시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고 싶어서, 솔직해지고 싶어서. 그래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저를 믿어주시고 붙들어 주신 정끝별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격려를 들으면 제가 아주 소중한 존재가 된 것처럼 힘이 생깁니다. 제가 감히 시를 써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신 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 선생님들과 문예창작전공 문우들에게도 고맙습니다. 늘 선의를 가지고 저를 지켜봐 주는 이화여대 국어국문... -
미안하다고 말하는 마음과 외롭고 질긴 생명의 온기
난데없는 비상계엄령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탄핵 소추안 가결을 하루 앞둔 날, 네 명의 심사위원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온종일 신춘문예 시 응모작을 읽고 있던 풍경이 문득 현실감 없이 느껴졌다. 저물어가던 2024년이 전혀 다른 성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일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덮을 만한 사건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2024년 이 땅에서 일어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현실이 문학을 압도해 버린 낯선 분위기 속에서 시 응모작들을 읽었다. 기후 위기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강세였고, 슬픔과 우울의 감정을 자기 고백적으로 드러낸 시가 자주 눈에 띄었다. 고단한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외롭고 무기력한 주체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듯했다.응모작들 중 네 명의 작품이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붙들었다. ‘개의 춤’ 외 4편, ‘테라스’ 외 4편, ‘테레민’ 외 4편,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외 4편을 두고 숙의의 시간을 가졌다. ‘개의 춤’ 외 4편... -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윗집은 오늘도 많이 더운가 보다아무렇게나 잘라두어 우리 집 창문에 아른거리는에어컨 실외기 호스에서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시끄럽다면서도마른 토마토 화분을 물자리에 밀어둔다새순 발끝을 받치고 있는 큰 줄기손끝이 새파랗다너를 이렇게밖에 밀어올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누군가와 닮았다왜 자꾸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걸까,그냥 그렇게 된 건데 우린순진한 토마토일 뿐인데어차피 충분히 어른이 되면고개를 깊이 숙이고자신을 떨어뜨려야 할 텐데땅에서 났으면서도먼 하늘만 보고 자라땅에 묻히기를 두려워하는엄마 없는 엄마와 엄마밖에 없는 딸토마토는 어디에서든 뿌리를 내린다홀로 오래 있었던 토마토 과육에선제 심장을 디디고 선 싹이 자라곤 한다해묵은 양수를 받아마시며,그것은 꽤나 외로운 일이다그래도 토마토는 그렇게 한다 -
관희는 거울 거울은 관희
거울을 봤는데 내가 귀여워서 깜짝 놀랐다.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관희가 더 귀엽긴 해.관희랑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똑같이 생겼지만 어떤 부분들은 명확히 다르다. 그런 부분들은 명확한 만큼이나 설명하기가 힘들다. 우리가 극장에서 <개를 위한 노인 이름>을 두 번째로 관람하기 전까지, 우리조차 우리에게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그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과 두 번째 보았을 때의 느낌은 아주 달랐다. 첫 번째 보았을 때는 슬프고 쓸쓸했는데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쓸쓸하고 슬펐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다르다. 매일 밤마다 생각한다. 관희가 내 위에서 내 아래로 내려갈 때, 내가 관희 위에서 관희 아래로 내려갈 때 곰곰이.세면대에 거품을 뱉고 젖은 칫솔도 잘 걸어 두고 침대로 갔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걸 할 차례인데, 그러니까, 누워 있는 관희 위에 올라타서 가만히 지켜보기. 귀여운 관희 얼굴 위에 귀여운 내 얼굴. 그러니까 관... -
앙상한 기틀에 더해진 문학적 풍성함…‘다음’을 기대하게 해
올해의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은 응모작 수가 늘었을 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수준 자체가 상향 평준화되어 있었다는 의견을 모든 심사위원의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본심에 오른 13편의 작품만큼 훌륭한 작품들이 예심에서도 여럿 발견되어 심사위원 개개인의 취향과 안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우수한 작품이 많을수록 심사는 곤란해지기보다 즐거워지는데, 좋은 문학을 향한 요건의 최소 기준보다 최대 기준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아이를 갖지 않을 것이라는 젊은 여자의 평범한 선언으로 시작하는 ‘발화’는 이윽고 돌봄을 편취당하는 여성의 동난 내면을 경유하며 ‘아이’의 의미를 동물처럼 변환시키는 문체로 전진하는 소설이다. 심사위원들은 결국 아이를 탄생시키고 마는 이 작품의 발화 방식에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다니게 되었다는 경험을 고백했다.‘날갯소리’는 평이한 부동산 갈등 소재를 채택하는 듯 보였지만, 강렬한 마지막 이미지를 남김으로써 작가의 심... -
거울 보고 일기 쓰기를 계속하는 이유…당신의 이야기를 잘 써내려가기 위해
출근길에는 유튜브에서 ‘엄마 내 오둥이 어디 갔어요? 클래식’이라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 섬네일은 길바닥에 버려진 오리 인형. 이마에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붙인 채 어딘가 어리둥절한 표정. (이 어리둥절한 표정의 캐릭터를 오둥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댓글 창에서는 사람들이 가져 본 적도 없는 오둥이를 그리워하고 있다. 오둥이를 잃어 본 적 없으면서. 없는 기억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다. 나도 마찬가지야. 없는 오둥이를 잃어서 슬프다. 그것이 나에게 당신들에게 진짜 있었던 일이 아니라서 마음껏 슬프다. 그래서 여기에다 슬프다고 마음껏 쓴다.진짜 있었던 그 일들에 대해서는 좀처럼 슬프다고 말하기가 어렵다.내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어렵다. 그래도 지난여름 내 얼굴을 보려고 매일매일 노력했다. 이를테면 아침에 양치를 하며 거울을 보는 일. 퇴근하고 돌아와서 내가 누군가의 삶을 망치지 않았는지 일기에 적는 일. 그건 아주 힘든 일이었지만, 바로 그 일들을 해내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