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겜it슈

8살 딸 위해 만든 '반려묘 게임'··· 200억원 가치를 인정받기까지읽음

이유진 기자

“딸이 키워보고 싶다”고 해 만든 ‘고양이와 스프’ 게임, ‘방치형 힐링 게임’ 입소문

하이디어 김동규 대표··· “힘 빼고, 다 내려놓고 만들어···반응 좋아 놀라”

김동규 하이디어 대표가 지난 10월 출시한 모바일 게임 ‘고양이와 스프’ 이미지가 그려진 부채를 들고 있다. 김동규 대표 제공

김동규 하이디어 대표가 지난 10월 출시한 모바일 게임 ‘고양이와 스프’ 이미지가 그려진 부채를 들고 있다. 김동규 대표 제공

“10년쯤 달려오니까 쉽고 여유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작년에 코로나19로 사무실도 없이 집에서 일하는데, 딸애가 고양이를 키우고 싶대요. ‘지금은 좀 그렇고, 아빠가 게임으로 만들어줄게’ 해서 만든 게 ‘고양이와 스프’였어요.”

지난 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동규 하이디어 대표는 모바일 게임 ‘고양이와 스프’를 개발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하이디어는 김 대표가 2012년 설립·운영 중인 1인 게임사로 첫 작품 ‘언데드 슬레이어’ 이후 모바일 슈팅 RPG ‘로그라이프’, ‘인간 혹은 뱀파이어’ 등을 개발했다. 이날 인터뷰에선 10년차 인디게임 개발사 대표의 고민도 함께 묻어났다. 김 대표는 “1인 개발은 언제나 외롭다”며 “그럼에도 늘 다른 시도를 하면서 느끼는 창작의 재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난 17일 중견 게임사 네오위즈는 하이디어 지분 100%를 200억원에 인수, 자회사로 편입한다고 발표했다. 네오위즈는 특히 지난 10월 출시된 ‘고양이와 스프’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구글플레이 인디 게임 페스티벌 2021’에서 톱3에 뽑힌 이 게임은 출시 한 달 만에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150만건을 돌파했고, 일일사용자(DAU) 60만명을 달성했다. 만화풍의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손쉬운 조작법이 특징으로, 하이디어가 그동안 선보였던 ‘유혈낭자’한 게임들과 달리 고양이들과 함께 요리를 만드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유저들 사이에선 ‘방치형 힐링 게임’으로 입소문을 탔다.

‘고양이와 스프’는 출시 한 달 만에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150만건, 일일사용자(DAU) 60만명을 달성했다. 만화풍의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손쉬운 조작법이 특징으로, 유저들 사이에선 ‘방치형 힐링 게임’으로 입소문을 탔다. 쿠앱 캡쳐

‘고양이와 스프’는 출시 한 달 만에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150만건, 일일사용자(DAU) 60만명을 달성했다. 만화풍의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손쉬운 조작법이 특징으로, 유저들 사이에선 ‘방치형 힐링 게임’으로 입소문을 탔다. 쿠앱 캡쳐

이날 또 한 번 기자와 전화로 만난 김 대표는 “인수 논의가 지난 일주일 새 급하게 이뤄졌다”며 “다들 축하한다고 하는데, 하이디어와 제 역할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앞으로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 개발부터 운영까지 혼자 하다보니 한계를 많이 느꼈는데, 이젠 제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보다는 더 바빠질 것 같아서 설렙니다.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집중하면서, 네오위즈에서 진행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에도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김 대표도 한때 팀을 꾸려 일한 적이 있다. ‘인간 혹은 뱀파이어’ 개발이 그랬다. 5명이던 팀은 2018년 게임 출시 이후 해체됐다. “더 큰 회사에 스카웃이 된 친구도 있었고요, 창업을 한 친구도 있어요. 아예 다른 꿈을 찾아간 친구도 있죠. 그렇게 다들 떠나고 한동안 게임을 안 만들었어요. 어쨌든 게임을 다시 만들어야 할 시점이 왔고,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서 영감을 받게 됐어요.” 그렇게 개발한 게임이 ‘고양이와 스프’다. 일러스트부터 기획, 프로그래밍 모두 김 대표가 혼자 진행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8살 딸도 함께였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품종과 성격이 다 다른 걸 몰랐어요. 처음엔 가볍게 만들었죠. 딸이 고양이들을 소개하는 책자를 내밀면서 이렇게 만들면 안 된대요. 어떤 고양이는 꼬리가 짧고, 어떤 고양이는 귀가 작대요. 또 어떤 고양이는 살이 안 찐다고요. 1년 동안 피드백을 받아서 일러스트를 많이 개선했어요. 지금도 시스템을 업데이트 할 때마다 딸이 옆에서 종알종알 잔소리를 해요. 학교 입학한 뒤론 외적인 부분에 관심이 늘었는데, 뚱뚱한 고양이가 싫다고 자꾸 간섭을 하네요.”

‘고양이와 스프’ 플레이 화면. 다양한 외모의 고양이들이 눈에 띈다. 김동규 하이디어 대표는 “딸의 피드백을 받아 여러 번 개선 작업을 거쳤다”고 말했다. 유튜브 ‘김동규하이디어’ 캡쳐

‘고양이와 스프’ 플레이 화면. 다양한 외모의 고양이들이 눈에 띈다. 김동규 하이디어 대표는 “딸의 피드백을 받아 여러 번 개선 작업을 거쳤다”고 말했다. 유튜브 ‘김동규하이디어’ 캡쳐

김 대표는 “힘을 빼고, 다 내려놓고 만든 게임인데, 반응이 이렇게 좋을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용자가 늘면서 리뷰와 개선 요구도 많아졌어요. 반응을 살피는 일은 아내한테 부탁했어요. 혼자서는 다 보지를 못 하니까요. 운영도 도무지 혼자 할 수 없어서 최근에 아르바이트 직원을 한 명 고용한 참이었어요. 열심히 할 필요 없이 시간 날 때 한 번 들어와서 음악도 듣고 고양이들과 쉬다 가시라고 게임을 만들었는데, 국내 유저들은 게임도 일처럼 정말 열심히 하시더라고요.(웃음)”

왼쪽부터 ‘로그라이프’ ‘언데드 슬레이어’ ‘인간 혹은 뱀파이어’. 2012년 설립된 하이디어가 그동안 개발해온 게임들이다. 하이디어 제공

왼쪽부터 ‘로그라이프’ ‘언데드 슬레이어’ ‘인간 혹은 뱀파이어’. 2012년 설립된 하이디어가 그동안 개발해온 게임들이다. 하이디어 제공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김 대표가 게임업계에 발을 디딘 건 “그림이 좋아서”였다. “제 인생에 있어서 모든 변곡점엔 그림이 있었어요. 남들이 건설회사 면접을 볼 때 게임회사를 찾아갔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아트 디렉터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회사가 폐업을 하면서 독립을 하게 됐고, 게임 만드는 법을 독학했고요. 게임도 시각적으로 창작물을 구현해내는 일이잖아요. 레고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일종의 취미생활이었던 셈이죠.” 회사 인수와 관련된 대화를 나눌 땐 시종일관 차분하던 그의 목소리는 ‘그림’이란 말에 가장 크게 반응했다.

“지나온 길에 대해선 뒤돌아보거나 곱씹지 않는 성격이에요. 게임 개발자로서 큰 회사에 인수돼 집단지성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된 건 잘 된 일이에요. 창작의 재미는 제게 여전히 중요하고요. 다만 최종목표를 묻는다면 죽기 전에 꼭 한 번 만화를 그려보고 싶어요. 언젠가 이뤄지지 않을까, 꿈꿔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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