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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능동적 시청자가 콘텐츠 선택?…그건 순진한 ‘착각’

이광석 교수

넷플릭스와 시청자의 위상

[이광석의 디지털 이후](5)능동적 시청자가 콘텐츠 선택?…그건 순진한 ‘착각’

요즘 대중의 일상 콘텐츠 소비 행태가 꽤 흥미롭게 분화하고 있다. 가령 오락 콘텐츠는 넷플릭스, 음악은 유튜브, 뉴스는 정규 공중파 방송이나 종합편성채널, 사건이나 시사는 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 친구(페친)들이 퍼 나른 링크들과 논평을 소비하는 식이다. 최근 우리의 콘텐츠 소비 양상을 가장 크게 바꾼 주역으로는 단연 넷플릭스를 꼽을 수 있다. 요새 이를 모르고선 영상문화를 제대로 말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국내 미디어 전문가들은 우리 문화시장의 특수하고 예외적인 정서 때문에 국내에 진출한 넷플릭스가 ‘찻잔 속 태풍’으로 요란만 떨다 철수하리라 점쳤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넷플릭스는 2016년 8월 국내에 상륙한 이래 현재 월 매출이 200억원을 넘고 유료 가입자 숫자만 153만명을 넘어섰다. 향후 큰 변화가 없다면, 국내 ‘토종’ OTT(Over The Top·범용 인터넷망 영상 스프리밍 서비스)나 유료 채널서비스 업체들이 넷플릭스의 위세에 이렇다 할 저항도 못하고 속절없이 무장해제를 당하게 생겼다.

이제까지 국내 심의를 거쳐 제공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들은 4500여편 수준이다. 이는 그리 적은 숫자가 아닌데, 3년여간 오리지널 심의 편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꽤 상당한 제작량이다(반면 이 가운데 국내 오리지널 제작은 1%대에 머물고 있다). 규모 면에서 국내 비디오물 심의 전체 건수의 20% 정도에 육박한다고 하니 가히 넷플릭스의 시장 공세를 짐작할 만하다. 게다가 높은 제작 투자에 ‘고퀄리티’ 콘텐츠만을 엄선하고, 여러 스마트 미디어를 통해 접근이 가능하게 해 언제 어디서든 쉽게 가입자들이 시청할 수 있는 탄력적 시청 옵션까지 제공하고 있다. 그에 반해, 국내 유료방송 채널들 대부분은 자체 제작 프로그램들의 부족과 열악한 제작 현실로 인해 영상물 품질에 심각한 문제를 지닌 지 오래다. 그것도 얼마나 반복 재생하는지 리모컨을 돌리면서 이어 붙여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니, 현재 넷플릭스의 쾌속성장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라 하겠다.

문화 편식과 넷플릭스 시청문화

우리처럼 노동시간이 긴 ‘과로사회’일수록,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의 경로가 적으면 적을수록 시민들의 텔레비전 시청시간이 길어진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최근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구 결과에서 한국의 ‘실질문맹률’이 가입국들 중 가장 높게 나왔는데 이도 크게 무관하지 않다. 보통 실질문맹은 글은 읽고 쓸 줄 알아도 말귀나 문장 이해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지칭한다. 국내 실질문맹률 악화의 배후에는 사실상 대다수 국민들의 낮은 열독률과 영화 등 영상문화 소비 위주의 문화편식이 자리한다.

물론 사안의 주된 원인은 국내 경제활동인구의 노동 피로감이라 볼 수 있다. 노동 강도나 사회 스트레스가 거의 지구 최강 수준이다보니 그냥 멍하니 시간을 때우거나 가볍게 즐기는 콘텐츠 소비문화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코미디나 마블 코믹스 히어로 영화가 단숨에 1000만명 이상 스크린 관객을 동원하는 기이한 국내 문화 현상 또한 일부 이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해가 갈수록 가입자 기록을 경신하는 넷플릭스의 급성장세 또한 국내 문화 소비의 편식 효과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가령 나이를 불문하고 ‘몰아보기’ 혹은 ‘정주행 시청(binge watching)’, 넷플릭스 ‘폐인’ 현상이 흔해지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이는 콘텐츠를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어서 한데 몰아 보거나 이어 보는 넷플릭스의 신종 시청문화를 설명한다. 정주행 시청 행위는 영상 소비방식의 한 측면이라 치부하기엔 사안이 그리 간단치 않다. 텔레비전 외에 별다른 문화 소비의 선택지가 불모인 우리의 현실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19금 청불’이 거의 절반일 정도로 내용의 강렬도나 선정성이 높다. 성소수자 등 사회·문화적으로 민감하고 급진적인 이슈들을 거리낌없이 다루기도 한다. 전통의 국산 콘텐츠 공식에 지친 시청자들을 쉽게 빨아들일 수 있는 자극 요인들인 것이다.

넷플릭스 알고리즘의 진화

넷플릭스는 이미 설립 때부터 온라인 가입 모델을 도입했다. 방식은 이러했다. 서비스 가입자가 시청하려는 영화나 방송 목록을 웹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미 전역의 유통 창고들에서 우편망을 이용해 DVD 영상 콘텐츠를 배달하는 방식이었다. 그야말로 매장 없이 이뤄지는 전국 단위 비디오 대여 유통 서비스였다. 넷플릭스의 초기 사업 모델은, 인기 영상물뿐만 아니라 별로 찾지 않던 콘텐츠들의 틈새 주목 효과와 소비를 늘리면서, 소위 ‘롱테일 법칙’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언급되기도 했다.

당시 넷플릭스가 사용했던 알고리즘은 ‘시네매치(CineMatch)’라 불렸다. 구체적으로, 영화 콘텐츠 평점과 서비스 가입자의 대여 목록에 가중치를 두어 계산하고, 이를 기초로 개별 가입자에게 맞춤형 영상 소비를 추천하는 기법이었다. 흥미롭게도, 그 계산식에서 할리우드 유명 출연진이나 감독과 같은 할리우드의 성공 변수들은 알고리즘 분석에 일절 반영되지 않았다. 시장에 미치는 어떤 주관적이고 모호한 판단도 다 제거해 버리고, 넷플릭스는 오로지 이용자 취향 변수만을 알고리즘의 결과값에 반영해 계산식을 냈다. 이제 와서 봐도, 이는 콘텐츠 ‘유통’ 플랫폼다운 과학적 측정 방식이었다.

넷플릭스의 시네매치 기술은 당시 동종 비디오 대여업계에서 블록버스터 같은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공룡 기업을 무너뜨리는 전조가 됐다. 넷플릭스는 처음부터 물리적 매장 없이도 구하기 힘든 영상 콘텐츠 재고를 전국적으로 파악해 가입 회원들에게 즉각 발송하고 회수하는 유통 시스템을 구비했다. 게다가 회원들의 취향을 동네 비디오 매장 직원보다 시네매치 알고리즘이 더 정확히 파악해 관련 리스트를 추천했다. 현실의 지배적 공룡 기업조차 이를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초기 우편 배송 방식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의 진화, 그리고 자체 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갖추면서, 넷플릭스의 알고리즘 기제는 좀 더 실시간으로 파악되고 미세한 이용자 행동들까지도 주목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예를 들면 가입자가 특정 콘텐츠를 보다가 어느 시점에 멈췄는지, 어떤 특정 부분에서 빠르게 넘기기를 행하는지, 실제 보지 않고 찜만 해둔 내용들은 무엇인지 등 이용자의 미세한 콘텐츠 소비 패턴들을 알고리즘 분석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오늘날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은 더욱 정교해지고 ‘암흑상자’처럼 일반인의 식별이 어려워져 간다. 최근까지 알려진 사실로 보면 그 작동 기제는 이렇다. 우선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하거나 판권을 사들인 콘텐츠를 무려 5만종의 범주로 분류해 구분한다. 장르 세분화를 위해 50여명의 ‘태거’라 불리는 전문직 노동자들이 움직인다. 태거들은 출근하면 온종일 개별 영상 콘텐츠를 꼼꼼히 살펴 이를 짧게 설명하는 ‘태그(tag)’를 다는 일에 집중한다. 다시 말해 태거는 영화의 분위기, 줄거리, 유머 코드, 등장인물 특성 등을 간단히 정리해 개별 콘텐츠의 태그값으로 기입한다. 넷플릭스의 자동화 알고리즘은 태거들이 단 태그 내용들에 의존해 무려 5만종의 콘텐츠 장르 구분을 자동 생성시킨다. 현재 1억5000여만명의 글로벌 가입자들은 알고리즘 분석으로 파악된 각자의 구체적 사용 이력(시청 습관과 개별 콘텐츠 소비 취향)에 따라 이 5만종의 장르들 가운데 최적의 것에 매칭되고 이로부터 개인 맞춤형 영상 콘텐츠를 추천받는다.

‘신’정치경제학적 영역들

넷플릭스의 신종 알고리즘은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시청자’ 개념과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 오늘날 넷플릭스 시청자들은, 우리가 알던 개성을 지닌 개별 해석 주체(individual)라기보다는 5만분의 1로 분할 가능한 알고리즘 분석의 대상체로만 존재한다. 왜냐면 넷플릭스의 유니버스 안에서는 시청 ‘공동체’나 ‘팬덤’ 구성의 자율적 주체 같은 능동적 시청자 개념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자율의 영상 해석 주체인 시청자 개념을 해체한다. 그저 소수 태거들에 의해 생산된 데이터와 알고리즘 기계에 의해 세분화된 취향의 분류틀 아래 자족하는 데이터 소비 주체로만 유효하다. 여기서는 과거 우리가 알던 영상 해석의 주체인 시청자는 사라지고, 오로지 알고리즘에 의해 양적 계산된 시청 습관과 잘게 쪼개진 취향의 가입자, 즉 ‘수량화된 자아(quantified self)’만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넷플릭스의 태깅과 콘텐츠 분류법은 우리가 익히 알던 로맨스, 공상과학, 공포, 코미디, 인디 등 전통적 장르 구분 또한 무의미하게 만든다. 기술적으로 보면, 태깅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5만종의 촘촘한 맞춤형 분류틀 중 하나가 나만의 시청 ‘장르’가 되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알고리즘 분석 대상인 개별 시청자 취향 그 자체가 넷플릭스의 신생 장르로 자리 잡는다고 봐야 한다. 넷플릭스의 장르 구분법에 따르면, 실상 특정 국가나 민족의 지역 콘텐츠 문화는, 5만개에 이르는 장르 구분을 위해 쓰이는 하나의 알고리즘 분석 변인에 불과하다.

넷플릭스의 첫 한국 오리지널 제작 드라마이자 사극 좀비물로 주목을 받았던 <킹덤>은, 사실상 ‘한국 공포물’이란 국가나 민족, 언어 등에 기댄 전통의 장르 구분법을 해체한다. <킹덤>은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5만개 장르 구분법에 속할 터인데, 이를테면 ‘동양 고전 시대 좀비 장르’로 분류될 확률이 더 높다. 국내 시청자들에게 한국 콘텐츠들의 소비나 노출 방식이 분명 중요하지만, 넷플릭스의 글로벌 유니버스에서 ‘한국’ 국적이란 그저 수많은 장르 변인들 중 하나가 되면서 그조차 흔적도 없이 파묻힐 공산이 크다. 애초 넷플릭스의 태생이 제작 능력이 아닌 ‘유통’업계의 귀재였음을 잊지 말자. 결국 넷플릭스의 이 자동화된 알고리즘 질서 속에서, 개별 콘텐츠의 개성이나 특성, 지역성, 민족성, 국가 등은 특징적 태그 정보에 불과하고 그 외의 질감들은 아예 무맥락화할 뿐이다.

넷플릭스는 자동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에 대한 성향이나 취향에 대한 맞춤형 추천과 콘텐츠의 정교한 소비를 불러오는 것은 물론이고, 글로벌 콘텐츠 제작 방식에도 큰 변화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자신의 플랫폼 제작 자본과 유통 질서 아래 전 세계에서 생산된 양질의 콘텐츠를 공급하려는 욕망을 지닌다. 넷플릭스는 미국 본토는 물론이고, 세계 시장의 개별 단위 국가의 유능한 방송사나 해외 제작사들로부터 콘텐츠를 원활히 공급받고자 한다. 전 세계 대부분의 영상 제작사들이 이 글로벌 플랫폼 대부에 콘텐츠를 공급하지 않고는 생존하기 힘든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악의 경우 우리의 주요 방송사와 영상 제작사들이 마치 유튜브의 ‘직업 크리에이터’처럼 넷플릭스의 콘텐츠 제작 하청업체 혹은 외주제작사로 전락할지도 모를 일이다. 넷플릭스 글로벌 자본의 운동 방식을 유의해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넷플릭스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

넷플릭스의 글로벌 영상 제작 방식이나 고도의 알고리즘 기제를 살피기에, 아직은 국내 연구자들의 접근이나 방법이 여러모로 부족하고 설익은 상태다. 가령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국 사회와의 관계나 밀도가 현저히 낮은 넷플릭스의 그 수많은 콘텐츠들을 과거의 관성대로 비평하거나 분석하는 일이 과연 우리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기존의 미디어 비평을 취하더라도 그에 더해 새롭게 ‘전산학적(computational)’ 영상비평이나 ‘신’정치경제학적 분석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넷플릭스를 독법하기 위해서는 전통의 미디어 ‘내용’(텍스트나 내러티브) 비평과 함께 미디어 ‘형식’(전산학적 알고리즘 기술 구조와 기제) 분석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새로운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의 국제 정치경제학적 분석(글로벌 콘텐츠 자본 투자와 플랫폼 제작 방식) 또한 진지한 연구주제로 논의되어야 한다.

좋은 시나리오에 대한 과감한 투자 제안이나 작가나 감독의 대중적 명성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제작 기회를 주는 넷플릭스의 열린 자세는 국내 영상시장 생태계 혁신이란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다국적 제작 방식을 취하면서, 이제까지 시청자들이 경험하지 못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콘텐츠와 이색적인 신세계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글로벌 자본 영향력을 고려할 때, 가입자 관리 알고리즘의 불투명성, 현저히 낮은 국내 오리지널 제작 편수의 비율, 혐오나 폭력 콘텐츠로부터 미성년자의 보호장치 부재 등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거대 온디맨드 영상 플랫폼 장치에 대한 우리의 의식 전환도 필요하다. 겉으로는 넷플릭스의 플랫폼 형식이 전통적인 영상 미디어 장치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전산학적 알고리즘 계산을 통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시하는 데이터 자동기계 장치임을 함께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넷플릭스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신종 영향력을 온전하게 짚어낼 수 있다.

▶필자 이광석

[이광석의 디지털 이후](5)능동적 시청자가 콘텐츠 선택?…그건 순진한 ‘착각’

이광석은 테크놀로지, 사회, 문화가 서로 교차하는 접점에 비판적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 전공 교수로 일한다. 주요 연구 분야는 테크노문화, 미디어·아트 행동주의, 커먼즈, 노동과 테크놀로지에 걸쳐 있다. 대표 저서로 <데이터 사회 비판> <데이터 사회 미학> <뉴아트행동주의> <사이방가르드> <디지털 야만> 등이 있고, 기획해 함께 쓴 책으로 <사물에 수작 부리기> <불순한 테크놀로지> <현대 기술·미디어 철학의 갈래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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