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노트

‘찐덕후’들이 모여 만든 팬 플랫폼 ‘블립’이 고래 싸움에 살아남는 법

이유진 기자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사무실에서 만난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가 팬덤 플랫폼 ‘블립’ 아이콘을 따 만든 쿠션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사무실에서 만난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가 팬덤 플랫폼 ‘블립’ 아이콘을 따 만든 쿠션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전 세계로 규모를 확장한 케이(K)팝 팬덤은 음악산업 소비자에서 산업·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가운데 ‘데이터’를 무기로 팬덤 시장에서 입지를 굳힌 스타트업이 있다. 2017년 설립된 음악 콘텐츠 스타트업 ‘스페이스오디티’다. 소속 가수도 없이 음원을 발매하더니, 세계 최초 케이팝 대시보드 ‘케이팝 레이더’(2019년 8월), 팬덤 플랫폼 ‘블립’(2020년 6월)을 연달아 선보였다. 업계에서 ‘진성 덕후’로 통하는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를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사무실에서 만났다.

스페이스오디티가 2019년 8월 출시한 세계 최초 케이팝 대시보드 서비스 ‘케이팝 레이더’. 스페이스오디티 제공

스페이스오디티가 2019년 8월 출시한 세계 최초 케이팝 대시보드 서비스 ‘케이팝 레이더’. 스페이스오디티 제공

케이팝 레이더는 약 700팀에 이르는 국내 아티스트들의 동향을 데이터로 알려주는 서비스다. 유튜브·틱톡 영상 조회수, 음원 재생수는 물론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워 수, 팬덤 규모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음악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케이팝 팬층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데이터 중요성이 커졌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음원 역주행 현상이 꾸준히 나타나는데, 누구도 데이터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게 신기했다”며 “오히려 팬들은 아티스트 활동 정보를 기민하게 수집해 공유하고 있었다. 팬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가수의 활동 동향·팬덤 규모 등을 디지털 대시보드로 제공한 것이 케이팝 레이더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스페이스오디티는 이후 팬덤 플랫폼 ‘블립’을 출시했다. 원하는 케이팝 아티스트를 팔로우하면 아티스트의 스케줄부터 각종 차트 순위, 팬들 간의 소통 등 팬 활동에 필요한 콘텐츠를 쉽게 즐길 수 있게 했다. 현재 약 60팀의 아티스트가 등록돼 있으며, 매달 신규 아티스트 1개팀을 추가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출시한 팬덤 플랫폼 ‘블립’은 출시 1년 반 만에 누적 다운로드 40만회를 기록했다. 스페이스오디티 제공

지난해 6월 출시한 팬덤 플랫폼 ‘블립’은 출시 1년 반 만에 누적 다운로드 40만회를 기록했다. 스페이스오디티 제공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세계 케이팝 팬덤 경제 시장 규모는 약 7조9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하이브의 ‘위버스’, 엔씨소프트의 ‘유니버스’, SM엔터의 ‘디어유’ 등 아티스트와 팬을 잇는 플랫폼 사업에 대기업들이 앞다퉈 진출한 이유다. 아티스트 지적재산(IP) 중심으로 운영되는 대형 플랫폼 사이에서 블립은 ‘팬덤 친화형’으로 입소문을 탔다.

김 대표는 “초기 팬부터 열성 팬까지 모든 팬이 제대로 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블립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아티스트나 기획사의 입장이 아닌, 팬 관점에서 사용자 경험(UX)을 개선했다는 것이다. 블립은 출시 1년 반 만에 누적 다운로드 40만회를 기록했다. 해외 이용자 비율은 30%에 달한다.

‘블립’은 구글의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인 ‘2021 창구 프로그램 3기’에서 1위 개발사로 선정됐다. 지난달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김홍기 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구글플레이 제공

‘블립’은 구글의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인 ‘2021 창구 프로그램 3기’에서 1위 개발사로 선정됐다. 지난달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김홍기 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구글플레이 제공

김 대표는 “누군가 블립을 ‘고래 싸움에 낀 새우’로 표현하더라”며 “우리는 새우도 아니고 플랑크톤”이라며 웃었다. 그는 “올 초엔 정말 승산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며 “하지만 고래는 고래대로 사는 법이 있고, 우리는 우리만의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탈덕’(팬이기를 그만둠)은 해도 블립은 계속 쓰겠다는 이용자가 많다. 좋아하는 가수가 바뀌어도, 여러 가수를 좋아해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앱으로 자리 잡았다”고 덧붙였다.

스페이스오디티에서 일하는 18명의 직원은 모두 ‘팬 활동 이력’을 인정받은 ‘덕질’ 인재들이다. 20대가 가장 많고, 대학교 4학년생 직원도 있다. 김 대표는 “이력서에 ‘팬 활동 이력’ 기입란이 있다”며 “이는 엄청난 스펙이다. 누군가 열렬히 좋아했던 경험을 PPT(파워포인트)로 몇십장씩 보내기도 하는데, 그 안에 인생 스토리가 모두 담겨있다”고 말했다.

팬덤 플랫폼 경쟁이 심화된 올해 초, 김홍기 대표는 “예상치 못한 고민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당시 마음을 잡기 위해 딸의 칠판을 빌려 작성한 마인드 맵. ‘우리의 본질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김홍기 대표 제공

팬덤 플랫폼 경쟁이 심화된 올해 초, 김홍기 대표는 “예상치 못한 고민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당시 마음을 잡기 위해 딸의 칠판을 빌려 작성한 마인드 맵. ‘우리의 본질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김홍기 대표 제공

22년 전, 김 대표는 음악이 좋아 무작정 콘서트 업계에 뛰어들었다.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때였다. 마케팅 전문가로 ‘좋은 콘서트’, ‘서울음반’, ‘네이버뮤직’, ‘카카오뮤직’에서 일했다. 이후 ‘메이크어스’로 자리를 옮겨 ‘딩고뮤직’의 초석을 다졌다. 케이팝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라이브 콘텐츠 ‘세로라이브’와 ‘이슬라이브’를 기획한 게 김 대표다.

40대에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스타트업 대표로 새롭게 출발한 그는 힘에 부칠 때마다 ‘음악으로 세상을 이롭게’라는 슬로건을 되새긴다. “어릴 때 방바닥에 누워 김현철,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을 들었어요. 음악과 이 산업을 동경했어요. 지금은 그때 그 가수들과 막역한 사이가 됐으니 ‘성덕(성공한 덕후)’으로, 인생의 1차 목표는 이룬 거죠. 다음은 뭘까. 제 삶이 음악을 통해 재미를 찾았듯, 케이팝을 좋아하는 분들이 저희 서비스를 통해 삶의 재미를 느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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