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성장의 욕망에 사로잡힌 자여, 이젠 공생의 기술을 좇아야 할 때다

이광석 교수

한국사회, 기술의 제자리를 찾아야 할 때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국내 경제 압축성장과 발전과정
우리가 체감했던 ‘기술 효능감’
사회문제 만능 해결사로 여겨져
과신·오만 묻어 있는 기술 처방
오늘날 예상치 못한 부작용 초래
첨단기술의 반생태적 속성 밝혀
공생·호혜의 길을 개척해내야

언제부터인가 기술은 사회 문제의 만능 해결사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기술에 관대해지고 심지어 폭식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한국 경제의 압축 성장과 발전에서 보여줬던 기술 효능감이 이제는 일종의 ‘기술 물신’이 되어 자리 잡았다.

꼬박 5년 전의 일이다. 광화문 촛불시위로 탄생했던 이 정부는 정치 혁명 대신 전 세계 어디에도 없던 ‘4차산업혁명위원회’라는 것을 탄생시켰다. ‘혁명’위원회는 ‘포용 사회’ 대신 닷컴 비즈니스를 선택했다. 뒤이어 코로나19 충격 속에 경기 부양책 ‘한국판 뉴딜’이 등장했다. 비상시국 국가 정책으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양대 축으로 삼았지만, 아직까지 이 대규모 국가사업에서 생태주의나 약자 돌봄의 전망은 크게 찾기 어렵다. 처음부터 디지털 뉴딜을 통한 경제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일만이 정부의 관심사였다. 여기에 그린 뉴딜은 디지털 뉴딜을 위해 마치 ‘덤’이나 구색처럼 삽입됐다. 그렇게 첨단 기술 성장의 욕망 안에서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있다.

국내에 코로나 충격이 닥치자 기술은 어느덧 신앙이 됐다. 코로나가 팬데믹이 되면서 바이러스 방역이 재난 사회의 중심 목표가 됐고, 그 어느 때보다 디지털 기술 의존형 사회안전망이 확대되었다.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면서 신체 접촉 없는 전자 소통 방식이 사회관계의 기본이 됐다. 게다가 바이러스 없는 청정한 소비시장 요구로 인해 인공지능(AI) 무인 자동화 서비스의 보급 또한 크게 늘었다. 우리 사회의 첨단 기술의 활용 밀도가 한층 깊어졌다.

인류 문명사에서 기술이 물질 풍요의 근간이 됐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광기와 생명 파괴 현장에서도 인간의 기술은 늘 함께했다. 가령, 수많은 전쟁과 인종청소에 쓰였던 대량살상무기 개발은 물론이고 사적 탐욕 아래 ‘저렴한 자연’을 수탈하는 데 활용됐던 독성의 산업 기술, ‘산노동’의 착취를 극대화하는 자동화 공정 등을 떠올려보라. 기술은 인간 문명을 일구는 근간이었지만, 동시에 비이성적 폭력과 전쟁, 산업 경쟁, 산노동 착취, 자연 수탈과 파괴 등에 끊임없이 동원됐다.

■기술 권력

오늘날 기술은 사회 조직과 관계를 구성하는 주된 논리로도 등극했다. 과거에는 생산 공정과 시장 효율의 영역에만 머물던 기술이 정치와 여론을 조작하고 관계의 정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시 말해 ‘소셜’ 플랫폼의 알고리즘 논리가 일상 사회의 규칙이 되고 사회 정서를 뒤덮고 있다. 사회 현실이 빅테크의 지능형 기술 네트워크 질서에 의해 재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사회’ 감각이 플랫폼기업이 코딩한 ‘소셜’ 감각으로 대체되는 형국이다.

현실 정치를 오염시키는 기술 과잉의 사례를 잠시 들여다보자. 최근까지 우리 사회에서 플랫폼기업의 알고리즘은 가짜뉴스와 극단의 포퓰리즘 정서로 대중을 디지털 격자 안에 분할하고 가두는 이른바 ‘정치 부족주의’ 문제를 야기해왔다. 이제 대선을 앞두고는 각 당 후보들이 실물을 모사한 딥페이크 AI 기술을 활용해 논란이 되고 있다. ‘AI 윤석열’, ‘명탐정 이재봇’ 등 유력 대선 후보를 꼭 빼닮은 AI 아바타 정치인의 등장으로 시끌벅적하다. 단순히 이는 대중의 주목과 시선을 끄는 데 멈추지 않는다. 현실 정치인에 대해 지녔던 유권자의 생각이나 판단을 흐리는 데 기술이 공모한다. 아바타 정치인의 범람은 장차 ‘가짜뉴스’의 유사 사례가 될 수 있다. 신기술 알고리즘과 딥페이크 이미지로 세련되게 치장한 가상의 기술정치가 부각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 현실 정치문화의 빈곤이 더 드러날 뿐이다.

갈수록 기술은 물리적 세계의 실상과 모순을 덮거나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빅테크 중심의 ‘메타버스’는 우리 사회의 ‘4차 산업혁명’ 열풍을 퇴색하게 할 정도로 가상자산의 노다지이자 장밋빛 기술시장의 전망이 됐다. 기술이 이렇듯 우리 사회의 절대 권력이 되었으나, 여전히 우리는 우리 사회 기술의 존재 양식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

한술 더 떠, 기술은 인류 구원의 상징으로까지 행세하려 한다. 기술 진보가 곧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모순된 듯 보이는 ‘녹색(저탄소) 성장’의 과업까지도 이뤄낼 것으로 각광받는다. 주류 사회는 과학기술로 야기된 기후위기와 온실가스 문제를 경솔하게도 또 다른 과학기술로 돌려막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자연 수탈과 파괴로 회복 불가능한 지구를 더 강한 과학기술로 회생하려는 혹자의 주장은, 여전히 근대 발전주의 세계관에 갇힌 무책임한 허언일 확률이 높다.

■기후위기, 구원의 기술?

기술은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환경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른바 ‘기후 케인스주의’의 국가 주도형 녹색 성장주의에 강력한 구원투수가 되고 있다. 기술 혁신을 통해 성장과 환경이 함께할 수 있다는 신화를 우리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환경 용어로 보통 이를 ‘디커플링’(decoupling)이라 한다. 디커플링은 붙은 것을 서로 떼어내어 분리한다는 의미다. 즉 인간이 첨단 기술을 잘만 동원하면 경제성장이 환경에 미치는 온실가스 효과를 쉽게 떼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자 가설이다. 기술의 디커플링 효과에 대한 믿음은 기후 실천을 행하는 쪽에서도 종종 존재한다.

가령,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지구온난화 1.5도 특별 보고서’에서조차 기후위기 해법으로 이산화탄소 감축안과 함께 이른바 ‘역배출 기술’(negative emission technologies)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보고서는 지구의 기온 상승 흐름을 주도하는 탄소 배출량을 마이너스로 바꾸는 역배출 기술을 주목하고 권장한다. 가령, 탄소 포집 및 저장을 위해 바이오 에너지(BE)가 환경 대안으로 추천된다. 바이오 에너지를 개발해 이산화탄소를 땅속이나 바닷속에 가두는 일이 유력하게 언급된다. 더불어 유황산화물의 에어로졸을 대기 상층에 살포해 태양광을 차단하고 지구를 냉각하려는 ‘태양 지구공학’적 해결책도 자주 거론된다. 두 사례 모두 과학기술에 의존한 국부수술식 위기 탈출 해법에 해당한다. 둘 다 근원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과신과 오만이 묻어 있는 이들 기술 처방은 또 다른 환경 피해와 예상치 못한 심각한 부작용으로 인해 지구 생태계를 더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기술은 무색무취의 청정한 것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크다. 전통 제조업 기술과 달리 디지털 기술은 친환경 비물질 기반의 무해한 것으로 쉽게 오인된다. 하지만, 우리는 비물질이 물질을 전제하지 않고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가령, IT전자 쓰레기의 범람은 물론이고, 반도체 공장의 맹독성 화학물질 생산,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과다 소비와 천연 자연수 사용, 아프리카 등의 스마트 기기용 천연 광물 채취와 환경 파괴, 남반구와 선진국의 IT 독성에 노출된 노동 약자와 인권 문제 등이 씨줄날줄로 얽혀 있다. 하지만, 기술이 야기하는 반환경 효과는 우리 시야에 잘 잡히지 않는다. 세련되게 포장된 첨단 기술이 자본주의 성장의 폭력성을 비가시화하는 일종의 알리바이처럼 기능하는 것이다.

■‘디지털 탄소다이어트’

최근 비트코인 채굴 등 기술의 반환경 문제가 국제적 쟁점이 된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탄소중립 생활실천’을 강조하면서, 이른바 ‘디지털 탄소다이어트’란 대민 캠페인을 꺼내들었다. 디지털 기기 사용으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시민들 스스로 줄이자는 취지다. 환경부 장관까지 직접 나서서 시민 스스로 불필요한 e메일을 지우고 스팸을 차단하고 정리하는 일을 독려하고 있다.

우리가 필요 없는 e메일을 지우면 기업의 데이터센터 과부하를 줄일 수 있고 곧 탄소 절감에 기여한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논리적으로 그럴듯하나, 효과 면에서는 글쎄다. 정부의 캠페인이 마치 쓰레기 분리수거만큼이나 일종의 ‘디지털 잔반’ 처리에 전 국민을 동원하는 블랙코미디 현실 같은 느낌마저 든다.

IPCC 권고로 보자면 우리는 2030년까지 절반 수준의 탄소 감축에 이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당장의 기후위기 상황을 탈출해야 한다. 환경부가 ‘디지털 탄소다이어트’와 같은 생활 캠페인을 하는 상황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e메일 한 통이 4g의 탄소 배출”을 할 수 있으니 이를 관리하자는 주장은 너무나도 한가해 보인다. 세계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세계 평균 4.5t, OECD 국가 평균 8.8t에 비교해서도 우리 국민은 1인당 연간 평균 12.2t의 탄소를 배출한다. 세계 평균의 두 배를 훨씬 초과한 수치다. 국가별 추세로 봐도 지난 30년 동안 유럽 국가들은 탄소 배출을 23% 줄인 반면, 우리는 외려 140%까지 늘었다. 이 부끄러운 수치만 보더라도 우리에게 보다 근원적인 기후위기 해법이 요구된다. 좀 더 과감한 탈탄소 전환을 도모하는 환경 정책, 특히 기술과 관련해서는 기업 IT 독성 및 공해 규제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

정부의 ‘디지털 탄소다이어트’ 캠페인은 환경 책임의 분산 효과까지 거둔다. 기업과 부자 등 상위 10%가 절반 이상의 탄소 배출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한 국가의 전력 소모량을 능가하는 비트코인 채굴로 인한 전력 낭비 문제나 전 세계 IT기업 탄소 배출의 70% 정도가 기업 자신의 데이터센터 활동에서 발생한다는 것 또한 언급조차 없다.

이를 대신해 정부 캠페인은 시민의 e메일과 스팸이 데이터센터의 전력 과다 소비에 일조할 수 있다는 공동의 환경 개선 책임론을 제기한다. 닷컴 기업의 데이터센터가 우리 환경에 미칠 영향 평가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게다가 동참하는 시민들에게는 뭔가 환경 개선에 크게 기여한다는 착각까지 줄 공산이 크다. 환경 실천이 e메일과 스팸 정리 수준에서 쉽게 가능한 것처럼 기후위기의 사안을 호도하는 효과까지 거둔다.

■기술의 제자리 찾기

생태주의자 사이토 고헤이는 최근 책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에서 ‘기술적 전가’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이는 엘리트 관료나 기업이 신기술을 당면한 환경 문제의 해결책인 양 제시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그는 기술이 환경 개선보다는 질 나쁜 방식으로 남용되는 경향이 크고, 더 나아가 부국이 빈국에 환경비용을 전가하면서 자본주의 모순의 골을 더 깊게 만든다고 봤다. 불행히도 우리는 아직 동시대 기후위기 상황을 ‘전환’의 계기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즉 기후위기를 또 다른 성장의 기폭제로 삼으려는 기술적 전가 현상만이 지배적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사회 기술의 제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기후위기와 기술 열광의 이면을 성찰하는 데, 그리고 자본주의 테크놀로지의 위상을 심각히 따져보는 데 무심했다. 기술은 늘 주어지는 것이고 우리에게 항상 이로운 것으로 착각했다. 오늘날 기술의 본질은 그것이 물질계의 생명에 남긴 후유증이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살펴야 제대로 보인다는 데 있다.

우선은 청정의 비물질인 양 가장하는 첨단 기술이 환경에 미치는 독성 효과를 풀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이는 기술의 반생태적 속성을 밝히는 일과 연결돼 있다. 환경과 기술의 통합적 논의 없이 기후위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어렵다. 동시에 플랫폼 알고리즘 등 디지털 기술이 노동자와 시민의 심신에 미치는 독성 제거 방법 또한 찾아야 한다. 이는 공생과 호혜의 기술을 모색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후기 : 이번 글을 끝으로 ‘이광석의 디지털 이후’ 연재를 마칩니다. 이제까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광석 교수

[이광석의 디지털 이후](37)성장의 욕망에 사로잡힌 자여, 이젠 공생의 기술을 좇아야 할 때다

테크놀로지, 사회, 문화가 서로 교차하는 접점에 비판적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 전공 교수로 일한다.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공동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연구 분야는 테크노문화, 인류세, 포스트휴먼, 플랫폼과 커먼즈, 비판적 제작문화에 걸쳐 있다. 대표 저서로 <피지털 커먼즈> <디지털의 배신> <데이터 사회 비판> <데이터 사회 미학> <뉴아트행동주의> <사이방가르드> <디지털 야만> 등이 있다.


Today`s HOT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솔로몬제도 총선 실시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