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열로 눈칫밥 먹는 ‘빅테크 기업’

이윤정 기자

러시아·서방 양쪽서 ‘압력’…인터넷 ‘초연결 이념’ 흔들

지구촌을 장벽 없이 연결하는 ‘인터넷의 이상’이 전쟁과 분열 앞에 흔들리고 있다. 세계의 권위주의 정부들이 인터넷을 국가 차원의 망으로 한정지으려 하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빅테크 기업들도 러시아와 서방 양쪽에서 ‘서비스 제한’ 압력을 받고 있다.

인터넷이 국경, 정치, 종교, 민족주의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분열되는 ‘스플린터넷’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해외 매체들은 27일(현지시간)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서방 양 진영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글·메타·애플…EU 요청으로 러시아 광고·기관 계정 차단 등 조치
러시아는 자국 내 SNS 접속 방해하고 러 법인 설립 압박 등 보복조치
국경, 정치, 종교 등에 의해 분열되는 ‘스플린터넷’ 현상 가속화 전망

유럽연합(EU)은 이날 알파벳(구글) 등 빅테크 기업에 러시아 정부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허위정보와 선전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지난 25일 애플, 메타(옛 페이스북) 등 미 테크 기업들에 러시아 정부 활동을 제한해달라고 요청했다.

구글은 러시아 국영매체 RT 등이 유튜브 등에서 광고를 할 수 없도록 조치했고, 우크라이나 국경 안에서 RT 애플리케이션(앱) 다운로드도 막았다. 페이스북은 러시아 국영 매체 4곳의 계정을 차단하고 광고 수익화도 금지했다. 트위터는 러시아 국영 매체의 콘텐츠에 대한 팩트체크 기능을 활성화한 상태다.

러시아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러시아 내 접속을 지연시키거나 차단하는 등 보복조치를 취하고 있다. 또 최근 온라인 검열 강화를 위해 만든 새 법을 지키라며 구글·메타·애플·트위터 등 해외 테크 기업들에 러시아에 법인을 설립하도록 요구했다. 러시아 법인 설립을 통해 이들 기업에서 유통되는 전쟁 관련 정보를 통제하려는 목적이라고 NYT는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빅테크 기업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휘말려들면서 ‘스플린터넷’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플린터넷은 인터넷(Internet)과 ‘쪼개지다(스플린터·Splinter)’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세계를 연결하는 인터넷이 다양한 간섭으로 분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스플린터넷 개념은 미·중 무역 갈등이 격화하며 널리 퍼졌다. 중국은 해외 사이트 검열 시스템인 ‘만리방화벽’을 만들어 외국 인터넷 서비스를 차단해왔다. 세계의 권위주의 정부들이 반정부 여론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은 흔한 시나리오가 됐다. 러시아는 2019년 국가안보를 위해 다른 나라들과 인터넷 망을 분리할 수 있는 ‘인터넷주권법’을 만들기도 했다.

빅테크 기업들은 ‘정보의 자유’ 가치를 지킬 것인지 아니면 현지 법규를 준수할지를 놓고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WSJ는 설명했다. 구글은 각국 정부의 콘텐츠 삭제 요구가 2015년 이후 5배 늘어 연간 5만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국가 간 디지털 분쟁도 늘고 있다. 인도는 중국과의 국경 충돌 이후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의 자회사 틱톡을 금지했다. 미국과 EU는 페이스북의 이용자 데이터 전송을 두고 몇 년째 다툼을 벌이고 있다. 책 <인터넷을 지배하기 위한 글로벌 투쟁> 저자인 데이비드 케이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학 교수는 “세계 각국이 타국 디지털 서비스와 콘텐츠에 관한 복잡한 규정들을 계속 추가하면서 스플린터넷은 심화되고 있다”면서 “세계를 전쟁에 휘말리게 했던 민족주의가 80년 만에 ‘디지털 민족주의’로 되풀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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