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었다, ‘플랫폼 독점’에 길들여진 우리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주간경향] 지난 10월 15일 경기도 분당 SK C&C 데이터센터 건물 화재로 카카오 주요 서비스가 먹통이 됐다. 거의 온 국민이 쓰는 카카오톡이 반나절 이상 두절됐다. 카카오맵도 마찬가지였다. 카카오T(택시)가 먹통이 되자 콜을 받지 못하는 택시기사들이 조기 퇴근하고, 승객들은 손을 들어 택시를 부르던 시절로 돌아갔다. 비즈니스 카톡 채널이 먹통이 되자 상인들은 주문이나 예약 내용을 알 수 없어 혼돈에 빠졌다. 카카오페이(결제)를 못 쓰니 송금과 결제를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도 있었다. 다음 한메일은 며칠이 지나도록 온전히 복구되지 않아 계속해서 전송과 수신 에러가 났다.

복구가 지체되면서 시민의 일상과 경제활동이 큰 불편과 혼란을 겪었다. 카카오의 유·무료 서비스에 연결해 생계를 도모하던 이들의 피해가 컸다. 대부분 시민은 결제, 교통, 일정 등 일상 업무에서 애를 먹었다. 그들의 일상 소통이나 상시 단톡방 회의에도 어려움과 불편함을 야기했다. 이번 사태는 카카오가 우리 사회 어디든 존재하는 범용의 플랫폼이 됐음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우리가 얼마나 카카오의 각종 플랫폼 앱에 빠르게 길들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 됐다. 무엇보다 카카오와 네이버 등 플랫폼들이 시장 잠식은 물론이고, 우리 의식과 사회 전반에 미치는 잠재적 리스크를 체감하는 계기가 됐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화재 탓이지만 알고 보면 인재

사건의 발단은 알려진 것처럼 SK C&C 데이터센터의 설계와 관리 부실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어느 곳보다 발열이 높은 데이터센터에서 화재에 취약한 구조가 지적됐다. 그보다 본질적 문제로, 많은 전문가는 천재지변 등 위기에 대응해 카카오가 재해복구(Disaster Recovery·DR)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먹통 사고를 초래했다고 본다. 디알(DR)은 메인 서버 외에 다른 데이터센터에 ‘이중화’를 해 위험을 효과적으로 분산하는 조치에 해당한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디알의 이중화를 소홀히 해 발생한 데 있다. 판교 데이터센터에 메인 서버 대부분을 두면서 재난 등 잠재적 위협 상황에서 이를 여러 다른 센터에 분산해 신속 가동할 수 있는 복구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디알은 일본 등 지진이 많은 지역에서 데이터센터의 안전관리를 위해 고안된 모델로 알려져 있다. 기술적으로 보면 이번처럼 화재 상황에서 판교 데이터센터의 주 시스템이 타격을 입더라도 그와 거의 동일한 환경의 백업시스템을 다른 외부에 구축해 바로 가동하도록 하는 이른바 ‘미러사이트’가 부재했다고 할 수 있다. 카카오는 제대로 된 미러사이트의 구축에 따른 추가 비용 발생 부담 때문에 재해복구시스템 구축에 소홀했고, 이런 위기 취약 상황에서 먹통 사태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카카오가 내년 중 경기 안산에 자체 데이터센터의 완공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거의 전 국민의 데이터를 다루는 거대 기업이 안전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이제까지 안이하게 데이터 서버 관리시스템을 운영했다면 사회적 책임이 위중하다. 분기별 매출이 수조원대에 이르고, 인터넷업계 매출 1위를 구가하는 기업의 위상에도 걸맞지 않다. 골목상권까지 비집고 들어가 130여개가 넘는 계열사로 덩치를 키워온 카카오의 문어발식 시장 확장 욕망에 비교해 턱없이 낮았던 한국형 플랫폼의 기술 설계에 대한 안전의식이 카카오 먹통 사고로 이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율규제와 플랫폼 국가인프라 담론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다음 날 “만약 독점이나 심한 과점 상태에서 시장이 왜곡되거나, (카카오처럼) 국가 기반 같은 인프라 수준인 경우에 국민 이익을 위해 제도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곧바로 그는 카카오 사태 재난대응상황실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실장급에서 장관 주재로 격상해 지휘하도록 지시했다. 대통령실 또한 국가안보실장을 중심으로 이른바 ‘사이버안보 테스크포스’를 꾸려 사이버안보 상황점검 회의를 열기도 했다. 예외적 행보들이다.

자율규제의 일관된 기조와 달리 이번 사고에 정부의 반응이 빠르고 때로는 플랫폼 독점 문제에 엄격해 보이기까지 한다. 평소 플랫폼 ‘갑질’에 이렇다 할 규제 장치는 고사하고, 플랫폼의 전방위적 시장 독점과 횡포에 대해 ‘자율규제’ 슬로건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처음부터 윤석열 정부는 플랫폼 시장 개입을 과잉 규제라는 이유로 꺼렸다. 카카오와 네이버 등의 플랫폼을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하고, 재난 대비 관리 의무를 ‘이중 규제’라며 면제해주는 등 최근까지 데이터 시장 부양에만 골몰했다. 가령 지난 8월에는 공정거래위가 플랫폼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경우 법적 제재를 취하는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까지 폐기하고 대신해 민간 자율기구를 띄워 자율규제 입장으로 급선회하기도 했다.

그러던 정부가 이제 태세 바꿈을 하는 것일까? 이번 사안의 엄중함도 있겠지만, 정부가 이제까지 시장을 다룬 관점에서 보자면 외려 카카오 사태로 인해 플랫폼 시장 문제 전반으로 번질 여론의 악화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적극적 방어처럼 보인다. 과기부 장관이 카카오 경영진에 앞서 먼저 사과하고, 과기부가 카카오의 빠른 복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식의 재난 안전문자를 보내는 돌출 행위가 그런 짐작을 가늠케 한다.

더 우려되는 지점은 윤 대통령의 언급에서처럼 정부가 카카오를 ‘국가기간통신망’이나 ‘국가 기반 인프라’로 추켜세우는 데 있다. 일면 카카오의 기능이나 효과로 보자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의 언급은 이번 카카오 사태로 인해 위기 대비용 ‘긴급복구 체계에 대한 의무조항’ 등 여러 플랫폼의 위기관리 법안과 규제안 마련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카카오의 존립 근거를 ‘대마불사’로 보는 우려할 만한 관점이 녹아 있다. 기실 카카오를 국가 인프라로 취급할수록 장기적으로 정부가 카카오 플랫폼에 대한 강력한 시장 반독점 규제 정책을 제대로 구사하기에 더욱 어려운 딜레마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닷컴 시장 교란종’이던 카카오를 현재의 국가기간망처럼 보이도록 부채질했던 과오는 어찌 보면 각종 공적 서비스를 카카오톡 알림 등에 쉽게 연동해왔던 중앙 정부와 지자체의 무신경증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빵에 배합된 소금처럼 이미 한번 기술적으로 굳어져 사회적으로 특정의 기술 디자인이 널리 쓰이기 시작하면 그 관행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규제의 공백지대에서 마구 헤엄치던 시장 포식자를 그저 방관해왔던 시절에다 카카오 플랫폼에 각종 공적 서비스를 얹혀 연동해오던 관행이 익숙해지면서, 어느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대한 플랫폼 공룡을 국가가 나서서 키운 꼴이 됐다.

이광석 교수는 2020년 출간한 <디지털의 배신>에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디지털 기술의 빛과 그림자를 드러낸다. 기술 자체를 사회 혁신과 진보로 등치하거나, 기술이 우리의 취향을 조정하는데도 이를 풍요로운 자유 문화처럼 보는 허구를 뒤집어본다.

이광석 교수는 2020년 출간한 <디지털의 배신>에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디지털 기술의 빛과 그림자를 드러낸다. 기술 자체를 사회 혁신과 진보로 등치하거나, 기술이 우리의 취향을 조정하는데도 이를 풍요로운 자유 문화처럼 보는 허구를 뒤집어본다.

시장 독점과 의식 독점

카카오는 현재 독과점 판단 기준으로 규제를 적용하기가 까다로운 기업체이다. 가령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한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이 50%를 초과하면 독점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카카오의 경우 무료서비스 부분에서 매출이 잡히지 않는다면, 기존의 독과점 규제를 적용하기 어렵다.

카카오는 국내 기업 가운데 계열사가 두 번째로 많은 공룡기업이다. 4700만 국민의 활성 이용자를 갖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게임, 은행, 택시, 엔터테인먼트까지 세포분열하듯 시장에서 세를 키워왔다. 그럼에도 골목상권까지 잠식하는 카카오 플랫폼의 포식성을 직접 규제하려는 힘이 미약했다.

플랫폼의 문제는 시장의 무차별 폭식과 자본 축적을 넘어 그것이 인간 의식과 일상에 파고들며 중독과 의존을 유발하는 데 있다. 즉 시장 독점에 더해 플랫폼은 일종의 ‘의식 독점’을 꾀한다. 매출액 규모에 의존한 시장 지배력으로만 플랫폼 독점을 판단하기는 어려운 정황인 셈이다.

규제의 틀로 플랫폼 기업의 매출액 규모는 물론이고, 이용자와 입점업체 수, 이용 빈도와 연계 서비스 연결 정도, 시가총액, 알고리즘 등에 의한 시장 교란 및 우월적 지위 남용 등 플랫폼 시장의 독과점을 판단할 새로운 잣대가 필요하다. 플랫폼 독과점 양상을 비가시적인 의식 독점과 연계해 측정하기 위한 다양한 규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인해 카카오 플랫폼의 전면 국유화 주장도 간혹 제기된다. 설사 그것이 실제 가능하더라도 이는 다소 위험한 발상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카카오의 일상 시민 데이터가 국가 관리의 데이터 체제에 병합된다면, ‘플랫폼국가’ 빅브라더에 의한 초유의 사회 통제모델이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카카오 불통이 주는 성찰의 시간

이번 카카오 먹통 사태는 스마트폰 이용자가 그와 호환 가능한 유사 경쟁 앱들로 옮겨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사고 발생 직후 카카오톡 사용자 200만명 정도가 이탈해 라인이나 텔레그램 등으로 갈아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인터넷 역사에서 보면 유사 앱 서비스 이동은 단순히 일시적 해프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의식 독점을 강하게 행사하던 플랫폼으로 이용자들이 다시 되돌아오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탈카카오’의 증가세는 일시 이동 현상으로 봐야 한다. 특정 플랫폼의 의식 독점을 무력화하는 이용자들의 저항 행위로 해석하기 어렵다.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 사고에서와 마찬가지로 카카오의 이번 먹통 사고 또한 물리적 인프라의 재난관리체제 허술함과 물리적 인프라의 안전 대비 중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관성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늘 독립된 무형의 비물질로 보지만 물리적 물성의 세계에 단단히 매여 있다는 사실을 간혹 망각하는 우리를 호되게 깨친다. 유사 피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카카오와 네이버 등 거의 전 국민을 서비스 고객으로 삼는 거대 플랫폼의 경우에는 그 어떤 업체들보다 데이터 보관 관리의 사회적 책임을 크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카카오, 네이버 등 한국형 거대 플랫폼이 지니는 약탈적 가격정책, 수직적 통합, 시장 지배력 등 시장 독과점 문제를 다시 살피고, 이번 기회에 의식 독점의 규제 기준까지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시장과 더불어 의식세계에 걸쳐 플랫폼의 독점 폐해가 크다면, 필요시에 이에 근거해 플랫폼 독과점 규제 법안을 통합적으로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특정 플랫폼 의존 리스크를 분산하고 낮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카카오가 일시적으로 마비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불편과 피해를 봤지만, 한편으로 플랫폼으로의 연결 강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공백의 시간을 우리에게 잠시 마련해줬다고 본다. 카톡 스트레스와 연결 강박에서 벗어나면서 아주 잠깐이나마 심리적 해방감마저 일게 했다. 결국 이번 카카오 불통 사태는 한국형 플랫폼 독점 문제의 징후적 사고로 각인되기도 했지만, 플랫폼 의식 독점이 잠시 멈출 때 정작 우리가 잃어버린 공통의 감각이 무엇인지를 다시 깨닫는 성찰의 순간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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