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말했다.
그리고 말하는 이들에 의해 역사는 새로 쓰여진다.
한국의 지난 100년, 시대를 넘어선 용기로
말하고, 떠들고, 생각해온 여성들이 있다.
세상을 고발한
그녀들의 이야기
본명 김원주·1896~1971
몇 세기를 두고 우리 여자를 사람으로 대우치 아니하고 마치 하등동물과 같이 여자를 몰아다가 남자의 유린에 맡기지 아니하였습니까.
…우리는 신시대의 신여자로 모든 전설적인 일체의 구사상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면 아니되겠습니다. 이런 여자가 자각함은 한편으로는 여권을 신장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조선의 문화를 개척함이라 하노라.
(1920, ‘우리 신여자의 요구와 주장’ <신여자> 2호)
1896~1951
내 자신아, 얼마나 울었느냐,
얼마나 앓았느냐,
또 얼마나 힘써 싸웠느냐.
얼마나 상처를 받았느냐.
네 몸이 훌훌 다 벗고 나서는 날,
누가 너에게 더럽다는 말을 하랴
(1921. <개벽> ‘칠면조’)
1900~?
나도 사람이며 남자와 똑같이 살아갈 당당한 사람이다. 남자에게 의뢰를 하고 또는 남에게 동정을 구하는 것이 근본으로부터 그릇된 일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은 자기가 자기를 알지 못하는 곳에 있다. 나의 고통도 내가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 있다 하였다. 이리하여, 나도 남자와 같이 살아보겠다.
(1922.6.24 동아일보)
1902~1991
여자들도 지금 와서는 예전 시대의 모든 불완전한 제도를 부인하고 엄청나게 구속과 압박과 전제와 학대가 많든 그 속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생활의 독립을 도모치 않고는 안 될 것입니다. 남의 아래서 얻어먹고 허수아비나 인형같이 살면서 생식기계나 완롱물이 되어가지고서야 무슨 해방이니 보호니 찾을 것이며 찾아지겠습니까.
(<신여성> 1925년 4월호 ‘우리 직업부인계의 총평’)
1902~?
자 보십시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처지가 어떠한가를!
여자는 재산을 상속할 권리가 없고 남편이나 아들 있는 여자는 재산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직업을 구하기가 어렵고 같은 시간의 노동을 하고도 같은 품삭을 받지 못하거니와 특히 한번 아이를 배면 대개는 일자리를 떼이게 됩니다.
교육을 받을 기회도 남자보다 극히 적거니와 설령 기회를 얻는다 하더라도 소위 현모양처주의라 하여 남자에게 매여 살게 하는 교육밖에 시켜주지 않습니다.
…남자가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기 전에 우선 ‘사람’이 되고 사회의 한 분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여자도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기 전에 우선 그러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요?
(1927.8 <여성과 단결>, 근우회 리플레트 1집)
1890~?
현대에 있어 여자가 종래와 같이 안방 구석에만 앉아서 먹고살 수는 없는 이상 남성을 많이 접촉하지 않으면 안 될 것도 사실이오,
이성의 접촉이 많으면 자연히 정조 파멸이 늘어갈 것은 단순히 생리적 요구에만 의할 뿐 아니라 정조에 대한 근본적 관념의 표준이 달라진 것이 큰 원인이겠다.
이것을 성도덕의 부패라고 탄식하는 이가 있으나 이것은 부패도 아니오 타락도 아니다. 편협무쌍하던 남성 본위의 성도덕으로부터, 인간을 본위로 한 공평하고 순리적인 성도덕으로 진보하는 것이다.
(1927.4월 <동아일보> 지면에 ‘광산’이란 필명의 필자가 유영준의 정조 관념에 반박하며 그의 논지를 전해 쓴 내용-원문은 소실되었다.)
1889~?
남성들의 우월감과 전횡에 대해
근거 없음으로 대항해야 한다.
어린 자식은 경제권 가진 남성에게 맡기고
여성은 공장과 사회로 진출하라.
(1932.1.2 동아일보)
1896~1948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 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줌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뿌려져 우리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이름을 기억할 것이리라,
그러니 소녀들이여 깨어나 내 뒤를 따라오라 일어나 힘을 발하라
(1934 잡지 <삼천리> ‘이혼고백서’)
본명 복마리 1904~1982
저는 어서 속히 늙어지길 바랍니다. 환갑잔치도 어서 먹어야겠고, 또 늙어야 노역같은 것을 할 때 화장하지않고 배우 노릇을 하게 됐으니까요. 화장 값도 들지 않고 오죽 좋겠어요
(1940.4 <삼천리>)
1964~
…문귀동의 재판이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응징의 수준이 아니라 이땅의 민주화를 가장 크게 가로막는 모든 ‘악의 공권력’에 대한 치열한 고발과 심판의 장이 되게 해야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제는 기자들의 플래시와 호기심에 괴로와하고 부끄러워하는 ‘권양’이 아니라 진실과 정의를 알리는데 적극적일 수 있는 ‘권인숙’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1988.3.19 <동아일보> 권인숙양 수기(5)새로운 출발)
…제 판결을 계기로 지금껏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하면서도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여성들이 힘을 내서 이 문제와 싸울수 있게 되기를 바래요.
(1994.4.19 <동아일보> 인터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