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목소리

*래디컬 페미니즘
공적인 영역에서의 성차별만이 아니라 가부장제 자체가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즘의 한 갈래. 최근 한국에서는 여성의 인권을 다른 소수자의 인권에 앞서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페미니즘 세력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1988년에 태어났다. 여아 낙태가 극심하던 80년대 말 90년대 초, 부산에서. 실제로 나는 여아 낙태 생존자다. 두 살 터울이었던 여동생은 태어나자마자 살해를 당했다.”
“여동생은 1990년에 태어났다. 1990년생 백말띠 여자는 ‘기가 세다’며 여자아이를 선별적으로 낙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때다. 엄마는 낙태를 강요하는 친가를 피해 임신한 몸으로 도망을 다녔고, 동생을 낳았다. 하지만 결국 친삼촌이 아이를 데려갔고, 그대로 죽었다고 한다. 나도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라서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친가에서 우리 자매(‘그 일’ 후 여동생이 또 태어났다)를 고아원에 보내지 않으면 아버지의 재산을 엄마에게 주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친가와 연을 끊고 살았다. 대여섯 살 때부터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때마다‘왜 나는 여자로 태어났을까?’하는 자기혐오에 빠졌다. 우울증이 왔다.
엄마와 거의 대화를 하지 않으며 자랐다.”
“대학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었다. 대학 때 친한 친구가 페미니스트였는데, 나는 친구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에 의문을 갖는 ‘인생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진지하게 사회를 바꾸려는 모습도 우스꽝스럽고, 재미없고, 딱딱하고. 전 세대의 ‘영페미*’가 이제는 절멸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페미니스트가 남아있다니’하고 놀랄 뿐이었다.”
*영페미니스트
1990년대 중반 온라인을 기반으로 등장해 2000년대까지 두각을 나타낸 대한민국 페미니스트들을 지칭하는 말. 온라인 커뮤니티인 ‘언니네트워크’, 스스로 여성임을 자각하고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축제의 장을 만든 ‘월경페스티벌’, 운동권 내 성폭력 타파를 목표로 한 ‘100인 위원회’, 영상을 통한 여성 읽기를 시도한 ‘여성영상집단’ 등이 대표적이다.
“2015년 2월 트위터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다’ 선언을 했다.사실 선언을 하면서도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제대로 몰랐다. 당시 칼럼니스트 김태훈씨가 쓴 ‘IS(이슬람국가) 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위험해요’라는 칼럼에 모욕감과 황당함, 분노를 느껴서 얼떨결에 동참한 선언이었다. 각자의 관심사를 이야기하던 트위터 계정들이 갑자기 목소리를 모아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다. 그게 참 자연스러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페미니즘이 뭔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던 상태였다.”
2015년 2월 트위터에서 ‘#나는 페미니트스트다’ 해시태그 운동을 촉발한 칼럼니스트 김태훈씨의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위험해요’. <그라치아 코리아> 2015년 2월호.
“메르스 갤러리(이하 메갤)에서 활동했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선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트위터에서 메갤의 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메갤로 가서 미러링에 동참했다. 정치적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만연했던 ‘여성 혐오’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가까웠다. 메갤이 폭파된 이후 메갈리아 사이트가 생겼을 때부터 2015년 12월 메갈리아가 문을 닫을 때까지, 쭉 활동을 했다. 트위터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트윗들을 써왔다.”
“2016년 10월 트위터에서 #ㅇㅇ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을 때다. 나는 성폭력 폭로 글을 리트윗하는 것으로 운동에 동참했다. 그 전에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리트윗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트위터의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성폭력 피해를 겪었기 때문에 이런 폭로를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이들의 피해를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운동으로 트위터 페미판이 뒤집어졌다. 트위터에서 여론을 주도하며 이른바 ‘선생’ 노릇을 하던 진보적인 70년대생 남성들. 그들의 성폭력이 폭로되면서 와장창 무너진 것이다. 특히 당시 문화 예술계에서는 ‘선생’들의 트위터 활동이 기폭제가 돼 새로운 씬(scene)과 문화 공간이 생겨나고 있을 때였다. ‘커먼센터’, ‘언리미티드 에디션’ 등등…. 그런데 예술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터지고, 이 씬과 공간까지 다 같이 사라졌다. 그 ‘선생’들 중에는 성폭력 가해자로 폭로된 이들도 있었고, 가해자를 두둔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선생’들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그때 저는 ‘역시 뭔가 우리 편인 척 얘기해주는 사람이라도 결국은 ‘알탕*’이라고 하는 그 끈끈한 (남성)연대를 못 버리는구나’, ‘여성 청년의 미래에는 별로 관심이 없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알탕문화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들끼리만 이루는 연대를 뜻한다.
“기사화가 잘 되지 않았고, 결과도 씁쓸했다. 특히 문화 예술계에서 폭로가 많았는데,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자리를 그대로 지켰다. 미투 운동보다 2년 앞서 일어난 일이었다. 다들 들불처럼 일어나서 열심히 폭로를 했었지만 가해자는 멀쩡하게 잘 지냈고, 피해자는 역으로 고소를 당해 괴로워하다가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사라지는 것들을 너무 많이 봤다. 피해자들의 폭로를 독려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한 사람으로서 죄책감이 들었다. 뒷감당에 여념 없는 피해자들을 보면 무력감만 들었다. 트위터에서 ‘2016년’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래서 올해 미투가 터졌을 때, 그 절박함이 달랐던 것 같다.”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 의혹을 폭로한) 김지은씨가 ‘뉴스룸’에 나왔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 트위터의 여자들이 다 같이 절규했었다. 성폭력 피해자가 뉴스에 나와서 살려달라고 하고 있었으니까. 우리 중에 누구나 될 수 있고, 내 친구일 수도 있는 김지은씨. 그런 평범한 사람이 TV에 나와 공개적으로 살려달라고 말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나. 전에 느꼈던 무력감이 또 들었다. 무력감은 곧 분노가 됐다.”
“김지은씨와 같은 피해자들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은 사람들, 너무 갑갑했던 사람들끼리 일단 모여보자고 했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만나기로 했다. 처음에는 한 열 명 정도 왔다. 거기 모인 사람들 대부분 2016년 #ㅇㅇ계 내 성폭력 때 일어난 사건들을 함께 봤던 사람들이었다. 모금을 통해 피해자를 후원하거나, 자신의 능력껏 해볼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본 사람들. 그래서 계단에서 다시 모였을 때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제도 변화와 여론 형성을 위해 시위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3월8일 여성의 날에 맞춰 시위가 열렸다. 혜화역 시위처럼 ‘생물학적 여성’은 아니지만 ‘여자’만 오라고 했다. 그렇게 개인이 급조해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었던 시위에 200여명의 여자들이 모였다.”
“딱히 정해진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작은 확성기를 돌려가며 자유롭게 발언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 명이 15분 정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손을 든 다음 사람이 또 이야기를 하면서 이어갔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이야기한 간호사, 외할머니‧엄마‧딸 3대가 겪은 성추행에 대해 이야기한 여성, 학교 인터넷 커뮤니티의 여성혐오를 이야기 한 대학생 등 다양한 연령대의 갖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문단 내 성폭력 폭로자였던 탁수정씨도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흘렸다. 3월 초 추운 날씨에 돌계단에 쪼그려 앉아 엉덩이가 시린데도 누군가 발언을 시작하면 뒤쪽에 앉은 사람까지 집중해서 들었다. 여자들끼리 모여 자기들의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만으로도 참 서로 힘이 됐던 기억이다.”
“발언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같이 ‘저는 이때까지 이런데서 마이크를 잡아본 적도 없는데’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도 잘하고 자기 경험과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마이크도, 창구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고픈 말들을 못하고 살았구나, 싶었다.”
“우리는 이전의 경험을 통해서, 무기력이 제일 무서운 거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무기력에 익사해서 죽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게 성폭력 피해자 폭로자만 죽이는 게 아니라 모든 여성들을 동시에 죽이는 건데 그럴 때 우리가 모여서, 200명이라도 모여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무기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발언이 끝나면 ‘여자가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라고 응원이 쏟아졌다. 이 말이 사실 ‘사내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의 미러링으로 나온 용어이지 않나. 인터넷에서 사용하거나 글로 본 적은 있어도 실제로 들은 적이 없었는데, 자신의 피해 상황을 얘기할 때 나온 이런 응원의 목소리에서 연대감을 느꼈던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혜화역 시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것이 그렇게 놀랍진 않았다. 개인이 혼자 연 시위에도 200명이나 왔잖아. 여자들에겐 여자들끼리 모여 목소리를 높이고 싶은 욕구가 이미 많은데, 여태껏 자리를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이화여대 시위* 라는 선례가 있잖아. 이대 시위에서도 기존의 운동권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그래서 성공한 거다. 저와 같이 원래 여성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아닌 ‘뉴페미 세대’는 운동권 시위를 가면 소외받는 느낌이 든다. ‘시위에 참여한 운동권 사람들은 서로 다 뭉쳐있는데, 이미 다들 연결돼 있는데’하며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제 그런 시위보다는 개인주의적인 시위, 익명으로도 참여 가능한 시위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는다. ‘권 배제’ 시위에 가면 참가자 사이의 친목활동까지 철저히 금지하는 이유도 그 것이다. ”
“혜화역 시위가 성공한 것은, 운동권을 배제하면서 기존의 운동권이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던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소위 ‘쓰까(섞어)’ 먹지 않은 것이다.
이화여대 시위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출발점이 됐던 미래라이프대학(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 반대 시위에서 이화여대 학생들은 당시 이른바 ‘운동권 세력’의 참여를 철저하게 배제했다. 학생들은 서로를 ‘벗’이라고 부르면서도 ‘순수한 이화인’의 의도가 변질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운동권’으로 지명된 학생들을 투표에 부쳐 농성장 밖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다른 인권 운동이나 환경 운동과 여성 운동을 같이 하면서 정작 여성 운동은 뒷전에 둔다는 뜻이다. 소위 운동권 단체들은 직업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이니까, 환경‧노동‧인권 등등 각 분야별로 운동 품앗이를 하는데, 거기서 여성운동은 소외된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위치가 그렇듯이, 항상 뒷전일 뿐이다. 반면 혜화역 시위는 여성의 목소리를 우선 담는다. 트위터 내 ‘리버럴’(혹은 교차) 페미니스트들도 ‘쓰까’라고 불린다.”
“트랜스젠더 문제가 민감한 것은 사실이다. 트랜스젠더리즘*이 페미니즘 제4물결*의 가장 큰 백래시(페미니즘에 대한 반동)라는 의견도 있다. 여러 이론이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여기에 자신이 MTF(지정성별은 남성이나 성정체성은 여성인 사람)라는 ‘비수술’ 트렌스젠더들이 최근 스스로 레즈비언이라고 주장하며 트위터에서 만난 다른 레즈비언들을 연쇄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폭로됐다. 지정성별과 성정체성을 일치시키기 위해 수술까지 불사하는 사람들과 달리, 이 사건의 가해자들은 남성의 신체를 그대로 유지한 채 자신이 ‘정신적 여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의 연쇄적 성범죄가 알려졌을 때 ‘쓰까’ 진영에서는 오히려 ‘젠더 퀴어에 대한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며 피해자들의 폭로를 무시하거나 입을 막았다. 이런 경험들에서 오는 피로감과 위험부담이 ‘생물학적 여성’으로 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사실 그것보다는 기본적으로는 안전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침으로 보인다. ‘몰카’를 찍거나 폭력을 저지르는 남자, 자신을 여자라고 주장하는 남자마저 없는 안전한 공간에서 여성들끼리 모인 이 시위에서의 경험을 사람들은 ‘보토피아’(여성의 성기를 이르는 말과 ‘유토피아’의 합성어)라고 부른다. 여자들이 통솔하고 여자들만 존재하는 안전한 유토피아가 만들어진 것이다. 여자들끼리만 모이는 경험 자체가 특별하고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자격제한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혜화역 시위는 여자들만의 유토피아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지하철역을 나오면 이미 몇 만 명의 여성들이 모여 있다. 시위하는 공간까지 들어가려면 1시간 정도 줄을 서야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천천히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로 ‘자이루~ 자이루~’* 이러면서 반갑게 손을 흔든다. 처음 보는 사람이고, 서로 누군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저 여자이고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자매처럼 너무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그게 제일 좋았던 경험인 거 같다. 우리만의 언어. ‘재기해’나 ‘자이루’, 그런 말들이 통용되는 공간이라는 점도.”
트랜스젠더리즘
성적 정체성의 구분이 불명확할 수도 있고 여러 개의 성을 갖는 것도 가능하며 아예 성이 없을 수도 있다는 이론.
페미니즘 제4물결
인터넷을 기반으로 여성 의제를 가시화하고, 이렇게 가시화한 의제를 SNS 공간에서 토론하고 국민청원·집회 등으로 조직화하는 페미니즘 최근 경향을 말한다.
자이루
인터넷 용어 ‘보이루’의 미러링 표현. ‘보이루’는 인터넷방송 아프리카TV의 유명 BJ 보겸이 쓰면서 급속도로 유행하기 시작한 인사로 원래 ‘보겸+하이루(안녕)’라는 의미였지만 언젠가부터 일부 네티즌들에 의해 ‘여성의 성기+하이루’로 변질돼 사용되기 시작했다.
“맞다. 사실 이번 시위에서 문제가 된 ‘재기해’라는 말도 그렇다. ‘재기해’는 사실 인터넷에서 ‘메갈리아’나 ‘워마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여초 커뮤니티에서 남성을 비판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쓰던 말이었다. ‘메갈’로 몰릴까봐 인터넷 밖에서는 쓰지 못하지만, 한국 남성을 비판하는 일반 용어로 굳어진 말이다.”
영진씨는 계단 시위와 혜화역 시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밝은 표정을 지었다. 광장에 모인 수만의 여성 인파를 설명하는 영진씨의 얼굴에는 당시 느낀 해방감과 기쁨이 다시 차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영진씨는 혜화역 시위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망설였다. 혜화역 시위의 주최측인 ‘불편한 용기’가 시위 참여자들에게 언론과의 인터뷰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애초 영진씨는 비보도를 원칙으로 혜화역 시위에 대한 얘기를 풀어나갔지만, 결국 기자의 설득으로 해당 내용을 기사화하기로 했다. ‘보토피아’로 혜화역 시위를 기억하는 영진씨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이번 시위에서 문제가 된 ‘재기해’는 사실 우리가 독립군처럼 인터넷에서 숨어 뜻을 함께하던 ‘자매’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 지금까지 축적된 분노를 터뜨리기에 가장 적합한 구호였다. ‘재기해’가 처음부터 혜화역 시위에서 허용된 것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초기 혜화역 시위는 정치적인 성격을 띠지 않으려고 조심했었다. 하지만 시위의 원래 목적이 불법촬영에 대한 편파적인 수사 관행을 규탄하고, 경찰과 행정부에 대해 항의하기 위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이 빠질 수 없었다. 게다가 3차 시위 직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원한’이라고 지칭했었다. 이를 비판하기 위해 ‘재기해’를 외친 것이다. 이 말을 ‘문재인 자살해라’ 이렇게 번역하면 안 된다.”
“‘메갈리아’에서도 ‘재기해’를 두고 고인을 모독하는 말을 써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남성연대’ 대표였던 고 성재기씨가 미러링이 될 정도로 여성들에게 적대적인 대상은 아니었다. ‘재기해’는 고 성재기씨를 떠받들었다가 그의 죽음을 부추기고 그가 죽은 후에는 빈소까지 찾아가 부조금 500원 내고 오는, 한국 남성들의 찌질한 놀이 문화를 향한 것이다. ‘역차별’을 부르짖으며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들. ‘재기해’는 그들에 대한 도발이었던 셈이다.”
“메르스 갤러리가 나오기 전까지, 여자들만 사용하는 인터넷 유머, 밈(meme)*이 없었다. 여자들도 재밌게 놀고 싶어서 디시인사이드에서 남자인척 했다. 여초 카페나 커뮤니티가 있긴 했지만 유희의 기능보다는 패션, 화장품, 육아 등 정보를 공유하는 성격이 더 강했다. 그래서 인터넷의 놀이문화는 남성 중심의 여성 혐오적인 성격이 강했다. 남자들만 전유했던, ‘디시인사이드’로 위시되는 인터넷의 B급 놀이 문화를 여자들이 갖게 된 것이 ‘미러링’의 또 다른 역할이다. 미러링 자체가 주는 해방감도 있지만 여성 혐오적인 ‘밈’을 우리가 가지고 와서 바꾼다는, 인터넷 세계에서 권력을 가져간다는 해방감이 있었다.”
인터넷 밈
인터넷 밈(internet meme)이란, 대개 모방의 형태로, 인터넷을 통해 사람에서 사람 사이에 전파되는 어떤 생각과 스타일 또는 행동 따위를 말한다.
“그동안 여자들이 들었던 말에 비하면 ‘재기해’는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일베’(일간베스트)에서 그간 온갖 여성혐오 표현이 쓰였는데, 고작 ‘재기해’에 사회가 충격을 받는 모습은 ‘메갤’이 처음 생겼을 때 남성들이 보인 반응과 똑같다. ‘여자가 화를 내고 분노하며 카운터펀치를 날리고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것이다.”
“강남역 사건에는 사람들이 원하는 완전무결한 여성 피해자가 있다. 정말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그냥 화장실 갔다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찔려 죽었으니까. 한국 사회에서 용인되는 ‘여자 피해자’는 그런 수준이다. 정말 아무 잘못도, 아무 의도도 없이 피해를 입어야 한다. 피해 여성에게는 작은 흠결도 허용되지 않는다. 남성이 저지르면 용서를 받던 잘못도 ‘여성 피해자’가 한 행동이라면 천인공노한 범죄가 된다. ‘재기해’라는 구호가 나왔다고 혜화역 시위를 비판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
2016년 5월17일 새벽 강남역 인근 주점 건물 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 ‘여성혐오 범죄’ 논란이 일면서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는 여성혐오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장소가 상징적인 장소인 광화문으로 바뀌다보니 참가자들의 기대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변화는 없었다. 시위가 끝나고 나서 트위터나 커뮤니티 카페에 ‘지금보다 한 단계 진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많아졌다. 하지만 직업활동가도 아닌 주최측에서 대규모 시위를 매달 이끌면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너무 큰 짐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시위 자체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불법촬영 편파수사, 경찰의 채용 불평등)를 풀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민원을 하거나 다른 참여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3월 서영진씨가 개최한 ‘계단 시위’에서는 한 여성 디자이너가 직접 ‘Girls Can Kill Anything’ ‘페미니스트’ 등의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제작해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맞다. 트위터 페미판이 둘로 나뉘어 있다. 여성의 인권만을 최우선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 그리고 소위 ‘쓰까’로 불리는 리버럴‧교차 페미니스트, ‘모두를 위한 인권’을 챙기는 페미니스트다.”
“그런데 이들을 리버럴 혹은 교차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원래 정의대로라면 ‘리버럴 페미니즘’은 ‘일상생활에서의 정치’를 강조하는 래디컬 페미니즘과 달리 법 제도의 변화를 통한 여권 상승을 추구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법 개정 요구도 래디컬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여성들이 하고 있다. ‘다양한 억압구조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교차 페미니즘은 난민문제에서는 ‘난민 여성’부터, 성소수자 문제는 ‘성소수자 여성’부터, 장애인 문제는 ‘장애인 여성’들의 특수한 환경과 이로 인해 겪는 어려움을 지지하는 것이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리버럴도, 교차 페미니스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트위터는 처음부터 ‘쓰까’라 불리는 이들이 주류였다. 저도 그런 성향이었다. 메갈리아가 폐쇄되고 워마드가 생겼을 때, 내가 워마드에서 활동하지 않은 이유는 ‘똥꼬충’이라는 성소수자 혐오 표현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투 이후, 계단 시위에 참여하고 나서는 ‘행동’의 가치에 대해 체감하게 됐다. 리버럴 페미니스트들은 인권에 대해서 좋은 말만 한다. 사건이 터져도 비판하기만 할 뿐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시위에 참가하고 보니 말만 하는 주류보다는 행동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함께 싸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스탠스가 바뀌었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행동하기 때문이다. 일단 트위터에서 해시태그로 공론화를 주도한다. 메갈리아 시절에도 많이 했었던 방식이다. ‘보력지원’이라고 해서 네이버 기사에 댓글을 달아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했다. 메갈리아에서는 항상 ‘행동하는 갓치*가 최고다’라며 행동주의를 우선으로 했었다. 그것이 지금의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이어졌다. 래디컬은 최근의 탈코르셋 이슈도 주도했다. 비혼, 비연애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갓치
신(god)+김치녀의 합성어로 ‘메르스 갤러리’ 등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 여성혐오 표현을 미러링해 여성 스스로를 높여 부르는 단어.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결혼이 가부장제의 시작인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결혼은 가부장제에 대한 부역’이라고 주장하며 비혼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 주장이 누군가에겐 너무 충격적인 논리다. 그래서 분란이 일어나는 것 같다.”
“비혼을 주장하는 래디컬 페미들이 등장했을 때 저는 리버럴에서 (래디컬로) 넘어가려던 시기였다. 리버럴 진영의 유명한 트위터 계정들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원까지 나온 고학력에, 70년대생 중심으로 연령대도 높은 편이다. 결혼을 했거나 어느 정도 생활에 여유가 있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들에게 결혼은 그다지 절실한 주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나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여성인 나에게 비혼 이야기는 정말 절실한 주제였다. 경제적으로 휘청할 때마다 결혼의 유혹을 느끼곤 하던 터였다. 여성으로서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선택임을 알면서도 경제적 이유로 결혼에 휘말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결혼은 가부장제를 강화시키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경하게 말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내게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미 결혼한 여성 페미니스트들에게는 그 이슈가 절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페미니즘 운동을 하면서 실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래서 (래디컬로) 넘어간 것이다.”
페미니즘은 쿨하다. 서영진씨의 물병.
“힘겹다. 사실 기존 여성학계와 기존 여성 운동권들이 ‘메갈’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이들을 반지성주의, 혐오주의자로 꾸준히 매도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워마드뿐만 아니라 젊은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 기존 학계의 여성학자들 많이 봤다. 기존 여성학자들은 언론에 글을 많이 쓰지만, 젊은 1020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면도, 권력도 없으니 우리들의 이야기는 소거되거나 왜곡된다.”
“우리는 페미니즘 제2물결*에 대한 공부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지금이 페미니즘 제4물결의 시대라고 하는데, 지금 한국의 여성학계와 운동권에는 제3물결* 의 흔적만 남아있다. 페미니즘을 깊이 공부하고 싶어도 (래디컬 페미니스트로서 동의할 수 없는) ‘성노동 이론’을 가르치는 3차 물결을 담은 저작과 강의만 있기 때문에 쉽지가 않다. 그래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모여 페미니즘 제2물결에 대한 스터디를 만들어 번역도 되지 않은 책을 함께 읽는다. 절판된 <가부장제의 창조>를 읽기 위해 출판사에 제본 요청을 했는데 50명 이상 모이면 책을 찍어줄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책이 필요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을 모집했는데 신청 인원이 350명이나 됐다. 개인적으로 북클럽을 통해 쉴라 제프리스의 <코르셋-아름다움과 여성혐오>도 읽고 있다.”
페미니즘 제 2물결
1960~1980년대 2차 페미니즘 물결은 ‘노동 환경’, ‘임금수준 개선’과 같은 사회적 불평등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시기 가장 대표적인 페미니즘 사상가로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있다. 그녀는 <제2의 성>을 통해 가부장제의 발생, 확대 및 재생산을 분석했다. (출처: 국제신문)
페미니즘 제 3물결
1990년대부터 시작된 3차 페미니즘 물결은 2차 물결에서 실패한 부분을 보완하고 극복하는 것이 목표였다. 여성의 인종, 종교, 계층, 국적, 문화적 다양성, 섹슈얼리티에 관심을 가졌다. 집단으로서의 여성을 넘어 개인으로서의 여성에도 초점을 맞춰 운동을 전개하는 특징을 보였다. (출처: 국제신문)
“10~20대 중에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많다. 탈코르셋 해시태그에서 드러나듯이 그 세대는 이전 세대가 겪지 않은 꾸밈 압박과 같은 성차별적인 사회적 압력을 심하게 받았다. 여자들을 쥐어짜는 한계, 극한을 겪고 자란 이들이 아닌가 싶다. ‘일베 세대’이기도 하다. 여성혐오가 일상인 남자들과 같이 자라기도 했다.”
“2015년 이후 들이닥친 페미니즘의 새로운 물결을 어린 시절부터 접하며 자란 사람들이다. 세월호를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부당함에 대한 각성이 빠르다. 그런 이들이기에 학교에서 씌운 코르셋과 같이 여성에 대한 부당함을 쉽게 알아차리고, 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효율적으로 잘 싸울 줄 아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이 실제 혜화역 시위를 이끌고 있다.”
“워마드가 게이들의 여성 혐오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에 대해서는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이후 느끼게 된 것이, 여자들이 바보같이 남 뒤치다꺼리 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퀴어 운동하던 사람들이 시청을 점거하며 격렬히 운동하던 때가 있었다. 트위터에서 여성들은 이 운동에 후원금을 내며 도와줬다. 저도 많이 냈다. 퀴어 퍼레이드도 많이 나갔다.”
“게이들이 성소수자이긴 하지만 여자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경우를 많이 봤다. 성소수자이지만 ‘젠더 권력’이 있기 때문에 현실 사회에서 누리는 위치가 여성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한 두 명의 절친한 친구가 있다. 한 명은 레즈비언이고, 다른 한 명은 게이다. 게이 친구는 졸업 후 금융계 대기업에 들어가 고액 연봉을 받는 동안, 레즈비언 친구는 금융계 입성에 실패해 유통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금융계 채용 방식에 성차별적인 요소가 많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나. 실제 삶이 이런 식이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메갈리아가 폭파되고 워마드가 탄생하면서 불거진 성소수자 배제 문제가 굉장히 상징적인 일이었던 것 같다. 여성 인권만 우선적으로 놓고 볼 것이냐,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범주에 드는 인권까지 지킬 것이냐 문제였던 것.”
“사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서도 여성 성소수자들이 겪는 문제를 우선시한다. 워마드와 래디컬 페미니즘,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할 수 있는 혜화역 시위는 ‘성소수자를 배제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남성 성소수자만 신경 쓴 이야기다. 래디컬 페미니즘, 혜화역 시위에 동참하고 있는 여성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시각이다.”
“워마드로 공이 넘어왔다, 헤게모니가 넘어왔다는 이야기가 많다. 워마드가 ‘악마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워마드다. 워마드가 무엇을 하든지 언론도 주목한다. 과거 보수 진영의 일베가 그런 역할 했던 것처럼.”
“워마드가 아무리 악마화된다고 해도 이들이 주장하는 본질은 ‘여성들의 권리’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을 읽을 수 있다면, 워마드의 주장이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권력을 누려야 한다’는 이야기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워마드는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이 물음 자체가 전형적인 백래시(페미니즘에 대한 반동)라고 생각한다. 조선일보가 혜화역 시위를 다루는 기사에서 ‘페미니즘 안에서 나쁜 페미니스트와 착한 페미니스트가 싸우고 있다’는 뉘앙스로 보도를 했다. 과거 미국에서도 일어난 일이다. 수잔 팔루디는 <백래시>라는 책에서 ‘착한 페미니스트와 나쁜 페미니스트를 나누는 프레이밍은 여성에 대한 분할통치’라고 썼다.”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살인이나 폭탄 테러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면 ‘행동의 올바름’을 논할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미러링, ‘재기해’와 같은 ‘패드립’을 두고 ‘잘못된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는 없다. 페미니즘의 방법론 차이일 뿐이다.”
“예컨대 과거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 운동가)* 중에는 상가 유리창에 돌을 던지거나 교회에 불을 지르고 달려오는 말에 몸을 던지는 식으로 과격하게 싸우던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까지 폭력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한 것은 사회다. 심각한 여성 혐오, 여성 억압의 반작용이다. 과격한 페미니즘 방법론은 과격한 여성혐오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서프러제트
20세기 초 영국에서 참정권 운동을 벌인 여성들을 지칭하는 용어. 이들의 활동은 1918년 2월 일정 자격을 갖춘 30세 이상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국민투표법 제정을 이끌어 냈다.
“어떤 운동이든지 강경파, 온건파의 구도가 형성이 되기 마련이다. 워마드 활동가들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우리를 방패로 쓰라’는 것이다. 워마드는 ‘여성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레벨의 악명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워마드가 여성이 저지를 수 있는 과격함의 한계를 계속 넓히면, 그만큼 넓어진 반경 안에서 다른 여성들은 행동할 수 있다. 온화한 페미니스트들은 ‘설득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니, 설득은 그들이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