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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목소리

“어른이 되어도 나는 페미니스트!”

10대 페미 김주연씨
  • 10대 페미 바닐라씨(가명, 19세)
  • 2000년 서울 출생
  • 2007년 초등학교 입학
  • 2013년 남녀공학 중학교 입학
  • 2016년 여자고등학교 입학
  • 2016년 다음 ‘쭉빵카페’ 가입
  • 2017년 트위터 활동 시작
  • 2017년 미술 교사의 성폭력을 고발
  • 2018년 다음 ‘올뺌’ 카페 가입, ‘탈코르셋 운동’ 동참
  • 2018년 1·2·3차 혜화역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참여
2000년생 바닐라. <82년생 김지영>으로 페미니즘에 입문했다. 허리까지 오던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즐겨 입던 치마 대신 몸에 편한 옷을 입는다. 옅은 화장에 립밤을 바르고 나온 바닐라는, ‘피부에 자신이 없어 아직 꾸밈노동을 온전히 벗지 못했다’며 조금은 부끄러워했다.
“어쩌면 지금은 학생이니까 쉽게 목소리 낼 수 있는 거겠죠. 사회에 나가면 일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데 페미니즘을 얘기할 수 있을까…. 신념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인터뷰 질문에 “아직 모르는 게 많다”고 군데군데 여지를 뒀지만, 부당함을 지적할 때는 무척 단호했다. 교사의 지속적인 성폭력을 학교에 고발했고, 친구들과 함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나간다.
사촌오빠 유학에 나도 가고 싶다고 하자,
‘계집애는 유학을 가면 안 된다’고 단칼에 잘렸다.
페미니즘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
“친한 친구가 먼저 접했다. ‘내가 이런 걸 알게 되었는데 너도 한 번 알아보지 않겠냐’고 하더라. 나도 관심이 있었다. ‘읽은 책을 추천 해 달라’고 했다. 그게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즈음이었다.”
무슨 책을 읽었나.

“두 권을 추천 받았다. <82년생 김지영>과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충격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야자시간에 읽는데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김지영과 시어머니 관계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우리 엄마 생각이 너무 났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는 실생활에 도움이 많이 됐다. 아빠가 ‘여자도 군대에 가야 된다’거나 ‘여자는 이래야지’ 같은 말을 할 때 싸우다 항상 지는 느낌이었다. 말이 달린다고 해야 하나...

읽어 보니 싸우는 데 도움이 되던가.

“(끄덕끄덕) 읽고 나서 많이 이겼다.”(웃음)

바닐라의 페미니즘 입문서.

이전에도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나.

“어릴 때부터 뭔가가 ‘불공평하다’ ‘잘못됐다’는 느낌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명절에 친척집에 가면 큰 방은 남자들이 쓰고 여자들은 부엌데기처럼 따로 모여 밥을 먹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을 먹으면 진실을 알게 되지 않나. 페미니즘을 접하고 나니 당연하게 생각한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심지어 그동안 나의 행동에도 ‘여성혐오’가 배어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가족, 친구 모두 다 같이 ‘여혐사회’ 속에 살아왔으니까. 특히 어른들은 더 그렇잖나.”

외동이라니 남자 형제와 비교당할 일은 없었겠다.

“두 살 위 사촌오빠와 비교를 많이 당했다. 할아버지는 사촌오빠만 유학을 지원해 줬다. 저도 가고 싶다고 했다. ‘계집애는 유학을 가면 안 된다’고 단칼에 잘랐다. 2년 전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였다. 결국 오빠는 지난해 출국했고 저는 한국에 남았다. 기성세대, 특히 남자들은 너무 뿌리 깊은 성차별이 일상화 돼 있으니까...그건 제가 바꿀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녀공학 중학교에서도 성차별이 있었나.

“그 때는 없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니 남학생들의 여혐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남녀 합반이었는데, 가슴이 큰 여자 선생님이 앞이 살짝 파인 옷을 입고 오면 남자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선생님 나체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도 봤다. 선생님에 대한 성적 비하 발언도 있었고, 2학년 때는 같은 반 남자아이가 계단을 올라가는 선생님 치맛속에 거울을 넣는 사건이 있었다.”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했나.

“왜 저런 짓을 하나 했다. 그것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우리가 다 보고 있는 데서 당당하게. 그런데 어른들은 그냥 넘어가더라. ‘원래 남자애들은 그렇다’라고. 여자아이들이 단체로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러 갔다. 선생님도 기분이 많이 나빴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커지기 전에 학부모들이 ‘남자애들이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 ‘어릴 때 호기심으로 한 것 아니냐’ 하면서 덮어버렸다고 했다.”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나.

“학교에선 아무런 징계도, 조치도 없었다. 여학생들끼리는 큰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자기 자식 끔찍이 생각하는 건 알겠지만 이게 정녕 자식을 위한 일이냐. 나는 내 자식이 만약 이런 짓을 한다면 ‘죄송하다’ 하고 피해 당사자에게 사과 하도록 할 텐데. 어째서 자기 아들을 감싸기만 하는 거지. 이런 얘기를 서로 나눴다. 정말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들이 여자를 성추행하고 도망간다거나 자기 엄마의 ‘몰카’를 찍고 ‘오피녀’, ‘메갈’ 같은 말을 쓰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알아야 한다. ”

그런 행동 네 생기부에 이득될 것 없다
여학생만 있는 고등학교에 가니 어땠나.

“사건이 많았다. 조금만 신고가 늦었더라도 아마 용화여고처럼 되었을 것이다. ‘스쿨 미투’가 불거지기 직전에 문제제기를 했으니까. 사립 기독교 여고인데,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교육청에 신고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성폭력 사건이 있었나.

“저도 피해 당사자다. 50대 남자 미술 선생님이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했다. 미술부 부단장이었는데 2년 동안 추행을 참았다. 너무 힘이 들었다. ‘이제 더는 못 참겠다’고 한계가 왔을 때 다른 선생님들의 성차별 발언들도 듣게 됐다. 흑인과 동성애를 비하하는 말까지 나왔다. 같은 학년 친구 20명 정도가 ‘참을 수 없다’며문제제기를 하자고 했고, 다 같이 모였다. 선생님들의 혐오 발언은 정말 너무 화가 났다. 한 명이 부모님에게 말씀드려 교육청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저 선생님 정년퇴직 얼마 안 남았으니 너희가 참아라’ 하는 게 학교의 태도였다. 그래서 청와대 신문고에다 ‘우리 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선생님을 처벌 해 달라’고 장문의 글을 썼다.”

이후 어떻게 됐나.

“미술 선생님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강당에 아이들을 모아서 설문조사를 했다. 피해자가 굉장히 많았다. 졸업한 언니들 중에도 피해자가 나왔다. 나중에 그 선생님이 ‘잘렸다’는 말을 듣고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스스로 사표를 쓸 수 있도록 학교에서 배려를 했다고 하더라. 이제는 학생들을 가르치지는 않지만 미술관에서 본인 작업을 하면서 잘 살 고 있다는 소식을 최근에 들었다.”

그동안 모두 침묵했던 이유가 뭘까.

“정규직 선생님들이 저지른 비리가 많다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학생의 성적을 조작하는 일도 심각한 수준이다. 문제를 제기한다고 바뀌는 게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몇몇 친구들은 트위터를 통해 문제를 공론화시키려고 하다가 불이익을 받을까봐 걱정이 되서 지우기도 하고 그랬다. 종교 재단이 운영하는 사립학교이다 보니 목소리를 내면 되레 학생이 처벌을 받지, 문제가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바닐라가 지난해 학교 화장실에 붙인 글. 담임 교사는 면담에서 이 포스터를 바닐라가 붙였는지 추궁했다고 한다.

성폭력 고발 이후 불이익을 받았나.

“담임 선생님이 성적에 들어가는 생기부(생활기록부)를 가지고 협박을 했다. 생기부는 담임 재량이니까 학생들은 굉장히 겁을 먹는다. 담임은 성차별 발언을 자주 했고 ‘동성애는 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저속한 발언도 여러 번 했다. 같은 반에 동성애자인 친구도 있는데 그 말을 듣고 굉장히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이런 학교 안의 문제를 포스트잇에 써서 화장실에 붙인 적이 있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당했던 성추행에 대해 문제제기도 하면 안 되는 것이냐고’고 썼다. 너무 답답해서 그랬다. 담임이 나를 불러서 그러더라. 이거 니가 한 거냐. 너 그런다고 바뀌는 것 없다. 그런 행동 생기부에 이득 될 것 없다.’ 이렇게 말했다.”

생기부에 어떤 내용을 썼나.

“‘고집이 세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안 되는 아이.’ ‘페미니즘 활동을 열렬히 펼쳤다’. 수정해달라고 계속 요구하니까 내용이 좀 바뀌었다. 하지만 성폭력을 고발할 때 같이 목소리 내 준 다른 친구의 생기부엔 ‘은둔형 외톨이다’라는 식으로 썼다. 페미니즘과 관련해 목소리를 낸 친구들은 대부분 안 좋게 쓴 것 같다. ”

페미니즘 활동이 성적에 영향을 미치나.

“고3이 되기 직전에 학교에서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려고 했다. 친구들은 자기 (입시) 활동으로 한창 바쁠 때였다. 요즘은 거의 수시로 대학을 간다. 수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생기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활동은 아무 것도 못한다. 나는 예체능(디자인 전공)이고 정시를 보기로 했으니까 뭔가 할 수 있었지만 나도 수시였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슬펐을 것 같다. 친구들 중에 이런 활동을 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나중에 졸업해서 해라’, ‘니가 지금 성적이 먼저지, 그렇게 선생님한테 문제 제기 하면 안 된다, 좀만 참아라’라는 말들 들은 경우가 많았다.”

선생님의 성폭력을 고발했을 때 부모님 반응은.

“일단 그런 일이 있었다는 데 굉장히 화가 나셨다. ‘지금 학생으로서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때 말해야 겠다’고 말씀드렸다. 사회에 나가면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이런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잘했다’고 하셨다. 부모님도 결국에는 지지해 주셨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머리칼을 잘랐다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지

“고등학교 1학년 때 ‘쭉빵카페’에 가입했고, 올해 초에 친구에게 ‘올뺌’ 카페를 추천받아 가입했다. ‘쭉빵’에는 아직 (내가 생각하기에) 여성혐오성 게시물이 많이 존재한다. 화장을 하거나,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올뺌’은 이런 분위기에 반발해 생긴 곳이다. 탈코르셋 운동을 열심히 한다. 남초 커뮤니티를 가 보면 여초 카페인 쭉빵을 비하하거나, 여성 아이돌을 성적 대상화하는 내용이 많이 올라온다. 올뺌에서는 그런 게시물을 스크랩해 댓글로 문제점을 논의하고 페미니즘과 관련한 글 공유하며 토론을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보면서 내 생각도 정리할 수 있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탈코르셋’이 뭐라고 생각하나.

“꾸밈노동이나 여성스러운 옷을 입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거나, 남성들이 보기에 예쁜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짧은 치마나, 딱 붙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기가 편한 옷을 골라 입는 것.”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고 있나.

“이제는 치마를 아예 안 입는다. 예전엔 많이 입었는데 교복도 졸업사진을 찍을 때처럼 꼭 필요한 때만 치마를 입는다. 3개월 전에 머리도 숏 커트로 잘랐다. 이전에는 (손날로 허리 즈음을 가리키며) (머리카락이) 여기까지 왔다. ‘탈코’를 하면 아침에 준비 시간이 확 줄어든다. 생활에서 불편한 점도 줄어든다. 그런데 나는 아직 화장을 조금은 하고 있어서...”

같이 하는 친구들이 많은지.

“요즘 엄청난 이슈다. 학교에 숏 커트를 하고 온 친구들이 굉장히 많다. 삭발하고 온 아이들도 있다. 화장을 아예 안 하는 아이들도 생겨난다. 저는 아직 거기까지는(수줍은 웃음). 중3때부터 화장을 했다. 빨리 꾸밈노동을 벗어야 하는데... 아... 뭔가 피부나 이런 데 자신감이 없어서.”

주체적 꾸밈은 코르셋이 아니라는 반박도 있는데.
이 대목에서 앞서 보이던 수줍은 웃음기는 사라졌고 어조가 돌연 매우 강경해졌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그들’로 지칭하기도 했다.

“히잡도 주체적 꾸밈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전족도 마찬가지다. 화장이 피부에 나쁘다는 건 그들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화장을 하지 않은 여성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화장을 ‘코르셋’이라고 지칭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들이 말하는 주체적 꾸밈은 솔직히 스스로를 그냥 옥죄는 것 같다. ‘탈코’를 한 사람들이 강요를 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완벽한 페미니즘 실천을 위해서는 탈코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탈코할 수 있는 상황이) 됐으면 좋겠다.”

페미니즘을 알기 전의 나를 생각하면.

“예전에 꿈이 현모양처인 친구한테 ‘좋겠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일인데 (그렇게 말한 것이) 너무 후회가 된다. 친구들과 종종 ‘너 예전에 나랑 이런 얘기한 거 아냐’며 얘기 나눈다. ‘진짜 우리 너무 많이 바뀌었다’, ‘바뀌어서 다행이다’라고 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한 후에도 한동안은 ‘그래도 낙태는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생명을 앗아가는 건데’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성의 선택권이 중요시되는 게 당연한 건데 잘못 생각했다. 기독교 재단의 학교를 다니며 교회의 장로나 집사, 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받다보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페미니즘 옳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 하시는 경우도 많다. 제가 기독교 신자이기도 해서 지원을 해서 간 학교인데 이럴 줄은 몰랐다.”

착하게 얘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트위터에선 어떤 활동을 주로 하나.

“마음 속에 있는 얘기를 다 한다. ‘덕질’도 한다. 주로 여성 배우. 김혜수, 문소리, 김희애, 그리고 케이트 블란쳇. 특히 케이트 블란쳇과 김혜수는 여성 배우로서의 고충이나 영화판과 드라마판에서 바뀌어야 하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한다. 그 점을 굉장히 존경한다.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정말 많은 일을 겪었을 텐데. 연예계는 성차별이 심한 곳 아닌가. 김기덕 감독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영화계도 상황은 심각하다. 그런 곳에서 페미니즘 얘기를 하면 남들에게 욕을 먹을 수도 있지만 계속 말을 한다는 게. 아... 너무 좋다.(두 배우 이야기를 할 때는 볼이 발그레해 질 정도로 상기된 모습이었다.)”

오프라인에서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은.

“탈코한 다섯 명 정도의 친구들이 (‘불편한용기’가 주최하는) 시위도 같이 나가고 있다. 물론 (우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도 있다. 학교에서 말싸움이 크게 한 번 난 적이 있다. ‘페미니스트 아니면 성차별주의자라고? 그럼 내가 성차별주의자야?’라고 반박한 친구가 있었다. 또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냐’라고 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들은 페이스북에 있는 남초 커뮤니티와 같이 잘못된 SNS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영향을 받는 책이나 콘텐츠는

“주로 유튜브 채널들. ‘너나나나’, ‘한국여자’, ‘굴러라 구르님’ 등등. ‘스브스뉴스’도 가끔 보고 ‘닷페이스’는 자주 본다. ‘한국여자’는 ‘탈코’ 후 자신들의 일상을 찍어서 올리는 채널이다. 이 유튜버가 나보다 두 살인가 어리신데 이 분이 말씀하시는 페미니즘에 많은 공감을 하고 있다. 올뺌 카페에 올라오는 ‘탈코일기’도 굉장히 인상적. 나는 그냥 인증샷 정도만 올리고 일기는 써 본 적이 없다.”

메갈리아는 해 본 적 없나.

“잘 몰랐다.”

메갈리아에서 시작된 ‘미러링’ 방식은 어떻게 생각.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 현실에서 남자들이 말하는 대로 ‘착하게’ 얘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좋게 말하면 듣지 않으니까. 너희가 한 말과 여성혐오를 그대로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이제 ‘메갈’은 ‘페미니스트’의 통칭처럼 됐는데.

“우리 사회는 성차별 사회이다. 차별 받는 여성들이 ‘더 이상 차별 받지 않겠다’고 소리를 친 건데...기득권인 남성이 왜 우리한테 뭐라고 하는가. 정말 화가 난다. ‘우리나라 페미니즘은 잘못 됐어’, ‘다 메갈이니 조심해’처럼 말하지 않는가. 페미니즘을 이야기한 성우를 해고했다는 것은 정말 자신들이 ‘한남’이란 걸 인정한 것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나라가 국민을 다르게 대하나

페미니스트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강남역 살인사건’을 꼽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그 때는 막 ‘입문’ 해서 잘 몰랐다. 당시에는 시위에 나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엄마와 큰 사건이라고 이야기했다. 반면 아빠는 문제의식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게 ‘인생 사건’은 당연히 ‘홍대 몰카’ 사건이다.”

어떤 점에서.

“여성이 피해자이고 남성이 가해자일 때는 수사도 제대로 안 하고 넘어가더니 남성이 피해자이고 여성이 가해자가 되자 어떻게 이렇게 빨리 수사가 진행되지? 나라가 이런 식으로 국민을 다르게 대하나? 너무 실망이 컸다. ‘아, 이건 정말 가만히 둘 수 없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홍대 몰카’ 사건이 계기가 돼 열린 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이후 여러 논란이 불거졌는데

“사실 시위에 관한 것은 말씀 드릴 수가 없는 것 같다. 주최측에서 어떤 의도를 했는지 제가 말씀드리는 게 좀 의도와 다를 수 있고 문제의식을 흐릴 수 있기 때문에.”

바닐라뿐만 아니라 인터뷰를 위해 접촉한 대부분의 10대 여성들이 이 문제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었다. 시위를 주최하는 ‘불편한 용기’가 개별 참가자의 언론과의 인터뷰를 금지하고 있어서다. 바닐라는 시위에 대한 직접적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3차 시위 직후 ‘재기해’ 구호가 비난을 받은 데 이어 워마드의 ‘성체 훼손 사건’이 크게 이슈화 됐다.

“저는 워마드의 활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통령께서는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하셨다. 그런데 왜 이 시위에 대해서는 부적절한 답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편파수사가 아니다’라는 대답은 사람들이 왜 시위에 나왔는지 모르는 것이다. 여성들은 화가 나서 왔는데,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정말 잘못됐다고 느꼈다. 대통령도 잘못하면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언론에서 과장한 면도 있다. 남성 중심적인 언론이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트위터에서는 지금 페미니스트끼리 여러 논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시위에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하게 한 것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대목에서는 말을 여러 번 멈추면서 중간 중간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이었다.)“사실 저는 지금은 여성들이 싸우기보다는 힘을 합쳐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드는 게 더 급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혜화역 시위 참가자를 ‘생물학적 여성’으로 제한한 데 대해서,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생물학적 여성이기에 겪은 문제를 얘기하는 시위인데. 생각을 좀 더 정리해야겠지만, 나는 트랜스젠더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꾸미고 화장하는 걸 좋아하니까 여자가 될 거야’라는 생각 자체도 성차별 아닌가? 여자로 하여금 이런 사고방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제가 이해를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생물학적 여성이기에 받은 피해를 중점적으로 얘기하는 시위다.”

결혼은 불이익이다

‘운동권’이나 ‘기성 페미니스트’와 같이 갈 수 없다고 생각하나?

“제가 아직 지식이 부족하지만 제 생각에는 페미니스트도 ‘급’을 나눌 수 있다고 본다. 특히 ‘3차 시위’ 이후 시위를 비난하는 페미니스트도 늘어나지 않았나. 나쁘지만은 않은 현상이라고 본다. 여자끼리 힘을 합쳐도 힘든 상황인데 남녀 대결구도가 아닌 여여 대결구도가 되는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또 다른 시위를 만들고, 더 많은 여성들의 시위가 일어나면 문제의식도 더 다양해 질 수 있다. 그리고 ‘운동권’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른다.”

기혼 여성이 가부장제에 복무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그건 여성을 비난할 일은 좀 아닌 것 같다. ‘비혼 선언’은 한국 남성에 대한 문제 제기이며, 뿌리 깊은 여성혐오 사회에서 자라온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 것이다. 저 개인적으로는 결혼이 여자에게 주는 이득이 없다고 본다. 불이익만 있다. 통계로 보면 결혼 적령기라고 하는 30대에 남성은 직장에서 잘리지는 경우가 적지만, 여성은 (양 손을 아래 위로 벌려 큰 공간을 만들어 보이며) 이만큼 떨어져 나간다. 그걸 보고 저는, 결혼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계속적으로 불이익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한 후에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도 문제의식을 갖고 여전히 페미니스트인 기혼여성도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지금 나온 게 아니라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그 때의 페미니스트들이 지금 우리가 하는 활동에 힘을 보태 주기도 한다. 다 같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공부를 하는 데도 페미니즘이 영향을 미치나.

“3주 전 학원에서 ‘여성이 좋아하는 사물을 구상하라.’는 수업주제가 나왔다. 문제 자체가 이상하다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여성이 좋아하는 액세서리나 한국 전통 문양의 액세서리를 그리는 학생들도 있었다. 한국사회에서는 아직도 여성의 노출 자체를 ‘예술’이라고 일컫는 문화도 있지 않는가.”

예체능 전공생이라 받는 성차별이 있나.

“학원 내에서도 성차별은 일어나는데, 학교보다는 심하지 않은 편이라 괜찮다.”

미래 세대는 이런 일 겪지 않았으면

학생이면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직장인보다는 잃을 게 없으니까. 겁 없는 나이니까. 어른이 되서 사회생활을 하게 될 때, 연인이 생겼거나 가족이 생겼을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 역시 선뜻 나서지 못하는 날이 올까봐 걱정이 된다. 그래도 신념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페미니스트가 많아지면 학교도 바뀔까.

“사립학교에선 일이 터지면 우선 입막음부터 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아이들이 ‘선생님, 그거 잘못됐어요’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진 것 같다. 바로 문제를 제기하는 습관이 생긴 거다. 한국지리 수업에서 ‘저출산 예방 대책을 논하시오’라는 과제가 나왔다. 우리 모두 손을 들고 ‘페미니즘 교육을 해야 한다’ ‘성평등 교육을 해야 한다’ ‘나라를 먼저 바꿔야 한다’ ‘결혼했다고 여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 이런 발언을 했다. 선생님은 ‘왜 나라 탓을 하냐, 너희가 먼저 많이 낳아야지’라고 말씀 하시더라.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기성세대이니까.”

어떤 세상을 원하나.

“시간이 지나면 내가 바로 그 기성세대가 될 수도 있다. 되겠지. 후배나 미래 세대 아이들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은 다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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