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목소리

“좋아하던 아이돌이 여성혐오 논란으로 욕을 많이 먹었다. 방탄소년단 랩몬스터. 그때 페미니즘을 접하게 됐다. (웃음) 좋아하는 가수의 여혐 논란이 있고 나니까 페미니즘을 공부해보고 싶었다. 책으로 먼저 접하고 트위터에서 계정을 만들어서 공부했다. 가장 처음 읽은 책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였다.
책 읽고 내가 지금까지 겪고 있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페미니스트란 단어를 알기 전에도 ‘여자애들은 무조건 핑크’라는 식의 말을 들을 때마다 반감이 있었다. 아, 그 마음이 이거구나 생각했다. 체육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남자아이들만 운동장을 차지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구나….”
“트위터는 애초에 페미니즘 활동을 하기 전부터 ‘덕질’용으로 했다. 덕질 계정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글을 많이 리트윗하거나 언급한다. 덕질용은 15년쯤 만들었고, 페미니즘 관련 계정은 2016년 말에 시작했다.”
“다른 온라인 카페나 커뮤니티는 별도로 하지 않는다. 여초카페 같은 경우는 나이제한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바지를 입고 싶은데 부모님은 불편한 치마를 입혔다. 레이스가 달린 활동이 불편한 옷들. 그리고 핑크색이 입기 싫다고 하면 ‘여자애가 왜 애기 때부터 입기 싫다고 하냐’는 말이 돌아왔다. 또 “여자애는 시집가면 끝”이란 말도 많이 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런 말을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결혼하기 싫다”고 대꾸했는데, 그때마다 “그런 말하는 애가 제일 먼저 시집간다”는 말이 돌아왔다. 친구들도 그렇게 말했다.”
“온라인에서는 트위터로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 오프라인에선 여성 시위를 나갔다. 학교에서는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오프라인 시위는 2차와 3차 혜화역 시위에 참가했다. 그 전엔 5월20일 홍대입구에서 있었던 낙태죄 폐지 시위에 나간 적 있다. 1차 혜화역 시위도 참가하고 싶었는데 약속이 있어서 가지 못 했고, 그 다음날 있었던 낙태죄 폐지 시위에 갔다. 이외에 시위를 나가본 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그게 가장 처음이었다.”
주연씨가 지난 7월7일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현장에서 찍은 사진.
“페미니즘 동아리는 올해 3월 생겼다. 2학년 학생들이 중심이 돼서 만들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토론한다. 지난 6월쯤 동아리에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는데 일주일 만에 폐쇄됐다. 페미니즘 관련 이슈를 올리는 정도였는데, 학교 친구들이 몰려와서 욕 댓글을 달았다. 동아리 기장이 2학년인데 3학년들이 찾아와 페이스북 페이지를 닫으라고 강압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학교 측에서도 논란이 커지니까 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가입한 건 페이스북 사태가 공론화된 이후다. 사실 그 전까진 동아리가 있는 줄 몰랐다. 선생님들이 동아리 이름을 가지고 뭐라고 해서 이름을 바꾸려고 논의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이름을 바꾸고 싶지 않다. 남자 동아리원도 꽤 있었는데, 페이스북에서 공격받고 친구들이 저격해서 많이 나갔다.
방과 후에 모여서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서로 생각을 말하고 토론하거나 한다. 동아리에서도 래디컬과 리버럴로 많이 갈린다. 하지만 어쨌든 페미니즘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인 사람들이고, 함께하는 친구들이라 생각한다. 온라인에서 사람들과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오프라인에서 함께 모이는 건 더 큰 힘이 된다. 결국은 인권동아리다. 모든 학교에 이런 인권 동아리가 하나씩 있었으면 한다.”
“친구들은 내가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하는 걸 안다. 친하지 않은 친구들은 “쟤 왜 저런 거 하냐”며 수군거리기도 한다.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는 친구와 내 이름을 언급하며 반에서 다른 친구들이 동아리 언급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동아리에 총 20명 정도 있는데 3학년이 얼마 없다. 얼마 안 가 페미니즘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3학년 이름이 다 알려졌다.
나와 친구가 길을 지나가는데 같은 반 남자애랑 다른 반 남자애들이 몰려와 욕을 하기도 했다. 학교 측에도 말을 했지만 조치는 없었다. 오히려 동아리 담당 선생님은 이런 동아리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특정한 사상을 주입하면 안 된다는 이유라고 했다. “메갈년”이라는 식의 욕은 흔하다.”
“댓글은 별로 신경 안 써서 잘 모르겠다. 학교에서는 많이 당한다. 페미니즘 동아리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지나가면서 일부러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던가. 주로 남학생들이 그러는데 여학생들도 간혹 있다. 속상하다.”
“페미니스트라는 게 알려지고 난 이후 수업시간에 남자애들이 일부러 들으라고 성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임산부석 만들면 안 된다.’ ‘나 누구 (브래지어) 끈 당겨 봤다. 누구 치마 속 봤다.’ 이런 말을 빈번하게 한다. 말해도 안 통할 애들이란 거 아니까 그냥 참았다가 쉬는 시간에 친구랑 하소연하면서 풀었다.”
“지하철에서 몰카에 당한 적 있다. 심지어 지난 주말이었다. 친구들이랑 혜화동에서 연극을 보려고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었다. 앞자리에 아저씨가 앉더니 휴대폰을 이상한 방향으로 들고 있었다. 눈으론 옆자리 여성분의 가슴이랑 허벅지 쪽을 계속 쳐다봤다. 행동이 수상해서 친구랑 집중해서 지켜봤다.
근데 아저씨가 내릴 때보니까 카메라 켜져 있더라. 우리를 찍고 있었던 거였다. 따라가려고 했는데 문이 닫혀서 붙잡지 못했다. 당연히 사진이 유포될까 걱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화장실 몰카에도 무뎌져서 친구들이랑 화만 내고 말았다. 신고도 안 했다. 노출이 많은 의상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설령 노출이 많은 옷을 입었다 해도 몰카를 찍은 사람이 문제라 생각한다. 우리는 그냥 놀고 있었을 뿐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페미니스트인 건 아는데 시위를 나가거나 관련 활동하는 건 모른다. 책을 읽는 걸 아는 정도? 페미니즘 책 읽는 걸 보고 어머니는 이런 쪽에 관심이 많으셔서 딱히 말씀은 안 하셨다. 아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시위에 나간 거 알면 시위를 못 나가게 할 것 같다. 그래서 말을 못 하고 있다.”
“지금은 올바른 페미니즘, 옳지 않은 페미니즘 따질 때가 아니라 생각한다. 이걸로 여자들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메갈리아, 워마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됐고, 남성들도 이제는 페미니즘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 이전까지는 여성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런가보다 넘겼겠지.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온라인에서 남자들이 여성인 척 일부러 댓글로 이간질하거나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페미니즘이 뭔지 알고 두려워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막기 위해서 필사적이다.”
“과격하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은 외국의 페미니즘을 받아들여서 부드러워져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외국 페미니스트들은 더 격하게 싸운다. ‘재기해’나 ‘한남유충’ 같은 말로 비난하는데, 한국 남자들이 쓰는 말이 더 격하다. 예전부터 ‘김치녀’, ‘김 여사’ 이런 식으로 여성비하를 하다가 ‘한남’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화를 냈다.
내가 보고 들은 가장 충격적인 말은 ‘피싸개’. 여성이 생리를 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부른다. 낙태죄 폐지 시위 기사 댓글에 ‘너네는 엄마 뱃속에서 찢겨 죽었어야 했다’고 쓴 걸 보고 상처를 많이 받은 기억도 있다. ‘내가 진짜 죽었어야 했나’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이젠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다. 그런 댓글을 이미 많이 봤고, 학교에서도 애들이 실제로 쓰는 말들이니까.”
“워마드가 여성인권을 많이 높인 건 확실해서 굉장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 추앙은 좀…. (한참 고민하다가) 여성이기 때문에 탄핵됐다고 보는 분들이 많더라. 여성 대통령이라 탄핵이 쉬웠던 건 맞다고 생각하지만 탄핵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동의하기 힘들었다.”
“래디컬 쪽은 소위 말해서 남성을 싫어한다. 근데 리버럴은 이것저것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자는 입장이라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주연씨가 지난 7월7일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현장에서 찍은 사진.
“그동안 참았던 게 한순간에 쏟아져 나왔다고 생각한다. 홍대 몰카 사건 이후 불법촬영에 대해 동일하게 수사하지 않은 거에 대해 나 역시 분노했고, 그래서 시위에 나갔다.”
“낙태죄 문제는 올해 처음으로 이게 문제구나 하고 생각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태아를 죽이는 건 해선 안 되는 일이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올 초에 트위터로 성교육 시간에 보여주는 낙태 영상이 조작인 걸 알게 됐다. 자궁에서 태아가 기구를 피해 도망가는 그 영상 말이다. 관련 기사도 찾아보고 그랬다. 시위에서 세포 때 제거하는 건데, 세포를 죽이는 게 살인이면 정자 죽이는 게 살인이냐 하는 구호가 와 닿았다.”
“문재인 대통령을 싫어하지 않는다. 대선 때도 꽤 많이 응원했다. 어머니랑 아버지가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이라 그런 데 관심이 많다. 3차 시위 때 사람들이 밑에서 구호를 외칠 때 나는 외치지 못했다.
이 문제가 이렇게 커질지는 몰랐다. 시위 끝나고 트위터에 들어가 보니 소위 말하는 ‘문빠’들과 싸우고 있더라. ‘재기해’는 ‘진짜 죽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신 차려라 이런 의미로 쓰였다고 생각한다. 구호보다 반응이 더 놀라웠다.”
“결혼한 여성도 못 오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하게 건 이해가 간다. 남성이 여성으로 바뀐 트렌스젠더는 여성성을 강조하지만 여성이 받는 차별까지 그들의 성적 정체성에 내재돼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분들이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는 래디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리버럴로 시작을 했지만 조금 변했다.”
“부드럽게 말한다고 해서 여성을 혐오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페미니스트가 되거나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 같지는 않다. 강경하게 나가야 우리의 주장을 좀 더 잘 피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별에 관계없이 내가 나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 내 인권을 어쨌든 스스로 지킬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알게 된 뒤로 사회적 차별이 더 많이 느껴졌다. 사회적인 차별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동아리가 알려진 뒤에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다. 물론 욕하는 애들도 있지만,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책을 읽었다고 하니 특히 여자 친구들이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든지 그런 식으로 많이 물어보고 관심을 가진다. 이런 식의 변화가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