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목소리

“마찬가지로 올해 3월부터. 혜화역 시위는 1, 2차에 참여했다. 3차는 못 갔다. 페미니즘 북클럽에 참석하고 있고, 또 아는 분들과 비혼주의자 모임도 하고 있다. 페미니즘 관련은 아니지만 결국 연결되는 모임이다.
페미니즘 관련 펀딩은 안 해봤는데, 후원은 많이 하려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 페미니즘 광고 실어야 하는데 후원금 부족하다고 해서 후원했고, 혜화역 시위도 후원했다. 영화 <허스토리>에 나온 것처럼 김문숙 회장님한테도 후원했다.”
“회사 들어와서 그렇게 됐다. (웃음) 2015년 말, 그러니까 3년 전에 입사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엄청난 남초 직장이다. 성비가 8대 2, 9대 1 정도 된다. 거기서 몇 달 있다 보니 결혼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웃음) 남성중심적 군대문화가 만연해서 아예 끼워주지 않았다.
입사 1~2년차쯤 됐을 때 같은 회사에 있는 여성 직원을 동료로 생각 안 한다는 글이 사내 인트라넷에 올라왔다. “여자가 직접적인 도움이 되냐” 이런 내용의 글을 누가 올린 거다. 댓글이 몇 백 개가 달렸다. 근데 다들 ‘걔네들이 무슨 동료냐’, ‘OO조무사들’ 이런 식의 댓글을 달아놨더라. 심지어 우리 회사 인트라넷은 실명제다. 실명을 까고 올린 거다. ‘현타’가 왔다.
실명을 공개하고 여성을 비난하는 글을 올려도 괜찮은 이유는 그런 글을 올려도 욕을 안 먹기 때문이다.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다. 글 쓴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는 댓글들이 다 ‘좋아요’를 엄청나게 받고 있었다. 너무 열 받아서 ‘나빠요’ 버튼을 쭉 눌렀다.
그러다 여자 선배로 추정되는 한 분이 참지 못하고 댓글을 달았다. 그때 한창 트위터에서도 유명하던 ‘equality doesn't mean justice’(동등함이 공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라는 문구였다. 이것만 댓글로 남겼는데, 그게 ‘나빠요’를 수십 개를 받았다. 이후로 일주일 동안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이 장면이 아른거렸다. 그때 처음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다.”
“질문이 나와서 생각해보니 가장 처음 불합리하다고 느낀 건 7~8살 때였다. 외갓집에 가면 남동생이랑 똑같은 잘못을 했는데, 외할머니가 나만 엄청 혼냈다. 동생은 그냥 ‘그럴 수 있지’하며 달랬다.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부모님께 ‘할머니가 나를 차별하는 것 같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학창시절엔 그런 기억이 별로 없다. 여고를 나오고 여대를 나왔다. 그래서인지 이때는 불합리함을 잘 모르고 지냈다. 사실 가정이 좀 화목한 편이다. 서로 의견을 잘 존중하는 편이어서 우리집처럼 가정을 꾸리는 게 내 이상이었다. 결혼해서 여자아이 하나, 남자아이 하나 낳고 싶었다. 그렇게 자랐는데 회사 입사 반 년 만에 그 생각을 접었다. (웃음)”
“같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분들이 다 그런 얘기를 하더라. 학교에서 불합리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부분 대학 때까지는 눈에 띄는 차별과 벽을 잘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다 같이 공부하니까.
그런데 돈을 버는 사회로 던져지면 철저하게 개개인이 이익을 추구하면서 갭이 느껴진다고 했다. ‘아, 저 남자는 받아주는데, 여자인 나는 안 받아주는구나.’ 나는 굉장히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회로 던져지니 그게 아닌 걸 알게 됐다.”
“회사에 들어와서 많았다. 돌려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너한테는 말하기 좀 그렇지만 사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지 않겠니’라는 말을 들었을 땐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아직도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엄청 많다.
공무원이다 보니 민원인의 경우에도 여자 직원이 전화를 받으면 보통 아저씨들이 말을 심하게 한다. 근데 남자 직원이 받으면 공손하게 받는다. 언제 한 번 여자 직원들끼리 ‘그 사람 정말 진상이야’라고 말했는데, 남자 직원이 지나가다 그러더라. ‘어? 나한텐 안 그랬는데.’”
“알렸다. 원래 제가 뭔가 하면 많이 알리고 다니는 편이다. 처음 독서모임을 시작했을 땐 주변에 얘기하지 말까 생각도 했다. 누가 ‘이날 뭐해’ 하면 ‘독서 모임에 간다’고만 했다. 나중에는 괜찮을 것 같아서 말했다. 남자들에게 말을 잘 안 했지만 여자 동료나 친구들에겐 적극적으로 얘기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더 적극적이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혜화시위 얘기 들어봤냐’, ‘나 요즘 이런 거 공부하려고 이런 모임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관심 있는 사람들은 대화를 이어나가고, 관심 없더라도 들어줬다. 여자들은 반박하지 않는다. (웃음) ‘왜 그러고 다니냐’고 하지도 않는다. 사실 이런 얘기할 때마다 ‘비난을 듣지 않을까’ ‘위협을 받지는 않을까’ 생각하면서 말하게 되지 않나.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걸 많이 알리는 게 중요한 것 같다. 3월 8일 전후로 페미니즘 공부를 적극적으로 했던 이유도 그 전까지는 조금씩 보는 정도였는데 실제로 모임에 나가보니 트위터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전부 실재하는 사람들인 거다.
그들이 내 옆에 앉아서 ‘난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있어’, ‘난 이렇게 목표를 잡고 나아갈거야’ 이런 말을 하는 걸 보고 만화 ‘원피스’에서 루피가 동료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 배 타고 나갈 수 있겠다.’ 내가 이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주변에 많이 얘기하려고 한다.”
“여성 동료들에게는 많이 한다. 남자들에겐 딱히 얘기할 기회 자체가 없다. 다만 페미니즘이란 단어만 안 쓸 뿐이지 이런 맥락의 대화가 나오면 적극적으로 말하려고 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번은 투블럭을 하고 회사를 갔다. 투블럭하고 일주일쯤 됐나. 화장실에서 손 씻다가 만나서 아는 언니를 만나 인사했는데, 언니가 갑자기 10초 정도 망설이더니 혹시 ‘탈코르셋?’ 이렇게 묻는 거다. 그때 ‘아, 그렇구나’ 싶었다. 각자 공부하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데 말은 안 하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 이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 혜화역 시위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걸 앞세워서 비난을 받았다. 학창시절부터 알고 있던 친구들 중 퀴어가 좀 있다. 퀴어라기보단 레즈비언이다. 바이섹슈얼도 있다.
트위터에서 그런 얘기를 봤다. 꾸준히 회자가 되는 얘긴데 #퀴어_내_성폭력. 거기서 성폭력 당하는 피해자들이 대부분 레즈비언들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퀴어 조직 내에선 레즈비언을 최하위로 둔다. 그런 조직과 우리가 연대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레즈비언들은 이미 우리와 연대하고 있다. ‘책 같이 읽으실래요’, ‘같이 공부하실래요’ 이런 모임에 나가는데 레즈비언도 많다. 그런 분들은 이미 연대를 하고 있다. 이 분들에게서 생물학적 여성 어쩌고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그런 말을 써본 적이 없다. 이 질문을 미리 받아보고 생각난 게 ‘보라니’였다. ‘보지’와 ‘고라니’를 합친 말인데, 교통사고가 난 여성을 차에 치인 고라니에 비유한 거다. 인터넷에서 남자들이 여자 죽은 시체 사진을 가져와 ‘고라니 봤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 벌써 1~2년 전부터 나왔던 표현이다.
워마드에서 ‘이기야노’체를 쓰는 것도 그렇고 언어를 무기로 삼고 동시에 빼앗아 와서 전복을 노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의미로 ‘한남 유충’ 얘기가 있다. 결혼한 페미니스트들이 아이들에게 유충이란 표현을 붙이는 건 좀 그렇다는 얘기를 트위터에서 많이 했다.
거기에 반박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아니, 그럼 교실 안에서 ‘보이루’, ‘앙 기모띠’ 얘기 듣는 여성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냐. 듣고 가만히 있으라는 거냐”였다. 단순히 ‘혐오 표현 들으니 기분이 나쁘네’가 아니라 반격할 무기로 생각하는 것 같다.”
(패드립이) 왜 계속 쓰일까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2차 혜화역 시위에서 삭발식 이벤트를 했다. 그것과 관련해 과격 시위 논란이 일었다. 사실 삭발식은 대학 시위 때 흔히 보던 퍼포먼스였다. 그래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과격 시위라는 반응이 너무 놀라웠다. 이 반응은 뭘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남자는 폭력적이고 과격할 수 있지만, 여자는 비폭력적이고 무해한 존재여야 한다고. 이런 전제 때문에 남성의 폭력은 원래 내재된 것이니 감당해야 하고, 여성은 원래 무해한 존재이기 때문에 조금만 폭력적인 성향을 보여도 ‘여자가 왜 이래’ 하는 소리가 나오는 거다.
그래서 많은 여자들이 남자친구와 갈등이 생겼을 때 이런 말을 듣는다고 한다. 예쁘게 말하라고. 갈등 자체를 해결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여성의 발화 자체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그 예쁘게 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도 폭력적일 수 있고, 여성도 혐오적인 언어를 쓸 수 있으며, 우리도 예쁘게 말하지 않을 수 있다.
남자들이 ‘보라니’라고 얘기했을 때 ‘어떻게 저런 말을 써’라는 반응은 있었지만, 언론이 나서서 ‘혐오 언어를 쓴다’고 도덕적 검열을 하거나 포털 실시간 검색에 오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여성이 비슷한 표현을 쓰니까 기사화가 되고 ‘혐오 언어를 왜 쓰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결국 ‘그렇게 얘기하지마. 예쁘게 말해’라고 하는 것 아닌가.
갑자기 얘기하다보니 그것도 생각난다. 배우 이유리씨가 주말 연속극에서 대사로 역지사지에 대해 말한 게 있다. “역으로 지랄을 해줘야 사람들이 지 일인 줄 안다.” 이 내용인 것 같다. 지랄을 안 하고 예쁘게 말했더니 자기 일인지 몰랐던 거지. (웃음)”
“사이트에 들어가 본 적은 있지만 글을 써본 적은 없다.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본 글인데 ‘여성들은 워마드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하더라.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모든 여자들이 소위 말하는 ‘웜년’도 아니고 ‘웜년’이 모든 여자인 것도 아니지만, 워마드가 최전방에서 욕 먹으면서 밀고 나가는 느낌이다. 뭔가 앞이 빽빽하게 막혀 있는데 워마드가 송곳으로 조금씩 뚫어 앞으로 나가면 다 같이 조금씩 앞으로 따라가는 듯한.
워마드를 안 해서 워마드 내에서 어떤 얘기가 나오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하지만 트위터에서 소위 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사람들이 논의하는 주제를 보면 대부분 워마드에서 이미 몇 년 전에 나왔던 얘기라고 하더라. 예를 들면 탈코르셋 같은 주제.
워마드에서는 이미 논의하고 있었는데 한참 뒤에 트위터로 넘어와서 또 다른 흐름이 되고 다시 2년쯤 뒤에 여초 카페로 넘어와서 더 큰 흐름이 되고 있다. 그걸 보면서 엄청 앞서있다는 생각을 했다. 워마드는 여성 의제를 먼저 주도하는 그런 역할인 것 같다.”
“깜짝 놀랐다. 나는 시위 참가 경험 자체가 많지 않다. 촛불시위 때는 밖에서 봤을 뿐이고 여성의 날 전후로 참가했던 활동도 소모임 정도였다. 시위 규모에 대한 감도 없었고, 지인이 같이 가자고 해서 간 거였다. 그런데 사람이 엄청 많았다. 아, 이 정도구나 싶은 느낌이었다. 왜 그렇게 많이 보였냐고 하면 분노, 분노 때문인 것 같다.”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 처음에는 ‘아, 이거구나’하는 깨달음이 있는데, 그 이후부터는 절망스럽고 고통스럽다. 여성에겐 국가가 없다는 말도 하지 않나. 나 혼자만의 싸움은 아니고, 같은 목표를 가진 여성이라는 엘라이(동맹)가 생겼지만 그 만큼 벽이 더 두꺼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취향, 회사에서의 직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정말 끝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기반으로 남성이라는 이익집단이 쌓아온 견고한 구조를 우리가 깨고 나아갈 수 있는 건가 하는 절망. 그리고 이걸 해나가야 하는데 그런 과정 자체가 너무 고통스럽고 분노를 느끼게 한다. 그런 분노가 우릴 광장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던 것 같다. 아픈 사람들도 처음에 아픈 줄 모를 땐 열이 39도까지 올라가도 머리가 좀 아픈가보다 하는데 병원 가서 체온을 재면 갑자기 기절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것 같다. 불법촬영 문제는 그냥 찍혔겠지 한다. 해외로 유출됐겠지. (웃음)”
“사실 ‘재기해’라는 말 자체가 ‘성재기씨가 어디 다리에서 떨어져 죽었듯이 너도 죽어라’고 하는 사전적 뜻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비아냥거리거나 비판하는 의미로 쓰는 거다. 앞에 문재인이 붙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수순이었다고 생각한다. 혜화역 2차 시위 때도 1차에선 없었던 성명문을 발표하면서 ‘본인을 자칭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남성 대통령 각성하라’는 말이 나왔다.
자칭 ‘문빠’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이 많았는데 조금 웃겼다. 우리나라 행정을 이끄는 수장이고, 조별 과제의 조장 역할 아닌가. 솔직히 조장은 잘 하면 욕 안 먹는 거고, 못하면 욕먹는 건데. 조별 과제 조장이 못 했으면 욕을 먹어야지 욕 하지 말자는 건 웃기다. 그걸 비판하는 게 국민으로서 있는 이유고, 그래서 우리가 투표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선인장씨는 지난 4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가했다.
“나는 맞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지칭한 이유는 그 단어가 대부분 퀴어 이론을 말할 때 퀴어의 존재와 구별하기 위해서 쓰이기 때문이다. 젠더 퀴어라고 하는 분들은 보통 신체는 남성인데 젠더 정체성을 여성으로 하거나 MTF라고 성전환 수술로 생물학적 남성에서 여성이 된 분들을 말한다. 생물학적 여성은 이런 분들을 배제하기 위해 나온 말이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항의 시위의 목적 자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생물학적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여성들은 계속 피해를 봤다. 하지만 적절한 대항수단이 없었다. 여성이 그럼 내가 몰카를 찍겠다고 했더니 난리가 난 거다.
이러한 경험과 총체적인 사회적 맥락이 혜화역 시위 배경에 있다. 그런데 생물학적 남성이 이런 맥락을 읽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본다. 그 맥락은 우리가 지금까지 수십 년을 여성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거다.”
“(한참 고민하다가) 말해준 단어에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쓰까페미’라고 하시는 분들은 ‘섞어 먹는다’고 해서 쓰까페미라고 불린다. 그 분들이 제창하는 게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다.
나도 이런 담론을 접한 지가 얼마 안 돼서 처음에 독서 모임에 갔을 때 ‘그래도 그 사람들도 소위 페미니스트라고 자칭하는데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고 갈래만 다른 거 아냐?’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트위터도 다양하게 팔로우를 했다. ‘쓰까페미’ 중에서 팔로워 몇 천 명을 가진 사람 위주로 여러 명 팔로우해서 타임라인을 봤다. 매우 혼돈스럽더라. “와, 이게 뭐지?” 했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담론에서든 여성을 읽어내려고 한다. 난민 얘기가 나오면 ‘여자들은 어디 있냐’, ‘여자 난민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 이런 식으로. 또 퀴어 얘기가 나오면 ‘레즈비언들은 퀴어 단체 내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냐’, ‘레즈비언 성폭행이 그렇게 많았는데, 퀴어 단체들은 이 문제를 덮고 페미니즘과 연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거냐’는 얘기를 한다.”
반면 쓰까페미라고 하는 분들은 PC(Political Correct·정치적 올바름) 한남 같다.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것 같다. 참 순진한 생각인데 난 우리 회사만 문제인 줄 알았다. 남자들이 많으니까. 그런데 페미니즘 공부하면서 많은 모임에 나가보니 직군도 다양하고 연령대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느끼고 있더라. 이 정도면 사회 자체가 기운 게 아닌가. 다른 나라 얘기를 들어보면 또 세계 자체가 기울었다. (웃음)
그런데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계적 중립은 사실상 상대편을 들어주는 거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고 싶은 의지가 없는 거다. 그냥 이대로 있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 사람들은 여성이니 페미니즘 의제엔 동감하지만 남성중심사회에서 사회화된 자신을 아직 못 버린 것 같다.
어쨌든 결국 일주일 만에 팔로잉을 다 취소했다. 그들도 래디컬 페미 쪽을 아예 배척하고 있더라. 래디컬 페미를 수용하면 자신들의 PC함이 밀리니까 그런 게 아닐까.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본인이 정당한가 아닌가’이지 여성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사실 페미니즘은 욕 먹을 각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욕을 먹으란 얘기는 아니지만, 이런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것은 모든 걸 의심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사회화된 사람들이다. 내가 뭔가를 좋아하면 ‘내가 좋아해서 좋아하는 게 맞을까’ 결혼을 하고 싶다면 ‘내가 결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맞나’ 내가 뭔가를 만들고 있으면 ‘내가 만들어 가고 싶은 건 정말 내가 만들어 가고 싶은 게 맞나’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자신을 재창조해야 한다. 원래 남성중심 서사의 히어로 영화를 정말 좋아했다. 이걸 버리려니 정말 고통스럽더라. 탈코르셋도 쉽지 않다. 내가 왜 이걸 알아서 욕을 먹을까 싶을 때도 있다.”
“필요하면 쓴다고 생각한다. 이런 얘기를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여성은 무해하다는 편견, 그리고 어린 여성의 소녀성 또는 나이든 여성의 모성애가 있다.
이 프레임을 여성에게만 씌우는 것 아니냐는 생각 때문에라도 온건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표현 자체에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성소수자 차별이나 장애인 차별 등 표현 자체의 문제는 있겠지만, 사회 맥락을 봤을 땐 나올만한 표현들이라 생각한다.
페미니즘에서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쪽수를 늘리는 것과 성공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일단 우리가 롤모델이 돼야 한다. 여성 모두가 롤모델이 되고 성공하고 밑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뽑힐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게 중요하다.
사회에 진출하면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이 ‘나는 성공 못 하겠다’였다.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는 절대 사장은 못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나. 베스트셀러 보면 여성들이 많이 읽은 책 중에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에세이가 많다. 자존감이 많이 낮다는 거다. 그렇게 위안 삼고 안주하면 안 된다.
‘야망 보지’라는 말이 있다. 야망을 가지고 더 많은 여성이 성공하고 위로 올라가야 한다. 시위란 이익집단이 하는 거다. 여성 시위에서 여성은 이익집단이다. 농민들이 쌀값 올려달라고 시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들이 이익집단으로 등장해 권리를 요구하면 놀라고 비난한다. 페미니즘은 쪽수만 늘린다고 성공할 수 없다. 성공하기 위해선 필요하면 과격한 언어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결론이다.”
“목표가 생긴 것 같다. 사실 회사에서 사람들이 잡는 목표는 단순하다. 가령 좋은 차를 할부로 샀으니 갚으려고 회사 다닐 거야라든지. 아니면 나중에 결혼하고 집도 사고 싶은데 돈을 모으기 위해 회사를 다닐 거야라든지. 또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어서 승진을 할 거라든지 같은 목표가 있다.
여자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여자 상사가 안 보인다. 안 그래도 수도 적은데 롤모델 자체가 안 보였다. 페미니즘을 배우기 전에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서사가 너무 강해서 여자 동료들이랑 힘을 합쳐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이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남자들이 어떻게 승진을 하는지 너무 보이는데…. 나는 승진을 못해서 월급도 적게 벌면 이 회사에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임파워링(empowering)’을 배웠다. 여자라는 동료가 생긴 느낌도 들었다. 이걸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나가야겠다. 사실 전에는 ‘이 회사 다니든 말든’ 이런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나중에 들어올 여자 후배들을 위해서 좋은 선배가 돼 있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여자들이 다양한 걸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면 한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원더우먼>을 보는데 아마조네스 여전사들이 초반에 훈련하는 장면이 나왔다. 찾아보니 실제로 미국에서 스턴트로 일할 여자 분들을 여자 경찰관, 운동선수 등에서 찾았다고 했다. 그걸 보면서 ‘이래서 사람들이 히어로 서사에 열광하는구나’라고 느꼈다. 우리도 이럴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이걸 못 느꼈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목표를 가질 수 있고, 충분히 건강해질 수 있고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욕망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런 걸 모두가 느꼈으면 한다. 모두가 느끼지 않더라도 나라도 변할 수 있었으면 한다. 내가 변해야 주위가 변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