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벽돌 성채의 모습을 하고 웅장함을 자랑하는 인도의 쿠탁 기차역 맞은편에는 조그만한 학교가 숨어있다. 건물 밖에 달린 ‘쿠탁 플랫폼 학교(Cuttack Platform School)’ 명패. 한때 학교는 쿠탁역의 기차 플랫폼 위에서 수업을 했다. 학생들은 기차역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이다.

기차
학교
플랫폼
인도 커탁 지도

쿠탁 플랫폼 스쿨은 비영리단체 ‘루치카(Ruchika)’가 철도조합 사무실 건물을 빌려 운영한다. 사무실 쇠창틀 위에 ‘쿠탁 플랫폼 학교(Cuttack Platform School)’ 명패도 달았다. 나무 판자에 페인트로 글씨를 썼다.

이 학교는 2016년까지 이름 그대로 쿠탁역 플랫폼에서 수업을 했다. 기차역에서 구걸하는 아이들, 폐품 줍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지역 당국이 쿠탁역 현대화 사업에 나서면서 역 바깥으로 밀려났다

쿠탁역 아이들 아이들

비싼 사립학교 스쿨버스의
흙먼지 뒤로 아이들이 걸어온다.

쿠탁 플랫폼 스쿨에 등교하는 라훌과 비라

쿠탁의 아침은 분주했다.

열차가 큰 소리를 내며 플랫폼으로 밀려 들어왔다. 기차역과 학교 사이를 지르는 도로 위로는 자동차, 오토바이, 삼륜차 릭샤, 짐자전거가 바쁘게 다녔다. 차들은 수시로 경적을 울렸다.

노란 스쿨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기찻길 학교 문을 스쳐지나갔다. 비싼 사립학교 스쿨버스다. 흙먼지 뒤로 키 작은 남자아이 하나가 동생 손을 잡고 걸어왔다. 라훌(7)과 비라(6)다.

쿠탁역 아이들

열 평 남짓한 공간이
아이들의 교실이자 운동장이다.

기찻길 학교 다른 아이들처럼 두 아이도 말고다운 슬럼에서 산다. 8시40분. 수업이 시작하려면 20분이나 남았다. 라훌과 비라는 먼저 온 아이들과 함께 테니스공을 던지고 받으며 놀았다.

어느새 서른 명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책가방을 메고 온 아이도
교과서를 가져온 아이도 없다.
기찻길 학교에 모든 게 준비돼 있다.

선생님들은 건물 안에서 교재를 꺼내왔다.
작은 칠판과 분필, 칠판지우개,
낱말카드, 교과서, 공책과 필기구,
쓰기판을 차곡차곡 쌓았다.

쓰기판은 A4용지 크기의 나무판을
까맣게 칠한 물건이다.
칠판처럼 분필로 썼다 지울 수 있게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글자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쓴다.

쿠탁 기찻길 학교는 6살부터 11살까지,
1~4학년 과정을 가르친다.
아이들은 학년별로 모여앉아,
낱말카드를 맞춰보고,
공책에 영어 문장을 베껴쓴다.
한쪽에서는 구구단을 외우는데 열심이다.

기찻길 학교는 1985년 인도 동부 오디샤주 부바네스와르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현재 루치카는 이웃 도시인 쿠탁과 푸리, 켄드라파라로드 3곳에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원조’인 부바네스와르 학교는
3년 전 기차역에서 밀려난 뒤 사라졌다.

인도 푸리 지도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들

푸리 학교도 쿠탁처럼 기차역 옆 철도조합 사무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대여섯 살 어린 아이들이 안쪽 작은 방에 모여 공부하고, 그보다 나이 많은 아이들은 큰 방에서 수업을 듣는다. 학생 수는 쿠탁과 같이 모두 30명이다.

푸리역 학교 아이들

카비타 선생님이 큰 방의 아이들을 한명씩 불러 세웠다. 오디샤주 공용어인 ‘오디아’ 교과서를 차례로 읽게 하고, 숫자 1부터 25까지를 영어로 외우게 했다.

원(1)’부터 ‘트웬티파이브(25)’까지 영어로 숫자를 외우는 데도 막힘이 없었다.

푸리역 학교 아이들

매주 월~금요일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되는 수업시간. 플랫폼스쿨에서는 오디아와 영어, 수학을 주로 공부한다. 세 과목 사이사이 음악과 미술도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하고 율동을 하면 음악수업, 쓰기판을 하나씩 손에 들고 분필로 그림을 그리면 그게 미술수업이다.

“나쁜 말 하지 말아요.
나쁜 것도 보지 말아요.
나쁜 길로 걷지 말아요.
그리고 다함께 춤추고 놀아요.”

푸리역 학교 아이들

아이들은 가사에 맞춰 율동을 춘다.
슬럼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를 바라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노랫말에 담겼다.

아이들은 춤추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수학 문제풀이가 어려워 옆자리 아이샤의 공책을 힐끔거리던 라훌도, 영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머리를 긁적이던 야시도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카비타 선생님은 “아이들은 웃어야 한다. 아이들을 웃게 하는게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쿠탁역에서 구걸하는 아이들

하루 두 차례

구걸 시간

수업 밖에서도 아이들의
‘진짜 삶’은 계속된다.

쿠탁 학교의 학생 중 일곱 명은 기차역에서 구걸을 한다. 아이들은 오전 7시와 오후 4시, 하루 두 차례 사람이 가장 많은 출퇴근 시간에 구걸을 간다. 플라스틱 폐품도 줍는다.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이지만 집안 살림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푸리 학교도 사정은 비슷하다.

쿠탁 플랫폼 스쿨의 라케시(9)는 폐품을 줍는다. 철로를 따라 걸으며 승객들이 먹고 버린 물병과 아이스크림컵, 맥주병, 일회용 숟가락을 주워다 자루에 담았다.

많이 주우면 하루에 자루 하나 정도를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모은 폐품을 팔면 100루피, 1600원 정도를 받는다.

기차길에서 폐품을 줍는 플랫폼 스쿨 학생 라케시(9)

하루 두시간
폐품을 줍는다

아홉 살 라케시카 쿠탁역 철로를 따라 걸으며 승객들이 버린 플라스틱 폐품을 줍고 있다.

쓸 만한 게 별로 보이지 않자, 라케시는 자루를 반도 채우지 못한채 30분 만에 일을 끝냈다. 집에 갈 시간이 됐다고 했다.

라케시의 집은 다른 아이들 집보다 더 후미진 곳에 있다. 집 옆에는 마대자루가 여러개 쌓여 있었다. 라케시가 자루를 하나씩 열어 보여줬다. 유리, 쇠, 플라스틱 등 종류별로 나눈 폐품들이 차있었다. 아버지를 도와 폐품을 분류하는 것도 라케시의 일이다.

옆집에 사는 아이샤네 아빠가 낯선 손님을 보더니 두 손을 마주대며 인사했다. 곁에 선 라시드 선생님이 아이샤의 아빠에게 안부를 물었다. 기찻길 학교 선생님들은 슬럼의 부모들과도 잘 아는 사이다. 아이들 공부 뿐 아니라 집안 사정까지 챙기는 게 일이기 때문이다.

슬럼의 남자 어른 중 67%가 알콜중독,
10%는 약물중독이다.

라케시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아이를 때리고 욕설을 한다. 주비나의 아버지도 술에 취하면 소리를 지른다. 푸리 학교에서 만난 로한과 수비도 같은 말을 했다.

플랫폼 스쿨 학생들과 선생님들

기찻길 학교는 슬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가르친다. 하루 세 끼 온전히 챙겨먹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메일 똑같은 메뉴지만 점심을 제공한다.

아이들을 일반학교로 보내는게 루치카의 목표다. 지난해 세 학교에서 총 18명을 일반학교로 보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구걸하고 폐품 줍는 삶을 벗어나려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플랫폼 스쿨 인데르지트 쿠라나 여사

학교의 설립자는 인데르지트 쿠라나 여사다. 33년전 뉴델리의 선생님이었던 그는 친척을 보러 왔다가 기차역 아이들의 삶과 마주쳤다. 쿠라나는 아이들을 절망에서 건져내기 위해 부바네스와르역에서 일요일 마다 학교를 열었다. 구걸하는 아이, 넝마 줍는 아이,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들을 모았다.

11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학교는
성장해 지금의 기찻길 학교 형태를 갖췄다.

플랫폼 스쿨 선생님들

쿠라나를 따라 루치카에 합류한 선생님들은 하루 1000원도 안되는 돈을 받아가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선생님들은 기차역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플랫폼으로 모았고, 슬럼을 돌며 부모들을 설득했다. 기찻길 학교는 2002년에 16개역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지금 기찻길 학교는 흔들리고 있다. 기차역 현대화 사업이 곳곳에서 시작되고 구걸 단속이 강화되면서 루치카 학교들은 플랫폼 바깥으로 밀려났다.

16곳이던 학교는 2010년 11곳,
2015년 8곳으로 줄었고
이제는 3곳만 남았다.

사이언스 온 휠스

달리는 과학실험실
사이언스 온 휠스

‘사이언스 온 휠스(Science on Wheels)’는 루치카의 교육 프로그램들 중 하나다. 이름 그대로 버스 안에 과학실험실을 만들었다.

페트병으로 만든 간이청소기와 간이프로젝터, 수력으로 여닫는 다리, 빛의 굴절을 이용해 실내를 밝히는 집 등 다양한 과학 모형들을 버스 안에 채웠다. 슬럼 아이들이 신기한 모형을 직접 보고 만지면서 과학에 흥미를 붙일 수 있도록 했다.

버스학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2시 루치카 본부에서 출발해 방과 후 교실을 운영하는 슬럼가의 보습학교로 향한다. 출발 한 시간 만에 목적지 텔루구바스티 슬럼으로 들어섰다.

사이언스 온 휠스

버스가 오자 공부하던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나왔다.

50명의 아이들을 10명씩 조로 나누어 차례로 버스에 올렸다. 니베디타는 차례로 모형을 움직여 보면서 원리를 설명했다. 니베디타의 시범에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이 금세 조용해졌다.

사이언스 온 휠스
사이언스 온 휠스

수업은 두 시간 만에 끝이 났다. 운전기사는 마지막 조 아이들까지 차에서 모두 내린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버스학교는 이제 몇 달 뒤에나 이곳을 다시 찾을 것이다. 하루 한 곳씩, 100군데가 넘는 슬럼 보습학교를 차례로 다 돈 다음에야 순서가 오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하지만, 슬럼의 아이들에게 주어진 기회의 문은 너무 좁다.

구걸을 하는 주비나와 리야, 쓰레기를 줍는 라케시. 아이들은 기차역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찾을 수 있을까.

사이언스 온 휠스

버스가 움직이자,
차를 향해 손 흔드는
텔루구바스티 아이들의 얼굴도
조금씩 멀어져 갔다.

기찻길 학교를 돕고 싶으신 분들은
'루치카' 홈페이지를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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