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 90년대생들을 이해하는 것이 기성세대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나 보다. 90년대생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 <90년대생이 온다>가 최근 100만부를 돌파했다. 저자는 ‘90년대생’을 이전 세대와 다르게 ‘참지 않는 세대’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사실 90년대생 이전에도 ‘나는 나야’를 외치던 젊은이들이 있었다.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세대. 민주화와 3저 호황, 해외여행 자유화를 거쳐 넘쳐나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첫 세대. 바로 X세대*다.
*한국의 X세대 기준: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이들로 주로 1970년대초에서 1980년대초 출생한 이들을 가리킨다.
X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단연 ‘나’였다. 집단주의가 무뎌지고 드디어 ‘개인’과 ‘개성’이 등장했다. X세대는 파격적인 패션을 선보였고, 압구정, 강남역 일대 등 젊음의 거리들을 탄생시켰다. 1990년대는 대중문화의 시대이기도 했다. 서태지로 대표되는 스타들이 쏟아졌다. 장편의 ‘웰메이드 드라마’가 제작되면서 TV드라마의 황금기도 찾아왔다.
97년 갑작스러운 외환위기와 경제불황이 찾아오기 전까지, X세대는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주역으로 대한민국을 들썩였고, 사회는 이들에게 ‘신인류’라는 별칭까지 붙여주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이게 20년 전 서울 거리라구요?”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X세대가 누렸던 풍요로운 시대적 상황과 개성넘치는 패션,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이 융합된 문화들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90년대를 꽉 채웠던 X세대의 패션, 거리, 문화의 상징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라졌을까? 아니면 오늘의 문화로 이어지고 있을까? ‘난 나야. 남이 하란대로 하기 싫어’라고 외쳤던 X세대와 ‘점심시간은 자유시간’이라 말하는 90년대생은 서로가 낯설지 않다. 다른 듯 닮은 두 세대가 모여 90년대를 호출해본다. 차장님, 저희 함께 그때 그 시절을 불러볼까요?
X세대 8255!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딱 붙는 가죽 바지, 펑퍼짐한 힙합바지, 배꼽이 보이는 크롭 탑, 마름모 선글라스….
90년대에는 자유분방함이 패션의 미덕이었다. 청년들은 앞 뒤가 다르거나, 양쪽이 다른 언밸런스 패션을 즐겼다. 여성들은 10cm의 통굽과 군화, 남성들도 굽이 있는 까만색 말구두(웨스턴 부츠)를 즐겨 신었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는 샛노란 탈색에 모히칸 헤어, 피어싱, 패션 문신들이 넘쳐났다. 유명한 ‘압구정 날라리’의 탄생이다.
X세대들은 ‘이렇게 입어야 한다’는 전형적인 패션을 거부한다. 기분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대로 옷을 입었다. 물론 당시 어른들은 파격적인 청년들의 모습에 혀를 차기도 했다. 한 지상파 뉴스에서는 청소년들의 복장에 대해 ‘어른들 입장에서 보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요즘 청소년들 옷차림’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물론 그 걱정 어린 시선에 X세대는 다음과 같이 화답한다. “어쩌라구요, 전 남의 시선보다 저를 표현하는게 더 중요해요.” X세대를 겨냥한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의 광고에선 이런 멘트까지 나온다.
(순서대로)1998년 등이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성이 서울 압구정동 거리를 걷고 있다. 과감한 노출, 화려한 옷차림의 여자들로 붐비는 압구정동 거리풍경, 본사 취재사진.
“길에서 선글라스도 많이 썼고, ‘말구두’라고 굽이 있는 까만색 구두가 있었는데 그 구두를 많이 신었죠. 저항문화 혹은 락을 즐기던 친구들은 스키니한 가죽 바지, 가죽 점퍼, 말구두를 주로 신고 서태지와 같은 음악 스타일, 힙합을 좋아하던 친구들은 통이 큰 옷, 통이 큰 바지, 독특한 모자를 즐겨 입었죠.”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청바지가 유행이었죠. 한번은 큰 돈을 주고 샀었는데, 빨래줄에 널어놓은 사이 누가 그걸 훔쳐간적이 있습니다. 몇번 안 입은 바지였는데... 그거 하나만 홀랑 훔쳐가버리다니! 그 정도로 인기가 있었죠.”
마리떼 프랑소와 접어 (76년생)
“SES가 1990년대에 데뷔했는데, 그때 통 넓은 바지를 입고 나와서 저도 딱 붙는 쫄티에 통큰 바지를 따라 입었던 것이 기억나요. 거기에 통 굽 신발이 세트. 날씬한 사람들뿐 아니라 모두가 딱 붙는 쫄티를 많이 입었어요. 룰라의 채리나 패션도 많이 했죠. 두건 쓰고 쫄티 입고.”
어피치 J (79년생, 더쿠1세대 서태지팬)
최초의 유니섹스 스타일
90년대 여성 메이크업과 패션은 여리여리함보다 중성미를 강조했다. 붓으로 직접 그린 립라인, 죽은 장미색의 립스틱, 날렵하게 찍어 올렸던 눈썹라인 등이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미팅을 하면 담배 피는 여학생을 만나는 것이 드물지 않았어요. 담배 피는 것도 일종의 패션이었죠. 화장도 엄청 진하게 했어요. 김남주 스타일? 머리도 똑 떨어지는 칼 단발을 많이 했는데, 굉장히 중성적인 이미지죠.”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그 시절 화장은 얼마나 달랐을까요? 초록색, 고추장색, 흰색...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컬러를 사용했던 중성적 화장, 편집자가 직접 시도해봤습니다. 영상에서 확인해보시죠.
패션에서도 ‘중성미’가 핵심 키워드였다. 성별의 구분이 없는 유니섹스 패션이 한국에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남자들도 중성적인 옷을 입고 꽁지머리를 하기도 하고, 여성들 사이에서는 일명 ‘톰보이 스타일’이 큰 인기를 끌었다. 남녀 할 것 없이 납작한 타원형의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는데 이는 남성용, 여성용 구분이 없는 최초의 유니섹스 스타일 선글라스였다.
“저도 엄마 재킷을 많이 빌려 입었어요.(웃음)”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중성적 톰보이 스타일도 인기였어요. 이상은, 신은경, 박선영…. 이상은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중성적인 모습 때문에 남자냐, 여자냐 논란도 있었죠. 한편으로는 여자들이 숏컷을 많이 했어요. 학생들의 경우에는 두발규제 때문에 머리를 길게 기르지 못하니까 숏컷을 많이 했던 것 같기도 해요.”
어피치 J (79년생, 더쿠1세대 서태지팬)
이 세상 패션이 아니다
▲ X세대라면 누구나 기억할 브랜드들, 모두 안다면 당신은 영락없는 X세대!
유행은 돌고 돈다, 90년대 패션이 ‘힙한’ 것으로
몇 년 전부터 남녀 할 것 없이 바지폭이 점점 넓어지고, 와이드 팬츠, 커다란 재킷이 상가에 넘쳐나는 것을 보자면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90년대 룩으로 무장한 인디밴드 잔나비와 혁오의 레트로한 감성은 요즘 신세대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인디밴드 혁오의 패션잡지 엘르 화보, 두루두루 amc 제공 사진.
‘힙하다’. 밀레니얼 세대들이 90년대 거리 패션을 보며 공통적으로 응답한 키워드다. 20년 전 패션들이 유행을 돌아 신선하고, 세련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2018년 패션업계에서는 과거를 키워드로 한‘레트로’, ‘레플리카’, ‘클래식 라인의 부활’ 등 이 트렌드였다. 최근에는 레트로에서 파생한 신조어 ‘뉴트로’와 ‘힙트로’도 등장했다. 이들은 과거의 패션과 트렌드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새로운 트렌드를 가리킨다.
“초등학생 때 크롭티를 입은 언니들을 보며, 대학생이 되면 나도 저렇게 배꼽티를 입고 다닐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런 시대는 오지 않더라고요. 아쉬웠어요. 요즘 다시 등장하는 90년대 길거리 패션을 보면 힙하게 느껴져요. 무엇보다도 편해보여서 좋아요. ”
고라니는울지않아 (89년생)
“90년대 패션이 요즘 청년들이 많이 입고 다니는 소위 말해 ‘힙한’ 패션인 거에요. 테가 얇은 안경, 펑퍼짐한 바지 등등..촌스럽다기보다 오히려 세련되고 자유분방한 느낌?”
유진최 (93년생)
“…지금 저렇게 입고 홍대를 거닐면 오히려 ‘힙하다’는 평가를 들을 것 같아요. 획일된 패션보다는 내가 입고 싶은 것을 입는 분위기도 좋아요.”
바미리 (93년생)
뉴트로 열풍의 중심에는 경험해본 적 없는 과거를 회상하며 이를 새롭게 해석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 홍대·신사·이태원 등지에 즐비한 빈티지 가게에서 하나밖에 없는 복고 아이템을 구매하고, 을지로나 후암동의 독특한 공간을 방문해 필름 필터가 적용된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90년대 부흥기를 고스란히 담은 듯 흥이 넘치는 복고 팝송(씨티팝)을 새롭게 리믹스해 듣는 행위 등이 그러하다.
“완전 힙하죠. 새하얀 재킷에 선글라스하며…. 이때와 지금 저희 세대와의 차이가 있다면 저희 세대는 멋있다고 느끼면서도 이런 패션들을 선뜻 시도하지 못한다는 부분 같아요. 혼자 너무 튀면 안된다는 무언의 룰이 있는 느낌. ”
유진theYoung (93년생)
밀레니얼 세대가 ‘힙하다’고 평가한 X세대의 특징을 해부해보자. 개성을 살리고 내가 편한 대로 입고 동시에 남들 앞에서 주눅들지 않는 ‘자신감’에 대한 동경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크롭티에 찢어진 청바지도 놀랍지만, 뉴스 리포터 앞에서 당당하게 “이게 기분이 조크든요~” 라고 말할 수 있는 태도. 이 ‘조크든요’ 감성이 밀레니얼 세대에게 선망의 포인트가 된다. 90년대 패션이 밀레니얼 세대를 만나 다시 ‘힙한 것’으로 되돌아 오기까지, 그 이면에는 경제적으로는 불가능하더라도 마음만큼은 90년대 청년들의 당당함과 자신감을 소환하고자 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바람이 깔려있는 건 아닐까.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 압구정동에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라는 까페가 생겼다. 온통 나무 나무로 인테리어한 나무랄 데 없는.... 그 옆은 뭐, 매춘의 나영희가 경영한대나 시와 포르노의 만남 또는 충돌...’ – 유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
1991년 4월, 시인 유하의 시집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가 출판됐다. “뜬금없이 바람이 부는데 왜 압구정동을 가?”라고 반문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문구는 당시 압구정동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감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리라.
유하는 시에서 압구정 거리를 하릴없이 거니는 청년 군상들에 대해 묘사한다. 실제로 1990년대 압구정 거리에는 돈과 시간을, 그들의 청춘을 원 없이 소비 할 준비가 된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압구정에는 세련된 서구식 카페, 퓨전바, 패스트푸드점이 있었고, 상가들 앞으로는 스포츠카들이 줄 서 있었다. 최신 유행하는 패션은 물론 서구에서 넘어오는 신문물은 압구정동으로부터 시작됐다. 해외 유학파, 교포 청년들이 많았던 탓에 압구정동을 ‘오렌지족의 아지트’라고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1992년의 압구정동 거리, 본사 취재사진.
(순서대로) 1994년 압구정동 등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는 신세대 여성들, 본사 취재사진. 1993년 본사 취재 사진, 국내에 처음 문을 열었던 압구정 맥도날드 매장 앞 청소년들.
“압구정동이라고 하면 제일 선망되는 곳이었죠. 지금 청년들에겐 압구정이 그렇게까지 안 느껴질까요? 압구정은 하나의 상징이었던 것 같아요.…부유층 자제들로 해외유학을 다녀와 소비문화에 빠져있던 청년들을 ‘오렌지족’이라 부르고, 오렌지족을 따라하려고 국산차라도 타고 다니며 놀던 친구들을 ‘낑깡족’이라고 불렀었죠.”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압구정 커피숍에 가서 파르페를 시키면 예쁘게 꾸며진 파르페 맨 위에 우산모양의 장식을 꽂아줬어요. 자리마다 전화기가 있는 카페도 있었는데, 그런 곳은 좀 비쌌던 기억이 나요. 카페 가운데에는 당구대, 포켓다이가 있었고. 의자는 천의자에 담배냄새에 항상 찌들어 있었죠.”
허리케인 블루 (76년생, 90년대 문학청년)
유하의 시와 동명인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1993)>또한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방황하는 청년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당대 스타가수였던 신해철이 직접 부르거나 작곡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 서로 엇갈리지 않기 위해 약속 장소로 자주 꼽던 명소들이 있었다. 일명 만남의 명소로 강남역 뉴욕제과, 강남역 타워레코드, 종각역 종로서적, 신촌현대백화점, 대학로 KFC, 압구정 맥도날드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나 강남역 뉴욕제과는 1980년대부터 으뜸 약속장소로 손꼽히던 곳이다.
“뉴욕제과는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었죠. 정작 들어가서 빵을 사는 사람은 없었는데(웃음). ‘어디 앞에서 만나?’ ‘뉴욕제과’ 이러면 ‘오오오’ 하는 느낌. 말하자면 맘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혜화, 신촌, 홍대 이렇고 다음 단계가 강남역 뉴욕제과 앞. 압구정은 각 잡고 가야되는 있어 보이는 곳.”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1997년 대학로거리
(순서대로) 1998년 서울 만남의 명소중 한 곳인 종로서적 앞, 본사 취재사진. 1997년 종로서적에서 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 본사 취재사진.
약속 상대가 먼저 가거나 서로 엇갈리는 경우를 대비해 카페 등에는 커다란 메모판이 놓인 곳들이 많았는데, 그곳에 약속 상대가 남기고 간 필적, 메모가 없는지 체크 하던 것이 일상이었다. 현재는 사라진 종각의 ‘종로서적’ 또한 강북에서 손 꼽는 만남의 장소였는데, 이는 상대가 늦어도 베스트셀러 코너를 서성이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대 또한 X세대가 꼽는 청춘의 거리이지만 지금과는 결이 달랐다. 상업화된 관광지가 아닌 주로 락카페(록카페), 라이브 클럽 등이 모여있던 일종의 서브컬쳐의 진원지이자 인디밴드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95년 8월8일 대천 해수욕장 페스티벌 공연에서 드럼을 치고 있는 X세대 갤러거 Y(75년생)씨. 갤러거Y씨는 라이브 연주를 듣기 위해 신촌, 홍대, 혜화동 일대의 락카페와 재즈클럽 등을 자주 갔었다고 기억한다.
“상징적인 공간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죠”
군데군데 임대안내 문구가 붙어있고 다소 휑해 보이는 압구정 로데오거리. 한때 문화의 발상지로 불렸다던 명성이 낯설어 보이기까지 한다. 전성기는 떠나갔고, 거리를 가득 메웠던 청년들은 수 많은 대체 공간들로 흩어졌다.
만남의 장소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편리한 지도 어플이 많아진 덕에 청년들은 굳이 만남의 장소를 통하지 않더라도 좀 더 쉽게 만나고 흩어질 수 있게 되었다. 새로 생긴 가게가 있으면 그 가게의 정보를 공유해 그곳에서 바로 만나기도 한다.
물론 압구정 로데오 거리와 같이 대표적인 거리가 사라졌을 뿐 여전히 청년들이 찾는 명소들은 존재한다.
“90년대의 압구정 거리를 보면 신기해요. 지금은 그 정도로 활기차고 젊은이들로 가득한 느낌은 아니거든요. 물론 그때 압구정 거리를 가득 채웠던 청년들의 감성이 사라졌나 하면 그것도 아닌게, 요즘 이태원, 한남, 서교동 일대 등을 가보면 사진 속과 비슷한 풍경이 분명 존재하니깐요. 장소가 달라졌을 뿐 유흥을 즐기고, 청춘을 공유하고, 때로는 방황하는 청년들의 감성은 여전히 남아있는거죠. …다만 이젠 어떤 장소가 핫플레이스로 꼽히더라도 바로 몇 개월 뒤에 새로운 장소가 뜰 정도로 명소의 주기가 짧아진 것 같긴해요. 또 비슷비슷한 규모의 거리나 상업지역들이 곳곳에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상징적인 공간의 의미 자체가 약해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