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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편
대중문화는 생활수준의 향상, 교육의 보급, 매스컴의 발달과 함께한다. 90년대가 그랬다.
90년대는 TV드라마의 황금기였다. 역대 시청률 1, 2, 3위의 드라마는 모두 90년대의 작품이다. 1996년 방영된 <첫사랑>의 최고 시청률은 65.8%에 이른다.
TV시청 자체가 줄어든 지금과 다르게 90년대의 대중은 삼삼오오 안방극장에 앉아 좋아하는 드라마를 ‘본방사수’ 했다. 공중파 드라마의 이슈 파급력은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잠깐 등장한 배역, 음악, 소품등이 전 국민적 인기를 끄는 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드라마 왕국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 노력했다.

웰메이드 드라마의탄생

‘TV드라마의 신기원’ ‘한국 드라마는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TV드라마의 새지평’ 모두 한 작품에 쏟아졌던 찬사다.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시기까지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 <여명의 눈동자(1991)>는 웰메이드의 시초로 꼽히는 드라마다. 당시 국내 최대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된 여명의 눈동자는 중국·필리핀 로케이션과 2년 5개월간의 제작기간으로 방영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필리핀, 중국 등지에서 제작되는 MBC 창사 30주년 특집극 <여명의 눈동자(1991)>
그러나 화제가 된 것은 새로운 제작방식과 과감한 연출기법만은 아니었다.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 여수·순천 사건, 대구 10·1사건 등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다루며 국내 최초로 '위안부' 문제와 '제주 4·3항쟁'을 조명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명장면으로 꼽히는 철조망 키스신은 많은 남고생들을 담만 보면 달려들게 만들기도 했다.
후회를 해서는...절대로 후회를 해서는 안돼. 알겠나? 때로는 질문이 생길 수도 있을 거야. 과연 역사는 발전하는 것일까. 나와 이 역사는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왜 이 자리에 서 있을까. …(중략)… 하지만 난 지금도 내가 한 일이 옳다고 생각하네. 그런 거야. 자네도 나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잖나. 우리 같은 사람이 있어서 역사는 발전하는 거야. 그럼 후회할 게 뭐가 있어. 질문 같은 건 몇십 년 뒤에 편안한 세대에 사는 후세들이 하면 되는 거야
SBS 드라마 <모래시계(1995)>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최민수와 고현정
이후 방영된 <모래시계(1995)> 역시 90년대 웰메이드 드라마의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방영되는 날에는 길에 사람이 없을정도로 한산해 ‘귀가시계’ 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나 지금 떨고있니?
모래시계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모래시계

‘예능’만큼 인기있던 시트콤

시트콤이라는 장르를 TV에서 보기 어려워진 지금과 달리 90년대에는 시트콤이 인기있는 장르였다. 93년 <오박사네 사람들(1993)>을 시작으로 방영된<LA아리랑(1995)>, <순풍산부인과(1998)>등의 시트콤은 출연자와 프로그램 모두 큰 인기를 끌었다.
(순서대로) 오박사네 사람들, LA아리랑
인터뷰시작

기억나는 시트콤은?

“오박사!”

“LA 아리랑”

“남자셋! 여자셋”

어피치 J(79년생), 허리케인 블루(76년생), 너바나나(75년생)

용녀! 용녀용녀!
장인어른은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순풍산부인과
<남자셋 여자셋(1996)>과 같은 X세대를 겨냥한 청춘 시트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학교 생활을 주제로 다룬 <남자셋 여자셋>의 흥행은 같은 내용을 주제로 한 청춘시트콤들이 만들어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6명만 모이면 ‘남셋여셋’으로 자신을 지칭하기도 했다.

트렌디 드라마, 새로운 클리셰의 시작

신세대를 겨냥한 트렌디 드라마도 등장했다. 트렌디 드라마의 시초라 볼 수 있는 <질투(1992)>를 시작으로 <내일은 사랑(1992)>, <마지막 승부(1994)>, <느낌(1994)>,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 등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위)최수종 최진실 등 호화배역들이 풋풋한 젊은이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려 화제가 된 <질투>. (아래)90년대에 청소년들 사이에 ‘농구신드롬’을 몰고 온 <마지막승부>
이제는 한국드라마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신데렐라 스토리, 행복한 결말, 젊은 남녀 주인공의 등장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90년대 이전 TV 드라마의 메인스트림은 ‘가족 드라마’였다.
(순서대로) 드라마 <내일은 사랑>과 <열정시대>, 미니시리즈 <파일럿>에 출연했던 최수종과 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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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관극장에서 보았던 청춘영화, 단체로 보러갔던 서편제

2000년대 전까지 한국의 영화관은 대부분은 단관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영화관에 스크린이 하나밖에 없었다. 한 관에 좌석수도 지금보다 많았다.
또 종로를 중심으로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과 같이 유명한 극장들이 몰려있었기에 종로와 충무로 일대가 영화계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온라인 예매도 없었기에 표를 구매하기 위해선 극장을 방문해야 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단성사 앞에 길게 늘어선 시민들의 행렬로 영화의 성패를 가르기도 했다.
인터뷰시작

“그때는 멀티플렉스가 아니었고 대부분 단관이었죠. 즉 한 영화관에서 한 영화만. 다른 영화 보려면 다른 영화관 가야 했어요.”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영화를 온라인으로 예매하지 못했기 때문에, 티켓을 사기 위해선 직접 극장으로 가야 했어요. 터미네이터2가 개봉했을 때, 아침 일찍 극장으로 가서 티켓을 샀다가 시간이 너무 붕 떠서 다시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나요. 집에서 누워서 자고 씻고 놀다가 다시 영화를 보러가고 그랬죠.”

허리케인 블루 (76년생, 90년대 문학청년)

순서대로 피카디리, 서울극장, 단성사
90년대 감성을 잘 표현한 영화로 X세대들은 <비트(1997)>, <그대안의 블루(1992)>, <중경삼림(1994)>, <접속(1997)> 등을 꼽았다. 홍콩의 청춘을 그려낸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은 한국의 청년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프레임이 잔뜩 늘어진 장면이나, 핸드헬드 촬영으로 인해 정신없이 흔들리던 화면 등이 당시 한국영화에도 많이 나타나곤 했다.
인터뷰시작

“<중경삼림>이 유행하자 한국에 비슷한 계열의 영화들 많이 나왔었죠. 화면이 그냥 막 흔들리고,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고, 갑자기 바람을 맞으면서 뛰쳐나가는 식. 일종의 허무주의.”

어피치 J (79년생, 더쿠1세대 서태지팬)

“너 답지 않게 왜 이래! 나 다운 게 뭔데! 이런 류.”

허리케인 블루 (76년생, 90년대 문학청년)

“맞아요. 멋있는 척 하는, 낯 간지러운 대사들이 많이 나왔죠.”

어피치 J (79년생, 더쿠1세대 서태지팬)

“<서편제>는 장난 아니었죠. 온 가족, 전국민이 봤으니깐요. 초중고반에서 학생들이 단체로 무슨 동원하듯이 보러갔었던 기억이 나요.”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전국적으로 흥행몰이를 한 영화는 학교에서 다같이 수업시간을 빼고 관람을 하러 가기도 했다.

영화 `서편제' 678,947번째 입장객으로 단성사 정문에서 영화사가 제공한 꽃다발을 받은 최연호씨

영화 속 OST들도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큰 인기를 끌었다. 중경삼림의 OST였던 The mamas & the papas의 <California Dreamin'>은 X세대들이 꼽는 명곡 중 하나다.
인터뷰시작

“그 당시에는 문화의 하이라키(계급화)가 없었죠. 책, 만화, 영화 중 뭐가 더 맞다 보다는 모두 각자 다른 문화일뿐. ‘넌 그거 좋아해? 난 이거 좋아해. 난 이게 더 재밌어. 너 그거 재밌어? 너 그거 해’ 이런 마인드 였던 것 같아요. 더 나아가서 뭔가를 해야 하고, 뭔가를 알아야 한다는 경쟁심리 자체가 없었죠. 그것이 이 시기에 다채로운 대중문화의 향연이 가능했던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은 내가 주류에 들어야 한다는 마인드가 내면화되어 있다면 그때는 정반대였던거죠. 굳이 메인스트림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을거라는 믿음, 가능성이 열려있었기 때문에. 너무 풍요했으니까.”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아날로그 통신
기다림은 일상이었다

삐삐와 음성사서함

오늘날 스마트폰과 SNS가 있다면
90년대에는 삐삐와 PC통신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삐삐’로 불렸지만, 삐삐의 원래 이름은 ‘무선호출기’다. 이름만 보면 상대방을 호출할 수 있는 기계 같지만 무선 호출기는 사실 최대 20자 정도의 숫자메시지를 수신하는 기계였다. 전화기기를 이용해 상대방 삐삐에 자신의 전화번호와 숫자 메시지를 전송하면 수신을 받은 이는 공중전화로 가서 수신 받은 전화번호로 연락하는 방식이다.
삐삐기계모습 전송된 숫자
02-1234-0000 번호로 (8282)빨리빨리 전화해줘
비록 단방향 통신이었지만 삐삐의 등장은 통신의 개인화를 알렸다. 가족 구성원이 공용으로 사용하던 전화번호와는 달리 모두 각자의 고유번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인터뷰시작

“휴대폰이 일상화된 요즘 밀레니얼들에게는 삐삐의 기능이 하찮아 보일 수 있겠지만 삐삐의 등장은 그야말로 혁신적이었죠. 가족 모두 같이 쓰는 전화기로 친구를 불러내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개인 이동통신’의 시작이었으니까. 삐삐를 처음 가졌을 때, 친구와 나만의 연결고리가 생겼다는 느낌이 짜릿했던 기억이 나요.”

이팀장 (80년생)

삐삐 쳐 주세요 한달 요금 만원이 너무나 아까워.
오늘 하루종일 삐삐 한 번 안 왔죠 우째 이런일이.
삐삐 쳐 주세요 삐삐인지 시계인지 나도 정말 모르겠어
X세대는 이 기계를 충실하게 사용했다. 숫자문자로 보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17171771(돌리면 I LUV U 로 보인다), 1126611(중간에 줄을 그으면 사랑해로 보인다) 8282(빨리빨리) 등의 삐삐 약어를 만드는 창의력을 발휘했다.
삐삐와 함께 통신에 많이 사용된 것이 음성사서함 서비스다. 발신자는 상대방 삐삐로 숫자 메시지를 보낼 때 상대방 삐삐의 음성사서함에 음성 메시지도 남길 수 있었다. 수신자는 삐삐로 음성 메시지가 왔다는 것을 확인하면, 공중전화로 찾아가 자신의 음성 사서함에 전화를 걸어 발신자가 남긴 음성 메시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공중전화사진
이 음성 사서함에 자신의 목소리 대신 상대방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심지어는 직접 부른 노래를 남겨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던 것이 X세대의 추억이다.
삐삐 매뉴얼1 삐삐 매뉴얼2

엄마한테 혼나니까 밤에만 접속하던 PC통신

삐삐처럼 PC통신도 개인과 개인의 연결을 가능하게 했다. PC통신은 전화망을 통해 접속했던 통신 서비스다. 국내에는 대표적으로 KTH가 운영했던 하이텔, 나우콤이 운영했던 나우누리 등이 있었다. 사용자들은 PC통신용 단말기나 컴퓨터를 통해 본인이 가입한 업체의 서비스만 이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하이텔에 가입하면 하이텔만, 천리안에 가입하면 천리안만 이용할 수 있었다.
PC통신이 제공했던 서비스는 지금의 포털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자료실, 게시판과 채팅방을 모아둔 것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음악, 게임, 오락, 애니메이션, SF등의 동호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제1회 천리안배 사이버바둑 고교동문전.

PC통신에 혈액은행 사이트 개설한 해양대학교 법학과 전재성씨.

PC통신계의 NBA전도사 김영호군. 김군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NBA소식을 통신에 띄운다.

대화방

Sysop >>ID를 입력하시고 내용을 남겨주시면 한줄 대화를 남길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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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이 생긴 것도 이때다. 이모티콘이나 이미지 없이 오직 텍스트만으로 하는 채팅은 상대방에 대한 환상을 품게했다.
인터뷰시작

“네이버, 다음처럼 하이텔, 나우누리 사람따라 다르게 가입해서 활동했죠. 하이텔 채팅 만남을 다룬 <접속>이라는 영화도 있었는데, 저도 하이텔 채팅에서 사람을 만난 기억이 있습니다. 채팅을 하다가 상대방에게 매력을 느껴서 만남을 가지는 거죠. ‘정확히 어디서 몇시에 어떤 복장이다, 어떤 걸 들고있다’식으로 약속을 잡았던 기억이 나요. 또 이땐 채팅방에서 이미지 전송이 안됐기 때문에 ‘^--^’‘-_-;’와 같은 문자를 이용한 이모티콘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런 이모티콘만 만들어서 배포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영화 <접속>처럼 채팅을 통해 직접 만나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렇게 만나는 것을 번개라고 했는데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몇월 며칠 몇시, 뉴욕제과 앞, 검은 티셔츠, 청바지’ 등의 정확한 시간, 장소, 옷차림을 알아야 했다.
X세대는 삐삐와 PC통신의 등장으로 인해 이전 세대는 누리지 못한 경험들을 누렸다. 그러나 여전히 아날로그 통신은 느렸고 기다림은 일상이었다.
삐삐는 ‘전화를 하거나 받는 도구’가 아닌 ‘전화를 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도구’일 뿐, 대화를 위해서는 전화를 하거나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전화선을 이용하는 PC통신 역시 누군가 통화를 하는 동안엔 절대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그래서 PC통신은 ‘엄마가 잠 든’ 한 밤에서 새벽에 가장 높은 접속률을 보였다.
인터뷰시작

“PC통신을 하면 전화를 쓸 수 없어서, 새벽에 몰래 썼었죠. 들키면 엄마한테 혼나구요.”

허리케인 블루 (76년생, 90년대 문학청년)

“남동생이 고3 수험생이었는데 PC통신에 접속할때마다 눈치를 봤었어요. 특유의 모뎀 연결음이 들릴까봐. 지금 생각해보면 큰 소리도 아니었네요.”

마리떼 프랑소와 접어(76년생)

“연락을 하거나 사람을 기다릴 때 한시간은 기본이었어요. 밖에서 하염없이 3-4시간씩 기다리기도 했구요. 고등학생 때는 어떤 이성친구를 좋아해서 번호를 준 적이 있는데 3일 동안 엄마가 받을까봐 밖에도 안 나가고 전화기 앞에서 그 친구가 전화하길 기다린 적도 있어요. 그땐 다 그랬죠.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깐요.”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3시간이요? 30분만 늦어도 답답할 것 같은데요!” 요즘 신세대에겐 누군가를 만나고 연락을 하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이 믿기가 힘들다. 실시간으로 오고 가는 양방향 소통이 익숙하기에 1분의 기다림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정작 ‘답답한 통신’으로 소통을 하며 청춘을 보낸 X세대들은 그 기다림 속에 설렘이 있었다고 응답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밀레니얼 세대도 때론 그 기다림의 경험을 찾는다는 사실이다. 몇년 전 등장한 카메라 애플리케이션 ‘구닥’은 사진을 한 장 찍고나면 3일이 지나서야 그 사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제작자의 의도가 어떠했던 ‘구닥’은 흥행에 성공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무언가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경험이 매력적이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이는 좋아하던 이성친구의 연락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전화기 앞을 서성였던 X세대의 추억이 답답함이 아닌 설렘으로 기억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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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스타 서태지와 신해철의 이야기 궁금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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