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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시트콤은?
“오박사!”
“LA 아리랑”
“남자셋! 여자셋”
어피치 J(79년생), 허리케인 블루(76년생), 너바나나(75년생)





당신의 X세대 스타 3명을 선택해 투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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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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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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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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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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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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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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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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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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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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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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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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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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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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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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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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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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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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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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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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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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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
표



“그때는 멀티플렉스가 아니었고 대부분 단관이었죠. 즉 한 영화관에서 한 영화만. 다른 영화 보려면 다른 영화관 가야 했어요.”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영화를 온라인으로 예매하지 못했기 때문에, 티켓을 사기 위해선 직접 극장으로 가야 했어요. 터미네이터2가 개봉했을 때, 아침 일찍 극장으로 가서 티켓을 샀다가 시간이 너무 붕 떠서 다시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나요. 집에서 누워서 자고 씻고 놀다가 다시 영화를 보러가고 그랬죠.”
허리케인 블루 (76년생, 90년대 문학청년)



“<중경삼림>이 유행하자 한국에 비슷한 계열의 영화들 많이 나왔었죠. 화면이 그냥 막 흔들리고,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고, 갑자기 바람을 맞으면서 뛰쳐나가는 식. 일종의 허무주의.”
어피치 J (79년생, 더쿠1세대 서태지팬)
“너 답지 않게 왜 이래! 나 다운 게 뭔데! 이런 류.”
허리케인 블루 (76년생, 90년대 문학청년)
“맞아요. 멋있는 척 하는, 낯 간지러운 대사들이 많이 나왔죠.”
어피치 J (79년생, 더쿠1세대 서태지팬)
“<서편제>는 장난 아니었죠. 온 가족, 전국민이 봤으니깐요. 초중고반에서 학생들이 단체로 무슨 동원하듯이 보러갔었던 기억이 나요.”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영화 `서편제' 678,947번째 입장객으로 단성사 정문에서 영화사가 제공한 꽃다발을 받은 최연호씨
“그 당시에는 문화의 하이라키(계급화)가 없었죠. 책, 만화, 영화 중 뭐가 더 맞다 보다는 모두 각자 다른 문화일뿐. ‘넌 그거 좋아해? 난 이거 좋아해. 난 이게 더 재밌어. 너 그거 재밌어? 너 그거 해’ 이런 마인드 였던 것 같아요. 더 나아가서 뭔가를 해야 하고, 뭔가를 알아야 한다는 경쟁심리 자체가 없었죠. 그것이 이 시기에 다채로운 대중문화의 향연이 가능했던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은 내가 주류에 들어야 한다는 마인드가 내면화되어 있다면 그때는 정반대였던거죠. 굳이 메인스트림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을거라는 믿음, 가능성이 열려있었기 때문에. 너무 풍요했으니까.”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휴대폰이 일상화된 요즘 밀레니얼들에게는 삐삐의 기능이 하찮아 보일 수 있겠지만 삐삐의 등장은 그야말로 혁신적이었죠. 가족 모두 같이 쓰는 전화기로 친구를 불러내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개인 이동통신’의 시작이었으니까. 삐삐를 처음 가졌을 때, 친구와 나만의 연결고리가 생겼다는 느낌이 짜릿했던 기억이 나요.”
이팀장 (80년생)

제1회 천리안배 사이버바둑 고교동문전.
PC통신에 혈액은행 사이트 개설한 해양대학교 법학과 전재성씨.
PC통신계의 NBA전도사 김영호군. 김군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NBA소식을 통신에 띄운다.
Sysop >>ID를 입력하시고 내용을 남겨주시면 한줄 대화를 남길 수 있습니다 ^^*

“네이버, 다음처럼 하이텔, 나우누리 사람따라 다르게 가입해서 활동했죠. 하이텔 채팅 만남을 다룬 <접속>이라는 영화도 있었는데, 저도 하이텔 채팅에서 사람을 만난 기억이 있습니다. 채팅을 하다가 상대방에게 매력을 느껴서 만남을 가지는 거죠. ‘정확히 어디서 몇시에 어떤 복장이다, 어떤 걸 들고있다’식으로 약속을 잡았던 기억이 나요. 또 이땐 채팅방에서 이미지 전송이 안됐기 때문에 ‘^--^’‘-_-;’와 같은 문자를 이용한 이모티콘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런 이모티콘만 만들어서 배포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PC통신을 하면 전화를 쓸 수 없어서, 새벽에 몰래 썼었죠. 들키면 엄마한테 혼나구요.”
허리케인 블루 (76년생, 90년대 문학청년)
“남동생이 고3 수험생이었는데 PC통신에 접속할때마다 눈치를 봤었어요. 특유의 모뎀 연결음이 들릴까봐. 지금 생각해보면 큰 소리도 아니었네요.”
마리떼 프랑소와 접어(76년생)
“연락을 하거나 사람을 기다릴 때 한시간은 기본이었어요. 밖에서 하염없이 3-4시간씩 기다리기도 했구요. 고등학생 때는 어떤 이성친구를 좋아해서 번호를 준 적이 있는데 3일 동안 엄마가 받을까봐 밖에도 안 나가고 전화기 앞에서 그 친구가 전화하길 기다린 적도 있어요. 그땐 다 그랬죠.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깐요.”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