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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물터진대중문화
TV드라마편

‘문화대통령’ 서태지, ‘철학자’ 신해철

1992년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해 가요계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휩쓸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신인 가수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데뷔했다. 첫 방송에서 심사위원에게 받은 점수는 역대 최하점인 7.8점, 그러나 당시 청소년이었던 X세대는 서태지의 데뷔를 점수가 아닌 교실 풍경으로 기억한다. “그 프로그램 봤어? 그 노래 들었어?”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 버려야 한다는
그 사실을 그 이유를
이제는 나도 알 수가 알 수가 있어요
첫 방송이 나가자 가요계가 뒤집어졌다.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10대라면 누구나 서태지와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10대만 그의 음악을 들은 것은 아니었다. 며칠 후 길거리의 가게들에선 약속이나 한 듯 ‘난 알아요’란 곡이 퍼졌다. 한국의 대중 가요계가 10대 취향으로 재편된 것은 서태지 등장 이후의 일이다. 믿기지 않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기 전 대중음악계의 주류 장르는 발라드와 트로트였다.
인터뷰시작

“전 사실 ‘락(rock)’파 였어요. 그런데도 서태지는 좋아했죠. 음악 장르가 겹치지 않더라도 너무 잘했거든요. 젊은 사람들 중에서 서태지 안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X세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죠.”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서태지가 처음 나왔을 때 교실 풍경이 아직도 기억나요. 1분단부터 5분단까지, 모든 아이들이 서태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어피치 J (79년생, 더쿠1세대 서태지팬)

너를 볼때마다 내겐 / 가슴이 떨리는 그 느낌이 있었지 / 난 그냥 네게 나를 던진거야
하여가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속에 /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 넣고 있어
교실이데아
검게 물든 입술 /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 숱한 가식 속에 /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
시대유감
난 내 삶의 끝을 본 적이 있어 / 내 가슴 속은 갑갑해졌어 / 내 삶을 막은 것은 / 나의 내일에 대한 두려움
컴백홈
1996년 성균관대 유림회관에서 가진 은퇴 기자회견. 왼쪽부터 멤버 양현석, 서태지, 이주노.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발표 후 멤버 서태지의 집앞에 몰려든 소녀팬들.
1996년 은퇴 전까지 서태지와 아이들은 수 많은 ‘신드롬’을 만들어낸 스타로 가요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사회와 시대, 세대를 노래했다.
화살표 화살표 화살표
‘빠라바 빠라밤 빰빠 빠라바 밤빠바 - 워↗우→예→에→에↓ 워↓어→어→어↗ 어↓어↗ 숨 가쁘게 살아가는 순간 속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트로를 듣자마자 대상을 점찍었다고 한다.1988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그대에게’는 신해철의 출세작이자 대표곡으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곡이다.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그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
신해철과 서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9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손꼽힌다. 서태지가 시대와 세대를 노래하는 문화 대통령이었다면 신해철은 낭만과 저항 그리고 그 속의 희망을 노래하는 철학가였다. 특히 신해철은 하나의 모습만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인터뷰시작

“서태지가 힙하고 진취적이라면, 신해철은 살짝 어두운 느낌이었죠. ‘세상과 싸워나가겠어~’같은 가사에는 저항정신도 있었구요. 처음에 ‘무한궤도’가 나왔을 땐 충격이었습니다. (이전 세대들과 다르게) 직접 앞에 나와서 화염병을 던지지는 않지만, 문화적으로 무언가를 말하는 느낌이었어요. ”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가요제로 가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록, 아카펠라, 국악, 클래식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뮤지션’이 되었다. 낭만과 운명을 이야기하는 ‘시인’ 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마왕’ ,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논객’ 이기도 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 / 어른이 될 시간이야 / 너 자신을 시험해 봐 / 길을 떠나야해
해에게서 소년에게
그대 불멸을 꿈꾸는 자여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으라 말하는가 / 왜 왜 너의 공허는 채워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 처음부터 그것은 텅 빈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불멸에관하여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민물장어의 꿈
100분토론에 가장 많이 출연한 연예인으로 알려진 그는 대마초 비범죄화·간통죄 폐지·체벌금지등을 주장했다. 신해철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것으로 꼽히는 X세대 그 자체였다.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
Here, I stand for you

라디오로 접하고, 워크맨으로 듣다

90년대의 X세대라면 누구나 두 대의 개인화된 ‘기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통신수단인 삐삐, 하나는 음악을 듣던 워크맨이다. MP3 플레이어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 청소년과 젊은이들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었다.
오늘날의 스트리밍 음악서비스와 달리 워크맨으로는 테이프에 녹음 된 노래만 들을 수 있었다. 때문에 직접 녹음한 노래가 담긴 믹스테이프는 호감을 전하는 ‘선물’이 되기도 했다.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는 것 보다 CD-PLAYER를 선호하는 X세대도 있었다.
워크맨플레이어
워크맨 부품
워크맨 부품
인터뷰시작

“워크맨에 이어폰 꼽고 ‘너 하나 들어, 나 하나 들을게’하고 나눠 듣기도 하고. 대부분 가방에 넣고 다니고 간혹 허리에 차고 다니기도 했어요. 워크맨은 대부분 다 있었죠. 풍요로운 사회니까. 테이프는 여러 가지 용도가 많았는데, 공테이프에 좋아하는 노래 주루룩 녹음해서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주기도 했죠.”

갤러거 Y (75년생, 90년대 단발드러머)

지금은 운전 중이거나 대중교통이 아니면 듣지 않는 라디오지만, X세대는 라디오를 ‘진짜 많이 들었다’ 고 회상한다.
90년대는 유튜브나 스트리밍 앱을 틀면 바로 음악이 나오는 시대가 아니었다. 지금은 흔한 가사검색, 음악검색도 없었기에 새로운 노래를 접하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을 ‘라디오’에 할애해야 했다. 유튜브 링크를 전달하듯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면 그것을 녹음해 공유했고, 녹음한 음악을 불법으로 복제해 파는 곳도 있었다.
한국형 발라드시대를 연 이문세는 라디오 프로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 별밤지기로도 사랑을 받고 있다.
인터뷰시작

“저도 유희열 라디오를 많이 들었어요. 그때 유희열씨가 상담을 해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어떤 여자분이 이런 상담을 했어요. '중학교 때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몇십 년 만에 만나러 간다. 내일 만나기로 했는데 나가야 할지 너무 고민된다.' 그런데 유희열씨가 어린 자식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상담을 너무 진지하게 잘해줬어요.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죠. ‘제가 왜 이걸 이렇게 잘 아냐면요, 제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딱 끝나고 바로 음악이 나오는데, 그날 너무 가슴이 뭉클해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그때 라디오 DJ들이 그런 역할을 했었죠.”

어피치 J (79년생, 더쿠1세대 서태지팬)

“생각해보니 라디오를 진짜 많이 들었어요. 신해철에서 유희열로 넘어가는 그 시기. 음악도시의 광팬이었어요.”

허리케인 블루 (76년생, 90년대 문학청년)

“배철수가 결혼할 때 이야기도 기억나요. 실시간으로 들었거든요. 라디오 PD랑 결혼을 했는데, 갑자기 어느날 ‘저 다음주부터 1주일간 안나옵니다. 저 결혼합니다’하고는 사라졌었죠. 당시에는 너무 충격이었어요.”

너바나나(75년생)

라디오의 매력은 음악만은 아니었다. 라디오 DJ가 읽어주던 시청자의 사연, 듣다 보면 귀 쫑긋하게 되는 DJ의 상담이나 코멘트에는 언제나 진솔함이 있었다고 X세대는 추억한다.

에필로그

“이들은 왜 이럴까?”
혹, 당신이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기보다 교정하고 싶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새롭고 낯선 세대의 등장에는 항상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베이비붐, 86, X, 에코... 모두가 그랬다.
사실, 기성세대의 눈에 비친 젊은이들은 늘 그랬다. 어쩌면 기성세대가 100% 이해할 수 있는 세대가 등장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런 적 없었으니 말이다. 수메르 점토판에도, 기원전의 서사시도, 소크라테스도, 중세시대에도 인류는 똑같이 말해왔었다.
“철 좀 들어라.”
기원전 1700년, 수메르 점토판
“요즘 젊은이들은 나약하다.”
<일리아드>
“요즘 대학생들 정말 한숨만 나온다.”
1311년, 중세시대 대학교수 알바루스 펠라기우스
새로운 세대는 X세대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문화를 재해석해 레트로를 뉴트로로, 그 문화를 ‘힙’한 것으로 만들었다. 기성세대는 새로운 세대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 젊음은 언제나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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