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그 날은 몇몇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 기숙사에서, 총독부 순사로 보초를 서던 곳에서, 농촌의 민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뛰쳐 나왔던 모든 사람들의 걸음이다.
일제는 3·1운동 참여자들을 취조한 신문조서를 2000여건이나 남겼다.
참여자 200만명, 사망 7500여명, 피검자 4만7000여명이라는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당시 참여했던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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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아깝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그대는 어째서 국기를 만들고, 또 혈서를 썼는가.
답신문에서 이번 회담에서 약소국을 독립시킨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조선도 독립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했던 것이다.
문그대는 왜 독립운동을 하였는가.
답삶에 쪼들리고 있는 2천만 동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문그대는 이와 같은 일을 하면 무거운 형벌을 받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답그렇다. 각오하고서 한 일이기 때문에 목숨이 아깝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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