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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력, 보이지 않는 힘

위력 보이지 않는 힘

위력 성폭력은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폭행·협박과 같은 물리적 힘이 동반되는 강간이나 강제추행과 다르다. 그래서 더 교묘하게 일상 속에 스며있고,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위력의 존재와 행사 여부, 그 힘의 범위 역시 판사의 법 해석·적용에 따라 달라지고 가해자는 유죄가 되기도, 무죄가 되기도 한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 조항은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2018년 3월, 피해자 김지은씨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을 고발하면서 비로소 주목을 받은 법 조항이다. 법은 왜 ‘위력’으로 인한 성폭력을 따로 정의해 처벌의 근거를 마련한 것일까.

플랫팀은 성폭력 피해 지원 활동가 ‘연대자D’ (@D_T_Monitoring)가 진행한 〈판결 톺아보기-위력에 의한 성폭력〉 세미나를 취재했다. 이 세미나를 바탕으로 연대자D와 함께 ‘보이지 않는 힘, 위력’이 피해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폭력을 가하는지를 분석했다.

안 전 지사 사건을 계기로 흩어져있던 위력 성폭력 판결을 모아 흐름을 짚어본 지난 2년 반의 시간은 60년 넘게 법전 안에 잠들어있던 위력 성폭력의 처벌 근거를 깨우는 과정이었다.

판례상 의미

위력 (威力)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

‘위력’이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힘)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므로, 폭행·협박뿐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며, 위력으로써 간음하였는지 여부는 행사한 유형력의 내용과 정도 내지 이용한 행위자의 지위나 권세의 종류, 피해자의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으로부터의 관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인 행위 태양, 범행 당시의 정황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7·8·23. 선고 2007도4818 판결 등 참조)

위계 (僞計)

행위자의 행위목적 달성을 위해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

‘위계’는 행위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피해자가 오인, 착각, 부지에 빠지게 되는 대상은 간음행위 자체일 수도 있고, 간음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이거나 간음행위와 결부된 금전적·비금전적 대가와 같은 요소일 수도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2020·8·27. 선고 2015도9436 판결 참조)

법원이 위력을 인정한 사건 목록

  • 대학교 총장과

    교직원

  • 무용 강사와

    학생

  • 교회 목사와

    신도

  • 상담심리사와

    내담자

  • 회사 회장과

    회장실 비서

  • 연극연출가와

    연극배우

  • 도지사와

    비서

※사건을 클릭하면 해당 영역으로 이동합니다

CASE 1

대학교 총장과 교직원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위력행사시점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판결

가해자는 사건 당시 피해자의 직장인 학교법인과 대학교 운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어, 피해자의 인사에 실질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가해자는 이 힘이 미치는 영역 및 상황에서 명시적인 동의 없이 피해자를 추행하였다.

혐의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형량

징역 8월(확정)

  • 가해자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힘을 가진 자가 그 세력(힘)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경우뿐 아니라 힘이 미치는 영역과 상황에서 명시적인 동의 없이 피해자를 추행했다면 위력에 의한 추행은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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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

    가해자

    피해자는 피해를 당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밝은 모습이었다. 나를 칭찬하기도 한 사람이 추행의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믿기 어렵다.

    성폭력 피해자로서는 성폭력을 당하는 고통보다 일자리와 사회적 관계망 등 더 많은 것을 한꺼번에 잃을 수 있는 두려움이 있었다. 성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떨치기 위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더욱 애쓸 수 있다. 또 오랜 세월 성폭력으로 수치심을 안고서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해 왔다. 이런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재판부

연대자D의 해석

성폭력 피해에 대해 도움을 청했으나 외면당한 경험이 있고, 경제적 약자였던 피해자가 20년 넘게 이어진 성폭력에 체념하여 소극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피해자의 시각과 입장에서 판단하려고 노력해 나온 판결이다.

피해자는 사회적인 경험이 적었던 20대 첫 성폭력 이후 도움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또 경제적 이유로 일을 그만 둘 수 없었고 결혼한 뒤에는 남편과 자식들이 피해 사실을 알게 되면 가정이 파탄 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고소도 하지 못했다. 이런 피해자의 상황과 고소 경위에 대해 재판부가 충분히 이해하고 접근한 사건이다.

특히 ‘위력이 미치는 영역과 상황에서 명시적 동의 없이 피해자에 대한 성폭력을 저지른 것’ 역시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세력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비슷한 시기 ‘위력은 있으나 행사하지 않았다’라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1심 판결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판결이었다.

CASE 2

무용 강사와 학생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위력행사시점

가해자는 전공 과목을 가르치고 무용단을 운영하며 콩쿠르 대회 심사를 맡았다. 무용단 소속 무용수와 피해자를 비롯한 학교 제자들의 실력 향상과 경력 형성에 도움이 되는 기회를 제공하고 평판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위에 있다.

판결

가해자는 입시를 앞두고 자신의 개인 연습실에서 제자이자 무용계 후배인 피해자를 추행했다. 이 같은 관계의 특성, 서른 살 가까운 나이차와 사회적 경험 차이로 인해 피해자는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심리 상태에 있었다. 가해자의 지위와 영향력의 존재 자체로 피해자가 자유의사를 제압당한 상태라고 인정된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보호 감독자의 지위를 이용한 무형의 위력을 행사했다.

혐의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형량

징역 2년(확정)

  • 가해자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위력이 사건으로 이어진 인과관계도 없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지배력과 영향력의 존재 자체로 자유의사를 제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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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

연대자D의 해석

외견상 동의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보호 감독하는 지위에 있다면 피해자가 했던 이 ‘동의’는 ‘부진정동의’에 해당돼 업무상 위력 추행죄가 성립한다고 인정했다.

교습 계약 관계, 가해자의 무용계에서의 지위, 피해자의 처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가지는 권위, 무용계의 엄격한 위계와 폐쇄성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 나올 수 있었던 판결이다.

이를 위해 많은 연대자들이 일반적인 사회와 다른 예술계 특징을 정리해 재판부에 전달했다. 대가를 약속하거나 “불이익을 주겠다”는 말을 해야 유형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는지 역시 쟁점이 된 사건이었으나, 법원은 가해자가 보호 감독자라는 것만으로 위력의 행사와 인과관계까지 함께 인정했다.

CASE 3

교회 목사와 신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위력행사시점

피해자들은 출생 혹은 만 1세, 5세, 늦어도 12세부터 부모를 따라 교회를 다니며 목회자인 가해자의 절대적인 권위에 복종하며 의심조차 할 수 없는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

판결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상태에서 가해자와의 성관계를 종교적으로 유익한 행위로 받아들였다. 종교적으로 절대적 권위를 가진 가해자의 행위를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를 단념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당시 피해자들은 심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거나, 적어도 심리적으로 반항이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가해자는 이 같은 상황을 이용했다.

혐의

상습준강간,상습준강제추행

형량

징역 16년(확정)

  • 가해자

    피해자들은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교육을 받은 성인인 피해자들은 그것이 성적 행위임을 알았고, 거부 표시를 한 적도 있으며, 가해자의 연락을 피해기도 했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해 신과 같은 절대적 믿음을 가진 상태에서 이를 의심하는 것 자체로 죄가 된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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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

연대자D의 해석

어린 시절부터 생활의 대부분을 교회 안에서 보냈던 피해자들이 교회를 절대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 따라서 피해자들이 성폭력을 인식하지도 못했다는 점을 심리적 항거불능이었다고 판단했다.

종교계 내 성폭력 사건에 준강간·준강제추행의 법리를 적용해 인정된 사건이었다. 피해자 모두 성인인 비장애 여성이나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 인정된 것이다.

위력에 의한 간음뿐 아니라 성폭력은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적용 가능한 법 조항이 달라지므로 판단에는 전문가와 상담, 전문적 조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CASE 4

상담심리사와 내담자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위력행사시점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전적으로 신뢰하는 상태였다.

판결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전적으로 신뢰하는 상태였다. 가해자 역시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 피해자는 사실상 가해자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상황에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혐의

피보호자 간음,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형량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3년(확정)/ 1심 징역 3년

  • 가해자

    피해자는 성관계가 치료에 필요한 행위라고 오해하지 않았다. 따라서 위계로 간음한 것이 아니다. 유형력을 행사하지도, 지위와 권세를 이용하지도 않았다.

    피해자는 가해자와의 상담을 자신이 나아질 수 있는 최후의 방법처럼 여겼고, 그래서 가해자를 굉장히 믿고 싶어했던 것 같다. 심리적으로 무력한 상태에 있는 내담자는 상담자와의 관계에서 권위와 위력에 눌리게 되고 따르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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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

  • 가해자

    피해자를 도와주기 위하여 피해자와 성관계를 했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도와주기 위해 피해자와 성관계를 하였다고 진술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계속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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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

연대자D의 해석

일견 자발적으로 성관계 등 성적 접촉에 동의한 것으로 보이는 성인 비장애 피해자에게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가능한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해당 성적 접촉이 치료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명백하게 알고 있었고, 위력의 행사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의 성향,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가해자는 상담을 통해 신뢰관계를 쌓은 후 피해자에게 ‘대담한 행동을 해야 심리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으며 실제 성적 접촉 후 피해자는 심리적 문제가 치유·개선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는 점 등을 들어 가해자의 주장을 배척했다.

CASE 5

회사 회장과 회장실 비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위력행사시점

가해자는 사업체의 회장으로 피해자를 업무상 보호하고 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다.

판결

업무상 보호, 감독 관계에 있는 피해자를 주말 식사 자리에 나오게 한 뒤 업무상 지위를 이용해 추행한 것은 그 책임이 무겁다. 가해자는 자신의 회사를 보호하려고, 피해자에게 큰 액수의 합의금을 지급했지만 이는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탓하며 본인의 책임은 회피하려고 하는 등 범행 정황도 매우 좋지 않다.

혐의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형량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확정)

  • 가해자

    일방적으로 신체를 접촉하지 않았으며, 그 과정에서 위력을 행사한 바도 없다.

    입사 4개월 차인 피해자에게 가해자는 식사 자리에서 술을 권하고, 손을 잡고 호텔까지 이동하는 등 사실상 가해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도록 했다. 신분상 불이익을 준다는 말이나 행동을 한 적은 없으나 회장과 비서, 40년이 넘는 나이차 등을 고려할 때 가해자의 지위나 권세는 그 자체로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무형적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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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

연대자D의 해석

가해자는 피해자가 아주 적극적으로 신체 접촉을 했다고 주장을 했다. 피해자는 20대로, 입사한 지 4개월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또 금전적 합의를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신분상 불이익을 준다고 한 적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가해자의 지위와 담당 업무 및 나이차 등은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무형적 세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존재가 곧 위력의 행사인 것이다. 회식 자리 등에서 일어날 수 있는 추행이나 성적 폭력에 대한 기준으로 보면 될 것 같다.

CASE 6

연극연출가와 연극배우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위력행사시점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연출하는 연극에 출연한 배우들로서 모두 가해자의 상당한 영향력 아래 있었다.

판결

가해자는 자신의 권력을 남용한 것임과 동시에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그 권력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했다. 그 결과 피해자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수치심과 고통 및 좌절감을 안겼다. 가해자는 스스로 과오를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연극을 위한 과욕에서 비롯되었다거나, 피해자들이 거부하지 않아 그 고통을 몰랐다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더 나아가 “피해자들이 미투 운동에 편승하여 자신을 악인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등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

혐의

유사강간치상, 상습강제추행,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형량

징역 7년(확정)

  • 가해자

    강제로 추행하지 않았다. 연기를 지도하던 도중 피해자들의 신체를 만지게 된 것뿐이다.

    행위가 이루어진 구체적인 경위를 보면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없도록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을 행사했다. 또 행위의 내용도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것이다.

    재판부

  • 가해자

    피해자가 업무와 고용, 그 밖의 관계로 나의 보호, 감독을 받는 상태는 아니었다.

    연극단 업무 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가해자는 그 지위에 기한 위력을 행사하여 피해자를 추행하였음을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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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

연대자D의 해석

공동체 업무 전반에 대해 결정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력을 이용해 추행했다고 법원이 판결한 사건이다.

계약서 없이 노동력만 제공하고 있었지만 피해자가 공동체에 실질적으로 고용됐다고 본 것이다.

가해자는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에 대해 실질적으로 업무나 고용 관계 등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CASE 7

도지사와 비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위력행사시점

가해자는 피해자를 임명·휴직·면직·징계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인사권자였다. 피해자는 일반 직업 공무원과 달리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별정직 공무원으로 가해자의 평가가 향후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었다.

판결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 별정직 공무원은 자치단체장이 임면을 결정할 수 있어 중대한 과오가 없어도 면직이 가능하다. 피해자는 지방 별정직 공무원으로서 업무 관계로 인하여 도지사인 피고인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해당한다. 이 같은 신분상의 특징과 도지사와 비서라는 관계로 인해 피해자는 가해자의 지시에 순종하여야만 하고,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내부적인 사정을 쉽게 드러낼 수 없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취약한 처지에 있음을 이용하여 범행을 저지름으로써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현저히 침해하였다.

혐의

강제추행, 피감독자간음,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형량

징역 3년6월(확정)/ 1심 무죄에서 2심 유죄

  • 가해자

    어떠한 거절의 의사표시도 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피고인의 위력 행사가 입증되지 않았다.

    피해자는 상사인 가해자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를 질 뿐만 아니라 최근접거리에서 수행하면서 가해자가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 경제, 사회 인사들,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인사들과 연락하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고 차기 대통령 후보에 상응하는 의전, 예우를 받는 등 ‘절대 권력’ ‘미래 권력’을 가지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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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

  • 가해자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를 당한 일반적인 피해자라면 도저히 보일 수 없는 친근한 말투, 업무에 대한 행복감을 보였다.

    가해자가 주장하는 말투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습관적 사용이다. “일이 적성에 맞다”고 말한 것 역시 성범죄 피해자가 보일 수 없는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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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

  • 가해자

    연인 관계였다.

    가해자는 “호감과 합의에 의해 서로 성관계를 맺은 관계”라며 “연인 관계”라고 설명하면서, 피해자와 통상적인 연인 관계임은 부인한다. 자신이 인정하는 성적 접촉행위 외 다른 접촉행위는 없었다면서, 피해자와의 다른 일체의 신체접촉행위는 부인했다. 가해자의 진술은 이같이 내용과 취지가 계속 변경돼 이를 선뜻 믿기 어렵다.

    재판부

연대자D의 해석

사문화되다시피했던 성인 비장애 피해자의 위력에 의한 간음 피해가 인정된 사례다.

특히 1심에서 가해자는 ‘위력의 존재와 행사는 다르다’고 주장했고, 법원도 ‘위력은 있으나 행사하지 않았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위력의 존재 자체가 위력의 행사’라고 결론 내렸다.

위력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스스로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본인의 행위가 폭력인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점에 대한 고통을 호소한다. 또 피해자의 편에 선 사람들에 대한 보복도 매우 강력하고, 위험한 수준으로 이뤄진다.

이 사건의 1심 법정은 이같이 기울어진 성별 권력과 피해자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위력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만 언급하며 피해자의 모든 것을 지웠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다. 성인지 감수성은 ‘감정적인 공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성적이고 많은 훈련을 거쳐야 나올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경력과 생계뿐만 아니라 신변까지 위협받는 지금의 상황에서도 성범죄 피해의 통한을 고하기 위해 절박하고도 절실한 심정으로 이렇게 호소합니다.

내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한 치부가 드러날까 죄인처럼 숨죽여 살아왔던 자신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남편과 자식들에게 떳떳치 못해 미안한 마음을 숨기고 사느라 얼마나 힘에 부쳤을지, 남편이 진실을 모두 알게 될 경우 가정이 파탄 날 것이 두려워 매일 얼마나 가슴 졸이며 전전긍긍했을지….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분들께서 한번쯤은 마음을 열고 저의 원통한 심정을 헤아려주셔서 관심, 지혜, 용기를 한 데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위력 성폭력 피해자가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

20년이 넘게 이어진 직장 상사의 성추행. 자신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던 가해자의 계속된 성폭력에도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던 피해자는 체념했고, 소극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에는 위력 성폭력의 단면이 드러나 있다.

보이지 않는 힘, 위력. 그 힘을 이용한 성폭력은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실은 어디에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