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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실태 보고서, 현실의 36만 ‘기택네’엔 누가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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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실태 보고서, 현실의 36만 기택네엔 누가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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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실태 보고서
현실의 36만 ‘기택네’엔 누가 사나

‘지·옥·고’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지옥고라 불리며 한국 사회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대표하는 곳들이다.

그중에서도 반지하는 영화 <기생충>이 화제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던 주거공간이다. 지상에 있는 옥탑방과 고시원의 열악함은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만, 반지하는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햇볕이 들지 않아 집 안은 한낮에도 어두컴컴하다. 습기로 벽지는 얼룩지고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데도 행여 지나가는 행인이 들여다볼까 창문조차 열지 못한다. 직접 들어가 경험해보지 않고는 이런 문제를 느끼기 어렵다.

영화 기생충의 장면

반지하의 시작은 1970년대 방공호였다.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남북 분단상황에서 대피소로 활용하기 위해 지하 주거층을 허용했다. 이는 급격한 도시화와 맞물렸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주택 공급이 부족해지자 지하 1층도 주거용으로 허용하는 등 건축규제가 완화됐다. 지하 주거공간은 빠르게 늘어갔다.

‘현실판 기택네’는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을까.

경향신문은 한국도시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반지하 거주 현황과 실태’를 살펴봤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반지하는 36만3896가구나 됐다. 옥탑방(5만3832가구)보다 7배 이상, 고시원(15만1553가구)보다 2배 이상 많은 규모다. 반지하에 살고있는 사람은 68만8999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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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전수조사)

※ 2010년 통계로 행정구역과 지명이 지금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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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전수조사)

※ 2010년 통계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읍면동별 선거구 현황 자료(2020)를 활용해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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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를(을) 선택하셨습니다.

지역에는 351495 가구가 살고 있습니다.

그 중 반지하에 사는 이웃은 6,279가구입니다.

이는 이 지역 전체 가구의 1.8%에 해당하는 비율입니다.

<기생충> 속 기택네가 영화에 나오는 허구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영화는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온 지하 거주민을 세상 밖으로 불러냈다. 한 주거복지 전문가는 <기생충>을 “지하와 빈부격차에 대한 사회학 보고서”라고 평했다.

반지하에 세상의 관심이 쏟아질 때도 있었다. 태풍이나 폭우로 수차례 침수 피해를 입었을 때, 선거를 앞두고 서민의 삶을 들여다본다며 악수를 청하는 국회의원들의 배경이 됐을 때였다.

그나마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그런 ‘이벤트’도 없다. 자신이 출마한 지역구 곳곳을 돌며 도시 빈곤가구의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을 약속한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거의 없다. 앞서 일부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반지하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없어 개선 노력을 기울일 수 없다고도 했다. 현실을 알지 못하는데, 개선은 가능한 것일까.

경향신문이 전국 읍·면·동별 반지하 거주 현황을 최초로 공개하면서, 이를 국회의원의 지역구 단위로 재구성해 봤다. 해당 자료는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조사 토대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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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반지하 현황

전국에 반지하 가구는 36만가구가 넘는다.

이중 대부분인 95.8%, 34만8782가구가 수도권에 밀집돼 있다. 서울은 22만8467가구, 경기도는 9만9291가구, 인천은 2만1024가구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

가구가 아닌 인구 수 개념으로 따지면 반지하에 거주하는 전국 68만8999명 중 65만9747명이 수도권에 거주한다.

읍면동 지하가구수 전국 지도

0가구1가구~30가구31가구~100가구101가구~1,000가구1,001가구~3,182가구

※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전수조사) 기준

한국도시연구소 제공 전국 읍면동 단위 반지하 가구 비율 맵핑

지역별로 살펴보자.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데이터를 기준으로 지하가구 수에 따라 각 읍·면·동들의 색을 표시했다. 색깔이 진할수록 해당 지역에 반지하 거주 가구가 많다는 의미인데, 수도권을 중심으로 색이 짙고 수도권 이외 지역의 색은 옅다. 수도권 쏠림 현상이 확연히 드러난다.

  • 수도권(서울·경기·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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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표본조사) 기준 / %는 전체 가구 대비 반지하 가구의 비율

반지하가구반지하 1인가구

고양시

전체 가구 135가구

반지하 가구 135가구

반지하 1인 가구 135가구

반지하 가구 비율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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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29개 지자체별로 보면 경기 성남시가 2만5683가구로 반지하 가구수가 가장 많았다. 전체 가구 중 반지하 비율은 서울 중랑구가 11.3%로 가장 높았다. 주민 100명 중 11명이 반지하에 살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에 유독 반지하 거주 가구가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앞서 언급된 급격한 도시화라는 역사적 이유에 더해 좀 더 현실적으로는 높은 주거비와도 연관이 있다.

국토연구원이 2019년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수도권 임차가구가 부담하는 주거비는 월평균 68만7000원으로 조사됐다. 서울에 사는 세입자는 매달 평균 76만9000원을 부담하고 있다.

그에 반해 소득은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2018년 기준 서울 지역 반지하 가구가 매달 일정적으로 벌어들이는 경상소득은 평균 219만원*에 불과했다. 도시노동자 월평균 소득은 540만1814원(3인 이하 가구 기준)으로, 반지하 가구 소득은 이보다 60%가량 적은 수준이다.

* 국토교통부의 2018년 주거실태조사자료를 토대로 한국도시연구소가 추출

도시 근로자 및 서울시 반지하 가구의 평균 월 소득

반지하 가구 월 소득 분포

※ 통계 출처: 국토연구원·국토교통부

서울 지역의 월 평균 주거비는 76만9000원. 반지하 거주 가구 한달 소득의 34%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높은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는 도시 빈곤가구는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서울시 반지하(및 지하) 거주가구의 월 소득

반지하 가구 월 소득 분포

※ 국토교통부의 2018년 주거실태조사자료를 토대로 한국도시연구소가 추출

반지하 10가구 중 9가구는 전·월세로 세들어 사는 세입자였다. 그 중에서도 보증금을 걸고 매월 임대료를 내는 보증부 월세가 53.6% (11만8609가구)로 가장 많았다. 반지하 거주 가구의 전·월세 보증금은 평균 3130만원이었으며 월세는 평균 34만원이었다.

반지하 가구 중 81.8%는 주거비가 부담스럽다고 답했으며, 33.5%는 ‘매우 부담스럽다’고 했다. 이는 다른 주택유형을 포함한 전체 가구(17.1%)에서보다 2배가량 높은 비율이다.

반지하는 아이를 키우는 빈곤 가구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서울시가 지난해 조사한 ‘아동 주거빈곤 가구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1.6%가 반지하에 살고 있었다.

1명 2명 3명 4명 5명 6명 7명 이상

※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표본조사)

“데이터를 보면 반지하는 옥탑이나 고시원에 비해 특히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지방에서는 조금만 여유가 있어도 거기까지는 안 산다. 높은 주거비와 연계가 되는 것이다. 수도권에서는 도시 빈곤층이 살 수 있는 주택이 반지하밖에 없다는 의미다.”

- 한국도시연구소 최은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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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선 어디에 반지하가 많을까

전체 100가구 중 6가구가 반지하에 사는 서울

서울로만 시야를 좁혀 보자.

서울에는 전체 100가구 중 6가구가 반지하에 산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표본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전체의 평균 반지하 거주 비율은 약 6%다. 서울시의 100가구 중 6가구는 반지하에 거주하는 셈이다.

어느 지역에 반지하가 많을까. 서울에서도 반지하 가구 비율은 구별로 편차가 크다. 중랑구는 반지하 가구 비율이 11.3%(1만7839가구)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반지하 가구 비율이 가장 높다. 반지하 가구 비율이 가장 낮은 노원구(2.2%, 4483가구)보다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지역별 차이가 나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시 구별 저소득노인 가구 비율과 한부모가구 비율 등을 교차로 확인해 봤다.

중랑구

반지하 가구 비율 11

먼저 구별 저소득노인 비율을 보자. 서울시에서 2018년도에 집계한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을 따졌다.

강서구(29.28%), 중랑구(25.73%), 은평구(24.47%), 노원구(24.46%), 중구(23.86%), 금천구(23.72%), 양천구(22.16%), 강북구(20.07), 용산구(19.89%), 광진구(18.74) 등은 저소득층 노인 비율이 전체 서울 평균(18.57%) 보다 높게 나타났다.

한부모 가구 비율도 확인했다.

2018년 서울시 조사를 보면 강북구(1.72%), 중랑구(1.54%), 금천구(1.43%), 도봉구(1.46%), 노원구(1.36%), 은평구(1.26%), 강서구(1.08%) 등은 한부모 가구의 비율이 전체 서울 평균(0.9%)를 상회했다. 빗금과 경계선이 짙을수록 한부모 가구 수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저소득층 노인 비율과 한부모 가구 비율을 모두 표시했다.

색이 짙게 표시된 강북구, 중랑구, 금천구, 노원구, 은평구, 강서구, 양천구, 광진구는 저소득노인 비율과 한부모 가구 비율이 모두 높은 지역이었다.

이들 지역 중 강서구와, 노원구를 제외한 곳은 대부분 반지하 가구 비율도 높았다.

서울시 지도에 구별로 반지하 가구의 비율을 표시하자 중랑구(11.3%), 광진구(10.6%), 강북구(9.5%), 관악구(8.4%), 강동구(8%), 은평구(7.8%) 등의 지역이 반지하 가구의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안에서도 저소득노인가구가 많거나 한부모가구가 많은 지역(강북구·중랑구·광진구·은평구·금천구)에서 반지하 가구의 비율도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빈곤가구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반지하 가구의 비율이 높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저소득층 노인 가구와 한부모 가구가 많은 노원구와 강서구는 왜 다른 지역과 달리 반지하 가구 비율이 낮았을까. 노원구와 강서구는 반지하 가구 비율이 2.2%와 4.3%로 서울시 전체 평균인 6% 보다 낮은 수치를 보였다.

막대그래프에 마우스를 올리면 구별 상세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울지역임대주택현황(구별), 2017년 / SH공사 및 LH공사 총계

고양시

임대아파트 공급량 135

×

그 이유는 임대아파트 공급에서 찾을 수 있었다. 강서구는 임대 아파트 공급이 3만1952가구로 서울시 전체 중 공급량이 가장 많았으며 노원구는 2만6684가구로 그 뒤를 이었다.

이는 곧 반지하 거주가구의 감소로 이어졌다. 임대아파트 등 빈곤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대체 주거공간이 공급되면 반지하 비율이 낮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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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민의 이야기

누가 들어오면 곰팡이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

반지하내부사진
방바닥 장판이 심하게 우그러져 있다. 보일러를 틀어도 바닥에는 냉기가 돈다. 장판을 들춰보면 물이 새 있다.

수도권 한 도시에 살고있는 김모씨(49)의 반지하 주택 모습이다. 집 안에 들어서자 코를 찔렀던 쿰쿰한 냄새는 습기와 곰팡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씨는 이곳에서 7년째 다섯 아이를 홀로 키고 있지만 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안락한 보금자리는 아니다.

“낮인데도 불을 켜야 해요. 난방 때문에 커텐을 두르기는 했는데 커텐을 열어도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정도. 여름에도 창문은 조금만 열어둬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내려다보지 않을까 신경이 쓰여서요.”

김모씨(49)

시계를 보지 않으면 밤인지 낮인지 모를 만큼 어둡다. 커튼을 젖히니 창문 너머로 자전거 바퀴가 올려다보였다. 후각으로 먼저 경험한 지하 공간의 실체를 그제서야 눈으로 자각한 것이다. 그런데도 집 안은 특별히 환해지지 않았다.

반지하내부사진 반지하내부사진

아이들 건강도 김씨가 신경 쓰이는 것 중 하나다. 지상에 살 때는 안 그랬는데, 이곳에 살면서 가족 모두 코와 목이 자주 붓는다. 반지하에 사는 아이들은 습기와 곰팡이 때문에 호흡기 질환에 시달린다.

“곰팡이, 천장 위로도 장농 뒤에도 보면 계속 올라와요. 딱 들어올 때 냄새가 난대요. 나는 여기 계속 사니까 모르는데 누가 들어오면 곰팡이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구요.

침수는 1번만 겪었어요. 자고 있었는데 큰 아들이 엄마, 물하고 불러서 깼어요. 화장실하고 저쪽 뒤 베란다에서 물이 넘쳐서 퍼도 소용이 없었어요. 저쪽도 올라오고 화장실에서도 올라오고. 앞집하고 우리 집만 물이 찼어요. 옆 동은 괜찮고. 이쪽이 저쪽보다 지대가 낮아서 그랬죠.

물난리 수습하는 데 한달은 족히 걸려요. 침수 이후에 장판이 우글우글 해요. 저벅저벅. 들춰보면 물이 있죠.”

김모씨(49)

김씨는 전선을 한데 묶어 조립하는 부업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이렇게 버는 돈은 많아야 월 70만원. 한부모가정 지원을 받지만 한달나기가 버겁다. 아이들은 지난 7년 동안 누구도 친구를 집으로 데려온 적이 없다. 친구네 집에 다녀온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이사를 가자는 말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은 온통 <기생충> 이야기로 떠들썩했던 때라, 기생충을 봤냐고 물어봤다.

김씨는 “못 봤다. 내용도 모른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반지하내부사진
빗소리만 들어도 할머니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3년 전 물난리가 났던 시간은 새벽 6시.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경기도 시흥시의 한 단독주택 반지하에 25년째 살고 있는 임모 할머니(89)의 이야기다. 배꼽이 떨어지기도 전에 데려다 키웠다는 손녀와 손자는 15살, 17살이 됐다.

“15평. 여기서 25년을 살았다. 2살 손주, 15살 손녀, 17살 손주들을 엄마 없다는 소리 안 듣게하려고 열심히 길렀다. 엄마, 아빠는 이혼했고. 아빠도 병이 들어서 어디 가 있는지, 정 갑갑하면 한번씩 전화가 온다.

돈 나오는 것으로 고물도 모으고 했었는데 고물상이 이사를 가서 지금은 하지 않는다. 2년 전까지 손자가 고물을 팔았다.”

임모씨(89, 시흥)

침수 피해를 8번이나 입었다. 폭우가 쏟아지면 물은 대개 현관문으로 들이닥친다. 화장실에서도 오수가 역류한다. 침수를 당하면 살림살이는 고칠 것은 고치고 버릴 것은 버린다. 한 달 내내 집 안 곳곳에 고인 물을 퍼내야 한다.

“근처 하수터가 엄청 크다. 그 하수터가 넘치면 이쪽으로 다 내려오게 돼 있다. 거기서 밑으로 못 빠지면 이리로 물이 들어오는 것이다.

2017년 이 동네 다 잠겼다. 싱크대, 여기까지 물이 들어온 거다. 그런데 문이 안 열렸다. 급하니까 소방서에 전화를 해서 겨우 문을 열었다. 화장실에서는 오물이 역류했다. 그 후 시에서 해마다 침수대비 훈련을 한다. 비만 오면 양수기를 갖다 놓는다.”

임모씨(89)

‘부의 상징’ 강남에도 그늘은 있다

평당 1억이 넘는 고가 아파트가 밀집해있는 서초구·송파구·강남구 등 강남3구에도 ‘현실판 기택네’가 있었다. 서초구에 7005가구(1만3888명), 송파구에 1만2869가구(2만6126명), 강남구에 7893가구(1만5185명)가 반지하에 거주한다.

초고가주택이 몰려있는 강남이라고 반지하 상황이 다른 지역보다 나은 것은 아니었다. 창문 바로 앞에 정화조 시설이 설치돼 있거나 도로변에 바짝 붙어 환기와 채광 등은 기대할 수 없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주거환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채광과 환기를 포기하고 창문 앞에 화분을 둔 반지하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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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지하를 이야기하는 이유

집인데,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이 있다

가난한 사람은 비교적 저렴한 집을 찾는다. 그렇기에 주거환경이 다소 열악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집은 최소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 주거문제가 시장 논리에 내맡겨질 때 빈곤가구는 최소한의 주거권과 인간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공간으로 밀려나게 된다.

2003년 한국도시연구소가 발표한 <지하주거공간과 거주민의 실태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반지하 가구 중 심신장애자가 있는 가구는 전체 조사대상 가구의 19.7%에 해당했다. 당시 반지하 10가구 중 2가구에 심신장애자가 거주하고 있었던 셈이다.

“들어가면 ‘헉’ 하는 집들이 있습니다. 이런 곳은 사람이 살 수 없구나. 1시간도 있으면 머리가 아프고, 눈이 아프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삶이 서서히 침몰해가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런 데는 사람이 거주하지 못하도록 행정적인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싸다고 그런 데를 들어가게 하면 안됩니다.”

- 차선화 시흥주거복지센터장

반지하는 구조상 환기가 어렵고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습도도 높다. 반지하의 이러한 구조는 실내 공기 중 오염물질 농도를 높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다세대·연립주택의 주택 층수에 따른 오염물질 농도

다세대·연립주택의 주택 층수에 따른 오염물질 농도
오염물질 단위 지하 1~2층 3층 이상
부유곰팡이(Fungi) ㎍/m3 1,079.7 743.9 440.0
휘발성유기화합물(TVOC) ㎍/m3 1,334.1 692.4 812.7

※ 국립환경과학원, 주거공간 별 실내공기질 관리 방안 연구, 2009~2011

국립환경과학원이 2009~2011년부터 일반 아파트부터 반지하까지 다양한 형태의 주택 내부의 오염물질을 측정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하·반지하 주택의 곰팡이와 휘발성유기화합물(TVOC)의 농도가 다른 주택유형보다 높게 측정됐다.

실제로 서울도시연구원이 서울시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서울 주택의 실내 공기질 관련 연구자료에 따르면 지하·반지하 거주자들의 곰팡이 관찰율은 87%으로 다른 층수보다 높았다.

서울연구원_논문_반지하_곰팡이관찰율

※ 서울도시연구원(최유진, 고경진), 서울시민의 주택 실내공기질 인식과 관리행태에 관한 연구, 2013

주택 내 오염물질의 농도가 높아지는 주 원인 중 하나는 환기의 부족이다. 같은 연구에서 지하·반지하 거주자들은 환기를 할 수 없는 이유로 사생활 보호를 가장 많이 뽑았다.

창문을 열면 실내가 쉽게 외부로 노출되는 반지하의 구조 상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반지하(및 지하) 가구수 추이

  • 2005년

    587,000가구

  • 2010년

    518,000가구

  • 2015년

    364,000가구

※ 2005, 2010, 2015 인구주택총조사

서울시는 2010년 폭우와 침수피해로 홍역을 치른 이후 큰 수해를 입은 반지하주택의 신규 건축을 금지했다. 제도적으로 반지하 가구의 신규 공급을 막은 것이다. 그 결과 반지하 규모는 점차 줄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주변에 있는 기택네는 36만 가구가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