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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엔 절벽 같은 ‘28cm’
01
법 만들면 뭐하나
안전설비 안해도 되는 역이 ‘십중팔구’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내선(이대역 방면) 3-2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은 17㎝다. 원고 장향숙은 2019년 4월30일 위 승강장에서 하차를 하던 중 휠체어의 앞바퀴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에 끼는 사고를 당하였다.』
지난해 7월 서울 동부지방법원 제14민사부가 장향숙씨에게 민사소송 패소를 선고한 판결문에 담긴 사건 개요다.
두 문장에 담긴 사건 전말은 아래와 같다.
2019년 4월30일 오전.
서울 당산역 인근에 살던 장씨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가기 위해 예약 2시간 전 집을 나섰다. 지체장애 1급인 장씨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한다. 평소 교통약자용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휠체어 전용칸이 있는 1-4 또는 4-4 승강장으로 이동한 뒤 지하철을 탔다.
피 검사를 먼저 받아야 하는 날이라 시간이 촉박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지하철이 도착했다. 직선 거리로 가장 가까운 3-2 승강장으로 급히 열차에 올랐다.
8분 후 신촌역에 도착했다. 열차 문이 열리면, 휠체어 이용자들은 정면 대신 바닥을 본다.
평소 내리던 곳보다 시커먼 골이 넓었다. 우물쭈물 못 내리면 진료 시간을 맞출 수 없다.
앞바퀴를 정면으로 정렬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신발이 닿지 않는 양측 모서리를 바퀴는 모두 딛어야 한다. 이 때 추진력을 결정하는 건 속도다. 휠체어 컨트롤러 레버를 끝까지 밀었다.
“쿵”
앞바퀴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허리는 앞으로 꺾였고 충격으로 휠체어 전원이 꺼졌다. 앞을 향했던 바퀴가 옆으로 돌아갔다. 고꾸라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몇 초 후면 지하철 문이 닫힌다.
주변의 도움이 모였다.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들어 휠체어는 승강장에 올라섰다. “덕분에 살았다”고 말했지만, ‘괜찮으세요’ 질문에는 긍정할 수 없었다. 다른 역에서 당했던 사고가 떠올랐다. 을지로입구역에서 덜컹이는 휠체어에 허리가 꺾이면서 손이 레버를 밀었다. 휠체어는 앞으로 튀어나갔다. 매달려 잡은 시민들이 없었다면, 사람을 치거나 벽과 충돌했을 것이다.
도시철도법이 정한 ‘도시철도건설규칙’에는 “차량과 승강장 연단 간격이 10㎝가 넘는 부분에는 안전발판 등 승객의 실족사고를 방지하는 설비를 설치해야한다(편의를 위해 이를 ‘10㎝ 룰’이라고 한다)”는 규정이 있다.
장씨는 해당 역을 관리·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①도시철도건설규칙을 위반하고 ②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정한 차별 행위를 저질렀다며 차별 구제 소송을 제기했다. 장씨는 1·2심 모두 패소했다.
함정은 디테일에 있었다.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2004년 해당 시행령을 개정하며 ‘이 규칙 시행 당시 건설됐거나 건설 중인 도시철도는 종전 규정에 의한다’는 부칙을 달았다. 2004년 이전 지어졌거나, 짓고 있던 역에서는 10㎝ 룰이 적용되지 않는다. 장씨가 사고를 당한 2호선 신촌역은 1984년 준공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간격규정(10㎝ 룰) 시행 당시 건설이 완료된 이 사건 지하철역(신촌역)에는 종전 규정이 적용될 뿐 이 사건 간격규정(10㎝ 룰)이 적용된다고 보기 어려운 바, 이 사건 지하철역(신촌역)에도 이 사건 간격규정(10㎝ 룰)이 적용됨을 전제로 하는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선고했다.
법원은 10㎝ 룰이 2005년 이후 공사에 들어간 역에서만 적용된다고 인정했다. 서울교통공사가 관리·운영하는 역 중 2005년 이후 공사가 시작된 역은 다음과 같다.
중앙의 핸들을 잡고 좌우로 이동하며 좌우 노선도를 비교해보세요
공사가 관할하는 1~9호선 역사 296곳 중 2005년 이후 공사에 들어간 역은 28곳(10.57%)이었다. 전체 역사 중 열의 아홉은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공사의 책임은 28곳 역에서만 유효하며, 나머지 268곳 역에서는 공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정보공개청구로 공사가 파악하고 있는 연단간격 10㎝ 이상 승강장을 확인했다. 공사 책임이 없는 268개 역의 승강장 1만8856곳 중 간격 10㎝ 이상 승강장은 151개 역 3607곳에 있었다.
승객 안전을 위해 규칙을 고쳤지만, 적용되는 곳보다 적용되지 않는 곳이 더 많았다.
중앙의 핸들을 잡고 좌우로 이동하며 좌우 노선도를 비교해보세요
전체 노선도에서 연단 간격이 10cm 이상인 승강장이 하나라도 있는 역을 지우자 절반 이상의 역이 노선도에서 사라졌다. 교통 약자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역이 전체의 절반에 못 미친다는 의미다.
공사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연단 간격이 가장 넓은 곳은 28㎝(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상선 3-3)다.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은 승강장 20% 이상이 연간 간격 20㎝가 넘는다. 성신여대입구역의 상선 승강장 평균 연단 간격은 20.3㎝였다.
1호선 서울역(10%), 3호선 동대입구역(5%), 4호선 회현역(4%) 순으로 간격 20㎝ 이상 승강장이 많다. 간격이 10㎝를 넘는 승강장은 3호선에 가장 많았다. 3호선 홍제역, 수서역, 경복궁역 등이다. 4호선, 1호선, 2호선 순으로 10㎝가 넘는 승강장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다발 승강장은 모두 간격이 10cm 이상
간격이 넓은 승강장에서 발빠짐 사고가 잦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중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지하철 발빠짐 사고 발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 연단간격이 넓은 승강장에서 발빠짐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2017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발생한 발빠짐 사고는 총 340건, 이 중 사고 발생 승강장이 특정되는 곳은 244곳이다.
사고가 발생한 승강장 중 연단간격이 10cm 이상인 곳의 비율은?
4차례 사고가 발생한 승강장 3곳의 연단 간격은 모두 10cm를 넘었다.
각각 3호선 충무로역 상선 4-2(18㎝),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하선 10-2(16㎝)), 7호선 도봉산역 하선 2-2(13㎝).
3차례 사고가 발생한 5곳도 연단 간격이 모두 10cm보다 넓었다.
각각 1호선 서울역 상선 5-4(21㎝), 2호선 시청역 하선 10-2(19㎝),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하선 2-3(11㎝), 2호선 신촌역 외선 7-2(11.5㎝),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하선 7-2(18㎝).
2차례 사고가 발생한 승강장 25곳 중 88%가 10cm보다 넓었다.
1호선 서울역 상선 5-3, 2호선 신림 하선 3-1, 3호선 경복궁역 하선 5-1,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상선 5-4, 7호선 고속터미널역 하선 4-2 등 22곳이다.
5년간 1차례 발빠짐 사고가 발생한 211 곳 중 연단간격 10㎝ 이상인 곳은 153곳이었다.
2005년 이후 지어진 28개 역에서는 발빠짐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간격이 10㎝ 이상인 승강장도 현저히 줄어든다.
새로 지은 역일수록 곡선역보다 직선역이 많아 차량과 승강장 간격이 좁다.
반면 발빠짐 사고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역은 대부분 2005년 지어진 역들이다. 신촌역에서 사고를 당해 민사소송에서 패소한 장씨가 9호선 언주역 상선 6-4(간격 12.5㎝)에서 사고를 당했다면, 재판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사고가 많은 역은 공사 책임이 없고, 사고가 적은 역은 공사 책임이 있다. 2004년 시행령 개정 당시 붙인 부칙 한 문장이 17년째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02
그들은 크레바스라 부른다
2019년 4월 2호선 신촌역에서 휠체어 바퀴가 빠지는 사고를 당한 장향숙씨는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정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아 차별을 당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1·2심에서 패소했다.
1심 법원은 ‘자동안전발판 설치’가 법이 정한 ‘정당한 편의’ 내용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2008년부터 공사가 제공하는 ‘이동식 안전발판 서비스*’, ‘원스톱 케어 서비스**’, ‘또타지하철 어플리케이션 서비스***’도 차별이 아니라는 판단에 힘을 실었다.
*지하철 승하차 전 역사에 전화해 이동식 안전발판 설치를 요청하는 서비스
**교통약자가 역에 하차해 역사를 빠져나갈 때까지 전담인력이 동행하는 서비스
***스마트폰 앱으로 휠체어 승하차가 가능한 승강장 위치 안내
이동식 안전발판, 원스톱 케어 서비스, 또타지하철은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지난달 13일 오후 2시 전윤선 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를 만나 해당 서비스들을 이용하는 과정을 동행 취재했다.
2시13분. 2호선 시청역 내선 4-4 승강장 앞에서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 전화를 걸어 이동식 안전발판 서비스를 요청했다.
시청역에서 출발한다는 사실과, 4-4에서 승차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2시21분에 도착한 열차에 탑승했다. 이 승강장의 연단간격은 8㎝.
2시22분. 열차가 을지로입구역에 도착했지만 4-4 승강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간격은 9.5㎝. 속도를 내면 내릴 수 있었지만, 단차(차량과 승강장의 높이 차이)가 커 포기했다. 전 대표는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 ‘안되나보다’ 마음을 접게 된다”고 말했다.
2시25분. 2호선 을지로3가역 4-4에서 하차했다. 3호선으로 이동해 경복궁역에 전화를 걸어 이동식 안전발판을 요청했다.
2시34분 경복궁역에 도착했다.
다른 승객들이 내리고, 역무원 2명이 반으로 접힌 안전발판을 펼쳐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에 펼쳤다. 판자 형태로 생긴 안전발판은 간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단차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부족해보였다. 지하철-승강장 높이가 다를 경우 휠체어가 안전발판을 밟을 때 널뛰기처럼 발판이 튀어올랐다. 승객이 내리고, 발판을 펴고, 휠체어가 내리고, 발판을 접고, 다른 승객들이 탔다. 이 과정이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히는 20~30초간 작전처럼 진행됐다.
“목숨 내놓고라도 지하철을 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장애인 콜택시는 불러도 언제 올 지 몰라 무한정 기다려야하거든요.” ‘지하철 뿐인가’라는 질문에 돌아온 전 대표의 답이다. 그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열차-승강장 간격을 ‘크레바스(빙하나 눈 골짜기에 형성된 깊은 균열)’라 부른다고 했다.
2시45분 3호선 종로3가역에서 내려 5호선으로 이동했다. 교통약자용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했다.
리프트를 작동한 역무원에게 ‘안전발판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 승강장이 있다”고 답변한 후 떠났다.
3시31분 5호선 신길역 8-1에서 내렸다.
안전발판을 들고 나온 역무원은 “저희 역에 오신 게 처음이신가요? 위쪽까지 안내해드릴게요”라며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곳까지 동행했다.
이날 전 대표가 이동식 안전발판 서비스를 신청한 6곳 중 별도 요청 없이 동행 서비스를 제공한 유일한 역이었다.
서비스는 이용자에게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가 지난 6월28~30일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서울 지하철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장애인 160명 중 62명(38.8%)이 교통약자 이동도우미 서비스에 대해 ‘불만족(매우 불만족+불만족)’한다고 답했다. ‘만족(매우 만족+만족)’ 응답은 32명(20%)이었다.
불만족 이유는 ‘역과 전화가 안된다(25.6%)’, ‘안전발판이나 서비스 인력이 없다(23.8%)’, ‘불친절하다(6.2%)’ 순이었다.
‘간격 좁은 곳’ 골라 탔더니, 휠체어 갈 곳이 없네
1심 재판부는 “피고(공사)는 ‘또타지하철’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전동휠체어가 안전하게 승하차 할 수 있는 승강장 위치를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타지하철은 ‘전동휠체어 안전승하차’ 메뉴에서 열차-승강장 간격이 좁은 위치 216곳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교통약자에게 ‘간격 좁은 승강장’ 정보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중 대부분이 휠체어 전용칸이 아니다. 서울 지하철에는 각 열차마다 4곳씩 휠체어 전용칸이 정해져 있다. 공사가 제공하는 간격 좁은 승강장 216곳 중 휠체어 전용칸은 40곳(18.52%)이었다. 또타지하철 앱으로 좁은 간격 승강장을 골라타면 5번 중 4번은 휠체어 전용칸이 없는 열차에 타게된다.
다른 승객들이 오가는 통로에 ‘장애물’처럼 있어야 한다는 이유 탓에 전씨는 휠체어 전용칸이 없는 곳을 꺼린다. “널찍한 데 놔두고 왜 여길 타!” 전씨가 얼굴도 못본 승객에게 뒷통수를 맞으며 들었던 말이다.
탈 수는 있지만 내릴 수는 없다
휠체어 전용칸 승강장 2190곳(1~8호선) 중 390곳(17.8%)의 연단간격이 10㎝보다 넓다. 이 중 286곳은 고무발판도 없다. 들쑥날쑥한 휠체어 전용칸 승강장 간격은 교통약자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탈 곳은 골라탈 수 있지만, 내릴 곳은 골라내릴 수 없다는 것, 그들이 느끼는 현실적 공포다.
3호선 일원역 상선 4-4에서 탈 때는 2.5㎝를 건너면 되지만, 3호선 충무로 상선 4-4에서 내릴 때는 18㎝를 넘어야 한다. 4호선 숙대입구역 상선 1-4에서는 5㎝를 건너 타지만,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1-4에서 내릴 때는 21㎝를 마주하게 된다.
‘역에 전화해서 이동식 안전발판 요청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1심 재판부의 논리였다. 그러나 이같은 1심의 판단은 2심에서 뒤집혔다.
2심은 “(공사가) 이동식 안전발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나,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미리 해당 지하철역에 연락해 담당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등 그 서비스의 내용과 이용 현황 등에 비춰볼 때...(중략),(간격·단차로 인해) 휠체어 사용자가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승하차하기 어려운 승강장의 경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차별행위가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누군가가 타고 내릴 때마다 전화를 해서 무언가를 요청해야한다면, 이를 ‘동등한 승하차’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03
자동안전발판이 4년째 감감무소식인 이유
“지하철 승강장 안전발판 설치에 따라 승강장과 지하철 간격이 3cm 이내로 유지하게 돼 지하철 승·하차시 실족 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2016년 4월20일 서울시는 2019년까지 발빠짐 사고 위험이 높은 서울 지하철 46곳 역 접이식 자동안전발판 1311개 설치 계획을 밝히며 “시민의 만족도 향상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발빠짐 사고는 ‘획기적으로’ 줄었다. 성중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서울교통공사(공사)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지하철 발빠짐 사고 발생 현황(연단실족, 휠체어 사고 포함)’ 자료를 보면 2018년 104건, 2019년 96건이던 발빠짐 사고는 지난해 46건으로 반토막 났다. 올해 6월까지는 1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1건)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
자동안전발판이 힘을 발휘한 것일까?
2013년 12월4일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조상호 위원
장애인승강장 안전발판에 대해 검토보고서에 있는데 아직 규정이 없어요. …그 안전발판조차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그렇지는 않고요. 그동안 시범사업을 통해 안전성 여부를 테스트 했는데 상당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이 돼 확대 설치하는 것이거든요. 비용적으로도 민간에서 할 때 개당 2000~3000(만원) 정도인데 이번 우리 도철(서울교통공사 전신)에서 한 것은 1500(만원) 정도….
도시교통본부장 윤준병
조상호 위원
이것 안전합니까?
네.
도시교통본부장 윤준병
공사는 2015년 직원 아이디어로 특허를 받은 접이식 자동안전발판을 2016년 195개, 2017년 215개, 2018년 300개 등 총 1311개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이 계획은 감사원 감사로 제동이 걸렸다. ‘안전발판의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전체 제어 시스템의 안전 인증을 받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공사는 ‘성능을 입증해 한국철도표준규격(KRS)를 획득하는 조건’으로 사업을 발주했다. ‘기계는 우리가 인증을 받았으니, 제어회로는 당신들이 만들어 인증을 받으라’는 조건으로 업체에 인증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업체가 만들어 5호선 김포공항역에 설치한 제품은 2017년 1월 열차와 충돌했다. 그해 10월 해당 업체는 기술력 부족, 경영 상의 이유 등으로 사업을 포기했다.
2017년 11월8일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서울교통공사사장 김태호
서울시나 저희 공사나 상당히 걱정을 많이 했던 사업이었습니다. 감사원에서 안전에 대해 좀 더 확인하자고 하니 서두를 이유가 없지요. 국내업체들이 완벽한 기술을 갖고 있지도 않은 상태다 보니 사업이 갈지자 행보를 하게 된 거죠. 해당 업체가 최근에 ‘못 하겠다’고 중도포기 선언을 했습니다.
기존 발표 자료에 의하면 2017년에 한 100개소 하고 나머지 1200개를 이제 한다고…….
장우윤 위원
서울교통공사사장 김태호
그것은 무리수였고 되지 않습니다.
자체 개발한 자동안전발판 설치 계획이 무산되면서, 자동안전발판 관련 논의는 사라졌다. 무리한 사업 추진, 현장 파악 없이 추진계획 변경, 감사원 지적, 업체 포기 등 총체적 파행을 겪은 2017년 이후 4년이 지났지만, 현재 상황은 그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17년 경영실적보고서에서는 “자동안전발판 재설치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했고 2018년 서울시 감사에서는 ‘해소대책을 강구해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음’, ‘문제점 해소를 위한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음’이라 답했다. 또 ‘2019년 4분기에 자문을 의뢰할 예정’이라며 ‘결과에 따라 2020년 상반기 자동안전발판 설치여부 및 방법 등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무성한 계획 중 현실이 된 것은 없다. 기존 업체 설치 제품을 이어받는 위험을 감수하려는 업체는 없었다. 연구도 진행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실시한 감사에서 서울시는 “감사일 현재까지 자동안전발판의 형식 결정을 위한 타지역 설치 사례 견학 5회, 자동안전발판 제작전문 업체 5곳 기술자문 외에 자동안전발판 설치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1311개 계획 중 현실이 된 건 0개인데 발빠짐 사고는 왜 줄었을까. 사고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19다. 공사가 파악한 올해 1~5월 평균 수송인원은 1억6354만4017명으로 2년 전 같은 기간(2억2597만6833명)에 비해 40% 가량 감소했다. 지하철 이용객이 줄면서 전체 발빠짐 사고 건수도 함께 줄었다.
2019년 11월11일 서울시 교통위원회
우형찬 위원
지하철 안전발판 관련해서 지금 모든 것이 다 올스톱이 된 거죠?
네, 현재는……. (중략) 안전성에 대해서 도무지 현 기술로 안전성이 확보된다 이렇게 할 수가 없으니까 진행을 안 하고 있습니다.
서울교통공사사장 김태호
차고 넘치는 ‘안 될 이유’ 속 공회전 된 논의…
기술 개발 나섰던 업체들은 사업을 접었다
자동안전발판을 신규 설치하려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대형 공사가 필요하다는 게 공사의 입장이다. 공사는 자동안전발판 사업을 재추진하지 않는 이유로 “접이식 안전발판은 정비원이 승강장에 진입(열차사고 위험)해야하는 단점이 있고, 슬라이드 안전발판은 공사비가 비싸고 단차가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밝혔다.
막대한 예산, 안전문 바퀴가 지나는 레일(가이드레일) 훼손, 연단 아래 설치된 장비를 유지·보수할 때 안전성 문제, 연단 두께 및 보강 방법, 지하역사 습기로 인한 장비 품질 저하 등 ‘안 될 이유’는 차고 넘쳤다.
공사가 자동안전발판에 손을 놓고 있었던 4년, 기술 개발에 나섰던 민간 업체들은 하나둘씩 나가떨어졌다. 한 업체는 열차 충돌 방지 기능이 있으면서 기존 안전문 장치에 설치할 수 있는 ‘무경첩 접이식 자동안전발판’을 개발해 2017년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교통신기술에 포함됐다.
안전성에 초점을 맞춘 탓에 단가가 높았던 점은 공공 발주에서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 업체는 자동안전발판 사업을 접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일부 역에 자동안전발판을 제공해온 한 업체는 그간 서울교통공사 사업 수주를 꾸준히 시도해왔지만 안전성의 벽을 넘지 못했다. 업체 관계자는 “사실상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사안을 바라보는 법원과 서울시의 시각은 엇갈린다.
지난달 19일 서울고등법원은 “서울교통공사가 도시철도 관련 법령을 위반하거나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차별행위를 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2019년 7월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도시철도법 제18조 등에 의하면 차량과 승강장 연단 간격이 10㎝가 넘는 부분은 안전발판 등 승객의 실족 사고를 방지하는 설비를 설치토록 하고 있어 (공사의 해명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민들의 인식도 나뉘어 있다. 지난 2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로 인해 4호선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공사 트위터 공지·열차 안내방송에 어떤 이들은 “시위가 아니라 설비가 안된 것”, “애초에 잘해놨으면 시위도 없을 것”, “이런 말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자유롭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이 듣고 싶다”고 답글을 달았다. ‘권리를 주장한 교통약자을 향해 혐오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반면 장애인 단체의 시위 소식을 전한 네이버 뉴스에는 “덕분에 30분이나 집에 늦게 갔다”, “애꿎은 시민들한테 불편을 주면 안된다”, “장애인들 시위는 민폐” 등 불만 섞인 댓글이 많았다.
서울 지하철 곳곳의 ‘크레바스’에는 17년 전 멈춘 도시철도건설규칙(10㎝ 룰), 예외조항을 숭숭 뚫어둔 장애인차별금지법, 공사의 무리한 자동안전발판 사업 추진과 실패, 낡은 지하철 역사의 구조적 요인과 기술적 한계, 공사의 부작위(해야할 일을 하지 않음), 사법의 경직성과 행정의 무능, 교통약자 이동권을 향한 부정적 여론이 켜켜이 쌓여왔다.
그 틈에서 두 바퀴는 수년째 헛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