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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캠페이너
여성, 외치다
여성들은 외쳤다. 우리는 사람이며, 이성을 가진 생각하는 존재이며,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일하는 사회의 일원이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며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범죄’를 처벌해달라는 것이라고. 세상은 ‘빵과 장미’를 요구하는 여성들에게 침묵을 요구했지만 외침은 멈추지 않았다. 성별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 보이지 않는 힘이 만드는 성폭력의 구조, 여성의 역할에 한계를 긋는 잣대가 드러나게 된 것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다. 3월8일 세계 여성의날을 맞아 역사의 굽이마다, 또 평범한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소리를 냈던 여성들의 외침을 돌아봤다. 수백, 수십 년 전 여성들의 외침 중에는 지금까지 유효한 구호들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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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tflat38“어찌하여 신체가 남자와 같은데 압제를 받아 세상형편을 모르고 죽은 사람 모양이 되리오.”
“말보다 행동!”(Deeds not Words)“여성에게 참정권을!”(Vote for woman)
1898년 조선, 이소사와 김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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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과 동등한 참정권을 요구하던 영국 여성들이 운동의 방식을 바꾸며 두려움 없이 행동하자고 외쳤다. 1860년대부터 시작한 평화 집회와 낙선 운동, 법적인 틀 안에서 진행한 선전 활동은 연이은 좌절이었다. 여성의 권리를 위해 이제 전투적인 길을 걷기로 한다. 돌과 폭탄을 들어 상점을 부수고 건물을 불태웠다. ‘서프러제트.’(Suffragettes)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은 1908년 비폭력 참정권 운동, ‘서프러지스트’(Suffragist)와 다른 급진적인 투쟁에 들어간다. 폭력적인 여성 시위대는 경찰에 체포되거나 구금됐다. 감옥에 갇힌 이들이 단식으로 농성을 했다. 에밀리 데이비슨은 1913년 더비 경마대회에서 질주하고 있던 조지 5세의 말을 향해 달려들며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고 외쳤다. 경주마와 충돌한 그는 나흘 뒤 사망했다.
서프러제트가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 여성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외쳤다.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갖는 참정권. 국가 권력도 침해할 수 없는 평등한 천부인권. 미국의 독립선언문(1776년)과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1789년)이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인간을 인간으로서 정의할 때도 여성은 인간, 그리고 시민의 범주에 속하지 못했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자유와 권리를 쟁취한 공은 오롯히 남자 인간, 남자 시민에게만 주어져 여성은 참정권의 대상에서 배제됐다. 올랭프 드 구주는 여성을 차별하며 평등을 말하는 남성들의 모순에 맞서 1791년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썼지만 이런 외침이 ‘여자답지 못한 행동’이라는 이유로 처형되고 만다. 그는 죽기 직전 이 선언문의 10항를 외친다. “여성이 단두대에 올라갈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지고 있다.” 그후에도 프랑스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기까지 15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남자는 자국인과 외국인을 포함해 가장 무지하고 멸시 당하는 사람에게도 있는 권리가 여성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1848년 미국 뉴욕 세네카 폴스에서 여성인권대회에 참가한 이들은 남성이 여성에게 행하는 16가지 억압을 조목조목 따져 묻는다. 천부인권을 정의한 독립선언문이 발표된 지 70년이 지나서도 여성들의 ‘소신 선언’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외치고 있었다.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자 시민으로서 갖는 최우선의 권리인 선거권은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허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30년이 더 흐른 1920년 8월이 일이었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가지고 있다.”
산업혁명으로 근대가 완성돼가던 18세기에도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돼 정치 문제를 논할 수 없었는 존재였다. 그 이유를 ‘열등한 이성’을 가졌기 때문이라던 당시의 사회 관념에 대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이렇게 반박한다. “여성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남성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이성이다.”
1792년 써낸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 그는 여성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갖고 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현재의 기준에선 이마저도 주체적이지 못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여자가 ‘남성의 즐거움을 위한 존재’고 서슴없이 말하던 때 그가 옹호한 여성의 권리는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울스턴그래프트 권리를 외쳤던 100년 후에도 영국 여성들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은 사회를 부수기 위해 서프러제트로 싸웠고 1918년 드디어 서른이 넘은 ‘자격’이 있는 여성들의 참청권이 인정된다. 후에도 여성들의 권리 투쟁은 멈추지 않아 1928년 모든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됐다.
#여성의날#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