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첫번째:
도시 브랜딩
하지만 아주 작은 도시는?
도시는 각자의 브랜드를 가지려 노력한다. 지역의 특성과 이미지를 담아낸 명칭과 상징물, 디자인으로 도시를 꾸민다. 도시 브랜드는 주민 삶의 질을 높이고, 관광객과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시 브랜딩은 공공디자인에 속한다. 공공디자인은 공공장소·시설을 꾸며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도시 브랜딩과 추구하는 목표가 겹친다.
김윤주 총감독은 “사업 이름인 ‘공공디자인으로 행복한 공간 만들기’가 공공디자인의 정의를 얘기해 주는 것 같다”며 “공간을 누리는 사람들이 쾌적함을 느끼고, 발전된 도시로 인식을 할 수 있는 장치가 공공디자인이자 도시 브랜딩”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 도시의 브랜드는 얼마나 될까. 몇 년 사이 도시 브랜드는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 하지만 도시의 특징과 미래를 담아내지 못하거나 알아보기 힘든 영어로 쓰인 경우가 많아, 그 성공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특별·광역시를 제외한 226개 시·군·구의 브랜드 중에서 성공 사례를 찾는 건 더 어렵다. 대도시보다 인력과 자원이 적고, 경쟁해야 하는 도시들도 많기 때문이다.
여기 전라북도의 작은 군, 고창이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있다. 고창은 매년 인구가 1000명씩 줄어가는 도시다. 전국 82개 군 중 하나인 이 곳은 어떻게 자신을 브랜딩하고 있을까.
02
두번째:
작은 고창의 가장 큰 도로, 브랜드를 담다
고창읍을 가로지르는 4차선 도로 ‘중앙로’가 있다. 고창에서 가장 넓은 길이다. 중앙로에 고창 브랜드를 담기로 했다. 중앙로의 중앙인 군청 앞을 먼저 가봤다.
김 총감독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가지고 있는 도시는 고창 말고도 많다. 하지만 다섯 가지를 가지고 도장을 찍을 수 있는데는 여기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어 “2021년 7월 고창 갯벌이 세계자연유산으로 추가 등재되면서 ‘고창은 다른 도시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이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이 말한 ‘다섯 가지’는 무엇일까.
기존 고창의 슬로건은 ‘한반도 첫 수도 고창’이었다.
고창에 고인돌 유적이 많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하지만 고창이 가진 다른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고창의 미래를 담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
기존 군청 앞에 있던 ‘고창군청·고창군의회’, ‘청렴한 고창, 행복한 군민’라고 새겨진 두 개의 기념비는 다른 곳으로 옮겼다.
흔히 볼 수 있는 하트 모양의 포토존도 치웠다. 멀리서도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 고창’이라는 글씨가 명확히 보이도록 하고, 주민들의 보행에 불편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라는 브랜딩에 맞춰, 중앙로 3곳의 로터리에 고창의 정체성을 담은 소나무를 심었다. 기존에 있던 인공 조형물은 없앴다. 앞서 고창군은 이 소나무를 주민에게 기증받았다.
새로운 인공 조형물을 세우는 것 대신, 소나무를 심는 것을 두고 많은 고민이 있었다.
김영창 고창군 주민자치위원장은 “고창은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된 의병 도시이기 때문에 ‘전봉준 장군 동상을 세워야되지 않나’라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역사성 있게 고인돌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그 과제를 가지고 상당히 심도 있게 토의를 했다”고 말했다.
서애은 고창군청 주무관은 “고창 IC에서 중앙로 입구까지 소나무 가로수길이 있다”며 “중앙로까지 소나무가 이어지면 고창을 찾는 사람들에게 더 인상 깊게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를 강조하기 위해선, 소나무가 낫다고 결정했다. 인공 조형물은 시간이 흐르면 관리하기 어렵고, 운전자의 시야를 가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고창의 군목이 소나무라는 점도 염두에 뒀다.
소나무 주변에는 태극 모양으로 돌담을 놓았다. 고창의 명물인 고창읍성(모양성)과 무장읍성의 성벽 이미지를 따온 것이다.
03
세번째:
도시 브랜딩, 공공 문제도 해결
도시 브랜딩은 도시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주민들이 겪는 불편함을 덜어주는 것 역시 도시 브랜딩의 역할이다.
버스 정류장이 없던 곳에 버스 정류장을 세웠다.
김성균 대한고속 고창영업소장은 “시장에서 나온 노인분들이 시장 앞 횡단보도에서 승·하차를 하다보니, 도로의 차량을 막거나 횡단보도의 보행자를 막아서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창 주민 강경순씨는 “축협 앞 버스 정류장이 생기기 전에는 항상 (더 멀리에 있는)터미널까지 가서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탔다”며 “이 곳에 버스 정류장이 생기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기존에 있던 버스 정류장과 택시 정류장도 교체했다.
여기에는 고창 브랜딩에 맞는 새로운 이미지를 넣었다.
정류장에 가림막을 크게 만들지 않은 까닭은 도로를 오가는 차량이 정류장에 있는 사람을 미리 파악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가림막이 크지 않아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 밖에 주차장 안내 간판과 공중전화 부스를 교체하거나 새로 만들었다.
버스·택시 정류장, 안내 간판, 공중전화 부스는 모두 짙은 소나무 느낌이 나는 색으로 통일했다. 도시 전체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다.
04
네번째:
첫 발 디딘 고창 브랜딩, 앞으로 숙제는
도시 브랜딩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입장을 가진 주민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고창 브랜딩을 발전시키기 위한 숙제도 이와 관련돼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 고창’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이재현씨(67)는 “고창이 청정지역으로 등록이 됐다는 게 자랑스럽다”며 “이번 브랜딩으로 관광객이 유치되고, 지역경제 발전도 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40대 고창 주민도 “한옥마을이 유명한 전주는 IC 지붕을 한옥 모양으로 만들었다”며 “고창의 브랜드도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반면 의구심을 갖는 의견도 있었다. 한 70대 고창 주민은 “유네스코 유산을 강조하는 것은, 개발 관련 규제를 풀어서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것과는 방향이 다르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생각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 주민들과 접점을 넓히고 설득과 대화를 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도시 브랜딩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지속성이다. 고창은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라는 브랜드에 맞춰 고창 내 유네스코 유산들을 둘러보는 관광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또 고창을 중심으로 변산반도 국립공원 자연유산과 전주지역의 무형유산을 연결하는 관광도 준비하고 있다. 중앙로에 있는 고창읍사무소를 재건축도 이번 브랜딩에 맞춰 진행하고 있다.
윤혜경 고창문화관광재단 팀장은 “주민들은 고창에 세계유산이 많다는 점을 대부분 알고 있지만, 그게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또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며 “이번에 고창의 브랜드를 공유하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영창 회장은 “앞으로 어느 군수가 뽑히든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 고창’이라는 브랜드는 유지해야 한다. 군정 방향은 브랜드의 하위 개념인 캐치 프레이즈에 담으면 된다”면서 “고창 브랜딩이 인구가 소멸해가는 이 곳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