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설명회에서 만난 교수와의 인연으로 성아는 조금 늦은 캠퍼스 생활을 시작했다. 장거리 통학과 두 아들의 육아를 동시에 해내느라 녹초가 됐다. 홀로 딸을 키우는 서연도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스물한 살 엄마에게 일과 육아의 병행은 버거웠다. 아이를 봐줄 다른 가족이 없는 둘에게 ‘돌봄’이란 남들보다 훨씬 무거운 문제다.
두 어린 엄마는 곳곳에서 편견에 부딪혔다. 가시 돋친 말들. 악의 없는 질문조차 때로는 상처가 됐다. 반대로 색안경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삶을 그 자체로 인정받을 때 어린 엄마들은 가장 기뻤다.
수십 번 넘어졌고 자주 울었다. 앞으로의 삶도 마냥 꽃길만은 아닐 테다. 그래도 두 엄마는 다시 일어나 걸었다. 자기 앞의 삶을 꾸준히 걷던 3월의 어느 날, 성아와 서연이 마주쳤다.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한국의 규칙에는 패자부활이 없다. 한 번 넘어질수록 다시 일어나기는 점점 힘겨워진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의 기울기가 처음부터 너무 가팔랐지만, 규칙을 만든 사람들은 그 사실을 꾸준히 무시했다.
울퉁불퉁한 생 위에서 성아와 서연은 수십 번 넘어졌고 자주 울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자기 앞의 삶을 걷는다. 앞으로의 날들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래도.
이 기사에 결론은 없다. 마침표 너머로 성아와 서연의 일상은 계속된다. 공부하는 여성으로,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갈 것이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나'로, '어린 엄마'로 지낼 것이다. 그렇게 포악한 세계 앞에 말할 것이다. 세상이 뭐라 해도, 우리는 여기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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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한 삶 위에서 많이 미끄러졌지만 다시 일어나 걸었다. 나, 어린 엄마가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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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을 낸 스물한살 서연이 딸 은지와 시간을 보내던 올해 봄, 스물넷 성아는 대학에 막 입학해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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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한부모 복지 현장 전문가들은 국가의 복지시스템이 훨씬 더 촘촘하고 강력해져야 한다고 제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