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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옛날 모습 확대 버튼을 클릭하면 하늘색 핸들을 좌우로 움직여볼 수 있어요. (출처 : 국토지리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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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협 폐창고에서 동네 사랑방으로

    마을 아재들은 마을 앞 들녘이 훤히 보여야 재물이 들어온다며 오래전 문 닫은 농협연쇄점과 양곡 창고를 없애고 싶어 했다. 청년회는 지자체 공모 사업을 따내 창고는 '두레방'이라는 이름의 마을 사랑방으로 재건축하고, 마을 앞을 가리는 연쇄점 건물은 허물었다. 두레방은 공동 주방, 북카페, 요가교실, 회의실 등으로 쓰인다.

    두레방 옆엔 할머니 경로당이 있다. 두지마을에서 가장 복작거리는 곳은 바로 이곳이다. 김씨 집안으로 시집온 '아짐'들의 휴식처다. 이 마을은 할머니를 '아짐', 할아버지는 '아재'라고 부른다. 벼 수확이 끝나고 농한기가 시작되면 아짐들은 경로당에 모여 함께 밥을 먹는다. 할머니 경로당 위쪽에 있는 예전 마을회관, 지금의 할아버지 경로당이 더 널찍하고 방도 하나 더 있지만 문은 주로 잠겨 있다.
    '삼총사'라 불리는 김순례(71)·박미순(70)·장순금(73) 아짐은 매일 할머니 경로당으로 출근한다. 점심밥을 차리고 군청으로부터 '급식 도우미' 수당을 받아 셋이 나눈다. 순금 아짐이 냉장고 쓱 한번 보고 "오뎅탕" 결정하면, 미순과 순례 아짐은 "무시가 더 있어야 시원한디" 하며 무를 몇개 꺼내 나박나박 썬다. 집에서 반찬 한두 개 놓고 혼자 먹는 것보다, 찌개 끓이고 반찬도 여러 개 놓고 함께하는 식사가 훨씬 낫다.
    80대 '성님'들은 큰 방 텔레비전 앞에 앉아 점심이 다 되길 기다린다. 몇몇은 미지근한 물이 담긴 2l짜리 물통을 베개 삼아 눕는다. 한겨울인데도 물통 베개가 시원해서 좋단다. 요양원에 가 계신 분을 빼고, 마을에서 연세가 가장 높은 성님은 1931년생 양옥금 아짐(9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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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스정류장

    하루 8대 버스를 타고

    두지마을을 지나는 시내버스는 하루 8대뿐이다. 버스 타면 20분 정도 걸린다. "이렇게 불편한데 차 없이 어떻게 살아요" 묻는 기자에게 미순 아짐이 말했다. "차는 많이 다니제. 옛날엔 아침에 두 번, 저녁에 두 번밖에 없었어. 그땐 걸어다녔응께"

    성인이 빠른 걸음으로 가도 1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다. 그나마 두지마을이 있는 풍산면은 교통이 좋은 축에 속한다. 내장산·회문산·강천산 자락에 있는 복흥면, 쌍치면, 구림면, 팔덕면 등에는 버스가 안 다니는 오지 마을이 꽤 있다. 순창군에선 교통 오지 주민을 위해 1000원에 이용할 수 있는 마을택시를 운영한다. 두지마을엔 '천원 택시'가 다니지 않는다.
    장을 보려면 순창읍으로 나가야 한다. 매월 1과 6으로 끝나는 날 읍내에 장이 선다. 장날에는 순창군 내 모든 버스가 운행 노선을 바꿔 장터를 지난다. 장날엔 인근 버스터미널 승차장에 간이의자가 여러 개 놓인다. 장을 본 어르신들은 "(농한기라서) 어차피 집에 가도 논다"며 의자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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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사로 먹고살긴 어려우니, N잡해야죠

    도시에 살던 이들이 농촌에 가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농촌에 많이 있는 영농조합이나 농업회사 법인에서 사무·회계 등의 일을 맡거나, 군청에 들어가 계약직 직원으로 일할 수 있다. 이외에도 가축방역 업무 보조, 목욕탕 청소, 방과후 수업 강사, 생활지원사 등 '작은 일자리'가 많다고 두지마을 귀농·귀촌인들은 전했다. 다만 일 년 중 특정 시기에만 일하거나, 하루 중 반나절 정도만 일하는 등 큰돈을 버는 일은 아니다.

    그중엔 기자 일도 있다. 2013년 두지마을 귀촌 후 친환경농산물 유통 일을 하는 구준회씨(48)는 칼럼니스트(전북일보 필진)에, 지역지 기자(열린순창 객원기자)로도 활동했다. 다만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 건 군청에서 일하는 아내 전수진씨(48)의 공무원 월급 덕분이다.
    서울 살던 김효진(55)씨는 3년 전 부치던 논이 반 토막 난 이후로 산불감시원 일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논두렁을 태우거나 쓰레기 태우는 것을 단속하고, 불이 나면 진화 작업까지 맡는다. 봄에 3개월 반, 가을엔 한 달 반가량 하는 한시적 일자리이지만, 월급으로 180만~190만원 정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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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건진료소

    쪼께 감기 들고 아프면

    '리(里)' 단위 보건소 산하 보건진료소는 주민들에게 인기다. 두지마을 아짐들은 "쪼께 감기 들고 아프면" 두지마을과 대가마을 사이에 있는 보건진료소를 찾아간다. 걸어서 5분 거리다. 순창읍의 보건소와 풍산면의 보건지소에는 공중보건의가, 마을 보건진료소엔 간호사가 근무한다. 시골 마을에서 일하려는 의사들이 없다 보니 간호사를 교육해서 진료를 맡긴 것이다. 간호사인 보건진료소장은 감기와 같은 1차 질환을 진료한다. 혈압약·당뇨약도 처방할 수 있다.

    지난달 10일 두지마을 아짐이 보건진료소를 찾았다. 왼쪽 발에 깁스를 했다. 김장 때 삐끗해서 왼쪽 발가락을 다쳤단다. "이미 나샀다. 불편해서 얼른 풀고 싶다" "어머니 있잖아요. 풀면 다시 뼈가 어긋나요. 안 돌아다니셔야 하는데 자꾸 돌아다니시니까 이렇게 단단히 싸매버린 거예요" "안 움직일 수가 있나" "긍께 어머니 저녁에 꼭 다리를 올리고 주무세요. 붙으면 병원에서 (깁스) 빼주실 거예요."
    이 마을 보건진료소장은 10년 전 순창에 와서 오지 보건진료소 여럿을 돌아다녔단다. 어르신들에게 생각보다 우울증이 엄청 많으세요. 여기서 처방은 못하지만 여쭤보면 불안장애 약, 불면증 약도 많이 드시고요. 남편과 자식이 먼저 세상을 뜬 분도 많고요. 두 집 걸러 빈집인 마을이 많아요. 혼자 자는데, 잠도 오지 않는데 빈집에서 바스락바스락하는 소리까지 들려봐요. 신경이 곤두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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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나무숲

    대나무 대신 집이 빼곡했다우

    1970년대만 해도 120여가구가 살았다. 야산에는 대나무가 아니라 집들이 빼곡했다. 마을이 크다 보니 우물이 2개 있는데, 윗 우물 쪽에 살면 '웃물 산다', 아래 우물 쪽에 살면 '아랫물 산다'고 했다.

    주민들은 마을 앞 들판에서는 벼농사를 짓고, 물 빠짐 좋은 강변에는 '무시(무)'를 심었다. 마을 입구에 양곡 창고 딸린 농협연쇄점(하나로마트)이 있을 정도로 크고 부유한 동네였다.

    2025년 새해 33가구만 남았다. 70~90대 노인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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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재숙

    기숙형 방과후 교육시설

    인재숙은 2003년 순창군에서 만든 입시 대비 기숙학원이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순창 학부모들이 전주·광주로 이사하는 걸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출처 : 순창군 공식블로그
    예비 중3부터 예비 고3을 대상으로 국어·영어·수학 시험을 본다. 학년별로 50여명씩 성적순으로 선발한다.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면 인재숙으로 와서 서울 학원가 출신 강사들의 강의를 듣고 늦은 밤까지 자율학습을 한다.
    출처 : 순창군 공식블로그
    부모들은 식비(월 25만원)만 내면 된다. 연간 15억원이 운영비로 쓰인다. 인재숙은 설립 직후부터 '군청이 사설 학원을 운영한다' '공부 잘하는 애들만 뽑아 지원한다' 등의 지적을 받았다. 인재숙 설립에 반대하며 농민들이 순창군청에 똥물을 뿌린 일은 순창에서는 유명한 일화다. 인재숙 때문에 순창에 남았다는 이들도 있다.
    '이장 딸' 채은도 중·고등학생 때 인재숙 생활을 했다. 엄마 전혜경씨가 말했다.
    "식대만 내면 밥 주고 재워주고 공부 가르쳐주고 완전 거저지. 채은이 가르칠 때 돈이 많이 안 들어갔어요. 거기 가 공부만 하는 애들이 불쌍하긴 한데…. 그래야 성적도 오르니까 우리나라 현실에는 맞지 않나 생각도 해요. _전혜경씨(57)"
    인재숙이나 학원 외에 방과 후 청소년들이 갈 만한 곳은 거의 없다. 맛집 찾기도 힘들다. 구준회씨 첫째 딸 자은이는 남원·전주·광주에는 있는 프랜차이즈 '○○떡볶이'가 순창에 없는 걸 아쉬워한다. 아이들이 놀 공간도 마땅치 않다. 부모들은 쉬는 날 아이를 데리고 광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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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산초

    모두가 주인공인 학교

    2010년 즈음 풍산초는 폐교 위기를 맞았다. 신입생이 3명 이하로 줄었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풍산초를 '혁신학교'로 만들기로 했다. 혁신학교란 소규모 학급으로 운영하면서 교육 과정에 더 자율성을 갖는 학교를 말한다. 풍산초는 2011년 전북의 첫 혁신학교가 됐다. 학부모들은 아침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줬다. 2020년에는 그림책 만들기 수업도 생겼다.

    3년 전부터 순창의 사회적협동조합 '우리영화만들자'와 함께 영화 제작 수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6월에는 전교생이 참여한 8분짜리 판타지 영화 "내 이름은 색깔"이 학교 강당에서 상영됐다. 영화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인 풍산초 학생이 '색깔 요정'을 만난다. 교실을 칠하는데, 빨강·노랑·파랑 등 색이 달라질 때마다 학생들의 감정이 변한다. 한 가지 색깔이 아닌 모든 색이 한데 어우러질 때 가장 행복해진다는 얘기를 담았다. 시나리오는 풍산초 학생들이 공동으로 썼고, 배역도 풍산초 학생들이 맡았다. 자민이도 '기차놀이 하는 학생' 역할을 맡았다.
    이들에게 작은 학교는 희망이자 위기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맞춤식 수업을 하고 '예술제' 같은 특색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지만, 관계 맺을 수 있는 친구가 적고 매년 폐교를 걱정해야 한다.

    순창에서도 읍을 제외한 면 지역 초등학교 학생 수는 계속 줄고 있다. 순창읍 초등학교가 학생 수 200명을 넘기는 것과 달리, 면 지역 학교들은 이제 40명을 넘는 곳이 없다. 풍산초 등 5개 학교는 전교생 수가 20명이 채 안 된다. 아이들이 학교 다닐 나이가 되면 읍에 있는 아파트를 구해 사는 경우가 많단다. 아이들은 순창읍 초등학교와 학원으로 가고, 부모들은 면 지역 논밭으로 출퇴근한다.
    박붕서 풍산초 교장은 "학부모들이 읍내에 더 많으니까 학교가 지역 주민들과의 연결 지점이 없어지고 있다"며 "이젠 면 지역에서 초등학교 폐교는 얘깃거리도 안 될 정도"라고 했다. 농부이자 작은 도서관장인 김선영씨는 딸 승하가 풍산초를 졸업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매주 목요일이면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러 간다. 김씨가 말했다.
    "지역을 누구보다 잘 아는 주민들이 학교를 지켜야 해요. _김선영씨(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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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읍내 보건소

    '24시간 응급실'은 이 보건소뿐

    순창읍 내 20여개 병원은 내과·치과·한의원·요양병원 등이 대부분이다. 산부인과는 없다. 소아과는 내과 병원에서 같이 봐주는데,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순창의 내과 대신 남원·전주·광주에 있는 소아과를 찾아간다. 자은·자민 엄마 전수진씨는 자민이를 가졌을 때 전주 산부인과를 다녔다. 첫째 자은이가 7살에 뇌수막염으로 입원해야 했을 때도 전주 대학병원으로 갔다.
    읍에 순창보건의료원(보건소)이 있지만 주민들은 이곳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첨단 장비는 있는데 판독할 영상의학과가 없다. 공중보건의가 바뀔 때마다 진료 과목이 바뀌어 치료를 못 받기도 한다. 다만 순창에서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는 곳은 이 보건소뿐이다.
    "추석 때 풀을 베고 두드러기가 올라와 밤중에 응급실에 갔죠. 주사 놔주고 약을 줬어요. 전혀 괜찮아지지 않더라고요. 결국 광주 병원에 갔어요. 의사가 열 알레르기라고 하더라고요. 간지러움 때문에 사람이 미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니깐요. _구준회씨(48)"
    "아는 언니가 전동 전지가위로 작업하다가 손가락 끝이 살짝 잘렸어요. 보건소에서 꿰맸는데, 손가락이 괴사하기 시작한 거죠. 광주로 가서 수술했어요. _금과면 주민 김현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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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회

    굴러온 돌이지만 이젠 박힌 돌로

    15년 전만 해도 두지마을은 정월대보름이면 마을회관에 제사상을 차리고 당산제를 지냈다. 한 해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제사다. 원래는 마을에서 농악 가락에 맞춰 당산나무가 있는 마을 뒤 야산까지 올라 제를 지냈는데, 주민들이 나이 들면서 마을회관에서 간소하게 한다.
    당시 귀농·귀촌 청년들은 마을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기웃거린 행사가 당산제였다. 여성과 아이는 참여할 수 없었다. 2012년 2월5일 정월대보름을 끝으로 당산제가 사라졌다. 당산제를 이어갈 청년들은 없었고, 제사상을 차리는 아짐들도 힘들어했다. 당산제 폐지를 계기로 귀농·귀촌 청년들이 뭉쳤다. "우리에게 곁을 내준 마을인데 우리도 제 역할을 해보자"며 마을에서 사라진 청년회를 새로 꾸렸다. '굴러온 돌'이지만 이제는 '박힌 돌'로 살자며 이름을 '파킹스톤'(박힌 돌)이라 지었다.
    당산제 대신 뭘 할 수 있을까. 정월대보름 행사인 '달집태우기'는 여성과 아이들도 참여할 수 있다. 청년회에서 달집태우기를 해보겠다고 하니 아짐·아재들도 흔쾌히 나섰다. 청년회는 아재들에게 볏짚 꼬고 이엉 엮어 '달집'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2013년부터 두지마을에선 정월대보름 달이 떠오를 때 주민들이 달집에 불을 질러 액을 쫓고 복을 부른다.
    아재들은 마을 앞 들녘이 훤히 보여야 재물이 들어온다며 오래전 문 닫은 농협연쇄점과 양곡 창고를 없애고 싶어 했다. 청년회는 지자체 공모 사업을 따내 창고는 '두레방'이라는 이름의 마을 사랑방으로 재건축하고, 마을 앞을 가리는 연쇄점 건물은 허물었다. 두레방은 공동 주방, 북카페, 요가교실, 회의실 등으로 쓰인다. 귀농·귀촌 가구도 9가구로 늘었다.
    청년회도 나이를 먹었다. 자녀들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해 마을을 떠났다. 아재·아짐들은 세상을 등졌다. 지난해에도 세 분이 돌아가셨다. 아짐들이 마을에서 보이지 않으면 어김없이 요양원에 가 계셨다. 주민은 줄고 빈집은 는다.
    7년 전 마을 주민이 된 조선영씨(50)가 사는 집 주변 5개 집 중 3곳이 빈집이다. 주변이 비어 가는 것을 보며 '마을이 사라진다'는 말을 실감한다. 조씨가 말했다.
    "내가 무슨 일 생겼을 때 바로 뛰어올 수 있는 거리에 아무도 안 살까 봐...그게 두려워요. _조선영씨(50)"
    도시 사는 자녀 세대들은 어르신들이 살던 집을 잘 팔지 않는다. 요양원에 있는 어르신들이 파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르신이 세상을 떠난 집 자녀들 몇몇도 제 살던 집 그대로 남겨두길 원한다. 등기가 안 돼 있거나 소유주가 여럿이라 거래가 불편한 빈집도 있다. 빈집은 폐가로 변한다. 집을 허무는 데 큰돈이 들다 보니 흉물로 남는다. 살 집을 찾으러 두지마을에 온 귀농 청년들이 집을 못 구해 돌아갈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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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남태령을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