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 쓰러지는 ‘간호사’…참다못해 울려퍼진 그들의 절규읽음

헬스경향 이원국 기자
의료연대본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큰 대학병원 간호사는 1명당 12~20명, 요양병원은 40명까지 환자를 돌봅니다”라며 현재 무분별하게 자행되고 있는 간호인력에 관해 비판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의료연대본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큰 대학병원 간호사는 1명당 12~20명, 요양병원은 40명까지 환자를 돌봅니다”라며 현재 무분별하게 자행되고 있는 간호인력에 관해 비판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사명감(使命感)’이란 단어가 남용되고 있다. 특히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바쁜 현대사회에서 이 단어만큼 잔인한 단어는 없으리라 예단한다. 게다가 장기화된 코로나19로 의도치 않게 사명감을 강요받고 있는 직업군이 있으니 대표적인 예가 ‘간호사’다. 이미 우리나라 간호인력에 관한 문제는 계속 지적되고 있었다. 단지 이번 코로나19는 기폭점이 됐을 뿐.

■간호사의 고충,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

간호인력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간호인력 부족은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OECD 보건통계 2021’에 따르면 국내 간호인력(간호사, 간호조무사)은 인구 1000명당 7.9명으로 OECD 평균 9.4명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때 간호인력 중 간호사만 놓고 보면 인구 1000명당 4.2명으로 OECD 평균 7.9명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OECD 주요 국가별 간호인력을 보면 독일 11.8명, 일본 9.4명, 캐나다 7.1명, 영국 6.6명 등으로 우리나라보다 더 높았다. 결국 간호인력 부족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일종의 착취로 이어졌다.

이에 의료연대본부는 10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인력인권법’에 관해 토로했다. 의료연대는 기자회견을 통해 “큰 대학병원 간호사는 1명당 12~20명, 요양병원은 40명까지 환자를 돌봅니다”라며 현재 무분별하게 자행되고 있는 간호인력에 관해 비판했다.

의료연대본부가 밝힌 간호인력인권법에는 간호사 1인당 환자수 제한을 비롯해 지역간호사의 저임금 문제, 폭언과 폭력·성희롱 등으로부터 간호사를 지키는 내용, 신규 간호사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이 담겨있다.

지금까지 정부와 의료계에서는 간호인력난 해소를 위해 ‘간호대학 정원 확대’를 추진했다. 하지만 간호대학 정원 확대는 처절히 실패했다. 간호대학 정원 확대 정책은 의료현장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를 늘린 것이 아니라 ‘장롱면허 간호사’를 확대했기 때문.

대한간호협회 ‘간호통계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면허등록 간호사는 41만4983명이지만 보건의료기관에 활동하는 간호사는 21만5293명으로 약 52%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은 이번 국감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간호사 정원 미준수 의료기관이 한 곳도 없었지만 병원(30~99병상)은 무려 53.3%, 100개 이상의 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은 11.6%가 간호사 정원 기준을 미준수했다.

강선우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적한 바 있는데 여전히 간호현장은 열악한 상황”이라며 “적정한 수의 간호사가 적정한 수의 환자를 담당하는 것은 간호인력 보호뿐 아니라 국민 생명 보호와 직결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간호사 감정노동 피해에 대한 대응 및 보호수준은 미약한 실정이다. 이에 폭언·폭행·성폭력을 경험한 간호사들 대부분이 ‘혼자서 참고 넘기는 편’을 선택하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간호사 감정노동 피해에 대한 대응 및 보호수준은 미약한 실정이다. 이에 폭언·폭행·성폭력을 경험한 간호사들 대부분이 ‘혼자서 참고 넘기는 편’을 선택하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간호사 인권침해, 내외부적으로 개선돼야

간호인력 문제도 시급하지만 인권침해도 심각한 편이다. 병원간호사회가 공개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1만6422명의 간호사 중 60% 이상이 폭언을 경험했으며 폭행과 성폭력 경험이 각각 11.4%, 10.5%를 차지한 것.

실제로 간호인력의 절반 이상이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폭언·폭행·성폭력을 마주하며 불필요한 잔심부름 등 부당한 요구로 업무수행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환자 중심 감정조절이 요구되면서 자신의 감정은 숨기는 ‘감정노동’이 심한 것. 이와 같은 간호인력의 감정노동은 조기퇴직이나 이직 등 부정적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감정노동 피해에 대한 대응 및 보호수준은 미약한 실정이다. 폭언·폭행·성폭력을 경험한 간호사들의 대응방안은 ▲혼자서 참고 넘김 ▲주변 도움요청 ▲노조 및 고충처리기구 ▲외부기관 법적대응 등이 있지만 폭언 피해자 82.6%, 폭행 피해자 66.8%, 성폭력 피해자 77.2%가 ‘혼자서 참고 넘기는 편’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간호인력 내 이어지는 ‘태움’ 역시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태움은 2018년 고(故) 반석운 간호사와 2019년 고 서지윤 간호사의 죽음으로 알려진 직장 내 괴롭힘이다. 이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현장 간호사들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간호사 간의 태움에서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선 산업재해 규정을 완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병욱 의원(국민의힘)은 “악습 중 하나인 태움이 병원 내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국립대학병원이 태움이라는 악습을 뿌리 뽑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간호사들이 본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가 이렇게 길게 갈 것이라 예상치 못했다. 전 세계가 멈춰서며 다들 지쳐가고 있다. 최근 들어 다시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검사와 치료에 대한 간호사 업무가 증가하고 있다.

좀 궤가 다르지만 미국 국민들은 길에서 군인을 만나면 ‘당신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Thank for your service)’라는 말을 건넨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묵묵히 사명감을 다하는 예의를 표하는 의식이랴. 우리의 대한민국 사회가 간호사에게 폭언이 아닌 따뜻한 말 한마디로 그들의 노고에 감사할 줄 아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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