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방향
응급입원 시키려면 경찰 동의 필요
현장서 경찰은 소극 대처하기 십상
방법 찾지 못한 가족은 발만 동동
전문 기관 둬 가족 부담 줄이고
정부·지자체 협업 시스템 구축을
조현병과 같은 대부분의 중증정신질환은 범죄의 피해자일 확률이 훨씬 높고 가해자가 되는 경우는 일반인보다 적다. 그러나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진주 방화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중증정신질환에서 환청, 망상과 같은 정신증적인 증상이 심할 때는 공격적일 수 있고, 현실판단력이 저하된다. 이때는 자기결정능력에 제한이 있어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치료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많은 국가에서 의료법과는 별도로 정신보건법을 마련해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최초로 정신보건법이 제정되었고, 2016년 공청회 한 번 없이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졸속으로 개정되어 비자의입원의 요건이 까다로워진 결과 교정시설에 수용 중인 정신질환자 수가 2016년 3296명에서 2020년 4978명으로 증가하였다. 치료받아야 할 중증정신질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여 범죄자가 되어 교정시설에 수용된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중증정신질환자가 교정시설이 아니라 나을 수 있는 치료환경에 머물게 하는 것이 진정한 인권이다. 정신질환자를 수감하는 비용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7배의 비용이 든다고 하니 적절한 치료가 진행된다면 줄일 수 있는 국가적 예산의 손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 정신응급 상황에서부터 치료의 과정을 따라가며 현 정신건강복지법에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들을 다루어보겠다.
자타해 위험이 큰 사람을 발견한 사람은 그 상황이 매우 급박할 때 경찰관의 동의를 받아 정신의료기관에 응급입원을 의뢰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 현장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인데, 현행법상으로 응급입원에 동의한 경찰은 민원의 대상이 되어 현장에서 경찰이 소극적인 대처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보호의무자가 알아서 위험한 이송을 해야 하는데, 방법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거나 사설구급대를 통해 불법적인 이송이 이루어지는 심각한 상황이다. 응급입원에 대한 경찰의 동의책임은 면하고 정신건강 상태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기관(권역별정신응급센터)으로 이송할 수 있는 책임과 정신건강 평가에 대해 의뢰할 수 있는 권한을 경찰에 부여해야 한다.
한국의 최초 정신보건법은 일본의 법률을 많은 부분 참고하여 작성되었다. 대표적인 부분이 보호의무자에 의한 강제입원이다. 중증정신질환자를 돌보기 위해 온전히 가족이 희생하는 구조이며, 보호의무자의 동의하에 강제입원을 진행하기 때문에 병식(현재 자신이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이 없는 환자는 입원 치료 후 가족에게 원망의 감정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보호의무자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폐지를 권고한 대체의사결정제도이며, 2016년 한국에서도 보호의무자에 의한 비자의 입원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우리나라 정신보건법에 영향을 준 일본조차도 2013년에 폐기하였다.
정신질환자의 치료·보호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가족이 부담하는 것은 대가족사회에나 걸맞은 제도로 현재에는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점을 당사자, 가족, 치료를 제공하는 전문가들은 모두 공감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으로 판사가 또는 각 지자체 정신건강심판위원회에서 판단한다. 비자의입원을 판단할 법적인 시스템과 인프라가 보완되어야 가족이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현 시스템으로부터 국가가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나라로 전환할 수 있다.
중증정신질환은 병식이 없는 경우가 많아 퇴원 후 치료가 중단되어 재발하는 환자가 흔하다. 외국의 경우 외래치료명령제도를 운영하는 나라가 많으며 우리나라도 고 임세원 교수의 사건 이후 외래치료지원제도가 개선되었지만, 실제 운영은 여전히 정신건강복지센터에만 맡겨져 관리가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를 개선하고 정신사회재활서비스를 확대하여 지역사회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중증정신질환은 당사자와 가족의 인권과 삶의 문제이자, 모든 국민의 안전과 건강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필수의료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여 정신응급상황에서 정신건강평가를 제대로 받고, 치료 과정에서 가족들의 부담을 줄이고, 당사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