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정신, 행복한 마음

중독 부추기는 디지털세상…끊어내려면 ‘별도 법체계’ 필요

이해국 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의정부성모병원 교수

(5) 중독의 예방과 치료

[건강한 정신, 행복한 마음]중독 부추기는 디지털세상…끊어내려면 ‘별도 법체계’ 필요

마약·음주·도박·게임…‘뇌 질환’ 일종인 중독에 국가적 지원정책 미비
디지털미디어와 결합, 더 악화…관련 산업 책임 부여·치료기관 등 절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2세까지는 본능적 욕구에 충실한 것만으로 행복과 생존이 가능하다. 갓난아이가 배가 고파 울면, 엄마는 젖을 물리고 안아준다. 허기가 채워지고 뇌 보상회로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 행복도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상황은 변한다. 5세 아이에게 사탕 한 알을 주고, 5분을 참으면 사탕 한 개를 더 주는 실험을 생각해보자. 내 손안의 달달한 사탕을 먹고 싶은 당장의 욕구를 참아내면, 미래에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된다.

이해국 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의정부성모병원 교수

이해국 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의정부성모병원 교수

나이를 먹으며, 당장의 욕구를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면 미래의 만족, 행복이 방해받는 상황이 많아진다. 허기를 채울 때, 엄마 품에 안길 때, 칭찬이나 인정을 받을 때, 놀며 운동할 때, 성취할 때 자연적으로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러나 마약, 알코올, 니코틴과 같은 물질, 도박, 게임, 동영상 시청 등의 행위도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칭찬, 인정, 성취 등은 일정 시간 정신적·신체적 노력을 해야만 행복감이 주어지지만, 특정 물질이나 행위는 노출되는 즉시, 강력하게 행복감을 제공하기에 쉽게 중독적 사용으로 빠져버릴 수 있다. 게다가 이들 물질, 행위, 콘텐츠를 생산하는 합법적인 ‘기쁨 산업’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중독되지 않으니, 더 이용해라”라고 전방위적 마케팅으로 이용을 부추긴다. 특히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청소년, 초기 성인기는 이런 마케팅에 더 취약하다.

그래서 많은 나라는 중독예방을 위한 정책에 투자한다. 마약은 금지하고, 알코올과 도박은 규제정책을 펴며, 게임이나 디지털미디어의 사행성, 선정성, 상업성을 제한한다. 또한 중독에 대한 치료가 ‘좋아하는 것을 줄이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것’이다 보니 치료에 대한 인식이 낮고, 치료받기를 꺼린다. 그러기에 치료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더 잘 치료받게 하기 위한 정책과 서비스 인프라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중독예방치료지원정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알코올예방치료지원정책은 OECD 30개국 중 25위이며, 20년째 14억원인 국가 음주폐해 예방사업비는 수천억원대의 주류마케팅비에 비해 너무도 초라하다. 마약중독자에 대한 치료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에 부분적으로 규정되어 있고, 2만명에 가까운 마약사범 중 치료보호제도 이용자는 불과 200명 수준이다. 도박중독, 게임과 디지털미디어 중독 예방치료사업은 보건복지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아닌 문화체육관광부가 관장하다 보니 사행산업, 디지털미디어산업 이해관계의 영향으로 제한적으로 시행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진료현장에서 접하는 중독은 ‘성인 초기 길을 잃고 엄청난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젊은 도박중독자, 디지털미디어 중독자’부터 ‘젊어 열심히 일했지만 조절되지 않는 음주로 이제는 생명을 위협받는 중년의 알코올중독자’까지 다양하다. 몇초 만의 베팅으로 큰돈을 벌었던 순간의 기억, 지루함을 메꿔주는 자극적인 영상, 스트레스와 육체적 고통을 마비시켜주는 알코올은 모두 대표적인 즉각적 만족이다.

중독은 즉각적 만족의 과잉에 의해 뇌의 기쁨 회로가 일상의 소소한 만족에 둔감해져버리는 일종의 뇌질환이다. 치료는 약물치료, 정신치료뿐만 아니라 간호, 심리, 사회복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집중적인 상담과 재활 프로그램이 병원치료에서부터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 음주운전과 마약사범의 재범률이 30~40%에 이르는 것은 중독 문제가 결코 처벌이나 교육, 수강명령, 사후관리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과 디지털 대전환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디지털미디어 과사용이 마약,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위험 증가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은 디지털미디어 중독에 대한 효과적인 예방과 치료 정책이 시급함을 말해준다. 방법은 있다. 관련 산업에 중독예방정보제공 책임부여, 건강검진 시 중독에 대한 선별검사 시행, 1차 의료기관과 상담기관에서 중독에 대한 표준화된 조기개입 프로그램 제공, 알코올뿐만 아니라 마약·도박·게임과 디지털미디어 중독 전문치료기관 설치 확대, 알코올과 마약 관련 범죄자에 대한 의무치료 도입 및 지원 등이 필요하다.

좋은 정책들이 제안되고 있지만, 도입이 제한적인 것은 중독예방관리치료지원에 대한 거버넌스와 법 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암, 자살, 흡연 문제처럼 중독 문제도 별도의 법체계 마련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중독은 낫는다’. 당사자와 부모들의 간절함에 화답하여 정신응급시스템이 필수의료로서 우리나라에서도 빨리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공동기획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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