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하승범씨(44)는 수시로 회사 서랍 속 일회용 인공눈물이 다 떨어지진 않았나 살펴본다. 안구건조증이 있어 눈이 건조하고 뻑뻑할 때마다 인공눈물을 쓰는데, 과거 휴일에 출근한 날 하필 인공눈물을 다 써서 급히 살 곳도 없이 난감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하씨는 “증상이 심할 땐 정말 말 그대로 눈알이 빠질 것 같고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파온다”며 “가능하면 틈틈이 눈을 쉬게 하면서 컴퓨터 화면을 보려고는 하지만 업무가 밀릴 때는 그럴 짬을 내기 힘들어 인공눈물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성안증후군 또는 눈마름증후군이라고도 부르는 안구건조증은 눈을 촉촉하게 유지시켜주는 눈물층의 양과 질이 감소해 생긴다. 성인의 80%가량은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할 정도로 흔하며, 대부분은 심각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2018~2022년 5년 동안 안구건조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인원은 1200만명에 달하고, 한 해 평균 250만명가량이 병원을 찾는다.
문제는 안구건조증이 쉽게 낫지 않고 점차 심해지는데도 계속 방치하다 시력까지 나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데 있다. 드물지만 실명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정인권 인제대 일산백병원 안과 교수는 “안구건조증을 단순히 눈을 불편하게 만드는 가벼운 질환으로만 여겨 방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눈의 각막을 보호하는 눈물막이 안구건조증으로 제 역할을 못하면 각막 손상, 감염, 시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빨리 치료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노화는 안구건조증의 가장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나이가 들면서 눈물을 분비하는 능력이 점차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원인도 많다. 젊은 층에서도 안구건조증 환자가 늘어나는 이유로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을 장시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봄철엔 미세먼지가, 환절기엔 건조하고 일교차가 큰 기후가, 겨울철엔 습도가 더욱 낮아지는 실내 환경이 영향을 미치는 등 계절이나 날씨도 안구를 건조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행히 안구건조증은 다른 원인 질환이 있는지 감별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하는 정도만 제외하면, 눈물층을 유지하게 돕는 생활습관만으로도 고통과 불편을 상당히 덜 수 있다. 다만 안구가 건조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자가면역질환인 ‘쇼그렌증후군’은 40~50대 중년 여성에게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쇼그렌증후군은 눈뿐만 아니라 입도 건조해지는 증상을 보이며 류마티스관절염을 동반하는 비율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눈물샘이나 침샘처럼 인체 바깥으로 액체를 분비하는 외분비샘에 만성 염증이 생기면서 해당 부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눈물과 침이 줄고 건조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노화·스마트폰 장시간 사용 등 원인…계속 방치 땐 각막 손상·시력 저하
‘눈꺼풀 제대로 깜빡이기’ 증상 완화 효과…‘온찜질·눈꺼풀 세정’도 도움
단, 쇼그렌증후군은 단순히 눈만 뻑뻑한 안구건조증과는 달리 입이나 콧속, 기관지 등 호흡기를 비롯해 소화기관에서도 분비기능 저하로 문제가 생기는 등 전신 증상이 나타나므로 구별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피로, 발열, 근육통, 관절통이 나타나기도 한다. 병원에선 분비샘의 염증과 자가항체가 확인되면 쇼그렌증후군으로 진단한다. 안구건조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선 인공눈물을 쓰며, 그 밖의 다른 부위가 건조해지는 증상을 줄이기 위해 인공타액과 피부 보습제 등도 사용한다. 환자 중 10%가량은 혈관염이 동반되므로 스테로이드와 면역조절제 같은 약물치료도 병행한다.
홍연식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안구건조증이 3개월 이상 계속되는 경우 외에도 물 없이는 음식 섭취나 말하기가 힘들 경우, 이유 없이 피로감이 심각할 경우, 관절염 증상이 동반될 경우 등은 쇼그렌증후군을 의심해야 한다”며 “쇼그렌증후군은 예방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40대 이후 중년 여성에게서 입마름이나 안구건조가 나타날 경우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는 것이 조기 진단을 위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쇼그렌증후군 같은 질환이 원인이 아닌 보통의 안구건조증에 대해선 전문가들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먼저 ‘눈꺼풀 제대로 깜빡이기’는 눈꺼풀을 완전히 감았다가 뜨면서 눈물이 한 번 순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눈을 완전히 감지 않고 반만 감았다 뜨는 안구건조증 환자도 많은데, 이때는 눈 표면이 쉽게 말라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 의식적으로 눈을 완전히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면 되므로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다.
다음은 ‘온찜질과 눈꺼풀 세정’이다. 속눈썹 밑에는 기름을 분비하는 ‘마이봄샘’이란 기관이 있는데, 이곳에서 깨끗한 기름이 나와야 건강한 눈물이 만들어진다. 마이봄샘 기능이 저하돼 있는 경우엔 따뜻한 수건을 눈꺼풀에 올려 가볍게 누르듯 마사지하면 기름샘을 넓혀 나쁜 기름이 잘 빠져나가게 할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최소한 3분 이상 온찜질을 한 뒤에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눈 세정제로 눈을 닦아내듯 눈꺼풀 세정을 반드시 해야 나쁜 영향을 주는 기름 성분을 깨끗이 닦아낼 수 있다.
‘적정량의 인공눈물 사용’도 도움이 된다. 안구건조증이 있으면 수시로 인공눈물을 점안하는 경우도 흔하다. 다만 지나치게 잦은 인공눈물 사용은 안구 표면의 점액을 씻겨 나가게 할 수 있어 피하는 것이 좋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시하는 사용 기준에 따르면 하루에 4~6회 정도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 일회용 인공눈물을 개봉해 쓴 뒤엔 양이 남았더라도 버려야 한다.
햇빛이 강한 날 외출할 땐 ‘자외선 차단’도 중요하다. 눈이 과도하게 자외선에 노출되면 안구건조증은 물론 각막염, 백내장, 황 반변성도 생길 수 있다. 자외선 지수가 높은 날에는 야외활동을 줄이거나 외출 시 선글라스나 챙이 넓은 모자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선글라스는 400nm 이하의 자외선을 99% 차단할 수 있는 ‘UV400 선글라스’를 선택하는 것이 도움이 되며, 구매 후 3년 이상 지났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렌즈의 차단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시 사야 할 수도 있다.
이도형 인제대 일산백병원 안과 교수는 “눈이 뻑뻑하거나 이물감 등 통증이 생긴다면 우선 안과 전문의의 정확한 진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며 “염증이 있다면 환자마다 적절한 안약을 사용하도록 치료 방향을 결정해 증상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