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은 돌고 돈다, 다이어트도 그렇다

수피 | 운동 칼럼니스트 <헬스의 정석> 시리즈 저자

유행은 패션이나 문화에만 있는 게 아니다. 언뜻 과학적인 이슈일 것 같은 다이어트에도 유행이 있다. 다이어트법의 유행은 서구사회에서 마른 몸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백년 전까지 갈 것도 없이 20세기 초반만 돌아봐도 어처구니없는 방식들이 많았다. 당시 ‘체지방을 씻어내는 비누’는 어처구니는 없지만 몸에 큰 해를 끼쳤을 것 같지는 않다. (정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는 하다!) 비슷한 시기 광고에는 ‘암페타민(필로폰)으로 살을 빼세요!’부터 ‘살아있는 촌충 알을 먹어서 살을 빼요’ 같은 섬뜩한 내용들도 보인다.

물론 이런 터무니없는 방식만 있었던 건 아니다. 1830년대에는 잡곡을 위주로 한 저지방 다이어트의 시조 격인 ‘그레이엄 다이어트’가 유행했다. 잡곡에 달걀과 우유까지 허용하니까 지금 기준으로 ‘락토오보 채식’에 가까운데, 지금 관점에서 봐도 꽤 균형 잡힌 식단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레시피를 계승한 ‘그레이엄 빵’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1860년대에는 탄수화물을 끊고 고지방 육류 식단으로 살을 빼는 ‘밴팅 다이어트’가 저탄수 다이어트의 초기 형태로 등장한다. 여기서 ‘밴팅’은 그 방식으로 살을 뺀 사람의 이름인데, 이후에 탄수화물을 끊는다는 뜻의 신조어 동사 bant가 된다.

20세기 초입에는 음식을 30여회 씹어서 삼키면 살이 빠진다는 ‘플래처 다이어트’가 행동교정 요법의 초기 형태로 유행한다. 많이 씹으면 포만감이 자극되어 덜 먹는 게 사실이니까 이 방법도 의미가 없지 않다. 1930년대에는 원푸드 다이어트의 원조인 ‘자몽 다이어트’가 유행하는데, 이 방식은 지금까지도 몇십년 간격으로 등장해 유행을 탄다. 포도 다이어트 등 아류도 많다.

이 뒤로는 이 틀 안에서 돌고 돈다. 어느 때는 저지방이, 어느 때는 저탄수가, 한편에서는 원푸드 다이어트도 소재만 달리하며 유행한다. 여기에는 빤한 패턴이 있다. 특정 음식, 영양소를 다이어트 묘약으로 광고하거나, 반대로 절대 먹어선 안 될 나쁜 놈으로 만든다. 누구는 탄수화물만 끊으면 다른 걸 배터지게 먹어도 살이 빠질 것처럼 말하고, 누구는 고기와 지방만 끊으면 다른 걸 아무리 먹어도 날씬해질 것처럼 말한다.

수피 | 운동 칼럼니스트

수피 | 운동 칼럼니스트

그런데 알고 보면 새로운 내용도 아니다. 모 드라마 여주인공이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다시 나타났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던 것처럼, 대부분의 다이어트는 수십년 전 유행이 점 하나 찍고 다시 나타나 ‘요렇게 전과는 다르다니까!’를 강조하는 식이다. ‘배부르게 먹는데도 살이 빠지더라’라는 문구는 필수다. 쉬운 다이어트를 찾으며 가장 원하는 게 바로 이 문구다. 그러니 또 혹하고, 또 대부분은 실패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현실을 파악하면서 유행이 기울지만 결국 또 다른 유행이 유명인의 입을 통해 혹은 다큐를 통해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체중은 먹는 양과 쓰는 양의 차이로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비교 연구가 있었지만 예외는 없었다. 저지방과 저탄수화물의 차이도 미미했다. 결국 다이어트법의 성패를 가른 건 ‘그걸 따르면 섭취 열량이 줄어드느냐?’였다. 최근 살 빼는 주사로 유명해진 삭센다, 위고비, 오젬픽도 궁극적으로는 식사량을 줄이는 약물이다. 간헐적 단식이 성공률이 높았던 것도 단식 자체가 어떤 마법을 부리는 게 아니고 하루 두 끼밖에 못 먹게 하면 먹는 총량이 줄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다이어트법을 따라야 할지는 내가 그 방식으로 먹는 양을 줄일 수 있는지만 보면 된다. 그 이상 뭐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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