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멋 다 살리는 ‘대안 가죽’ 뜬다

이유진 기자
식물의 섬유질을 소재로 만든 친환경 가죽 제품들. 선인장으로 만든 가죽 가방, 버섯 균사체로 만든 가죽 가방과 시계. 파인애플 껍질을 활용한 가죽 제품.(위부터)  데세르토, 에르메스, 킥스타터 , 피나텍스 제공

식물의 섬유질을 소재로 만든 친환경 가죽 제품들. 선인장으로 만든 가죽 가방, 버섯 균사체로 만든 가죽 가방과 시계. 파인애플 껍질을 활용한 가죽 제품.(위부터) 데세르토, 에르메스, 킥스타터 , 피나텍스 제공

가죽은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에 내구성도 좋아 우리 몸을 보호하기에 최적의 자연 소재였다. 수천 년간 외부 환경과 싸워온 인류가 느끼는 가죽에 대한 우호적 감정은 우리 DNA에 깊숙이 새겨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구 환경에 대한 위기감이 대두되면서 가죽을 대하는 감정이 점점 죄책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가죽 생산을 위해 동물의 학살은 불가피하다. 소가죽 신발 한 켤레를 완성하는데 탄소 10㎏이 필요하다. 가죽을 만드는 필수 공정인 무두질에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250여 개의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동물의 생존권과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다양한 대안 가죽이 등장하고 있다. 친환경 이슈를 바탕으로 나온 신소재 가죽들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자.

■베지터블 가죽

베지터블 가죽(Vegetable Tanned Leather)은 마치 채소를 원료로 만든 가죽처럼 느껴지지만 정확하게는 화학 성분을 이용한 무두질(Tanning) 대신 채소(나무껍질 등)의 천연 타닌 성분으로 작업한 가죽을 의미한다. 즉 가죽의 소재가 아닌 친환경 공정에 방점을 둔 용어인 셈이다. 화학약품을 이용한 무두질은 그 과정에서 6가크롬, 시안화물, 알데하이드, 아연 등 발암성 물질을 배출해 자연은 물론 인간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 반면 천연 무두질은 털을 제거한 가죽을 식물에서 얻은 타닌 성분을 섞은 물에 몇 주 이상 재우는 방법을 취한다. 친환경 이슈로 새로 개발된 방법이 아니라 과거 수세기 동안 해왔던 전통적인 노하우다. 오늘날 전체 가죽의 10%만 이런 공정을 거친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가죽의 단가가 높아지는 단점이 있다. 또한 천연물질을 사용한다고 해도 완벽한 친환경이라 할 수 없다. 가죽 생산을 위한 도축은 여전하고 무두질 공정 중 물이 과도하게 사용되며 천연 성분이라고 하지만 배출되는 유기물이 100% 환경에 무해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리사이클 부산물 가죽

리사이클 부산물 가죽(Recycled & Byproduct Leather)이란 가죽 생산을 위한 도축이 아닌, 식용 도축으로 발생된 부산물을 원료로 하는 가죽을 말한다. 소, 돼지, 양 등 육류 소비로 인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가죽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가죽은 앞서 언급한 천연 무두질 과정을 거쳐 친환경이란 방향성을 갖는다. 친환경 애호가들은 가치소비 측면에서는 이를 환영하고 있으나 “리사이클 가죽이 가죽을 소비하는 이들의 죄책감을 다소 줄일 수는 있지만 실제로 가죽 시장에서 고급 송아지가죽이나 양가죽은 고기보다 더 비싼 가치를 갖고 있다. 가죽 소비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앞으로도 동물들의 학살은 줄지 않을 것”이라 지적한다.

■비건 가죽

비건 가죽(Vegan Leather)은 동물의 가죽이 아닌 다른 성분으로 가죽의 형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대안 가죽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합성피혁(폴리우레탄)으로 만든 인조 가죽도 비건 가죽에 속한다. 비건 가죽은 동물 학살이나 무두질로 인한 환경오염은 줄일 수 있지만 폐기 과정에서 썩지 않는 플라스틱 물질 발생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친환경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게다가 에코 마케팅이라는 명분하에 기존 인조 가죽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한다는 점도 불만으로 꼽힌다.

김성민 목원대 섬유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원재료에서 소재가 되기까지 전체적인 공정 단계가 담긴 ‘풀라이프’를 조사해야 비로소 친환경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탄소 발생량을 따지면 목화에서 면으로, 면에서 제품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친환경이라 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비건 가죽은 동물 가죽에 비해 공정이 짧고 윤리적이고 좀 더 다양한 색을 낼 수 있다. 또한 제작 과정에서 소재의 잔여물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환경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김 교수는 “누구든 가죽 공장에서 나오는 엄청난 악취와 폐수를 보면 가죽 제품을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친환경 신소재들이 보편화되려면 무엇보다 소비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진정한 친환경적 삶을 추구한다면 ‘패스트 패션’ 같은 소비를 줄이고 소유한 제품을 잘 관리해 아껴쓰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건양대 연구진이 주요 버섯 생산지인 충남 부여군 협력해 친환경 버섯 가죽을 연구·개발 중이다.

건양대 연구진이 주요 버섯 생산지인 충남 부여군 협력해 친환경 버섯 가죽을 연구·개발 중이다.

■국내 연구진이 개발 중인 ‘식물 가죽’

최근 해외 매체들은 프랑스 고가의 브랜드 에르메스가 핸드백, 신발 등 제작용 가죽 생산을 위한 악어 농장을 호주에 조성 중이라고 보도했다. 호주 중북부 지역에 있는 이 농장은 최대 5만마리의 악어를 양식할 수 있는 대규모 시설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환경단체의 뭇매를 맞았다.

이후 에르메스는 돌연 버섯 가죽을 활용한 가방을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에르메스 측은 미국 친환경 스타트업 마이코웍스와 손잡고 버섯 균사체로 만든 식물 가죽을 활용한 ‘빅토리아백’을 2021년 하반기에 출시한다고 예고했다.

소비자들의 친환경 제품에 대한 호응이 커지면서 패션계에서도 환경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구찌, 프라다, 샤넬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모피 사용을 중단하는 퍼프리(Fur-free) 선언을 이어가고 있다. 2021 F/W 시즌 끌로에와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남은 원단을 재활용한 가방과 옷을 출시했다.

현존하는 가장 성공적인 식물 가죽으로는 파인애플 잎으로 만든 ‘피나텍스’를 꼽는다. 2014년 스페인 출신 디자이너 카르멘 이요사는 파인애플 잎에서 뽑아낸 섬유로 만든 필리핀 전통 의상 ‘바롱 타갈로그’를 보고 제작 힌트를 얻었다. 최근 멕시코 사업가 두 명이 만들어낸 선인장 가죽 브랜드 ‘데세르토’도 패션계에 부는 친환경 바람을 타고 주목받고 있다. 데세르토는 섬유질이 풍부한 선인장을 가루로 만든 다음 섬유화하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섞어 압축해 가죽을 만든다. 식물 가죽들은 지역 농가와 상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환경 그 이상의 평가를 받는다.

이시우 교수와 연구원이 식물 가죽의 원료인 버섯 균사체를 확대해 살펴보고 있다.

이시우 교수와 연구원이 식물 가죽의 원료인 버섯 균사체를 확대해 살펴보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시우 건양대 교수 연구팀이 주요 버섯 생산지인 충남 부여군과 함께 버섯 가죽을 연구·개발 중이다. 연구진이 버섯에 주목한 것은 버섯 농가들의 어려운 사정도 하나의 배경이 됐다. 이시우 교수는 “버섯 재배율 전국 1위인 부여에는 버섯 농가가 많은데 아무리 버섯을 키워봤자 이들에게는 가격 결정권이 없다”며 버섯을 활용할 만한 연구 모델을 찾다가 해외 사례를 통해 식물 가죽에 주목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버섯의 과육 밑 뿌리에 해당하는 균사체는 거미줄처럼 미세하게 퍼져 있다. 양분을 뽑기 위해 쭉 뻗어 있는 모습이 마치 섬유와 같다. 이런 가늘고 촘촘한 균사체를 뭉쳐 친환경 물질로 코팅해 가죽을 만드는 연구를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현재 A4 용지 사이즈의 버섯 가죽을 개발해냈다는 성과를 전했다. 100% 친환경 가죽을 목표로 하는 만큼 남은 과제는 많다. 버섯 재배지에 따라 균사체의 강도가 달라지는 것에 주목하며 가죽의 내구성을 높이는 최적의 천연 성분에 대한 실험도 진행하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씨는 “2년 전 독일산 버섯 가죽을 이용한 의상을 접했는데, 오리지널 가죽이 가진 거친 느낌까지 구현하고 있어서 놀랐다”며 “향후 보다 오리지널에 가까운 비건 레더가 개발되어 상용화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고씨는 이번 시즌 컬렉션에도 선인장 가죽 등 비건 가죽을 활용했다.

이 교수는 “백제 의자왕의 마지막 전투지인 공주 공산성에서 그 시대 가죽 갑옷이 발견된 적이 있다. 약 1400년이나 된 가죽이 형태를 보존하고 있었던 이유는 옻칠 덕분이었다. 조상들이 가죽에 광택을 내고 오래 유지하기 위해 옻칠을 했다는 문헌 기록이 있다. 이렇듯 다양한 실험을 통해 식물 가죽의 내구성과 강도를 높이는 천연물질 개발도 함께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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