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서 버섯이 쑥쑥 "도심 속 버섯농장 겸 카페 겸 동네사랑방입니다"

장회정 기자

“지하농장에서 직접 기른 버섯으로 만든 수프와 샌드위치.” 교외의 팜 카페 메뉴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서울에서 가장 뜨겁게 부상한 ‘핫 플레이스’ 성수동에서 맛볼 수 있는 메뉴다. 지난 2일 ‘당신의 가장 가까운 버섯농장’을 표방한 동네 카페 ‘르타리’를 찾았다. 테이블 두어 개는 더 놓을 수 있는 자리를 버섯 쇼룸으로 할애한 것에서 운영자들의 두둑한 배포가 느껴졌다. 근사한 오브제 역할을 하는 말린 버섯과 균사체에는 루돌프를 연상시키는 빨간 코가 붙었다. 버섯도 막 수확한 게 더 맛있냐는 질문에 이채원 대표는 “더 맛있긴 하다”며 “손님들이 씹었을 때 탱글탱글하고 신선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고 답했다.

“농장에서 건강하게 잘 키우시지만, 마트나 시장으로 가는 유통 시간으로 인해 버섯이 마를 수도 있잖아요. 또 유통 과정에서 상처 입거나 부러지기 쉽다보니 갓을 많이 키우지 않죠. 최성우 박사님(경기버섯연구소)에 따르면 갓이 가장 맛있고 영양분도 많다고 해요. 저희는 일부러 갓을 키워서 수확하고 있어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신뢰를 쌓고 동네 안에서 편안하게 건강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 소개한 서울 성수동 ‘르타리’의 박주희 책임(왼쪽)과 이채원 대표. 지하농장에서 직접 기른 버섯으로 만든 음식과 버섯 관련 제품을 전시·판매한다. 장회정 기자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신뢰를 쌓고 동네 안에서 편안하게 건강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 소개한 서울 성수동 ‘르타리’의 박주희 책임(왼쪽)과 이채원 대표. 지하농장에서 직접 기른 버섯으로 만든 음식과 버섯 관련 제품을 전시·판매한다. 장회정 기자

삼국시대부터 식재료로 쓰였지만, 버섯은 느타리, 큰느타리(새송이), 팽이, 표고, 양송이가 전체 생산량의 93%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품목 편중화가 심하다. 박주희 책임이 안내한 르타리의 지하농장에서는 5~6종의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비교적 생장주기가 짧아 빨리 수확할 수 있는 느타리(흰느타리, 노랑느타리, 산느타리)와 비슷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버들송이, 황금맛송이 등을 키운다. 버섯을 수확하는 날에는 동네 주민에게 판매도 한다.

르타리를 지키고 있는 이채원 대표와 박주희 책임 모두 버섯 전문가는 아니다. 르타리는 도시계획 및 건축을 전공하고 현업에서 활동 중인 5인이 의기투합한 도시계획회사 모노스페이스가 운영한다. 카페 2층에는 도시계획 파트의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 대표는 “보통 도시계획이라고 하면 큰 범위를 떠올리는데 공공 단위에서 지자체와 일을 하다보니 아쉬운 점이 있었다”며 “실제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동네’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지난 3월 르타리를 오픈했다고 말했다.

버섯 수확기에는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버섯을 판매한다. 인스타그램 공지를 주로 했는데 앞으로는 문자메시지나 입간판 공지 등으로 널리 알릴 예정이다. 르타리 제공

버섯 수확기에는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버섯을 판매한다. 인스타그램 공지를 주로 했는데 앞으로는 문자메시지나 입간판 공지 등으로 널리 알릴 예정이다. 르타리 제공

“도시 기반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로컬 문화가 어우러지는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라는 모델을 구상하고 첫 번째로 떠올린 키워드가 ‘도시농업’이었다. 스마트팜 조성을 위해 예닐곱 업체와 접촉했으나 설비 투자 규모에 비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러다 미국과 영국에서 실내공간을 활용해 버섯을 키우는 사례를 접했다. 마침 모노스페이스가 임차한 건물에 30평 규모의 ‘지하실’이 있었다. 두 사람은 지하상가에서 버섯을 키우는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로 달려가 관계자들을 만났다. 또 경기 화성의 경기버섯연구소에서 버섯 관련 이론부터 실습까지 두 달여 교육도 받았다.

초기에는 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에서 식물 텐트를 구매했다. 부피가 크다보니 텐트 가격만큼 배송비가 나왔다. 그래도 스마트팜 시설보다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저렴했다. 해외에는 식물 관련 설비 DIY를 할 수 있는 기반이 잘 마련되어 있었다. 가습기의 초음파 진동자도 해외에서 구매해 자체 제작했다. 비용은 줄였으나 문제는 내구성이었다. 실내에 텐트를 치고 재배하다보니 물이 샌다거나, 온도 변화 대응에 한계가 발생했다. 이후 로컬크리에이터 지원 사업에 선정된 덕분에 지금의 설비를 갖출 수 있었다. 디지털 장비를 외부에서도 제어할 수 있어서 시시때때로 지하실에 내려가 봐야 하는 수고를 덜었다.

12월을 맞아 루돌프를 연상시키는 빨간 코를 붙인 르타리의 쇼룸의 버섯 균사체. 1년 전 말려둔 버섯은 근사한 오브제 역할을 한다. 장회정 기자

12월을 맞아 루돌프를 연상시키는 빨간 코를 붙인 르타리의 쇼룸의 버섯 균사체. 1년 전 말려둔 버섯은 근사한 오브제 역할을 한다. 장회정 기자

“버섯에는 식이섬유가 많아서 다이어트에도 좋아요. 배타카로틴 성분에 항균·항염 효과도 있대요. 노랑느타리에 특히 약용 성분이 많은데, 해외에서는 분말이 비싸게 판매되고 있더라고요.”

두 사람은 버섯이 해외에서는 효능도 인정받고 커피 블렌딩을 하는 등 쓰임도 많은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볶음이나 잡채 정도에 쓰는 싼 식재료로 통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르타리 오픈을 앞두고 멤버들은 메뉴 개발을 위해 각종 버섯 관련 요리를 섭렵했다. 파이의 일종인 버섯키슈도 만들고, 노루궁뎅이버섯 가루와 미숫가루를 블렌딩한 ‘버숫가루’도 메뉴로 탄생시켰다. 버섯의 보다 스마트한 활용을 위해 르타리는 ‘협업’을 끌어왔다. 이 대표는 “저희가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브랜드를 운영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성수동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스몰 브랜드나 상점과 협업하는 거였어요.”

갓이 핀 버섯이 더 맛있다고 한다. 르타리에서 판매하는 흰느타리와 노랑느타리버섯(왼쪽)과 지하 농장에서 잘 자라고 있는 느타리버섯. 르타리 제공·장회정 기자

갓이 핀 버섯이 더 맛있다고 한다. 르타리에서 판매하는 흰느타리와 노랑느타리버섯(왼쪽)과 지하 농장에서 잘 자라고 있는 느타리버섯. 르타리 제공·장회정 기자

건강한 방식으로 메뉴를 개발하거나 음식을 만드는 전문가들은 협업 제안에 흔쾌히 손을 맞잡았다. 시그니처 메뉴로 꼽는 버섯수프 ‘르타리수프’는 성수동 새촌마을에서 서양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쓰리캣메이커리 김고은 대표의 레시피로 만든다. 샌드위치 빵은 동네 빵집 뺑 드 에코에서, 커피 원두는 동네 카페 로우키커피에서 가져온다. 구운 버섯 3종과 견과류, 치즈에 트러플을 넣어 풍부한 풍미를 내는 신메뉴 트러플페스토도 울퉁불퉁팩토리의 조찬희 대표와 함께 개발했다. 요리에 재능 있는 ‘손님’도 함께했다. 지난여름에는 단골 손님의 레시피로 초당옥수수수프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박 책임은 “기존에는 메뉴나 상품 개발 쪽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르타리를 다양한 경험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다”며 “이제 업무에 익숙해져서 생각했던 걸 하나씩 해볼 여유가 생긴 것 같아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서울숲 인근 비누공방과 비누를 제작하고 있고, 새촌마을에 있는 독립책방 낫저스트북스와 함께할 프로젝트도 궁리 중이다.

버섯균사체가 덮고 있어 말랑한 하얀 마시멜로를 연상시키는 배지는 스티로폼을 대신할 친환경 충전재로 활용이 가능하다. 장회정 기자

버섯균사체가 덮고 있어 말랑한 하얀 마시멜로를 연상시키는 배지는 스티로폼을 대신할 친환경 충전재로 활용이 가능하다. 장회정 기자

오래된 공장이 ‘힙’한 카페로 바뀌고, 대기업의 팝업스토어가 들어설 정도로 ‘뜨는’ 동네가 됐지만, 성수동은 아직 ‘핫플’보다 ‘동네’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정취가 살아있다.

“이 동네에 즐길 게 많은 게 사실이지만, 너무 북적이거나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 곳이 늘면서 어딘가 편안하지 않은 느낌이 있어요. 동네 사람들이 모여 뭔가를 같이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두 사람은 르타리가 장기적으로, 그리고 주기적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코로나 2년차를 마감하며 음식업을 하는 자영업자의 현실도 절감했다. 외부적인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 공간을 운영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 것인가, 또 그것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

르타리에서 전시 및 판매하고 있는 버섯 비누와 버섯 가죽. 버섯의 매력은 무한하다. 장회정 기자

르타리에서 전시 및 판매하고 있는 버섯 비누와 버섯 가죽. 버섯의 매력은 무한하다. 장회정 기자

르타리가 장수하기 위해서는 수익적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도시농장이라 생산 물량으로는 한계가 있는 버섯 원물 판매보다는 버섯페스토와 같은 가공식품 및 파생상품 개발에 힘을 싣는 이유다. 지금은 수명을 다한 배지를 친환경 충전재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톱밥이나 미강 등을 섞어서 만든 배지는 버섯의 화분 역할을 하는데, 버섯균사체가 덮고 있어 말랑한 하얀 마시멜로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균을 제거하면 스티로폼 대신 쓰기에 부족함이 없다. 카페에서 실제 사용하고 있는 균사체로 만든 전등갓, 버섯으로 만든 비건 가죽도 두 사람이 버섯의 매력에 폭 빠지게 만든 미래 먹거리다.

‘예스키즈존’ ‘예스애니멀존’이라고 쓰인 입간판을 지나 모녀로 보이는 손님이 들어왔다. 주인장들과 바뀐 헤어스타일로 인사를 주고받는 걸 보니 영락없는 단골이다. 콘센트가 있는 자리로 안내받은 엄마는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어린이는 미트볼을 먹으며 영상을 봤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신뢰를 쌓고 동네 안에서 편안하게 건강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기대한다는 르타리의 바람이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르타리’가 추천하는 버섯 요리

(자료: 유튜브 ‘열개의 레시피’ 제공)

<버섯샌드위치>

지하에서 버섯이 쑥쑥 "도심 속 버섯농장 겸 카페 겸 동네사랑방입니다"

1 느타리버섯 100g을 찢는다.

2 양파 ¼개를 얇지 않게 채썬다.

3 올리브오일을 두른 팬에 버섯과 양파를 볶다가 발사믹식초 2큰술, 설탕 1큰술을 넣는다. 좋아하는 견과류를 더한다.

4 식빵 한 면에는 홀그레인머스터드, 다른 면에는 마요네즈를 바른다.

5 식빵 사이에 루콜라 한 줌과 버섯양파볶음을 얹고 먹기 좋게 랩으로 싼다.

(*<비건 자취요리 노트> 권채아 작가의 레시피로 ‘르타리’에서 고정메뉴로 판매 중이다.)

<버섯토마토냉채>

지하에서 버섯이 쑥쑥 "도심 속 버섯농장 겸 카페 겸 동네사랑방입니다"

1 느타리버섯 100g을 찢는다.

2 찢은 버섯을 위생팩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1분간 돌려 익힌다.

3 방울토마토 10개에 십자모양을 낸 뒤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껍질을 제거한다.

4 익힌 버섯과 토마토를 볼에 담고 가볍게 섞는다.

5 유자폰즈 2큰술, 다진 마늘 ½ 작은술, 참기름 1큰술을 섞은 드레싱을 뿌린 뒤 통깨로 마무리한다.

<버섯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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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호박, 파프리카를 얇게 썬다.

2 대왕버섯(혹은 새송이버섯)을 얇게 썬다.

3 팬에 도 대신 자른 버섯을 깔아준 뒤, 토마토소스를 듬뿍 바른다.

4 그 위에 잘라둔 채소를 얹고 초리초를 올린 뒤 피자치즈를 마음껏 뿌린다.

5 예열된 오븐 또는 에어프라이어에서 10분간 굽는다. 전자레인지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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