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 차 좋아하네" 술보다 차, Z세대 사로잡은 티코스·티오마카세

장회정 기자

“하동 녹차에 율무와 현미를 블렌딩한 ‘베이크드 그린티’입니다. 호우지차라고 들어보셨어요? 호우지차는 녹차를 태워서 갈색을 띠는데, 이 차는 약한 불로 살짝 구워내서 일본 호우지차와 한국 녹차의 중간 정도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서울 연남동의 티라운지 코코시에나의 이번 겨울 시즌 티코스. 베이크드 그린티+한라봉과 오트(왼쪽 위), 암차+명란을 얹은 감자전(왼쪽 아래), 와인과 인도 아삼티를 함께 우려낸 티뱅쇼(오른쪽).

서울 연남동의 티라운지 코코시에나의 이번 겨울 시즌 티코스. 베이크드 그린티+한라봉과 오트(왼쪽 위), 암차+명란을 얹은 감자전(왼쪽 아래), 와인과 인도 아삼티를 함께 우려낸 티뱅쇼(오른쪽).

차의 맛과 유래를 설명한 김은지 대표 티소믈리에는 이어 현미와 귀리를 꿀과 섞어 구운 강정풍의 쿠키와 한라봉으로 만든 잼과 칩을 내줬다. 구수한 향에 비해 묵직하진 않은 맛의 차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쿠키가 아주 잘 어울렸다. 계절별로 각기 다른 티코스를 제공하는 서울 연남동의 티라운지 코코시에나의 이번 겨울 시즌 코스의 첫 번째 페어링이다.

다양한 차와 음식을 내는 ‘티코스’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 연남동 코코시에나의 김은지 대표 티소믈리에가 고객 앞에서 홍차를 우려내고 있다.  장회정 기자

다양한 차와 음식을 내는 ‘티코스’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 연남동 코코시에나의 김은지 대표 티소믈리에가 고객 앞에서 홍차를 우려내고 있다. 장회정 기자

마치 코스 요리처럼 다양한 차를 서비스하는 ‘티코스’가 주목받고 있다. 코코시에나는 긴 바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티소믈리에가 눈앞에서 차를 내려주며 차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과자류나 간단한 음식을 곁들인다. 셰프가 일정 가격 내에서 요리를 꾸려내는 ‘맡김 차림’처럼 차에 어울리는 요리를 내는 곳도 생기면서 ‘티오마카세’로도 불린다. 3~5가지 코스는 1~2시간 정도 소요된다.

인기 티코스는 특별한 날의 데이트를 위해서나 부모와 함께 찾는 이들이 많다. 김은지 대표는 “남자 분들의 경우 처음에는 ‘무슨 차를 1시간30분씩이나 마셔야 하나’하는 표정으로 들어오시는데 차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새로운 걸 습득하는 걸 즐기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보통 ‘코스’ 예약을 받는 곳은 2인 이상을 원칙으로 내세우는 곳이 대부분이다. “나도 혼자 이용할 때가 많다”는 김 대표는 1인 예약도 받고 있으며, 실제 혼자 오는 고객이 많다고 했다.

차와 본격 요리를 곁들일 수도 있다. 코코시에나가 지난가을 시즌 선보인 페어링. 정산소종 홍차에 일본식 돼지고기조림인 부타카쿠니를 곁들였다. 코코시에나 제공

차와 본격 요리를 곁들일 수도 있다. 코코시에나가 지난가을 시즌 선보인 페어링. 정산소종 홍차에 일본식 돼지고기조림인 부타카쿠니를 곁들였다. 코코시에나 제공

김 대표는 “와인이나 전통주 페어링처럼 차와 음식을 같이 먹는 형식을 구상하다가 2019년 초부터 티코스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번 겨울 티코스 기본 구성은 베이크드 그린티+한라봉과 오트, 암차+명란을 얹은 감자전, 와인과 인도 아삼티를 함께 우려낸 티뱅쇼로 이뤄졌다. 지난가을 시즌에는 정산소종 홍차에 일본식 돼지고기조림인 부타카쿠니를 페어링했다. 가쓰오부시와 같은 훈연향이 느껴지는 차와 육류의 조합이 신선하다는 평을 들었다. 고기에 차를 곁들이면 부대낌이 없어 속이 편하다는 후기도 있었다. 김 대표는 “차가 정말 맛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다양한 차를 맛본 손님이 “아, 나 차 좋아하네”라고 감탄할 때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이 시기 관측되는 한국의 별자리를 콘셉트로 우리 식재료를 이용한 메뉴로 꾸린 알디프의 이번 겨울 시즌 코스 ‘천문관’. 알디프 제공

이 시기 관측되는 한국의 별자리를 콘셉트로 우리 식재료를 이용한 메뉴로 꾸린 알디프의 이번 겨울 시즌 코스 ‘천문관’. 알디프 제공

업계에서 티코스 개념을 처음 시도한 곳은 알디프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은빈 대표는 “차 하면 다도만 떠올리는데 밀크티, 셔벗, 칵테일 등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2016년 말 티 바(bar)를 표방한 알디프를 열었다. 이태원 언덕 위 협소한 7평 매장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자 예약제를 도입했고, 기왕 찾아온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티코스를 선보인 것이 알디프의 시그니처가 됐다. 2018년 옮겨온 서교동 매장의 티코스는 한 달 전 예약이 완료될 정도로 인기다. 지난해 8월 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 선수가 다녀가면서 더 뜨거운 ‘핫플레이스’가 됐다.

체험형 콘텐츠를 표방한 알디프의 티코스는 “2016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매 시즌 단 한 번도 중복된 적 없는 한정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알디프 제공

체험형 콘텐츠를 표방한 알디프의 티코스는 “2016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매 시즌 단 한 번도 중복된 적 없는 한정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알디프 제공

알디프는 독특한 스토리텔링이 담긴 차로 젊은 세대를 사로잡았다. 이 대표는 “ ‘차를 이렇게까지 한다고!’라는 얘기가 절로 나올 정도로 독창적인 메뉴를 개발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이번 겨울 시즌 코스 ‘천문관’은 이 시기 관측되는 한국의 별자리를 콘셉트로 우리 식재료를 이용한 메뉴로 꾸렸다. ‘거문고자리’는 “스모키한 기문 홍차에 은은한 벚꽃을 더한 알디프 시그니처 블렌딩티 경화수월을 우려내고 차가운 우유와 밀크폼, 참기름을 더한 베리에이션 음료”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마요네즈와 쪽파에 버무린 참치를 바삭한 토스트에 올려 함께 서빙한다. 뿐만 아니라 천문관 테마에 맞게 마치 우주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조명을 설치하고 매장의 소품까지 바꾼다. 이 대표는 “참기름을 비롯해 마늘, 후추, 할라피뇨 등 차에 쓸 법하지 않은 재료를 쓰고, 티코스를 즐기는 2시간 동안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듯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매 시즌 티마스터들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모키한 기문 홍차에 은은한 벚꽃을 더한 알디프 시그니처 블렌딩티 경화수월을 우려내고 차가운 우유와 밀크폼, 참기름을 더한 베리에이션 음료” 거문고자리와 페어링한 토스트.  알디프 제공

“스모키한 기문 홍차에 은은한 벚꽃을 더한 알디프 시그니처 블렌딩티 경화수월을 우려내고 차가운 우유와 밀크폼, 참기름을 더한 베리에이션 음료” 거문고자리와 페어링한 토스트. 알디프 제공

최근 1년 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티코스 관련 게시물이 부쩍 늘었다. 과거 차 하면 엄격한 다도나 화려한 본차이나 찻잔의 홍차가 대세였다면, 요즘은 한결 ‘캐주얼’해졌다. ‘티코스’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지만, 매장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서울 계동의 갤러리 더 스퀘어는 보통 4가지 차와 함께하는 식사 코스를 운영한다. 1인당 가격이 4만원인 만큼 샐러드부터 메인 메뉴, 디저트까지 꽉 찬 식사가 제공된다. 성수동의 맛차차에도 다과로 구성된 티코스가 있다. 말차(가루녹차)를 빠르게 저어 거품을 내는 격불을 해보는 등 체험 프로그램을 겸하기도 한다. 인천의 무언은 카페 차덕분에서 운영하는 별도의 티오마카세 공간이다. 현재 프리미엄차 4코스와 식사 6코스, 티로스팅 체험 코스로 구성된 ‘시즌3 코스’를 진행하고 있다. 갤러리 더 스퀘어는 운치 있는 북촌 한옥 뷰, 맛차차는 서울숲 뷰, 무언은 영종도 구읍뱃터에 자리해 서해 뷰로도 유명하다.

티코스는 시즌별로 메뉴가 바뀌기 때문에 계절마다 찾는 단골이 많다. 크리스마스나 기념일에 맞춰 준비하는 이벤트도 충성고객을 만드는 데 한몫한다. 알디프는 지난해 가을 시즌 ‘만화관’을 콘셉트로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모티브로 한 네 가지 한정 메뉴를 선보였다. 또 부천국제만화축제와 협업으로 ‘레전드’ 만화를 테마로 블렌딩한 차 ‘정년이’, ‘스위트홈’ 등을 판매했다. 서울 성수동의 티카페 오므오트는 ‘티 세리모니’라는 타이틀로 시즌별 다양한 티코스를 운영한다. 잎차나 꽃차 등을 위주로 카페인에 취약한 임산부나 노약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거나 코로나 시대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차로 구성하는 배려가 돋보인다.

알디프가 부천국제만화축제와 협업으로 ‘레전드’ 만화를 테마로 블렌딩한 차 ‘스위트홈’ . 알디프 제공

알디프가 부천국제만화축제와 협업으로 ‘레전드’ 만화를 테마로 블렌딩한 차 ‘스위트홈’ . 알디프 제공

신선한 컬래버레이션은 요즘 세대들의 취향에 딱 들어맞았다. 김은지 대표는 “차를 좋아해서 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싶어하는, ‘경험소비’를 선호하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코코시에나는 지난해 미쉐린1스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스와니예의 서정운 셰프와 함께 4가지 요리에 5가지 차를 페어링하는 팝업 티코스를 진행했으며, 스시와 차의 페어링 계획도 갖고 있다.

티코스 이용 후기 중에는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맘 편히 즐겼다”는 내용이 유독 눈에 띈다. 소수의 예약제 운영이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일반 카페보다 심리적 안전감을 준다는 것이다. 티코스 운영 매장 중에는 칸막이나 가림막을 설치한 곳이 많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황 타격을 세게 받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티브랜드 맥파이앤타이거가 운영하는 신사티룸은 가림막 인테리어로 호젓한 분위기를 낸다. 사전예약제를 통해 정해진 시간만 이용이 가능하다. 별도의 티코스는 없지만, 차나 베리에이션 음료에 계절 플레이트를 주문하면 세트메뉴처럼 즐길 수 있다.

티코스가 진행되는 동안 티소믈리에는 우려낸 찻잎인 엽저의 향을 맡거나 만져볼 수 있도록 제공하기도 한다. 사진은 코코시에나의 티코스 중 제공된 엽저.

티코스가 진행되는 동안 티소믈리에는 우려낸 찻잎인 엽저의 향을 맡거나 만져볼 수 있도록 제공하기도 한다. 사진은 코코시에나의 티코스 중 제공된 엽저.

2018년 기준 성인 연간 커피 소비량이 1인당 353잔에 달하는 한국은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2020년 커피 가맹점수가 증가하며 ‘커피공화국’의 위세를 이어가고 있다. 커피는 맛과 향을 즐기는 음료이기도 하지만, 노동을 위해 채워야 하는 카페인 충전제로 통한다. ‘날 잡아서’ 누리는 티코스의 여유는 빠른 걸음으로 일터로 향하는 노동자의 손에 들린 커피의 대척점에 있다.

최근 일명 ‘아이돌물’이 부기를 빼주는 차로 소문나며 화제가 됐다. 아이돌들이 헤어·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이른 아침 뷰티숍에 들렀을 때 즐겨 마신다는 이 음료는 녹차에 꿀을 섞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은빈 대표는 “건강이나 뷰티를 위한 음료”로 차를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도 티 문화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술보다 몸에 좋은 차를 즐기는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티스페셜리스트협회장도 겸하고 있는 그는 “최근 서울을 벗어나 지역 거점에서 새로운 티 브랜드를 만들려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다양한 차를 직접 맛보고 자신의 취향을 알아가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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