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라’가 왜 '청불' 키워드인가요?읽음

이유진 기자
타인의 시선이나 획일적인 유행보다 나만의 기준이 가장 중요시되는 라이프 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다. 속옷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터부시 됐던 노브라가 당당해지는 시대가 왔다. 아르보노브라 제공

타인의 시선이나 획일적인 유행보다 나만의 기준이 가장 중요시되는 라이프 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다. 속옷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터부시 됐던 노브라가 당당해지는 시대가 왔다. 아르보노브라 제공

‘나나랜드’. 사회의 기준이나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나만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요즘 세대의 트렌드를 말한다. MZ세대는 꽉 조이는 스키니팬츠보다는 와이드팬츠, 아찔한 하이힐보다는 스니커즈나 로퍼를 선호한다. 내가 자연스럽고 편한 것이 곧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반면 무엇보다 편해야 할 여성 속옷은 아직 넘을 산이 많아보인다. 와이어 브라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트렌드에 맞춰 노와이어 브라, 심리스 브라로 진화해왔지만 웬일인지 ‘노브라’만큼은 여전히 입 밖으로 내기 껄끄러운 단어로 남아있다. 실제로 모든 포털사이트에서 이를 청소년 유해 단어로 묶어놨다. 노브라를 검색하면 ‘청소년에게 노출하기 부적합한 검색결과를 포함하고 있다’는 공지가 뜬다. 단순히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차림’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어쩌다가 이런 대우를 받게 됐을까.

이유 없이 핍박받는 노브라의 사정을 이화여자대학교 마케팅학회 ‘EMOC(이목)’과 노브라 전문 브랜드 ‘아르보노브라’가 들여다봤다.

아르보노브라 홈페이지에 게재된 노브라웨어 사용자 리뷰 사진들. MZ세대 사이에서 노브라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고 있다.

아르보노브라 홈페이지에 게재된 노브라웨어 사용자 리뷰 사진들. MZ세대 사이에서 노브라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고 있다.

■호형호제 못하는 ‘노브라’라는 존재

민경아 대표는 ‘노브라’의 알파벳을 거꾸로 쓴 ‘아르본’과 ‘노브라’를 합쳐 ‘아르보노브라’라는 여성 노브라웨어 전문 브랜드를 만들었다. 노브라라는 단어가 들어가 직관적이면서도 데칼코마니 같은 정형미가 담긴 브랜드명이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닥칠 난관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이미 상표권 등록까지 마치고 포털사이트에 브랜드 등록하는 단계였어요. 포털로부터 브랜드명에 노브라가 포함됐다고 해서 연속적으로 승인이 거절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회사 마케팅 담당자가 수십 번 시도해도 반려의 연속이었죠.”

‘청소년 유해 단어가 포함돼있어 사용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검수 후에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포털사이트의 공식 답변이었다. 민 대표는 상표권 등록증과 제품 소개 자료들을 보내고 설득에 설득을 걸쳐 겨우 승인을 받았다.

브랜드 등록은 성공했지만 난관은 이어졌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업체의 주요 제품인 ‘노브라티,’ ‘노브라웨어’를 입력해도 제품이 노출되지 않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레깅스’를 검색했을 경우, 다양한 정보와 브랜드군이 노출되어 정보 습득이 용이해요. 하지만 ‘노브라’는 단어 자체가 막혀있고 그 기준도 모호해 진짜 정보는 감춰지고, 되려 자극적인 블로그나 기사들은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품 판매 이전에 남녀노소 모두에게 노브라에 대한 메시지 전달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마저 막히니 힘이 빠졌죠.”

포털사이트 배너 광고 제작에도 많은 제약이 따랐다. 노브라는 물론 ‘Y존,’ ‘사타구니,’ ‘그곳’ 그리고 정식 용어인 ‘BP’마저도 특정부위 지칭 표현이라며 수정을 요청받았다. 아르보노브라 제공

포털사이트 배너 광고 제작에도 많은 제약이 따랐다. 노브라는 물론 ‘Y존,’ ‘사타구니,’ ‘그곳’ 그리고 정식 용어인 ‘BP’마저도 특정부위 지칭 표현이라며 수정을 요청받았다. 아르보노브라 제공

언론에 전달할 신제품 보도자료를 만들려하자 이번엔 언론 홍보 대행사가 제동을 걸었다. 언론사도 키워드 노출에 대한 포털사이트의 정책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노브라’라는 단어가 포함되면 자료 송출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럼 관련 타 브랜드들은 어떻게 해당 제품을 표기하고 있을까? ‘컴포티,’ ‘애니웨어,’ ‘숨바꼭티’ 같은 우회적인 표현으로 노브라 웨어를 설명하고 있었다.

“다들 저희와 같은 경험이 있지 않겠어요? 포털사이트에 ‘이것 좀 풀어주세요. 노출시켜 주세요’ 매번 요청할 수 없으니 ‘그냥 우리가 키워드를 만들자’라는 결론에 도달한 거라고 봐요. 왜 우리는 노브라를 노브라라고 부르지 못하는 거죠?”

민 대표는 노브라가 터부시 되는 이유에 대해 ‘지극히 남성 위주의 시선’ 때문이라는 의견을 냈다. 여성들의 인식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데 포털 정책의 틀은 옛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쇼핑 박람회에 참여해봐도 10·20대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부스로 찾아와 제품을 꼼꼼히 살펴봐요. 과거 가수 화사 씨가 노브라 공항 패션으로 화제가 됐을 때 이상하게 바라봤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은 패션이 아닌 건강을 위해 노브라를 찾기 시작했어요.”

이화여대 마케팅학회 ‘EMOC’은 설문 조사를 통해 대부분의 여성들이 ‘브래지어는 불편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화여대 마케팅학회 ‘EMOC’은 설문 조사를 통해 대부분의 여성들이 ‘브래지어는 불편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발표했다.

■노브라,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서

지난 달 17일 이화여대 마케팅학회 ‘EMOC’ 회원들이 아르보노브라 사무실에 모였다. 노브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걷어내고 여성의 건강과 직결되는 속옷 브래지어를 대체할 새로운 문화 솔루션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EMOC A팀은 294명의 여성 소비자를 대상으로 노브라에 대해 설문한 내용을 발표했다.

자기 몸 긍정주의 트렌드가 확산에 따라 설문 참여자의 70.3%가 ‘노브라는 개인의 자유’라는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 노브라라는 단어에 대해 자유롭게 작성해달라는 질문에 ‘편하다’ ‘자유롭다’ ‘개인의 자유’라고 답했다. 실제 브래지어를 착용 중인 90.5%의 참여자는 ‘브래지어는 불편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다수의 여성이 BP(Breast Point·유두)점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노브라의 거부감이 있었다. 참여자들 75% 이상이 BP점 노출 시 타인의 시선이 불편할 것 같고, 예의에 어긋나 보인다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평소 노브라웨어를 시도해 본 42% 소비자들 역시 제품 착용 중에도 BP점이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EMOC A팀은 여성들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노브라 상태를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에 자신 있는 선택을 위한 용기를 줄 수 있는 새 용어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들이 정한 노브라웨어를 대체할 새로운 키워드는 ‘프라우드 웨어’다. 이 키워드의 의미는 “일상복을 표방하는 아르보노브라의 정신에 맞춰 일상 속에서도 당당하게 노브라를 실천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부정적인 어감의 노브라에서 탈피하고 긍정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심어줄 수 있는 키워드”라는 것. 여기에 ‘유브라, 노브라 모두에서 느낄 수 있는 불안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의미도 담았다. 접촉성 피부염, 역류성 식도염에서 유방암까지 브래지어로 인한 건강 위협과 노브라로 인한 정신적인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도 녹였다.

EMOC 회원들은 노브라 웨어를 대신할 단어로 ‘프라우드 웨어’ ‘컴포미웨어’ 등을 제안했다. 아르보노브라 제공

EMOC 회원들은 노브라 웨어를 대신할 단어로 ‘프라우드 웨어’ ‘컴포미웨어’ 등을 제안했다. 아르보노브라 제공

EMOC B팀은 MZ세대 221명을 대상으로 노브라와 노브라 웨어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응답자의 92.5%가 브래지어 착용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고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그 종류를 바꾼 적이 있으며, 노브라 상태를 가장 편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60% 이상이 노브라에 대해 ‘편하다’ ‘해방감이 든다’ 등의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반면 86~95%는 가까운 생활 반경 내에서 노브라를 실천하고 있으나, 생활 반경에서 늘어날수록 브래지어를 착용하게 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B팀은 노브라 웨어를 원마일 웨어가 아닌 투마일 웨어의 이미지로 어필할 것을 제안했다. 원마일웨어는 실내와 집 근처 1마일(1.6km) 반경 내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을 일컫는 용어로 편안하면서도 활동성 있는 의류로 통한다. B팀은 언제 어디서나 입을 수 있는 일상복, 편안하다는 점, 다양한 상황에 어울리는 디자인이라는 점을 들어 노브라웨어의 새로운 키워드로 ‘컴포미웨어’를 제시했다. 컴포트(comfort)와 포미(for me)의 합성어로 나를 위한 편안함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밖에도 ‘비욘드웨어’, ‘NOF웨어’, ‘필컴포트’ 등이 언급됐다.

“대학생들의 재기발랄한 의견에 대해 공감한다”는 민 대표는 “해답을 찾는 방향성에 큰 참고가 됐다”며 “‘노브라 라이프’가 긍정적이라는 인식을 만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용어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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